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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창조경제연구회'를 출범시킨 이민화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가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원 도곡동 캠퍼스 자신의 연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정부의 '창조경제 실현계획' 발표에 대해 "반찬은 많은데 손이 안 간다"며 지적했다.
 사단법인 '창조경제연구회'를 출범시킨 이민화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가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원 도곡동 캠퍼스 자신의 연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정부의 '창조경제 실현계획' 발표에 대해 "반찬은 많은데 손이 안 간다"며 지적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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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존 호킨스가 있다면 한국엔 이민화가 있다.'

'박근혜 창조경제'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 이민화(60) KAIST 초빙교수다. 의료기기 벤처 메디슨 설립자로 벤처기업협회 초대회장을 지낸 이 교수는 지난 2009년 '창조경제연구회'를 만든 데 이어 최근 <창조경제>(북콘서트)란 책까지 출간했다. 2001년 같은 제목의 책(The Creative Economy)을 쓴 '창조경제 원조' 존 호킨스조차 모든 산업을 아우르는 이 교수의 '한국형 창조경제(The Creative Economy @ Korea)' 개념을 인정했을 정도다.

이처럼 이 교수는 현 정부의 '국정철학'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어떤 정부 조직에 몸담지 않고 있다. 한국의 '창조경제 전도사'가 본 '박근혜 창조경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난 5일 오후 강남 KAIST 도곡동 캠퍼스에 있는 이 교수 사무실을 찾았을 때 마침 따끈따끈한 새 책 묶음이 도착해 있었다. 이날은 또 미래창조과학부에서 박 대통령 취임 100일에 맞춰 '창조경제 실현계획'을 발표한 날이자, '민간 창조 네트워크'를 내세운 창조경제연구회가 '사단법인'으로 거듭난 날이기도 했다. 이 교수의 철저한 준비성이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사단법인 출범식을) 일부러 정부 발표 시점에 맞췄어요. 너무 빨리 가도 안 되고 차이가 생겨도 안 되니까."

"'엣지'없는 실현계획... 반찬은 많은데 손 가는 건 없어"

정부도 창조경제를 민간에서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한 만큼, 자신들이 그 밑거름이 되겠다는 의미다. 그런 이 교수도 이날 나온 '창조경제 실현계획'에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지난 4일 '고용률 70% 로드맵' 발표에 묻혀 창조경제가 일자리 창출을 위한 하위 개념 정도로 인식되는 데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일자리는 국가 경쟁력 성장의 결과이지, 일자리가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한국에서 가장 큰 문제는 북핵이 아니고 국가 성장 잠재력이 말라 들어가는 것이다. 국가 경쟁력을 올리는 쪽으로 가야 하는데 경쟁력을 갉아먹는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문제다. 남유럽도 정부가 고용을 많이 했지만, 세금이 늘고 그 세금을 거둬들이지 못하니 국가 재정이 파탄 난 거 아닌가."

이번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도 "반찬은 많은데 손이 안 간다"며 쓴소리부터 했다.

"나열된 것은 많은데 이거다, 하는 '엣지'가 없다. 정부가 창조경제를 열어가겠다는 의지는 있는데 여기에 창조적 생각이 접목돼야 한다. 정부가 혼자 다 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민간이 앞장서고 정부가 뒷받침해주겠다는 걸 직접 실천해야 한다."

실천계획 발표 당시 언론은 구체적 목표치, 투입 예산 등 '숫자'를 요구했다. 국민이 쉽게 이해하려면 '시간제 일자리 100만 개' 같은 구체적 목표치가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이 교수 생각은 달랐다.

"목표치가 없는 게 맞다. 당장 일자리 몇만 개 창출, 빅 데이터 키우겠다는 '액션 플랜'은 구체적이어서 이해하기는 쉽지만, 이런 산업 정책들은 우선순위를 따져야 해서 늘 복잡하다. 이게 '모방경제'에서 하던 얘기이고 우리도 이젠 산업정책을 떠나 '메타 기술(기술개발을 돕는 기술)'과 '혁신 시장(창의적인 기술이나 기업이 거래되는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이번에도 정부가 그래핀, 유전자 분석치료 등을 지원한다고 했는데 유망 산업이 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지, 특정 산업을 지원하는 건 아니다. 미국도 개별 산업정책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 30일 한국에 온 존 호킨스는 이민화 교수에게 한국이 창조경제에서 가장 앞서 갈 것이라면서 정작 자신의 모국인 영국은 '산업 논리'에 빠져 가장 뒤처질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 역시 아직 '산업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창조경제가 3대 미스터리? '방관자' 아닌 '참여자' 돼야"

