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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목포·신안의 중학생 29명이 지난 10~16일 중국 난징(南京)-항저우(杭州)-상하이(上海)를 찾아 한국의 독립운동 현장을 답사했다. <오마이뉴스>는 장병준선생기념사업회가 기획하고, 전라남도교육청·<오마이뉴스> 후원한 이번 '역사에서 미래 찾기' 일정을 6박 7일 동안 동행 취재했다. - 기자 말

전남 목포·신안의 중학생 29명이 지난 10일~16일 중국 난징(南京)-항저우(杭州)-상하이(上海)를 찾아 한국의 독립운동 현장을 답사했다. 13일 학생들이 찾은 항저우 임시정부 옛터(오복리 2롱[弄] 2호 건물).
 전남 목포·신안의 중학생 29명이 지난 10일~16일 중국 난징(南京)-항저우(杭州)-상하이(上海)를 찾아 한국의 독립운동 현장을 답사했다. 13일 학생들이 찾은 항저우 임시정부 옛터(오복리 2롱[弄] 2호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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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님, 여기가 임시정부였다고요?"

13일 오전, 중국 항저우(杭州)의 한 골목길. 골목의 2/3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승용차 위로, '五福里 2弄(오복리 2롱)'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보였다. 弄(롱)은 굳이 우리식으로 따지면 '가(街)'인데, 중국의 좁은 골목 주소에 사용되는 용어다.

이 골목길 두 번째 집은 항저우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었던 곳이다. 사람 키만한 여닫이 대문은 대문이라고 하기엔 너무 초라한 모습으로 반쯤 열려 있었다. 집 앞에 '한국독립운동구지(旧址, 옛터)'라고 적힌 표지석이 없었다면 이곳이 임시정부의 흔적인지, 여느 살림집인지 알 수 없었을 거다(실제로 지금도 누군가 살고 있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공원(虹口公園) 의거 이후, 일제의 눈을 피해 상하이(上海)에서 항저우로 이동한 임시정부는 항저우 안에서도 두 차례나 거처를 옮겨야 했다. 오복리 두 번째 골목의 두 번째 집은 항저우에서의 세 번째, 즉 마지막 임시정부 청사였다. 항저우 이후에도 1945년 충칭(重慶)에서 광복을 맞기까지 임시정부는 수도 없이 청사를 옮겨야 했다.

"독립운동이 평탄한 길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렇게까지 열악할 줄은 몰랐어요. 그래도 임시정부 청사였잖아요. 청사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이미지와는 너무도 달라 놀랐어요." - 한지원(신안 도초중학교 3학년)

13일 학생들이 찾은 항저우 임시정부 옛터 골목(오복리 2롱[弄])에 승용차가 세워져 있다.
 13일 학생들이 찾은 항저우 임시정부 옛터 골목(오복리 2롱[弄])에 승용차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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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방 어딘가에 임시정부가

이날 학생들은 항저우의 나머지 임시정부 청사였던 곳으로도 발걸음을 옮겼다. 상하이를 떠나 항저우로 미리 피신한 임시정부 국무위원 김철은 1932년 5월 한 여관방에 임시정부의 거처를 마련한다. 1910년 문을 연 이 여관은 신태여관(新泰旅館), 청태 제2여사(淸泰 第二旅舍, 1933년), 군영반점(群英飯店, 1967년) 등으로 이름을 바꿨다. 현재는 한정쾌첩(汉庭快捷)이란 호텔이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에겐 너무도 소중한 문화재가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게 안타깝지만, 한편으론 그대로 호텔로 이어져왔다니 신기하기도 해요. 지금 눈 앞의 이 여관방 어딘가에 우리의 임시정부가 있었다는 거잖아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는 속담이 생각나요." - 강민구(신안 장산중학교 3학년)

