영화 <불안한 외출>의 윤기진, 황선 부부.

영화 <불안한 외출>의 윤기진, 황선 부부. ⓒ 홀리가든


빨갱이 혹은 종북이라며 출신과 사상을 묻는 국가. 냉전시대를 지난 서구에선 이미 던져버린 낡은 산물을 아직까지 꼭 껴안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그저 모른 척 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여기에 반기를 드는 순간 빨갱이라는 수식어가 달려든다. 마치 녹 슨 올무처럼.

다큐멘터리 영화 <불안한 외출>은 그 올무에 잡혀 상처를 입은 한 부부에 대한 이야기다. 학생 운동 단체(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의 의장을 지냈다는 이유로 수배자가 됐고, 결혼식마저 경찰 감시를 피해다니며 치러야했던 이들이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영화는 이들이 갖고 있던 두려움과 이들이 그토록 원했던 평범한 일상의 단면을 가감 없이 담았다.

더 자세한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영화 개봉일(12월 10일)을 앞둔 지난 3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영화의 두 주인공인 윤기진-황선 부부, 그리고 이 작품을 연출한 김철민 감독을 만났다.

예상치 못했던 유쾌함

 영화 <불안한 외출>의 한 장면.

영화 <불안한 외출>의 한 장면. ⓒ 다큐창작소


우선, 아직 이 다큐를 보지 못했을 독자들에게 분명히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불안한 외출>은 철저히 개인 역사를 기록한 작품이라는 사실. 어떤 교훈이나 가르침을 위한 영화였으면 애초에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같은 곳의 초청은 받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달엔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문화주간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두 사람은 2004년 결혼했다. 두 살 터울의 연상연하 커플로, 함께 학생운동을 하다 눈이 맞았다. 윤기진씨가 수배중이었기에 힘든 가정생활이 뻔히 예상됐지만, 결국 결혼했다. 프러포즈를 두고 서로 "당신이 했다"며 미루고, "(다른 거 안 보고) 솔직히 남편이 잘 생겨서 결혼했다"고 고백하는 모습이 아기자기하게 사는 여느 부부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0년 수배생활과 5년 수감생활을 견딘 사람들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밝은 모습이었다.

"이게 영화화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된다고 해도 투쟁 영상처럼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지. 음... 국가보안법 철폐에 대한 영상 교양물 정도?(웃음) 내게도 이미 선입견이 있었던 거다. 감독님이 집에 와서 우리를 찍고 아이들을 찍는 걸 보며 불안하긴 했다. '왜 (수감생활을 한) 남편 이야기에 집중 안하지?' 생각하면서. 내가 감옥 가있는 동안(황선씨는 2014년 재미교포 신은미의 통일콘서트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구속됐다가 올해 풀려났다 - 기자 주) 뒷부분이 일부 바뀌었다고 들었는데, 그저 감사한 마음이다. 지금도 몇몇 장면을 보면 여전히 눈물이 난다." (황선)

"황선씨가 그런 불안함을 갖고 있는지 몰랐다. 불안함이 있어서 내게 덜 협조적이셨나(웃음). 처음부터 딱딱하게 혹은 논리적으로 접근하고 싶지 않았다. 한 가족이 세상에 대해 느끼는 불안감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담으려 했다. 2002년부터 진보 미디어 운동을 해왔고 이 두 분의 영상도 꽤 오래 전부터 찍고 있었지만, 영화화를 생각한 건 2011년 윤기진씨가 출소하면서부터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걸 보면서 본격적으로 다뤄야겠다고 생각했다." (김철민 감독)

"난 영화화에 대해 소극적 동의를 한 셈이다. 감독님이 자꾸 날 따라다는 게 좀 불편하기도 했고. 그런데 막상 나온 영화를 보니 너무 좋더라. 내 입장에선 옥살이를 하느라 알 수 없었던 우리 아이들의 어렸을 적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내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운동을 했고 종북 인사라는 낙인이 찍혀 있는데, 과연 사람들이 이해해줄지... 게다가 감독님은 휴먼 다큐처럼 찍는다고 하지... 자신이 없었다. 스스로도 패배감이 있었던 거지. 그런데 부산영화제에서 보신 관객 분들 반응이 좋았다. 공감도 해주셨고." (윤기진)

다양한 관객들의 반응에서 자신감을 찾다

 영화 <불안한 외출>의 한 장면.

영화 <불안한 외출>의 한 장면. ⓒ 다큐창작소


윤기진씨의 언급처럼, 미리 이 영화를 접한 관객들의 반응은 매우 다양했다. 어떤 외국인 관객은 눈물을 글썽이며 두 사람을 안아보자고, 사진을 같이 찍자고 했다. 어떤 80대 할머니는 영화제가 끝난 뒤 이 부부에게 봉투 하나를 보냈다. 거기엔 소정의 돈이 담겨 있었다. 아이들 용돈에 보태라는 쪽지와 함께.

