쯔위가 카메라 앞에 섰다. 평소 무대나 방송에서 보였던 화려한 모습이 아닌 옅은 화장에 수척한 얼굴, 검은색 티셔츠를 입은 수수한 차림새였다. 쯔위는 "중국은 하나다. 제가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양안 누리꾼들에게 상처를 드려 죄송하다. 중국 활동을 중단하겠다"는 사과문을 읽었다. (관련 기사: 대만 국기 흔든 쯔위는 유죄인가, 무죄인가) 이 영상은 지난 15일 밤 JYP엔터테인먼트(아래 JYP) 공식 유튜브 계정에 올라갔다.

쯔위의 소속사 JYP의 대표 박진영도 사과문을 발표했다. 박진영 대표는 "쯔위는 지난 며칠 동안 많은 걸 느끼고 깨닫고 반성하였습니다"라며 "그녀는 13살이란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한국에 왔는데, 쯔위의 부모님을 대신하여 잘 가르치지 못한 저와 저희 회사의 잘못도 크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덧붙였다. JYP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수 있다. 상업적으로 시장규모가 대만보다 훨씬 크고 파트너십이 긴밀하게 형성된 중국시장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전에 웨이보를 통해 밝힌 해명은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JYP는 13일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 쯔위 역시 16살 미성년자로서 그 나이로 정치적인 관점을 형성하기에 부족하다"고 해명했다. 이어 14일 "쯔위 본인은 하나의 중국이란 원칙을 이해하고 존중한다. 대만은 쯔위의 고향이고 대만과 쯔위는 끊을 수 없는 관계지만, 대만 사람이라고 모두 대만독립 운동가가 아니다"라고 설명했지만 논란을 불식시키지 못했다. 쯔위의 사과 영상을 내보내고 대표인 박진영이 직접 사과문을 게재하는 등 최후의 수단이 빠르게 등장한 배경이다.

하지만 상업적으로 옳게 보이는 선택이 다른 방향에서도 긍정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JYP가 이번 사건에 대해 해명하고 사과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소속사가 아티스트를 보호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쯔위의 입장에서 보면, JYP의 전략은 상중하 중 하책이다.

쯔위의 사과와 미네기시 미나미의 사과

 쯔위 사과 영상 캡처

쯔위 사과 영상 ⓒ jyp 엔터테인먼트


 AKB48 멤버인 미네기시 미나미의 사과 영상

AKB48 멤버인 미네기시 미나미의 사과 영상. 위 쯔위의 상황과 기시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 mbc 뉴스


지난 2013년 1월 일본의 인기 아이돌 그룹 AKB48의 멤버가 울면서 삭발을 한 동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삭발을 하면서 팬들을 향해 눈물을 흘린 멤버의 이름은 미네기시 미나미. 그가 사과를 한 이유는 과거 연애 사실이 잡지를 통해 폭로됐기 때문이다. 인기 아이돌 멤버의 열애 소식은 한국에서도 주목받는 이슈지만, 연애를 했다는 사실 때문에 여자 아이돌이 삭발을 하고 공개 사과를 하는 경우는 없다.

이같은 사건이 일어난 배경에는 AKB48의 '연애금지조례'에 있다. 연애금지조례란 AKB48 그룹의 핵심 정체성이자 그룹에 상품성을 부여하는 결정적인 장치다. AKB48의 모든 멤버는 팬들과 유사연애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어느 특정 사람과의 연애가 금지된다. AKB48의 팬들은 그들의 노래나 춤뿐만 아니라 멤버와의 유사연애적인 관계를 소비하면서 열광한다.

어느샌가 한국의 아이돌 그룹에도 중국인 멤버가 1~2명씩 들어오는게 일상이 됐다. 데뷔부터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대형 기획사의 경우 중화권 시장을 염두에 두고 중국 출신 멤버를 여럿 활용한다. 쯔위가 그룹 트와이스에 들어온 이유도 그가 뛰어난 외모를 지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중화권 출신이라는 점도 분명히 작용했다.

이는 단순히 중국어를 잘하는 한국인을 그룹에 배치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중국인들이 중국 사람이 있는 멤버에 환호하는 이유는 그들의 내셔널리티적 정체성에 기반하고 있다. 한국과 아무 연고가 없는 LA다저스의 경기를 TV에서 생중계하고 국민들이 하나가 되어서 응원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문제는 이 상품화 된 정체성에 균열이 발생하고, 그 틈으로 개인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AKB48의 멤버는 연애금지를 강요받지만, 그 나이 또래의 평범한 여성이 이성에게 관심을 받지 않는 것도, 또한 관심을 갖지 않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팬들은 자신들이 소비하는 판타지가 훼손되길 원하지 않는다. 당사자는 '진정성'을 증명하기 위해 연애를 했다는 죄목으로 삭발한 채 카메라 앞에 서서 스스로를 자책하는 연기를 해야만 했다.

상품으로 소비되는 아이돌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트와이스의 쯔위가 방송에서 대만 국기를 흔드는 장면

트와이스의 쯔위가 방송에서 대만 국기를 흔드는 장면 ⓒ MBC


JYP가 대륙의 중국인들을 겨냥해 판매하려는 상품은 트와이스라는 브랜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쯔위의 중국인이라는 정체성 그 자체이기도 하다. 중국인들은 TV에 등장해 대만 국기를 흔든 쯔위를 향해 "너의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 질문을 통해 중국 팬들이 듣고 싶은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 문제를 비켜가기도 매우 어렵다.

이번 사과 과정이 문제가 많았다는 반발이 많다. 쯔위를 카메라 앞에 세우는 JYP의 대응은 바람직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단순한 실수를 소속사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최악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분노한다. 하지만 정체성에 대한 질문, 즉 중국 사람들이 쯔위를 향해 양안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것은, 한국 사람인 소속사 대표가 대신해서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최선은 이 연극이 완벽한 현실이 되게끔 들키지 않고 연기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실수가 드러나고 이 실수가 팬들이 평소에 소비하던 판타지를 훼손시키는 방향으로 나타날 때, 아이돌 그룹의 당사자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저 인간은 상품일 수 없고 상품이 되어서도 안 된다고 말하고 싶지만, 실제로 그들은 이미 그 자체로 상품으로 소비되고 있고 그렇게 정체성이 규정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쯔위

그럼에도 이 모든 문제의 책임을 오로지 쯔위라는 한 어린 소녀가 모두 짊어지고 가는 지금의 모습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아이돌이 비록 상품으로 남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하더라도, 그 상품을 통해 이익을 얻는 소속사와 방송사라는 존재는 적어도 그 아이돌을 '인간으로서' 보호해야 한다. 아이돌을 통해 이익을 취하면서도,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책임에서 비켜나 있는 모습은 충분히 어른스럽지도 못했고 프로답지도 못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시키고 조직은 뒤로 빠지는 익숙한 모습들이 이번 사건을 통해서도 여전히 반복됐다. 아이돌 산업에서의 '정체성 소비'의 불가피성 문제와 함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익은 누리면서 그에 따른 책임은 지지 않으려고 하는 어떤 무책임한 모습들이다.

트와이스 쯔위, 혼을 깨우는 대만 요정! 트와이스의 쯔위가 27일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 2015 SBS 어워즈 페스티벌 가요대전 >에서 한 동영상 공유 서비스의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지난해 12월 27일 트와이스의 쯔위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 2015 SBS 어워즈 페스티벌 가요대전 >에서 한 동영상 공유 서비스의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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