13일 학생들이 찾은 항저우 임시정부 옛터. 1910년 문을 연 이 여관은 신태여관(新泰旅館), 청태 제2여사(淸泰 第二旅舍), 군영반점(群英飯店) 등으로 이름을 바꿨고, 일제의 눈을 피해 1932년 항저우로 넘어온 임시정부는 청태 제2여사 32호실에 거처를 마련했다. 현재는 '한정쾌첩'이란 호텔이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
 13일 학생들이 찾은 항저우 임시정부 옛터. 1910년 문을 연 이 여관은 신태여관(新泰旅館), 청태 제2여사(淸泰 第二旅舍), 군영반점(群英飯店) 등으로 이름을 바꿨고, 일제의 눈을 피해 1932년 항저우로 넘어온 임시정부는 청태 제2여사 32호실에 거처를 마련했다. 현재는 '한정쾌첩'이란 호텔이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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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에 터를 잡은 뒤 다섯 달이 지나, 임시정부는 중국의 도움을 받아 항저우 호변촌(湖邊村)의 한 주택으로 청사를 옮겼다. 현재 이곳엔 '대한민국임시정부 항주 유적지 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현재 복원된 임시정부 유적지는 상하이, 항저우, 충칭 세 곳 뿐이다.

"(기념관에 보존돼 있는) 부엌, 침실, 화장실, 집무실 등을 보면 되게 작잖아요. 그곳에 앉아 있었을 김구 선생님과 그곳에서 일했을 독립운동가 분들이 문득 떠올라요. 지금 제가 이곳보다 더 넓은 방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을 수 있는 게 모두 그분들 덕분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죠." - 안윤주(목포 정명여중 2학년)

기념관을 나오는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가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우당탕 소리를 내며 헌집을 부수고 있는 굴착기가 눈에 들어왔다. 주변엔 우뚝 솟은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프렌차이즈 패스트푸드 가게와 함께, 유럽산 명품 가게도 시야 끝까지 늘어져 있었다.

13일 항저우 임시정부 기념관을 찾은 학생들이 백범 김구의 흉상을 바라보고 있다.
 13일 항저우 임시정부 기념관을 찾은 학생들이 백범 김구의 흉상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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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찾은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부근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실제로 1989년 상하이의 도시개발계획 당시,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는 사라질 뻔한 위기를 맞았다.

다행히 우리 정부와 국민들의 요청으로 1993년 복원 작업을 시작해, 1995년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하지만 여전히 유적지 관리의 주체는 중국이기 때문에, 인근 지역의 개발 계획이 나올 때마다 한국 독립운동 유적지는 훼손 위기에 맞서야 하는 상황이다.

한편 지난해 9월 상하이시는 우리 정부와 협의 후 상하이 임시정부 기념관을 리모델링해 재개관했는데, 이 과정에서 "지나치게 관광지화됐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날 기념관을 둘러본 한 학생은 "왜 정치인들 사진이 이렇게 많이 붙어 있는지 모르겠다"며 "그 자리에 독립운동가 분들의 사진 한 장이라도 더 붙여놨으면 좋겠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국가보훈처 측은 "해외 현충시설은 중국 관할이라 직접 관리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는 입장이다.

15일 학생들이 찾은 상하이 임시정부 기념관에 1990년 세워진 안내판이 붙어 있다.
 15일 학생들이 찾은 상하이 임시정부 기념관에 1990년 세워진 안내판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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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의 유언, 훙커우공원에서 눈물

상하이와 윤봉길 의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15일 오후 찾은 상하이 훙커우공원(虹口公園) 복판엔 윤 의사를 기리는 기념비가 놓여 있었다. 그가 1932년 일왕 생일 기념식에 물통 폭탄을 던져 일제 고관 2명을 죽이고 5명에게 중상을 입힌 곳이다. 가슴에 품은 자살용 도시락폭탄을 터뜨리지 못하고 체포된 윤 의사는 일본으로 끌려가 총살당했다. 학생들은 기념비 앞에 고개를 숙인 채 그의 죽음을 기렸다.

기념비를 따라 뒤편으로 이동하면, 윤 의사의 행적을 알리는 기념관이 눈에 들어온다. 기념관 상단에는 그의 호 '梅軒(매헌)'이 적힌 현판이 매달려 있었다. 기념관 2층으로 올라가면 윤 의사의 행적을 담은 영상 자료를 볼 수도 있다. 이날 영상을 본 학생들의 눈가가 붉어지기도 했다.

