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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은씨는 강원도 춘천 인문학카페 36.5º 대표이자, 대한민국효녀연합을 결성해 화제가 된 홍승희씨의 언니입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효녀연합'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 ("얼굴이 예쁘다" "개념녀")을 비판하는 글을 1월 8일부터 11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올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홍승은씨의 동의를 얻어 그가 올린 글들을 싣습니다. [편집자말]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6일 오후 일본군위안부 한일협상을 환영하는 집회를 열기 위해 종로구 일본대사관앞 소녀상(평화비)쪽으로 이동하자, 한일협상 무효와 소녀상지키기 운동을 벌이고 있던 시민들이 '대한민국효녀연합' 피켓을 들고 가로막고 있다. 피켓에는 '애국이란 태극기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물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는 것입니다'고 적혀 있다.
▲ '어버이연합'에 맞선 '효녀연합'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6일 오후 일본군위안부 한일협상을 환영하는 집회를 열기 위해 종로구 일본대사관앞 소녀상(평화비)쪽으로 이동하자, 한일협상 무효와 소녀상지키기 운동을 벌이고 있던 시민들이 '대한민국효녀연합' 피켓을 들고 가로막고 있다. 피켓에는 '애국이란 태극기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물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는 것입니다'고 적혀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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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효녀연합을 응원한다는 사람들은 "얼굴도 예쁜데 마음씨도 곱네"라는 말을 한다. '예쁘다'라는 일상적이지만 지독한 시선이 위안부 문제의 본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르는 걸까? 위안부는 일본으로부터의 폭력 이전에 여성에 대한 모든 차별적 시선과 태도에서부터 기인한 것이다. 그 훨씬 전부터 이루어져 왔고 지금도 이루어지는 폭력이다.

사람들은 스스로의 반성이 꼭 필요한 위안부 문제의 본질보다, 답답한 현실을 타개해줄 젊고 예쁘고 개념 있는 효녀부대에 열광한다. 내 안의 아베나 어버이연합은 보지 않고, 눈에 보이는 적을 까면서 내 속 시원하게 긁어주는 영웅이 너무 좋은 것이다. 이러한 선망에는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수요집회를 1000회 넘게 꾸준히 지켜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회자되지 않는다. 같은 피켓을 들고 남성이나 상대적으로 예쁘지 않은 여성, 장애인, 노인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면 이 정도의 여론의 주목을 받았을까? 언론 역시 주목을 끌만 한(잘 팔릴) 그녀들에 주목한다.

관행적으로 생각해오던 당연한 것들을 푹푹 찔러 불편하게 하는 것이 아닌, 모두에게 환영받을 만한 비판적 이야기가 정말 필요할까. 불편함 없는 비판이 바꿀 수 있는 건 대체 뭘까.

위안부의 문제에 다시금 여성이 조명되고 쓰이고 회자되는 이상한 흐름이 반복된다.

'효녀연합' 기사에 달린 댓글들
 '효녀연합' 기사에 달린 댓글들
ⓒ 포털 다음 댓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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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최근 내 글에 대한 반응을 보며 느낀점은 "진보적 여성상"에 대한 이중잣대가 확실히 견고하다는 것이다. 여성운동가 이상형이라고 할까.

어여쁜 여성 활동가는 좋지만, 페미니스트는 안 된다. 불편하니까. 실제로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몇몇 사람들의 타임라인에는 여성에 대한 척박한 인식을 보이는 글들이 많다. 한 예로, 예전 곽정은 트위터 논란만 하더라도 "예쁘다고 칭찬한 게 뭐가 문제냐"는 의견들을 당당하게 쏟아내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관련 기사: 곽정은 '예쁜 공주' 논란... 한국언론 수준이 이렇다)

내가 보기엔 같은 문제의식과 목적을 추구하는 메갈리아와 효녀연합의 활동을 대하는 언론과 여론의 태도 또한 극명하게 나뉜다.

'박근혜 욕하기'와 같은 대다수가 공감하는 문제는 상관없지만, 모두에게 성찰을 요구하는 문제 제기는 불편해 한다. 적들을 욕해야지 우리가 성찰할 시간이 어디있느냐는 논리다. 다분히 결과 지향적이고 도구화된 사고방식이다.

