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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요사 앞에 철쭉이 활짝 피었다. 겨울의 절집에서 만나는 화사한 봄꽃이다.
 선암사 요사 앞에 철쭉이 활짝 피었다. 겨울의 절집에서 만나는 화사한 봄꽃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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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선암사에 가려는데. 어떻게 가야 돼요?"
"무슨 일로?"

"리포트를 써야 하는데요. 선암사를 답사하고, 후기를 제출해야 해요."
"그래. 아빠랑 같이 갈까?"

딸아이랑 함께 조계산(884m) 선암사로 간다. 지난 12월 6일이다. 순천에 있는 선암사는 신라 법흥왕(514∼540) 때 아도화상이 처음 지었다. 도선국사가 큰 가람으로 일으켰다. 1985년에 태고총림을 세우고, 본산이 됐다. 태고종은 승려의 혼인을 허락한다.

선암사는 언제나 여전한 절집이다.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절집으로 가는 숲길도 호젓하다. 왼편으로 맑은 계곡이 흐른다. 숲에는 산벚나무와 굴참나무, 층층나무, 단풍나무가 많다.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도 인정했다. 가을이 떠난, 그 길을 따라 간다.

선암사로 가는 길에 만나는 전통 야생차 체험관. 한옥으로 옛집의 분위기가 묻어난다.
 선암사로 가는 길에 만나는 전통 야생차 체험관. 한옥으로 옛집의 분위기가 묻어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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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야생차 체험관에서의 시음. 추운 날씨로 움츠러든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
 전통 야생차 체험관에서의 시음. 추운 날씨로 움츠러든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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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편 부도밭 뒤로 전통 야생차 체험관이 들어앉아 있다. 단아한 멋과 여유가 묻어나는 한옥이다. 시음한 꽃차의 향이 그윽하고 깊다. 옛집에서 맛본 차향이 호사를 선사한다. 고만고만한 조약돌로 거북이와 사람의 발바닥 형상을 만들어 놓은 것도 웃음 짓게 한다.

숲길에서 만나는 승선교(昇仙橋)도 명물이다. 그 위에 서면, 누구라도 신선으로 만들어주는 돌다리다. 1713년(숙종 39년)에 호암대사가 쌓았다. 보물(제400호)이다. 지난 2003년 말에 다시 쌓았다. 이끼 낀 옛 돌을 그대로 다시 넣었다. 재활용하지 못한 돌도 한쪽에 따로 모아 놓았다. 그 돌도 애잔하다.

계곡으로 내려가서 승선교를 바라본다. 반달 모양의 다리 사이로 강선루(降仙樓)가 보인다. 신선이 내려왔다는 누각이다. 신선들은 승선교에서 하늘로 올라갔다. 절집으로 오는 손님을 신선에 비유했다는 얘기도 있다. 일주문 밖에 누각을 둔 것도 별나다.

선암사 승선교. 누구라도 신선으로 만들어주는 돌다리다. 그 사이로 보이는 누각이 강선루다.
 선암사 승선교. 누구라도 신선으로 만들어주는 돌다리다. 그 사이로 보이는 누각이 강선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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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인당. 도선국사가 만든 연못이다. 절집의 방화수 역할도 했다고 전해진다.
 삼인당. 도선국사가 만든 연못이다. 절집의 방화수 역할도 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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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루를 지나서 만나는 삼인당은 도선국사가 만든 연못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 등 삼법인을 뜻한다. 불교의 중심사상이다. 연못이 절집의 방화수 역할을 했다는 설도 있다.

야생의 차밭 옆으로 난 길의 끄트머리에 자리한 일주문도 눈길을 끈다. 기둥의 가운데가 굵고, 위아래가 가늘다. 지붕은 사람 인(人)자를 그리고 있다. 맞배기와에 배흘림기둥이다. 문화재다.

대웅전도 오래됐다. 몇 차례 불에 탄 것을 1824년에 다시 지었다. 두 기의 삼층석탑도 소박하다. 모두 보물로 지정돼 있다. 꾸밈이 없는 절집과 잘 어우러진다.

