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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일, 평일이지만 나는 출근하지 않았다. 지난 주부터 난 '육아휴직' 중이다. 육아휴직이란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가 있는 남녀 근로자가 양육을 목적으로 사업주에 휴직을 신청하는 제도'란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남녀 근로자'에 포함되는 범위가 극히 일부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 내가 육아휴직 중이라고 하면 공무원이나 학교 선생님, 공기업 등 좋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으로 착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난 그저 평범한 일반 직장인이었다.

얼마전 5년 가까이 근무한 회사, 10년 지기 친구가 사장인 회사를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만뒀다. 평생 직장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일한 게 후회되고 사람들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다. 떡본 김에 제사 지내는 심정으로 우리 집 대표인 아내에게 '육아휴직'을 신청하고 결재를 받아냈다. 그렇게 난 지난주부터 육아휴직에 돌입했다.

육아휴직중인 아빠와 두 딸
 육아휴직중인 아빠와 두 딸
ⓒ 조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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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조직 구성은 나와 아내, 그리고 급하게 연년생으로 태어난 만 2살의 큰딸과 생후 7개월의 둘째 딸, 모두 넷이다. 회사생활을 할 때도 가급적 일찍 퇴근해 집안일과 아이 돌보기를 거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온종일 함께 있다보니 이건 '육아휴직'이 아니고 '육아전쟁'이다. 어떻게 혼자서 어디로 튈 줄 모르는 두 딸을 다치지 않게 하고 키웠는지 엄마의 위대함과 숭고함에 찬사를 보낸다.

3월 1일의 일상을 간략히 다시보기로 재생한다. 내가 육아에 투입되자 자연스럽게 아내는 둘째 담당, 나는 첫째 담당이 됐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는 건너뛰고 첫째를 안고 아침을 먹이고 청소를 한다. 아내는 오전 4시에 일어난 둘째에게 세 시간째 시달리며 눕혔다 세웠다를 반복하며 힘들어 한다.

나는 놀아달라고 조르는 첫째에게 <뽀로로> 다시보기를 보게한 뒤 청소기를 돌리고 젖병을 소독한다. 육아를 하면서 하는 일상의 식사는 식사가 아니다. 그야말로 음식물의 경구투여에 가깝다. 5분여의 식사를 마치고 아내는 설거지를 하고 나는 칭얼대는 둘째를 안고 영혼도 없는 자장가를 부른다.

그 사이 첫째는 싱크대 아래에 있는 콩이 들어있는 바구니를 던졌다. 주방 바닥이 콩밭으로 변했다. 하나둘 줍는데 갑자기 속에서 불이 솟아난다. 간신히 마음에 돌덩이를 얹고 진정시켰다. 정리하고 책장 앞에 첫째와 앉아서 두 시간에 걸쳐 책도 읽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스르르 잠이 든 아이를 안고 침대에 눕히고 난장판이 된 거실을 정리한 뒤 소파에 누워 잠시 눈을 붙였다.

오후에는 아이들 빨래를 돌려놓고 답답해 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집 근처 커피전문점으로 향했다. 커피 한잔 마시러 가면서도 준비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기저귀 가방, 큰 아이 간식, 유모차, 간단한 장난감…. 힘들게 갔다가 30분도 안 돼 돌아왔다. 첫째는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둘째는 칭얼대고 울고…. 애당초 오후의 커피 한잔의 여유는 사치였던 것이다.

30분 정도 자리를 비웠는데 첫째는 거실을 이렇게 꾸며놓았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
 30분 정도 자리를 비웠는데 첫째는 거실을 이렇게 꾸며놓았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
ⓒ 조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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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뒤라고 해서 특별한 건 없었다. 다시 오전과 같은 고통과 번뇌와 인내의 시간이 이어졌다. 저녁을 먹이고 둘째는 일찍 잠이 들었지만, 첫째는 아직 놀이와 TV 시청의 흥분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않고 잠을 자지 않았다. 아내가 두 시간 째 투입돼 노래를 부르고 신데렐라와 인어공주 이야기를 수차례 반복하지만 여전히 쫑알거리며 엄마를 괴롭힌다. 문득 필리버스터가 떠올랐다. 첫째를 재우기 위해 내가 뒤이어 자장가와 동화 연설을 해야 할 판국이다.

가끔은 속에서 불이 난다. 하지만 아이들의 웃는 모습 한 순간에 모든 게 눈 녹듯 사라진다. 그동안 아내가 홀로 감당했을 그 시간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육아와 집안일을 하면서 느끼는 게 있다. 남편들이 무심결에 하는 말 중에 "내가 가끔 도와주고 있잖아"라는 말은 틀린 말이다. 육아와 집안일은 남편이 아내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다.

3월 2일 수요일. 분리수거 하는 날이다.
첨부파일
유나의 전쟁.jpg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도 함께 게재합니다(http://blog.naver.com/myoung21)



태그:#육아휴직, #육아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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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에 행복과 미소가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대구에 사는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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