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최근 대학 캠퍼스 내 교수의 성차별 발언이 문제가 됐다. 고려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석순>이 지난 3월 2일부터 6일까지 이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여자는 똑똑하면 남자한테 인기가 없어" "여자들은 담배 피우면 안 돼, 임신을 해야 하잖아" 등의 심각한 성차별 발언이 수집됐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의 한 강사는 "암탉은 집 안에서 울지 말아야 한다"라는 성차별 발언뿐 아니라 "동성애는 일종의 질병"이라는 동성애 혐오 발언도 했다고 한다.

문제적 발언이 발화되는 장소는 강의실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페이스북 '세종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지에는 존경하던 교수와의 식사 자리에서 "넌 젖가슴이 커" "말하는데 입술밖에 안 보여, 뽀뽀하고 싶어" 등의 심각한 성희롱 발언을 들었다는 익명의 제보가 올라오기도 했다.

교수의 성차별 발언이 2016년을 기점으로 갑자기 폭발적으로 증가했을 리는 없다. 지난해부터 페미니즘적 문제의식이 사회 전반으로 확대됐고, 그 영향을 받은 학생들이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교수들의 문제적 발언을 인식하고 용기를 내 문제를 제기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고려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석순>이 지난 7일 부착한 대자보.
 고려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석순>이 지난 7일 부착한 대자보.
ⓒ 석순편집위원회

관련사진보기


젠더 감수성 부족, 정말 그뿐일까?

문제의 1차적 원인을 꼽으라면 단연 문제적 발언의 주체인 교수들의 '저열한 젠더 감수성'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젠더 감수성은 개인의 지적 수준과 비례하는 게 아니다. 특정 학문 분야에 통달해 교수가 된 사람이라 하더라도, 남성중심적 사회를 살아오며 기득권의 문법을 의문 없이 답습했다면 얼마든지 여성혐오·동성애혐오 발언을 할 수 있다. 앞서 제시된 사례들은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원인이 정말 그뿐일까? 빈곤한 젠더 감수성을 가졌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말을 내뱉는다고 단정해도 되는 걸까? 그렇지 않다. 교수가 성차별적 발언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 대상은 '학생'이다. 젠더 감수성의 문제 이상의 문제, 말을 하는 주체와 말을 듣는 대상 간의 권력관계가 여기에는 분명히 있다. 교수가 교수가 아니고, 학생이 학생이 아니었다면 '암탉은 울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발언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우선 교수는 연령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학생의 우위에 있다. 한국은 20~30년 이상 차이가 나는 사람들이 '계급장 떼고' 동등한 위치에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또한 교수는 학생에게 있어서 학자로서 굳건한 권위를 점한다. 강의실에서 있었던 문제적 발언의 대다수는, 교수가 자신의 천박한 의식을 '지식'이라는 포장지로 감싸 아무 문제의식 없이 내뱉은 결과다.

예를 들어 <석순>에 의하면 어떤 교수는 역사의 흥망을 설명하며 "어차피 모든 흥했던 것들은 망한다고, 수지(여성 연예인)도 어차피 늙는다니까?"라고 말했단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발언이 역사의 흥망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를 돕는 좋은 비유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동성애 혐오 발언을 한 한예종 강사도 마찬가지다. 해당 강사는 <여성신문>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론을 설명하며 한 발언"이라고 해명했다. 부연할 것도 없이 자신이 가진 학문의 권위를 방패 삼은 것이다.

'학생'이 '교수님'께 반발하기란...

'지식'과 '학문적 권위'라는 포장지로 성차별 발언을 일삼는 교수들.
 '지식'과 '학문적 권위'라는 포장지로 성차별 발언을 일삼는 교수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교수는 학자일 뿐더러 학생의 진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가장 단순하게 교수는 학생에게 성적을 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성적을 산정하는 근거가 되는 보고서, 발표, 서술형의 시험 등은 객관적인 점수로 환산되기 어렵다. 자연히 평가자인 교수의 주관이 개입하고, 교수는 이로 인한 절대적인 권위를 갖는다. 대학원 진학이나 취업을 위한 교수의 추천서 등이 필요한 학생이라면 그가 교수의 권위를 거스르기란 몇 배는 더 어려운 일이다.

결과적으로 학생은 어떤 발언이 문제라고 인식하더라도 대놓고 그것을 말할 수 없게 된다. 교수는 권위를 방패 삼아 발언의 정당성을 강화하고, 학생은 이상한 말이라고 느끼면서도 '교수님'이니까, 이의를 제기했을 때 어떤 불똥이 튈지 모르니까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성차별 발언엔 남성과 여성의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반영돼 있고, 동성애혐오 발언의 바탕엔 사회에서 이성애가 동성애에 비해 차지하고 있는 절대적인 권위가 있다. 여기에 덧붙여 캠퍼스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적 발언들엔 교수-학생 간 권력관계가 더해져 있다. 최근 문제가 공론화되고 있음에도 그 해결은 요원한 이유다.


태그:#성차별, #캠퍼스
댓글1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