선암사 대웅전과 삼층석탑. 꾸밈없는 절집과 잘 어우러져 있다.
 선암사 대웅전과 삼층석탑. 꾸밈없는 절집과 잘 어우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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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뒷간. 지은 지 400년 돼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유홍준 교수가 세계에서 가장 운치 있는 화장실이라고 극찬한 뒷간이다.
 선암사 뒷간. 지은 지 400년 돼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유홍준 교수가 세계에서 가장 운치 있는 화장실이라고 극찬한 뒷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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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한쪽에 큰 구유도 있다. 큰 통나무의 안을 파서 만든 밥통이다. 길이가 330㎝나 된다. 2000명이 먹을 수 있는 밥을 담았단다. 옛 선암사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오래 전, 선암사는 스님 1500명이 생활할 정도로 큰 도량이었다. 선암사에서 공부를 해야 비로소 교계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절집의 뒷간도 고풍스럽다. 유홍준 교수가 세계에서 가장 운치 있는 화장실이라고 극찬한 뒷간이다. 지은 지 400년 됐다. 一자형 건물에 맞배지붕의 겉모습이 장엄하다. 재래식 화장실로는 드물게 남녀 칸도 구분돼 있다.

"와! 기본이 몇 백 년이네요. 400년, 500년…." 전각의 표지판을 하나하나 훑어보던 딸아이의 말이다. 실제 절집 요사의 역사가 깊다. 대웅전은 물론 지장전, 불조전, 원통전에도 세월이 더께더께 앉아있다.

하지만 위압적이지는 않다. 소박하고 은은하다. 불사를 하면서 옛 흔적을 지워버린 숱한 절집과 다르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대금 연주음악도 절집의 품격을 높여준다. 고찰(古刹)의 분위기 그대로다.

선암사로 가는 길. 숲길이 깔끔하면서도 고즈넉하고 다소곳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선암사로 가는 길. 숲길이 깔끔하면서도 고즈넉하고 다소곳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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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에서 만난 감나무. 계절이 겨울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데도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열려 있다.
 선암사에서 만난 감나무. 계절이 겨울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데도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열려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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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는 '보물창고'다. 대웅전과 승선교, 동종, 삼층석탑 등 18점이 국가지정 문화재다. 일주문, 원통전, 삼인당, 중수비 등 도지정문화재도 9점 있다. 뒷간 등 문화재자료도 3점 보유하고 있다. 유홍준 교수가 <나의문화유산답사기>에서 선암사를 우리나라의 최고 문화유산으로 꼽은 이유다.

오랜 세월을 지켜온 나무도 남다르다. 원통전과 각황전 주변의 매실나무는 천연기념물이다. 수령 600년으로 최고령 대접을 받고 있다. 세월의 무게는 삼성각과 장경각 앞의 동백나무와 측백나무, 석류나무에서도 묻어난다.

천불전 앞 와송도 600년을 살았다. 따로 기둥을 세워 가지를 받치고 있다. 아직껏 따지 않은 감과 철모르고 피어난 봄꽃의 동거도 색다른 풍경이다. 계절이 겨울의 한가운데로 접어들고 있는데, 요사 부근에 철쭉이 활짝 피었다.

수령 600년 된 선암사 와송. 천불전 앞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수령 600년 된 선암사 와송. 천불전 앞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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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의 요사와 어우러진 야생차밭. 선암사 주변에는 야생 차나무가 지천이다.
 절집의 요사와 어우러진 야생차밭. 선암사 주변에는 야생 차나무가 지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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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을 둘러싼 야생의 차밭도 소중하다. 산신각과 진영각 뒤 숲에 차나무가 지천이다. '선암사 야생 작설차'의 재료가 되는 차나무다. 스님들이 이 찻잎을 따 가마솥에 덖어 차를 만든다. 스님들은 차 만들기를 수행의 도반으로 여기고 있다. 법요식 때도 다례가 빠지지 않는다.

멀리서 들리던 대금 연주음이 가까워졌다. 만세루 옆에서 스님이 대금을 불고 있다. '청송곡'에서 '장녹수'로 이어진다. 합장을 하고 "연주솜씨가 수준급"이라 했더니, "지금 배우는 중"이라며 웃음 짓는다.

"내년 봄 매화축제 무대에 한 번 서보고 싶다"는 말도 덧붙인다. 혜봉스님의 대금 연주음악이 해질 무렵 절집 분위기를 더 아늑하게 해준다.

혜봉 스님이 대금을 연주하고 있다. 스님의 대금 연주가 절집의 분위기를 더욱 아늑하게 해준다.
 혜봉 스님이 대금을 연주하고 있다. 스님의 대금 연주가 절집의 분위기를 더욱 아늑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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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숲길.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어 고즈넉한 절집의 분위기를 선사한다.
 선암사 숲길.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어 고즈넉한 절집의 분위기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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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국도 승주 나들목으로 나가 우회전, 서평삼거리에서 낙안·벌교방면으로 857번 지방도를 탄다. 죽학삼거리에서 곧바로 직진하면 선암사 주차장에 닿는다. 내비게이션은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산802.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선암사, #혜봉스님, #승선교, #야생차체험관, #뒷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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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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