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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에서 1905년 초대 왕의 대관식이 열렸다.
▲ 부탄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으로 꼽히는 푸나카 종 이곳에서 1905년 초대 왕의 대관식이 열렸다.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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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방송된 JTBC <비정상회담>에서는 일일 비정상 부탄 대표 린첸 다와가 출연해 왕과 왕비의 러브 스토리를 밝혔다. 린첸 다와에 따르면 어린 시절 평민 출신의 왕비가 왕을 만나 청혼을 했다고 한다. 10살 연상이던 왕이 '네가 어른이 되면 결혼을 하자'고 달랬는데 정말 결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며칠 전에도 부탄의 국왕부부는 화제가 되었다. 지난 2월 5일 이 커플의 득남을 기념하기 위해 국민들이 나무 10만 8천 그루를 심었다는 내용이다. 일주일 새 여러 번 보도되는 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내심 가슴이 아팠다. 사실 난 2011년 12월, 왕을 만나기 위해 부탄에 갔었다.

시간을 거슬러 2011년 봄, 나는 한 남자에게 반했다. 그는 부탄의 다섯 번째 왕인 지그메 왕추크다. 다큐멘터리 속의 그는 눈매가 서글서글한 호남이었다. 옥스퍼드대학교 정치학 석사에, 이제 막 시작한 부탄의 민주주의를 이끌 젊은 왕. 안 그래도 엄마가 아무 남자라도 좋으니 결혼하라 하던 참이다. '그래, 여자로 태어나 일국의 왕비는 되어 봐야지.' 나는 부탄에 가기로 했다.

부탄왕의 리즈시절 모습, 지금은 풍채가 좀 좋아졌다.
▲ 내가 반한 부탄 왕, 지그메 왕추크 부탄왕의 리즈시절 모습, 지금은 풍채가 좀 좋아졌다.
ⓒ http://www.bhutan2008.b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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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오면 일을 쉬는 나라, 부탄

잘 생긴 왕을 찾아 길을 떠났다. 히말라야 산맥 동부의 작은 나라 부탄. 이 나라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바로 국민행복지수(GNH)다. 1970년대, 우리가 새마을 운동에 열심일 때, 부탄의 왕은 '국민행복지수'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냈다.

실제 부탄 왕정의 역사는 100여 년으로 짧다. 20세기 초 치열했던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 야욕에도 부탄이 독립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이들 왕들의 영리함 덕분이었다. 1대 왕 우겐 왕추크는 영어를 할 줄 아는 능력을 이용해 영국여왕으로부터 기사작위를 받았고, 3대 왕은 중국이 티베트를 침략할 때, 고립정책을 청산하고 UN에 가입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4대왕 때 '국내총생산보다 국민총행복이 더 중요하다'는 선언과 함께 '국민행복지수'라는 개념이 성립됐다. 2008년, 부탄은 5대 왕에 의해 세계 최초로 총칼 없이 절대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바뀐 나라가 되었다. 

지금 부탄은 서양에서는 꼭 가보고 싶은 동양의 '이상향의 나라'이며, 전 세계 '국민 행복'의 롤 모델이다. 이 나라는 첫눈이 오면 일을 쉬고 축제분위기가 된다고 한다. 전체 예산의 1/4은 무상 의료와 무상 교육으로 쓰인다. 실제로 부탄의 병원에 가보니 외국인인데도 무료로 진맥을 해주고 약을 지어줬다. 부탄의 헌법 1조 1항은 '국토의 60%는 산림으로 유지한다'다. 가난하더라도 전통과 자연을 지키는 것이 행복이라고 믿는 사람들. 내가 반한 남자는 이런 나라의 왕이었다.

외국인인데도 무료로 진료를 해줬다.
▲ 팀푸의 전통 병원 외국인인데도 무료로 진료를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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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유일하게 신호등이 없는 수도, 팀푸

부탄은 가난한 배낭여행자들에게는 근접할 수 없는 나라다. 모든 여행자는 1박에 250달러(1월을 제외한 모든 달, 1월은 200달러)를 내야하기 때문이다. 이 가격은 3성급 숙박시설과 식사, 투어차량, 가이드가 포함되어 있다. 이중 65달러는 부탄 무료 교육과 의료, 빈곤을 위해 쓰여 진다. 때문에 부탄엔 배낭여행자들이 거의 없고 하루에 250달러를 낼 수 있는 나이 지긋한 서양 여행객들이 많다. 하지만 내 경우는 친구가 부탄에서 봉사활동 중인 덕분에 초청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이 경우 체류비를 따로 내지 않는다.

하지만 그 비자 발급과정은 쉽지 않았다. 수많은 문서가 오가고 느린 일처리 끝에 겨우 비자를 발급 받을 수 있었다. 비자가 발급되어도 부탄이라는 나라는 접근성이 나쁘다. 이 히말라야에 위치한 작은 왕국은 인도, 티베트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항공으로 가는 편은 드룩에어와 부탄에어라인 중 하나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육로로 가는 길은 보통 인도 국경을 넘는다. 인도 다즐링에서 출발해 국경마을 자이가온에서 부탄의 국경인 푼초링 게이트를 넘었다. 국경을 넘자마자 모든 것이 쾌적해진다. 인도에서 부탄으로 담만 넘었을 뿐인데 그 지독하던 쓰레기도, 소도 안 보인다.