"영화를 본 이후 진보 진영 스스로 장막을 쳐놓고 그간 너무 위축돼 있던 건 아닌지 돌아봤다"는 황선씨는 "(이념이 아닌) 사람이 그저 사람으로 만나는 계기를 감독님이 만들어 준 셈이다, 이게 바로 70년 넘게 계속돼온 이데올로기 공세를 이기는 힘이겠구나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기자는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하나를 언급했다. 결혼식 직후 하객들의 보호를 받으며 경찰을 피해 지하철로 뛰어들어갔던 윤기진씨. 열차 문에 몸을 기댄 채 생각에 잠긴 그의 모습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복잡한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 상황도 좋지 않다. 국민적 비극도 있었지만 우리 부부도 바닥을 경험했잖나. 하지 않았던 말이 만들어졌고, 소위 '몰이'를 당했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든다. 분명 그 분도 피해자인데, 얼마나 억울했으면 그 거리에 나왔겠나. 그걸 또 가해자처럼 몰아간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는 또 피해자가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세월호 사고를 담은 <나쁜 나라>도 개봉한 걸로 안다. 이 같은 여러 비극이 동시대에 벌어지고 있다." (윤기진)

"한국 현대사를 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국가에 의해, 국가가 내세운 단체들에 의해 학살됐다. 세월호 사고 역시 국민들이 학살 당한 것과 다름없다. 유가족 분들에 비하면 우리 부부가 겪었던 십 수 년의 시간은 정말 별 거 아닌 이야기다. 이 영화를 통해 이름 없는 숱한 사연들이 환기됐으면 좋겠다. 올해 감옥에 있을 때 사실 힘들긴 했다. 아이를 못 챙기니 마음이 아프더라. 매일 등교시간이 되면 감옥에서 108배를 했다. 그러던 중 내 아픔이 세월호 사고를 당한 엄마들의 만분의 일도 안되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래도 난 접견실에서 아이들을 볼 수 있고 기다리면 만날 수 있는데, 그분들은 아니잖나. 사고 진상규명조차 안되고 있고." (황선)

<불안한 외출> 개봉을 준비하면서 이들은 어느 정도 자신감을 찾았다. 물론 부산영화제 진출 직후 종합편성채널 등에서 부정적인 보도를 연달아 내며 상영 조건이 열악해지긴 했다. 영화 자체로 평가받기 전부터 그 평가의 기회조차 극히 좁아진 것이다. 하지만 직접 영화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다. 윤기진씨는 "국보법에 대해 전혀 몰랐던 분들도 영화를 보면서 손잡아 주셨다"며 "영화의 힘이 참 크다는 걸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

 영화 <불안한 외출>의 윤기진, 황선 부부.

영화 <불안한 외출>의 윤기진, 황선 부부. ⓒ 홀리가든


이들에게 대한민국에 대해 물었다. 윤기진씨가 망설임 없이 답했다.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라고.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다. 그를 그토록 괴롭혔던 국가 아닌가. 그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권력이) 1950년대엔 보도연맹으로 반정부 인사를 넘치게 죽였고, 60년대와 70년대엔 국보법으로 죽였음에도, 국민들은 굴하지 않고 일어서지 않았나"며 그는 "세월호 사고 진상규명을 위해서 3개월 만에 600만 명이 서명하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라고 말했다.

"마치 한국이 자신들이 나라인양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있다. 그걸 보면 '헬조선'인 게 맞다. 무능과 부정부패가 계속되는데 반공, 빨갱이 타령으로 메꾸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여전히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사실 페이스북으로 어느 해외 동포 분이 우리에게 망명을 권하기도 했다. 교포들이 돕겠다면서. 하지만 해외 어디에서 살든 결국 조국이 여기임은 다들 부정 못할 거다." (황선)

"다큐멘터리를 위한 소재가 풍부한 나라라고나 할까(웃음). 감춰진 진실과 아픈 상처들이 많다. 정치인들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색깔론을 써왔다. 현재 한국을 지배하는 '종북'이라는 단어는 결국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를 외면하게 하고 고립시키기 위해 그들이 만들어낸 거다. 영화 <암살>의 염석진(이정재 분)이 친일파로 변절한 이유를 '우리가 독립할 줄 몰랐다'고 하잖나.

세상이 변할까 의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포기하지 않고 현실에 발을 딛고 저항하는 사람들에 의해 역사가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침묵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 그 족쇄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불안한 외출>의 개봉은 그런 의미에서 도전이었다." (김철민 감독)

짐짓 유쾌하게 혹은 진중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던 세 사람. 그런데 정작 윤기진, 황선 부부의 삶은 아직 제자리에 멈춰있다. 윤기진씨는 국가보안법 관련 대법원의 판결을 앞두고 있고, 황선씨 역시 내년 1월 1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그 사이 언제 소환 명령이 떨어질지 모른다. 여기에 더해 경찰은 지난 11월 17일 민중총궐기의 기획을 윤기진씨가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에겐 여전히 일상 자체가 영화 제목처럼 '불안한 외출'이다.

이런 걱정을 애써 날리려는듯 황선씨가 웃으며 말한다. "(총궐기를 기획할 정도로) 우리 남편이 그렇게 훌륭하진 않다"고. 그는 "이 영화에 14만 관객이 들면 한 번쯤 의심해볼 수는 있겠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윤기진씨가 한 마디를 보탰다.

"예전엔 지하철을 탈 때마다 '21세기에 나처럼 사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들은 나란 존재를 알까?' 생각하곤 했다. 지금은 다르다. '이 많은 사람 중 과연 마음 편히 사는 사람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사회는 곧 관계망인 만큼 사회 자체가 쳐지면 우리 모두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적어도 썩은 정신으로 세상을 살진 않았으면 좋겠다." (윤기진)

 영화 <불안한 외출>의 포스터.

영화 <불안한 외출>의 포스터. ⓒ 다큐창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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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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