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프로농구 KEB하나은행의 혼혈선수 첼시 리(27)의 국내 특별귀화 가능성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189cm의 장신센터 리는 올시즌 평균 15득점-10.7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하나은행의 주축 선수로 맹활약하고 있다. 미국 시민권자인 리는 아직 정식 귀화는 하지 못했지만 이미 국내 선수 신분으로 뛰고 있다. WKBL(여자프로농구 연맹)은 부모 또는 조부모가 한국인인 외국인선수를 혼혈선수로 인정하고, 국내 선수 쿼터로 뛸 수 있도록 규정해 놓고 있다. 리의 조모는 한국인으로 알려졌다.

리의 기량이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그녀를 한국 국가대표팀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두고 농구계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여자농구대표팀은 오는 6월 13일부터 19일까지 프랑스 낭트에서 열리는 올림픽 최종예선에 참가한다. 한국은 나이지리아와 벨라루스와 한 조가 됐다. 조 2위까지 8강전에 진출하고 여기서 다시 승리하거나 혹은 순위 결정전을 거쳐 최종 5위 이내에 들어야 리우 올림픽 본선에 나갈 수 있다.

FIBA(국제농구연맹) 규정에 따르면 국가별로 16세 이후 국적을 바꾼 선수들은 대회당 단 1명씩만 FIBA가 주관하는 각종 대회 최종엔트리에 기용할 수 있다. 리가 한국대표팀에서 뛰려면 먼저 귀화 절차를 완료해야 한다. 규정상 일반 귀화는 한국에서 3년을 거주해야 하고 귀화 시험도 치러야 한다. 정식 절차대로라면 리의 이번 올림픽 출전은 불가능하다.

유일한 예외는 특별귀화다. WKBL로부터 추천서를 받고 이를 대한민국농구협회에 제출하면 다시 문화체육관광부와 법무부의 승인 절차를 거쳐 특별귀화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다. 남자프로농구의 문태종(고양 오리온)-문태영(서울 삼성) 형제, 여자농구계에서는 김한별(용인 삼성생명) 등이 2011년 특별귀화로 자격 요건을 채우지 못하고도 한국 국적을 취득한 사례다. 일각에서는 대표팀 전력 강화를 위하여 농구계가 리의 특별귀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명분의 설득력이다. 앞서 언급한 특별귀화 사례는 모두 대표팀에서의 공헌도를 고려하여 인정받은 혜택이었다. 하지만 여자농구의 경우, 김한별은 당시 부상으로 여자대표팀에서 거의 기여하지 못했다. 한국식 팀문화 적응에 실패하며 2014년 돌연 은퇴했다가 지난해 다시 복귀하는 등 '먹튀' 논란도 있었다.

첼시 리의 경우, 김한별보다 기량은 더 검증된 선수이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뛴지 얼마 되지 않았고 완전 귀화나 대표팀에 대한 적극성이 얼마나 있는지도 의문이다. 성급하게 특별귀화만 허용했다가 김한별과 비슷한 사례가 반복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가 농구계의 요청을 달갑게 보지않을 가능성이 높다.

남자농구의 경우도 논란은 있었다. 문태종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에 12년만의 금메달을 안기는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동생 문태영은 2015년 아시아선수권에 출전했으나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대표팀에서의 공헌도를 떠나 귀화의 전정성과 형평성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문태종 형제와 마찬가지로 귀화·혼혈선수 자격으로 KBL에서 뛰고있는 이승준(SK)이나 전태풍(KCC)은 모두 귀화선수 요건과 자격 시험까지 통과하고 정당하게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반면 문태종 형제는 벌써 한국에서 뛴지 5~6년이 넘어가는데도 인터뷰나 공식석상에서 한국어를 쓰는 모습을 거의 찾기 어렵다. 한국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보다 농구선수로서의 직업적 편의를 위하여 귀화라는 수단을 이용한 게 아니냐는 곱지않은 시선도 있었던 이유다. 물론 이는 대표팀에서의 활용을 위하여 혼혈선수들의 특별귀화를 추진한 농구계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국제농구에서 귀화는 하나의 추세가 되었다. 대만이나 중동 국가들은 귀화선수들을 영입하며 단기간에 전력을 끌어올린 사례도 있다. 한국농구도 이미 이승준-문태종 등 여러 명의 귀화선수들을 활용하며 쏠쏠한 재미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농구계가 추진하고 있는 귀화 선수 논의는 일의 선후가 바뀐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현재 농구계에서 리의 귀화 문제보다 더 시급한 것은 바로 '대표팀 정상화'다.

여자농구만 해도 당장 최종예선이 6월인데 기본적인 코칭스태프 선임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행정적인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 이제 와서 부랴부랴 첼시 리의 특별귀화를 추진한다는 자체가 넌센스다. 농구협회는 2014년에도 애런 헤인즈의 귀화와 남자농구대표팀 발탁을 검토했으나 FIBA 규정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고 일을 추진하다가 국제망신을 당한 바 있다. 대표팀 운영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도, 행정적인 전문성도 없는 농구계의 현 주소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귀화 제도의 정체성에 관한 본질적인 고민도 필요하다. 현재 특별귀화가 거론되는 선수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대표팀에서의 활용 여부'에 초점이 맞춰진다. 좋게 말하면 '우수인재 영입을 통하여 한국농구에 기여한다'는 대외적인 명분이지만, 솔직히 말하면 경쟁력이 떨어진 농구대표팀에 '돈을 주고 용병을 들이겠다'는 발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본적으로 귀화는 단순히 국적을 편의적으로 선택하는 문제를 떠나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 정신적-문화적 가치를 함께 공유하겠다는 약속이다. 그만큼 당사자의 자발적 의지와 진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첼시 리가 얼마나 한국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특별귀화를 통해서라도 대표팀에 꼭 합류하겠다는 의욕을 드러냈는지는 정작 알려진 바가 없다.

첼시 리가 대표팀에 보탬이 되고 안될지는 그 다음의 문제다. 대표팀 운영에 대한 뚜렷한 철학도 비전도 없이 그저 특급선수 한 두명의 특별귀화가 추락한 여자농구의 재건에 큰 대안이라고 될듯한 발상은 한탕주의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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