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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우금치 공연장에 처음 간 것은 녀석이 걸음마를 막 시작할 무렵이었다. 공연내용이야 알아들을 리 만무지만 풍물장단에 박수도 치며 재밌어했다. 공연이 끝난 뒤 배우인 이모, 삼촌들은 공연장에 온 꼬마를 귀여워해 줬다.

시간이 흘러 꼬맹이는 대학 졸업반이 됐다. 청년이었던 이모와 삼촌들은 어느덧 오십을 넘나드는 중년으로 변했다. 마냥 킥킥거리며 공연 보던 지난날과 달리 작품에 대한 잔소리도 제법 늘어놓는다. 어려서 접한 풍물소리가 좋았던지 녀석은 대학생활 내내 풍물동아리에 열심이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던가. 이런 취미는 평생을 함께해도 아쉬울 게 없을게다. 외로운 인생길 달래줄 벗이 될 수 있을 테니... 

마당극패 우금치 25년의 세월, 그들을 지켜보았다 

북어가 끓이는 해장국
 북어가 끓이는 해장국
ⓒ 오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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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금치 마당극은 우금치만의 독특함이 있었다. 어떤 작품이든지 구경꾼을 웃기고, 분노하고, 슬프고, 기쁘게 하는 희로애락이 담겨있다. 마지막은 우금치 특유의 신명 나는 한판이 벌어진다. 그래서 우금치 공연을 보고 나면 가슴이 후련해진다.

우금치의 또 다른 독특함은 시대와 사회를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줌마만세> <쪽빛황혼>을 비롯한 40여 편의 창작 마당극은 농민, 여성, 환경 등 시대정신이 요구되는 주제, 현실을 헤쳐 가는 민초들의 힘과 희망이 담겨있었다. 

4반세기 마당극 외길을 걸어온 우금치, 쉽고, 재밌고, 감동 있는 작품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공연예술을 지향하는 우금치, 그들이 걸어온 25년을 함축하여 표현하면 이렇다. "우직하다" "한결같다" "역시 우금치답다"

한남대 탈춤반동문회 양주별산대 공연
 한남대 탈춤반동문회 양주별산대 공연
ⓒ 오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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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학번, 대학 탈춤반, '전환시대의 논리'를 비롯한 몇 권의 책... 우리가 함께 보낸 20대를 떠오르게 하는 낱말들이다. 80년대 우리 사회는 늘 하수상한 시절이었다. 두 개의 현실은 서로 마주 달리고 있었고 군중들은 누군가의 외침을 기다리고 있었다. 풋내기였던 우리들 대학생활도 시간이 흐르며 점차 철들어 갔다. 그리고 졸업 후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 고민도 깊어졌다. 그래서 누군가는 공장으로, 농촌으로, 시민사회단체로... 각자가 뜻을 세운 삶의 현장으로 떠났다. 이때 마당극을 통한 문화예술로 사회변화에 기여하겠다고 뭉친 이들이 바로 우금치였다.

그 무렵 난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뒤 직장에 취직했다. 스스로 나올 때까지 23년을 다녔던 직장은 월급 날짜를 하루도 어기지 않았던 아주 운 좋은 곳이었다. 월급을 타면서 자연스럽게 우금치 후원회원이 됐다. 자동이체로 매달 돈 만 원씩을 보내고, 아주 가끔 밥 한 끼 사는 것으로 내가 가진 부채감을 덜고자 했다.

고백하건대, 그들과 살아온 의리에 비하면 난 지독한 깍쟁이였다.

매달 월초가 되면 우금치 소식지가 날아온다. 카드명세서, 통신비, 각종 공과금의 우편물. 온통 돈 내라는 청구서 틈에서 우금치 소식지는 유일한 반가움이다. A4용지 2장을 붙여 만든 크기는 딱 적당해서 화장실에서 꼼꼼히 정독해도 문제없다. 지난달에는 어느 도시를 돌며 어떤 작품을 공연했는지... 그리고 이달에는 어디서 공연을 하는지... 우금치 활동이 빼곡히 적혀있다.

누가 지나가는 길에 포도 한 상자를 놓고 갔다거나 호두과자 몇 박스를 보내준 것까지 써서 고마움의 표시를 잊지 않는다. 또 단원들의 생활 속 이야기와 새로운 작품구상까지도 미리 읽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우금치의 일거수일투족이 생생히 담겨 있는 소식지가 늘 기다려진다.

