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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컷오프되었다. 객관적 지표에 의하면 컷오프 될 이유가 없던 이해찬 의원이 컷오프 된 이유는 소위 친노 좌장이라고 불리우는 그의 정치적 위상과 관련되어 있다. 김종인 대표도 컷오프 사유를 '선거 전체를 위해서'라며 친노 패권주의 문제와 관련이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현재 친노 지지층은 매우 격앙되어 있다. 김종인 대표가 매우 강수를 둔 것은 명확하다.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해서 '친노' 문제가 앞으로 거론되지 않을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단적으로 '친노' 문제에 대해 대단히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국민의당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사실 이번 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이뤄진 더민주당 공천 과정을 보면 기존에 친노로 구분되었던 여러 정치인들이 컷오프 되었다. 그런데 막상 컷오프 이후에는 이들의 정치적 족보를 일일히 따져가면서 컷오프 된 정치인들이 사실은 친노 핵심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친노 패권주의가 여전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친노'라는 이유로 컷오프 되는 것에 대해 친노 지지층들은 거센 반발을 하고 있는데, 반대 쪽에서는 여전히 미흡하며 본질에 근접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처럼 같은 사안을 두고 왜 이렇게 극단적인 해석의 차이가 발생할까? 이 글에서는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를 살펴보고,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볼까 한다.

올바른 개념 정의를 위해선 경계선 설정이 명확해야

제20대 총선을 30일 앞둔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더불어민주당 대표실에서 열린 비대위원회의에 참석한 김종인 비대위 대표가 비대위원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이날 더불어민주당은 친노계의 좌장인 6선의 이해찬 의원이 공천에서 배제됐다고 발표했다.
▲ 더불어민주당, 친노 이미지 지우기 제20대 총선을 30일 앞둔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더불어민주당 대표실에서 열린 비대위원회의에 참석한 김종인 비대위 대표가 비대위원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이날 더불어민주당은 친노계의 좌장인 6선의 이해찬 의원이 공천에서 배제됐다고 발표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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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개념을 정의하는 것의 핵심은 경계선을 설정하는 일이다. 엄격히 설정된 경계선 안과 밖은 마땅히 다르게 구분되어야만 한다. 가령 흔히 중산층이라는 개념을 많이 사용하는데, 명확한 구분없이 대충 감으로 대상의 계급적 지위를 구분하는 경우가 많다. 특정 개인의 계급적 지위를 정확히 규정하기 위해서는 소득 수준과 자산 규모처럼 사회적으로 합의된 기준선을 갖고 구분해야만 한다.

만약 경계선 설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그것은 개념으로서 적절하지 못하다. 경계선 설정을 하는 이유는 해석하는 사람들의 자의적 판단 여지를 제거하여 보편적 합의를 도출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경계선이 명확하지 않으면 속칭 고무줄 잣대가 그것을 대신하게 된다. 그러면 해당 개념은 보편성과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게 된다.

특히 이런 상황 속에서 해당 개념(담론)이 정치적 공세의 수단으로 활용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명확하지 않은 대상을 두고 이뤄지는 정치적 논쟁은 상호 감정만 악화시킬 뿐 생산적인 결과를 도출해내지 못한다. 지금 '친노' 담론의 정치화 과정이 바로 이와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친노는 누구인가? 어디까지를 친노라고 봐야 하는가? 엄격한 의미에서의 친노는 노무현 대통령 재임 이전 시기의 경우 노무현 대통령과 민주화 운동을 함께 했고 야당 활동 당시 정치적 노선을 같이 했던 인물이 해당된다. 그리고 재임 시기 주요 직책을 맡았던 인물 중에서 노무현 대통령 퇴임과 서거 이후에도 현재의 야당에서 정치활동을 하는 경우가 해당된다.