15일 오후 상하이 훙커우공원에 있는 윤봉길 의사 기념관을 찾은 학생들이 윤 의사의 행적을 담은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15일 오후 상하이 훙커우공원에 있는 윤봉길 의사 기념관을 찾은 학생들이 윤 의사의 행적을 담은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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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의사는) 25세의 젊은 나이에 그런 결심을 한 거잖아요. '두렵지 않았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그가 속으로 했을 고민을 상상하니 눈물이 날 뻔 했어요. 특히 그의 유언이 기억에 남아요." - 이광희(목포 청호중학교 3학년)

'너희도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 윤봉길 의사의 유언

전남 목포·신안의 중학생 29명이 지난 10일~16일 중국 난징(南京)-항저우(杭州)-상하이(上海)를 찾아 한국의 독립운동 현장을 답사했다. 윤봉길 의사를 기리는 기념비가 상하이 훙커우공원에 세워져 있다.
 전남 목포·신안의 중학생 29명이 지난 10일~16일 중국 난징(南京)-항저우(杭州)-상하이(上海)를 찾아 한국의 독립운동 현장을 답사했다. 윤봉길 의사를 기리는 기념비가 상하이 훙커우공원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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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 마지막 날인 15일, 네 개 조로 나뉜 학생들은 난징-항저우-상하이 답사에서 느낀 각자의 소회를 발표했다. 발표 때 쓸 그림을 그리고 있는 허예은(신안 자은중학교 3학년)양이 눈에 띄었다. 허양은 검은 뿔테 안경을 쓴 백범 김구의 얼굴 그림에 그가 남긴 "우리나라가 독립해 정부가 생기거든 난 그 집의 뜰을 쓸고 유리창을 닦는 일을 하다가 죽게 하소서"라는 글귀을 적고 있었다.

"김구 선생님의 이 말이 특이 와 닿았어요.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고 오로지 조국의 독립이라는 목표를 위해 이러한 활동을 벌였다는 거잖아요. 직접 중국에 와 독립운동가 분들의 행적을 돌아보니, 우리나라에 대한 주인의식이 더 생기는 것 같아요."

답사를 마친 15일, 허예은(신안 자은중학교 3학년)양이 자신이 직접 그린 백범 김구의 얼굴 그림을 들고 있다.
 답사를 마친 15일, 허예은(신안 자은중학교 3학년)양이 자신이 직접 그린 백범 김구의 얼굴 그림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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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양은 말을 이어갔다.

"최근 한국과 일본이 일본군 위안부 협상을 주제로 협상을 진행했는데, 피해 할머니들은 물론이고, 많은 국민들이 실망하고 있잖아요. 일본이 진심으로 사죄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우리나라가 일본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도 문제인 것 같아요. 과거 독립운동 하셨던 분들에게 우리 정부는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형남(목포 유달중학교 3학년)군은 "뉴스에서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너무도 어렵게 살고 있는 모습을 봤다"며 안타까워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독립운동가가 몸바쳐 만든 이 나라에서 그 후손들이 푸대접 당하는 모습과 반대로 반민족적인 행위를 한 자들에게 훈장을 준 모습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3일 항저우 임시정부 기념관을 찾은 학생들이 중국에서의 한국 독립운동 역사를 담은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13일 항저우 임시정부 기념관을 찾은 학생들이 중국에서의 한국 독립운동 역사를 담은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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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목포·신안의 중학생 29명이 지난 10일~16일 중국 난징(南京)-항저우(杭州)-상하이(上海)를 찾아 한국의 독립운동 현장을 답사했다. 15일 상하이 임시정부 기념관을 찾은 학생들이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전남 목포·신안의 중학생 29명이 지난 10일~16일 중국 난징(南京)-항저우(杭州)-상하이(上海)를 찾아 한국의 독립운동 현장을 답사했다. 15일 상하이 임시정부 기념관을 찾은 학생들이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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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중국, #항저우, #상하이, #임시정부,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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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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