우금치는 일 년에 두어 번 후원회원에게 공연 초대권을 보내준다. 몇 해 전 부모님을 모시고 공연장을 찾았다. 누군가가 모시고 가지 않으면 스스로는 엄두도 못 낼 팔십 중반을 넘은 연세다. 더욱이 공연장이라고는 일평생 근처에도 못 가셨을 만큼 여유롭지 않았던 삶이셨다. 긴장하신 두 분은 공연 내내 몰입하시고 재밌어하셨다. 공연장을 나오면서 흐뭇해 하시는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대략 이백 명쯤 되는 우금치 후원회원 중에는 나처럼 단원의 선후배도 있지만, 마당극 강습에 참여하거나, 공연을 보고 매력에 이끌려 가입한 관객도 있다. 본인은 물론, 남편이나 아들, 딸의 이름으로 점점 후원구좌를 늘리는 이들도 있다. 공연 때 지인을 데리고 와서 직접 소개하고 가입시키기도 한다. "후원회원이야말로 우금치의 오늘이 있게 한 든든한 버팀목"이라고 말하는 우금치 사람들. 그래서일까. 그들은 후원금을 극단 운영비로 쓰지 않는다. 대신 차곡차곡 모았다가 일정 금액이 되면 작품제작비로 쓴다. 그것이 귀한 후원금을 가장 의미 있게 쓰는 길이라 믿기에. 그래서 우금치가 새로운 작품을 선보일 때면 공연장에는 후원회원에 대한 감사현수막이 걸리고 소중한 이름들은 팸플릿에 실린다.

우금치에 후원한 돈, 수백 배 가치의 '힐링'으로 되돌려받아

마당극 돼지잔치
 마당극 돼지잔치
ⓒ 오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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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수없이 많다. 그럴 때마다 머릿속에선 내 손익은 어떨지 재빨리 계산해 본다. 적당한 선에서 눈치껏 타협했기에 별 부족함 없이 살아왔다. 오십을 목전에 둔 어느 날 가슴을 후비는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대답은 '아니다'였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2의 인생으로 귀농을 선택했다. 주변의 만류도 있었지만, 2년이 지난 지금은 제법 농사꾼 흉내를 내면서 살고 있다.

우금치 단원들 역시 배우가 좋아서 선택한 인생길이다. 배우로 살아가는 것은 언제나 고달프다. 매달 월급이야 받겠지만 아이들 키우면서 가정생활하기엔 턱없이 부족했을 거다. 그러나 20년 넘게 지켜봤지만 힘들다는 말을 그들에게 들어본 적이 없다. 지치고 힘들었을 텐데 언제나 의연했다. 검소함이 배인 모습. 주눅들지 않은 표정. 그리고 공연 마당판에 나서면 열정의 눈빛이다.

우금치를 바라보며 깨닫는다. 행복은 풍요로운 물질 밖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것, 혼자보다는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가 훨씬 아름답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그들을 만나면 다시 힘이 난다. 역설적이게도 쥐꼬리만큼 후원을 했지만 그들에게서 수백 배 많은 힐링을 되돌려 받는 관계가 된 것이다.

진안군 주천면 무릉리에서
 진안군 주천면 무릉리에서
ⓒ 오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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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밭일하다 보면 햇볕과 바람을 맛본다. 작물은 자라면서 성취감도 가져다준다. 단순하고 소박한 생활방식, 자연과 조화되는 삶은 앞으로 내가 걸어야 할 인생길이다. 귀농 2년째, 초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자면 부지런한 자기 성찰이 뒤따라야 함을 배운다. 마당극에 대한 초심을 지키며 꿋꿋하게 걸어온 25년 우금치의 역사. 쌓아온 성과도 자랑스럽지만 그들이 가진 서로에 대한 배려와 품성은 훨씬 아름다워 보인다.      

이제 우금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마당극 단체로 자릴 잡았다. 지난 세월, 어떠한 상업자본의 논리에도 무너지지 않고 끊임없는 도전과 실험으로 시대에 맞는 마당극을 만들어왔다. 지금 짓고 있는 '별별마당 우금치'는 앞으로 10년 20년 대한민국의 마당극을 생산해내는 귀한 장소가 될 것이다. 또한, 시민이 함께 만들고 함께 누리는 공간이 될 것이라 하니 기대도 크다.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지난 25년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뚝심 하나로 헤쳐 온 우금치기에 또 한 번 멋지게 해낼 것으로 믿는다. 우리나라에 이만한 마당극 단체가 있다는 것. 자부심을 가져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스토리펀딩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별별마당, #우금치, #마당극, #귀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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