이러한 문제 제기에 못생긴 여자들의 열폭이라거나 진지충, 혹은 분열종자로 이름 붙임으로써 가해지는 폭력도 만만치않다.

나는 내가, 우리가 계속 불편했으면 좋겠다. 편안해지지 않고 그 불편함을 끌고 나가 사건 이면의 것을 직시했으면 좋겠다. 모든 혁명이 그러하듯 불편함을 말하는 것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홍승은씨가 운영하는 '인문학카페 36.5º의 1월 8일자 입간판. 홍승은씨는 이 입간판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160108 오빠같은 소리하고 있네"라며 조롱했다.
 홍승은씨가 운영하는 '인문학카페 36.5º의 1월 8일자 입간판. 홍승은씨는 이 입간판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160108 오빠같은 소리하고 있네"라며 조롱했다.
ⓒ 홍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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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비정규직, 국정 교과서, 의료민영화 등 이슈에 대해서는 비교적 쉽게 합의하는 반면, 여성문제에 있어서는 논의하는 것조차 거북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여성문제가 아닌 다른 이슈에 대해 글을 쓴다면 별문제 없이 공감할수도 있는 사람들조차 여성이 여성의 불편함에 대해 말하는 내 목소리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 네 불편함은 개인의 문제니 예민하게 굴지 말라는 식이다. 마치 빈곤은 구조적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아니, 그건 너의 노오오력의 문제"라고 타이르는 주류의 폭력과 다를 바가 없다.

최근의 효녀연합에 대해 그들이 말하고 행하는 본질이 아닌, 외모에 집중하고 그 외모로 이슈되는(미소녀, 개념녀 등) 현상이 거북하다는 논지에  "예쁜 걸 예쁘다고 하는 게 뭐?"라는 주장을 놀랍게도 많이 접했다.

그리고 우려했던 것처럼 내가 예쁜 여자를 시기하는 자존감 낮은 여자거나, 한국 사회의 진보를 막는 분열적 인간이거나, 매사에 히스테릭한 꼴페미거나, 내 지적 허영심을 표출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진 먹물이라는 말들이 나왔다.

한 때는 '종북'이라는 말이 한국사회의 진보적 실천을 억압하는 가장 무서운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김수영 시인도 "김일성 만세"라는 시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자유의 궁극적 도달지점을 북한과 연결시켰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논리적 감정적 타당성을 갖고 이야기를 해도, "쟤 종북이야"라고 말하면 모든 것이 '김일성빠'로 얼룩지는 모습처럼 말이다.

지금 나는 종북이 아닌, '여성'이라는 것 자체가 갖는 억압을 더 무겁게 느낀다. 내가 조금만 다른 쪽으로, 자본에 대해 박근혜에 대해 이명박에 대해 대기업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허용되지만, 평화통일에 대해서도 허용되지만. 나는 여성임에도 여성의 불편함을 말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느껴진다. 이것은 비단 내 문제만이 아니기에 더 답답하고 속상한 일이다. 오늘만 해도 이러한 불편함을 토로하는 여성들의 글들을 수두룩하게 접했다.

위안부 문제는 일본의 제국주의에 대한 "역사적" 문제인데, 젠더의 문제로 이해하는 것이 매우 편협하고 위험하다는 논지를 보았다. 제국주의의 본질과 젠더 문제의 본질이 어떻게 다를 수 있을까.

3-1. 나는 동생의 진심 어린 행동이 누군가의 정치적 이슈 몰이에 이용되지 않길 진심으로 바란다. 무능력한 야권에 이슈는 없고, 애가 타는 그 마음을 '영웅'으로, '시대의 청년', '개념녀' 따위의 이름을 붙여 타개하려고 하지 않길 바란다. 그냥 한 인간이 이야기하는 그 불편함에 집중해주길 바란다. 누군가를 영웅 만들어 어느 특정 개인이 세상을 바꿔주길 바라는 욕망. 그럴 수 있을 거라는 욕망. 안철수에게 기대했고, 지금 표창원에게도 기대하는 우리의 욕망.