영어가 공용어여서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 전통복을 입은 부탄의 여자아이들 영어가 공용어여서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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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와 리바이스 매장앞을 승려들이 지나고 있다
▲ 팀푸 시내 나이키와 리바이스 매장앞을 승려들이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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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에서 다시 아찔한 산길을 6시간 달려 팀푸에 도착했다. 해발 2300m 위치해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부탄의 수도 팀푸. 팀푸의 첫인상은 느릿느릿 흘러가는 시간이었다. 사람들은 전통 복장인 고(Goh)와 키라(Kira)를 입고 지나가고, 심지어 표지판도 전통복장 차림이다. 신호등이 없는 세계 유일의 수도기도 하다. 교차로에는 교통경찰이 수신호를 주고 있었다.

수도이긴 하지만 고층 빌딩은 거의 없고 전통스타일로 지어진 3층 이하 짜리가 대부분이다. 법으로 정해져있지는 않지만 건물주는 자발적으로 건물에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주로 전통 민담이나 상서로운 동물, 그리고 놀랍게도 남근이다. 남근을 그린 그림이나 남근석은 부탄 어디서나 볼 수 있는데 이들은 이것이 악귀를 쫒고 부를 가져다 준다고 믿고 있다.

부탄 어디에나 남근모양의 장식물이나 그림을 볼 수 있다
▲ 남근이 그려진 부탄의 집 부탄 어디에나 남근모양의 장식물이나 그림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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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저녁이 되자 이 조용한 수도도 변했다. 시내로 나가기 위해 택시를 타자 택시기사는 '트래픽이 너무 심하다'며 투덜거릴 정도였다. 밤이 되자 전통복장이 아닌 청바지에 재킷을 걸친 청년들도 보이고 근사한 바도 보인다. 이 작은 도시에 나이트클럽이 5군데나 있다고 한다. 히말라야의 은둔왕국이라더니 조금 배신감이 느껴졌다.

하긴 푼초링게이트에서 국경을 넘을 때 날 도와준 부탄 아가씨 킨리도 밥말리의 광팬이었다. 우리는 어두운 카페에서 밥말리를 틀어놓고 맥주를 마시며 키득거렸다. 밥말리로 대동단결하는 세계인이 된 것 같아 내심 뿌듯했다. 서양 문물뿐 아니라 한국 드라마나 노래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텔레비전을 틀면 부탄 청소년들이 전통복장 차림으로 케이팝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산골짜기에서도 케이팝은 매혹적이었다.

부탄에 랜드마크를 세운 파드마삼바바

부탄을 상징하는 건축물은 탁상사원이다. 수도 팀푸에서 2시간 거리의 파로라는 도시에 있다. 탁상사원은 해발 3140m의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는 하얀 사원이다. 부탄에 불교를 전파시킨 인도의 고승 파드마삼바바(구루 린포체)가 호랑이를 타고 도착했다고 해서 호랑이의 보금자리(Tiger's Nest)라고 불린다.

올라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2시간 정도. 풍경도 수려하고 수력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마니차, 바람에 나부끼는 하얀 룽타들와 오색 타르쵸, 그리고 전통복장을 입고도 씩씩하게도 올라가는 부탄여자들이 함께 있어 지루하지는 않다.

단지 해발 2940미터의 전망대를 지나 사원으로 가는 길은 온통 가파른 계단이어서 마지막 30분은 꽤 인내심이 필요하다. 결국 올라가기를 포기하고 내려가는 나이든 서양여행객들도 있었다. 하지만 깔딱깔딱 넘어갈 듯한 숨은 곧 탄성으로 보상된다.

여기서부터 30분간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한다
▲ 절벽끝에 자리잡은 탁상사원 여기서부터 30분간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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룽타는 '바람의 말'이라는 뜻이다. 기도가 바람을 타고 세상에 전해지는 염원이 담긴 깃발이다.
▲ 기도깃발 룽타 룽타는 '바람의 말'이라는 뜻이다. 기도가 바람을 타고 세상에 전해지는 염원이 담긴 깃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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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원에는 파드마 삼바바의 명상처를 비롯해 그가 악마를 무찌른 금강저가 안치되어 있다. 미로처럼 동굴과 건물 사이의 통로와 계단을 다녀야해서 더욱 신비로운 느낌이다. 불당에 들어가보니 파드마 삼바바의 불상과 버터로 만들어진 화려한 장식 그리고 향냄새가 가득하다. 건물자체가 절벽에 있다보니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아찔하다. 이미 이 세상이 아닌 천상에 올라와 있는 기분이다.

다시 차를 타고 팀푸로 돌아오는데, 반대편 차선에 검은 차 한 대가 지나간다. 그때, 택시운전수가 저 차가 왕이 탄 차라고 한다. 눈이 동그래져서 물으니 차 번호판에 Bhutan이라고만 적혀 있으면 그게 왕의 차란다. 접촉사고라도 났었어야 했는데 아쉬웠다.

트롱사에서 만난 부탄 아이들
▲ 부탄의 개구장이들 트롱사에서 만난 부탄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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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팀푸를 떠나 본격적으로 부탄의 다른 지역을 탐방해볼 시간, 하지만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난관이 있었다. 워낙에 단체 여행객만 오는 나라다보니 개별여행자를 위한 여행인프라가 거의 없었다. 심지어 대중교통조차 드물었다. 버스터미널에서 확인을 해보니 내가 가고자 하는 지역의 장거리 이동 버스는 매주 화, 목에 있는 식이었고 그 조차 예매가 아니면 구매가 힘들었다. 결국, 히치하이킹을 하기로 했다.

* 부탄여행기 2화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기자가 2011년 12월, 부탄을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부탄 국왕 부부의 득남을 축하하며 게재합니다.



태그:#부탄, #부탄왕, #비정상회담, #부탄왕비, #행복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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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여행작가. 저서 <당신에게 실크로드>, <남자찾아 산티아고>, 사진집 <다큐멘터리 新 실크로드 Ⅰ,Ⅱ> "달라도 괜찮아요. 서로의 마음만 이해할 수 있다면"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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