이민화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정부의 창조경제 실현계획에 대해 "정부가 혼자 다 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민간이 앞장서고 정부가 뒷받침해주겠다는 걸 직접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민화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정부의 창조경제 실현계획에 대해 "정부가 혼자 다 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민간이 앞장서고 정부가 뒷받침해주겠다는 걸 직접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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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현 정부가 지난 대선에서 '창조경제'를 내건 배경에 진지한 고찰이 없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창조경제'가 현시대 과제인 건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국민도 '방관자'가 아니라 '참여자'의 자세로 창조경제를 바라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과정은 어떻든 결과적으로 한국이 모든 산업을 아우르는 창조경제로서는 최초 국가가 됐다. 한국이 메말라가는 성장 동력을 되살릴 마지막 기회인 스마트 혁명이 왔고, 이를 맞이할 수 있는 국가 마중물이 바로 창조경제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국가 미래가 결정된다. 다른 대안이 없다. 창조경제를 '시니컬'하게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은 방관자 입장이고 이제는 토론을 통해 참여자 입장으로 바뀌어야 한다. '3대 미스터리' 같은 소리 하지 말고. 지금 우리가 국가 응집력을 만들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있나."

사실 그동안 창조경제 개념부터 많은 논란이 있었다. 박근혜 창조경제가 안철수의 새 정치, 김정은의 속마음과 묶어 '3대 미스터리'로 불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뒤늦게 창조 경제를 "창의성을 핵심 가치로 두고 과학기술과 ICT 융합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경제"라고 정의했지만, 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 교수 역시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를 상당 부분 이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스태프는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정부 각료들을 꼬집기도 했다.

이 교수는 창조경제를 한마디로 '창조성이 돈 버는 경제'라고 정의하면서 창조성을 담는 그릇인 '지적재산권(IP)' 개념을 강조했다. 하지만 정작 존 호킨스는 생각이 달랐다. 자신이 '오픈소스 운동'(소프트웨어 저작권 등에 맞서 기술, 디자인 등을 공유하고 발전시키는 운동) 지지자라고 밝힌 존 호킨스는 지적재산권이 오히려 빠른 발전이 필요한 창조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이 교수는 "혁신이 빠른 오픈 소스 쪽에서 보면 존 호킨스 생각이 맞다"면서도 "특허는 보호되지 않으면 창조성이 돈을 벌 수 없다"면서 특허는 예외라고 맞섰다. 대신 특허 보호기간이 너무 길면 혁신이 뒤처질 수 있으니까 IT처럼 변화가 빠른 분야는 특허보호기간을 20년에서 5~10년 정도로 줄이는 대안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창조성은 지식재산권이란 그릇에 담아야 거래할 수 있다"면서 "젊은이 중 특허만으로 먹고사는 사람도 생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기업 역할 필요... 경제민주화 등 공정거래 전제돼야"

이민화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가 최근 자신이 집필한 <창조경제> 책을 소개하며 "창조경제가 선순환하려면 '혁신'과 '효율'이 '공정'을 통해 선순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민화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가 최근 자신이 집필한 <창조경제> 책을 소개하며 "창조경제가 선순환하려면 '혁신'과 '효율'이 '공정'을 통해 선순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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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창조경제 모델로 거론되는 이스라엘 모델이 우리에게 맞지 않고 삼성 등 대기업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데는 두 사람이 의견 일치를 봤다.

"이스라엘은 유대인 네트워크가 존재하는데 그걸 대체할 우리의 대안은 대기업이다. 유대인 네트워크가 창업 기업에 초기투자하고 글로벌 마켓으로 끌고 나간 것처럼 우리 대기업도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대기업과 벤처기업이 공존하는 몇 개 안되는 나라다. 단지 상생 상태만 아닐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 교수는 정부에서 지난달 15일 발표한 '벤처창업 투자 생태계 활성화 대책'일부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기획재정부가 M&A(기업 인수합병)를 R&D(연구개발)로 인정한 건 대단히 전향적이다. 예전에는 출자총액제한제도로 기업 인수 자체를 부정적으로 봤다. 대기업들이 초기 창업기업에 투자하고 중소기업을 인수하고 나중에 글로벌 시장으로 끌고 나가는 일이 왕성하게 이뤄져야 한다. 정부는 그런 거래들이 공정하게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바로 이 대목이 이 교수가 강조하는 '창조경제 방정식'의 핵심이기도 하다. 창조경제가 선순환하려면 '혁신'과 '효율'이 '공정'을 통해 선순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시장 효율은 대기업이, 기술 혁신은 중소벤처기업이 각각 비교 우위에 있기 때문에 이 둘 사이를 혁신시장과 경제민주화로 선순환시키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신뢰다. 지금까지 대기업은 중소벤처기업에 투자하기보다 핵심 인력이나 기술을 빼 오는데 더 익숙했던 게 현실이다.