누가 대통령이 되고, 누가 그 자리에 있어도 좋은 사람일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사소한 것을 사소하게 넘기지 않는 문화를 통해서 우리의 굳은 감수성을 깨우는 것이 시작이다. 대의를 위해 입을 닫으라는 말만큼 세상을 퇴보시키는 일은 없다. 감히 말하자면, 그것은 진보가 아니다.

그리고 많이 궁금해하셔서 조금 적자면, 예쁘다는 얘기가 문제라고 하는 것은 어찌 되었건 외모건 학력이건 인간에 붙는 '라벨링'이 불편하다는 이야기이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면 알려고 노력하면 된다. 그리고 혹시 그냥 모르고 싶은 거라면, 자신이 달고 있는 노란 리본 혹은 나름 진보적이라 믿고 인류애를 꿈꿨던 모든 것들을 한 번이라도 의심하고 돌아보길 진심으로 바란다. 정말 세상이 변화되는 게 뭔지, 꿈꾸는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 말이다.

홍승희씨의 1인 시위 당시 각종 언론에서는 '광화문 청순녀'로 홍승희씨를 소개하며 기사를 유통했다. 이에 대해 홍승희씨는 오마이tv 인터뷰에서 "그냥 저를 상품화해서 유통시키려는 거려는거죠. 선정적으로 기사 제목을 뽑아서. 이런 기사 행태들이 없어져야 하는것 같아요"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홍승희씨의 1인 시위 당시 각종 언론에서는 '광화문 청순녀'로 홍승희씨를 소개하며 기사를 유통했다. 이에 대해 홍승희씨는 오마이tv 인터뷰에서 "그냥 저를 상품화해서 유통시키려는 거려는거죠. 선정적으로 기사 제목을 뽑아서. 이런 기사 행태들이 없어져야 하는것 같아요"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 국민일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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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008년 광우병 집회를 계기로 처음 집회현장에 나가고, 그 뒤로 다양한 사회활동을 해오며 나름 '의미 있는 사회운동'을 해왔다고 생각했다. 매사에 질문하는 자세가 진보적인, 인문학적인 기본 태도라고 생각해서 질문하고 글을 쓰며, 사유를 점검하길 멈추지 않아 왔다고 믿었다. 당시에는 분명 불편한 것들을 끄집어서 이야기해왔던 것 같은데, 돌이켜보니 요즘처럼 수많은 비판 혹은 비방을 들어본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자유롭게 사고하고 자유롭게 글을 써서 내 몫의 균열을 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제야 자유의 한계선에 도달한 걸까. 어쩌면 내가 말해왔던 자유도 어떤 '틀 안의 자유'는 아니었는지를 최근 들어 계속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문득, 나 역시 '기특한 활동을 하는 어여쁜 젊은 여자'로 여겨지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런 시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온 나를 직면한다. 여태까지 스스로 본질이라고 외치고 깨부수려고 해왔던 모든 진보적 발언과 행동들이, 모서리에 걸리지 않을 정도의 자유는 아니었을까.

며칠 새 나와 같은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의 내밀한 언어가 담긴 메시지들을 받았다. 다양한 경험이 오고 갔다. 너무나 일상적이고 평범한 일들이어서 사실은 폭력이라고 생각해오지 못했던 지난 시간이 억울하다고 느끼길 여러 번이었다. 불편함을 직접 마주하려고 무리 지어 카페까지 일부러 찾아온 남자 손님들도 꽤 있었다. 옹기종기 모여앉아서 메갈리아에서 발행한 잡지 '사심'을 정독하고 가신 남자 분들도 있다. 먼 지역에서도 일부러 카페를 찾아서 응원과 공감을 표현하는 분들도 늘어나고 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던 사람들의 격렬한 반응이 오히려 단서가 되었다. 내가 지금 말해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가에 대한 방향이 잡혔다.

주말마다 집회 현장에 나가지만 정작 자녀들은 사교육에 내몰고,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고 말하지만 가정 내 가부장적 편의는 포기하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하면서 영웅 만들기에 동참하는 앎과 삶의 분리. 그 모순들을 들여다보지 않고 외치는 거대담론이 껍데기처럼 허무하게 다가온다. 많이 배운 며칠이었다. 내 자유는 지금 얼마나 와있나. 계속 점검해야겠다.


태그:#효녀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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