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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가 '친환경적'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지는 오래다. 특히 기후변화 시대에 자전거는 더 각별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자전거가 제 아무리 친환경성을 띤다 하더라도 자전거를 이용하는 인프라가 반(反)환경적이라면, 자전거를 타는 것이 마냥 친환경적이라 할 수 있을까?

어느 생태활동가의 자전거 국토종주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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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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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친환경의 상징, '자전거'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오래전부터, 시민들에게 자전거 타기를 권해오고 있다. 시민들의 건강, 그리고 자전거가 갖는 친환경성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자전거를 이용하려면 자전거가 다닐 수 있는 길도 마땅치 않고 도로교통법상의 불리함 마저 모두 감수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자전거 보급률 대비 이용률이 극히 낮은 까닭은 '직접 타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지자체들이 오랫동안, 많은 비용을 들여 도심 속 자전거 길을 조성해 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조성된 자전거 길 대부분이 갓길과 인도에 그려진 낙서에 불과하다는 사실 또한 우린 잘 알고 있다.

어느 생태활동가의 자전거 국토종주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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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자전거를 타기가 어려우니 우리나라에서 자전거는 일종의 '레포츠' 개념에 가까운데, 그래서 일까? 이명박 정부는 재임 기간 중 통근길에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대신에, 무려 총 1700km에 달하는 <4대강 자전거 여행길>을 조성했다.

사업의 주체는 국토부, 즉 <4대강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말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2. 국토종주에 오르는 라이더들, 그리고 '체크 포인트'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모든 재앙이 예견되었던 4대강 사업. 그 예견이 현실이 된 지금, 4대강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자전거 여행길>의 평가는 어떨까? 일단 이용자 수나 반응 만을 놓고 보면 꽤나 성공적이다. 자전거를 타고 싶어도 마음껏 탈 수 없었던 국내 자전거 이용자들에겐 해갈의 계기였다고나 할까.

여름만 되면 수천 명의 라이더들이 종주길에 오르는 모습이 꽤나 장관이다. 특히 처음 만난 여행자들끼리 서로 돕고 친해져 함께 여행하는 모습이 자연스레 형성 되면서 <4대강 자전거 여행길>은 많은 이의 '버킷리스트'에 오르게 되었다.

또한 이 여정의 백미는 코스 중간 중간 <체크포인트>를 지정해두고 미리 신청해둔 여권 형태의 수첩에 <인증 도장>을 받아가며 도전 과제를 달성해 나가는 재미에 있다.

어느 생태활동가의 자전거 국토종주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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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인증을 받는 장소들 대부분이 지역의 문화적, 자연적 명소라기 보다는 <댐>이나 <수중보>와 같은 건축물들이다. 아니, 오히려 다분한 의도가 엿보인다. 이 사업이 누구의 작품이던가? 바로 국토부와 수자원공사의 작품 아니던가.

자전거로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기쁨은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산과 강과 바다를 따라 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모든 트레킹이 그렇듯, 자연과 동화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자전거 여행자의 가장 큰 기쁨이다.

하지만 <4대강 자전거 여행길>의 체크포인트들은 가장 반환경적인 상징물들을 내세우고 있다. 바로 대한민국 하천의 마디 마디를 끊어 놓은, 인위적이고 파괴적인 콘크리트 구조물들을 반드시 거쳐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환경론자의 관점에서 이야기하자면, <4대강 자전거 여행>코스는 우리 하천이 어떻게 분절되고 파괴 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견학 코스라고 해도 무방하다.

어느 생태활동가의 자전거 국토종주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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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콘크리트 커넥션

즐거운 자전거 여행길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지만, 우리는 4대강 자전거 여행길을 조금 삐딱하게 볼 필요가 있다. 아니,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게 맞을까.

4대강 자전거 여행길을 나서면 크고 작은 댐과 수중보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곳곳에 자리 잡고 있음을 몸소 체감할 수 있다. 어떤 수중보는 댐에 필적할 만큼 규모도 대단하며 육중한 콘크리트가 가로 놓인 물길의 저편은 서로 다른 차원의 세상처럼 분절되어 있다.

어느 생태활동가의 자전거 국토종주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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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유불급인지라, 수많은 보에 따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4대강 사업 정비 이후 낙동강과 금강 등에 창궐한 녹조가 그 대표적인 예다. 흐르지 못하는 강은 썩고 보금자리를 잃은 생물들이 강을 등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이미 수천, 수만의 라이더들이 자전거 종주길에 올랐다. 그리고 그들은 아스팔트로 정비된 자전거 길과 콘크리트로 분절된 강줄기를 넘었다. 그리고 그 위에서 <인증>했다. 자신의 뜻 깊은 순간들을.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레포츠적 도전에 대한 성과를 일군 동시에, 4대강 공사의 "위업"을 포장하는 포장지가 되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어느 생태활동가의 자전거 국토종주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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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비교적 잘 정비되고 긴 자전거 길이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기왕 만들어진 것, 인프라를 누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하지만 종주 여행을 떠날 때, 즐거운 마음 한 켠에 난 개발로 난도질 당한 물줄기 또한 관조할 수 있기를.

당신이 길고 긴 강 줄기를 따라 나선 여정을 마쳤을 때, 지나온 물줄기를 부분이 아니라 큰 흐름으로 아우르는 안목을 가질 수 있다면, 그 흐름을 끊어 놓은 마디 마디가 꽤나 시리게 여겨질 것이다.

자전거 국토 종주에 오르는 이들이 그러한 사실에 더 많이 공감하길 바라며.

어느 생태활동가의 자전거 국토종주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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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서울환경연합 블로그(http://seoulkfem.blog.me/) 및 간행물 <잎새통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팀 활동가 엇지 (eotzi@kfem.or.kr)



태그:#자전거여행, #국토종주, #4대강, #C2C, #서울환경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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