"불공정 거래 문제는 공정거래 차원에서 단속해야 한다. 왜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을 10억 달러에 인수했겠나. 사람만 빼 오면 1000만 달러면 될 텐데. 그건 영업비밀 침해여서 감히 그렇게 못한 거다. 한국은 지금까지 그걸 자연스럽게 해왔다. 가장 기본적인 공정거래를 지켜줘야 한다. 대기업이 중소기업 싸게 먹는 걸 좋아하는데, 손님 한 사람 바가지 씌우면 좋은 손님이 계속 찾아오겠나."

"어학연수 갈 돈이면 창업... '창업자 연대보증'이 걸림돌"

존 호킨스는 '창조경제' 강연 직후 국내 '창조경제' 전문가들과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왼쪽부터 박구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원장, 존 호킨스,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 회장.
 존 호킨스는 '창조경제' 강연 직후 국내 '창조경제' 전문가들과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왼쪽부터 박구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원장, 존 호킨스,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 회장.
ⓒ KIST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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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가 강의 시간에 입버릇처럼 하는 얘기가 있다. 외국 어학연수 1년에 들어가는 3천만 원이면 회사를 하나 만들 수 있고, 성공하면 대박이지만 실패하더라도 대기업 입사 때 가산점을 받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여기엔 창업자가 곧 '잠재적 신용불량자'로 분류되는 현실도 담겨있다. 자칫 큰 빚을 내서 회사를 만들었다가 부도라도 나면 창업자가 그 빚을 모두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교수가 '창업자 연대보증' 폐지를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도 지난 5.15대책에서 '제3자 연대보증'은 없애면서도 창업자 연대보증은 유지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지난 1972년 이른바 '8.3사채동결조치'(경제와 안정과 성장에 관한 긴급명령) 이후 40년을 버텨오고 있는 것이다. 그 딸이 대통령이 된 지금이야말로 이를 없앨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그렇게 기업 도와줬는데도 기업은 망해도 기업가는 회사 돈을 빼돌려 잘 사는 걸 보고 진노했다. 그래서 기업가들이 자기 회사 부채에 무한 책임을 지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회사 돈 빼돌렸다간 다 드러난다. 우리만큼 투명한 나라가 없는 만큼 이제는 원칙으로 복귀해야 한다. 주식회사는 유한책임이 원칙이다."

이 교수는 일단 국책금융기관인 기술신용보증기금(기보), 신용보증기금(신보), 중소기업진흥공단 등 3군데부터 먼저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이들 기관이 연대보증을 통해 회수하는 금액이 연간 5천 억 원 정도인데, 이 정도로 모든 기업을 잠재적 신용불량자로 만들 것인가. 지금까지 대기업에 들어갔던 공적자금 178조 원 가운데 회수 못 한 게 70조 원 가까이 된다. 거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대통령이 '나를 따르라' 하던 시대 아냐...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야"

이민화 교수는 김종훈 후보 낙마 이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했다. 본인이 '창조경제' 주창자이자 이명박 정부 시절엔 중소기업청 '기업호민관'을 맡아 '대·중소기업 공정경쟁'을 위해 노력한 전례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교수는 "(장관은) 절대 안 한다"고 딱 잘랐다.    

"호민관 그만두면서 이미 내 역할이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일이란 게 내가 잘하고 좋아하고 상대방도 좋아해야 하는데 내가 잘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 일이다. 짜인 규격 안에 들어가는 것도 맞지 않다."

서로 위치는 다르지만 이민화와 박근혜는 '한 배'를 탔다. 앞으로 5년 박근혜 정부의 성패에 따라 이 교수의 창조경제도 그 가치를 평가받게 될 것이다. 일단 이 교수는 오는 9월 창조경제연구회 차원에서 그들 나름의 '창조경제 실현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일방적인 정부 발표와 달리 '크라우드 소싱' 방식을 이용해 누구든 참여해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 교수가 굳이 '창조경제연구회'를 닫힌 느낌인 '싱크탱크' 대신 '싱크 네트워크'라고 부른 것도 이 때문이다.

"'나를 따르라'가 아니라 갑과 을이, 정부와 민간이 서로 창조경제에 대해 대화하면서 가야 합니다. 위에서부터 전지전능하신 대통령 각하께서 '이거다' 하고 던져주면 그걸 받아서 진격하는 시대는 아니잖아요."


태그:#이민화, #창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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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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