사실 대통령과의 친소 관계로 특정 정치세력을 구분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현재 여당에서도 친박, 친이라는 개념이 사용되고 있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이자 대통령의 영향력이 강한 한국의 정치 풍토를 고려할 때 친(노,이,박)과 같은 정치세력이 존재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런데 친노는 그렇게만 규정될까? 그렇지가 않다. 친박과 친이와 달리 친노는 지칭하는 범위가 매우 확장되어 있다. 엄격한 의미의 친노는 아니어도 그들과 학생운동 등으로 인연이 있는 86 운동권 출신 정치인과 더 넓게는 재야 사회운동권 정치인들까지 포함해서 친노로 구분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친노와 운동권(재야 정치인 + 86 정치인들)은 일정 정도 구분이 가능한 개념이다. 친노를 대표하는 노무현과 운동권을 대표하는 김근태 사이에 있었던 상당하면서도 미묘한 차이와 갈등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일반 대중이 친노와 운동권 사이의 차이를 알기 힘들기 때문에 친노와 운동권은 함께 묶인다. 그래서 현재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친노' 담론은 '친노 + 운동권' 전체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이미 확장된 상태다.

친노 운동권 담론은 결국 민주화 세력에 대한 위축을 의도한 것

이해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왼쪽)과 노무현 전 대통령 장남 건호씨가 2015년 8월 18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6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이해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왼쪽)과 노무현 전 대통령 장남 건호씨가 2015년 8월 18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6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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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운동권 전체로 확장된 사실상의 친노 담론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진짜 '친노'처럼 한정된 개념이 아니라 운동권 전체로 확장된 '친노' 개념의 경우 사실상 해당 대상이 너무 넓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노동문제전문가인 은수미 의원은 대표적인 친노 인사로 불리는데 그는 앞에서 언급한 친노 범주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가 대표적 친노 인사로 구분되는 이유는 운동권 출신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 과정이 장기간에 걸쳐서 이뤄졌기 때문에 여기서 형성된 인맥은 여러 분야에 걸쳐서 광범위 하게 퍼져 있다. 그래서 한국의 진보 세력 내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여기에 친노와 운동권을 결합시킨 프레임으로 친노 개념은 운동권 인맥을 따라서 마구 확장된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친노로 구분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그러니 외부에서 친노로 구분되는 정치인 중에서 자신이 '친노'로 구분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일종의 해프닝이 종종 발생하곤 한다. 친노와 운동권이 결국 하나로 묶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은 현재 김대중 이후 민주당 계열 정당부터 해서 범 진보 진영 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친노 담론은 결국 현재 진보 세력 중심 전체를 타깃으로 하는 것이다.

교각살우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필자는 기존 운동권이 비판받을 바가 없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운동권 정치인들은 이미 알려진 바 대로 정서 및 태도부터 해서 고칠 부분이 있고 무엇보다 부정적인 방향으로 악화되고 있는 각종 사회적 현안에 대한 정책 대안 수립에 있어서 능동적이고 선도적인 모습을 보여줘야만 한다.

다만 운동권 전반을 '낡은 진보'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으로 매도하는 소위 반노 진영의 프레임은 옳지 못하다. 교과서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공과 과를 구분해서 취장보단(取長補短)의 자세로 접근해야만 한다.

물론 현재 비판받고 있는 '친노 + 운동권' 세력들이 과거 민주당 세력 교체 과정에서 기존 야당 정치인들을 '낡은 세력'으로 매도하여 현재 갈등의 씨앗을 제공한 점은 분명한 역사적 과오다. 그러나 지금 야당의 주류가 된 운동권 세력들의 여러 문제점이 나타난 상황이라고 해서 이들에 대한 맹목적인 비난은 결국 민주화 세력 전반의 역사성과 가치의 상당 부분을 훼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지금은 진보 야권 전체가 과거보다 역량이 약화되어 있다. 내부 헤게모니 쟁투를 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주객관적인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상호 절멸의 자세로 접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이것은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는 것이다.

사실 이해찬 컷오프 건은 단지 김종인 개인의 선택과 그에 대한 책임으로 귀결시켜서는 안된다. 결국 '친노' 및 '반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갈등을 최악으로 증폭 시켜놓은 범 야권 정치인들의 귀책 사유가 더 큰 것이다. 야권 정치인들은 이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장신기 기자는 사회학 박사이며 김대중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한국 사회 보수화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하여 진보에서 보수로 정치적 정체성의 변화를 보인 일반인 32명을 심층인터뷰하여 <사람들은 왜 진보는 무능하고 보수는 유능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제목의 책을 냈습니다.



태그:#이해찬, #컷오프, #친노, #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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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박사이며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사료연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목적으로 한 김대중연구서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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