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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8일에 집을 떠났으니 네가 입대한 지도 오늘(22일)로 꼭 2주가 되는구나.
 
네가 입대한 이후로 종종 지금의 네 입장과 다를 바 없었던 35년 전 내 군 생활을 떠올려보곤 한단다. 네가 그곳에 있어서겠지만, 수십 년 전의 그 시간들이 아득한 게 아니라 지척의 일이었던 것처럼 선명하구나.

입대했던 내 기억을 더듬어보면 입대 후 가장 마음이 삭연했던 때가 신체검사를 마치고 군 보급품을 지급받아 군복으로 바꿔 입고 사복과 소지품을 집으로 보내는 소포를 꾸리던 때였다.
 
비로소 군인이 됐다는 현실 인식과 이 소포를 받은 부모님의 마음이 얼마나 수수로울까라는 생각에 미치니 콧등이 시큰해지더구나.
 
네가 집을 떠난 지 일주일이 되던 지난 15일, '부모님께 보내는 장정 소포'가 서울로 배달되었다는 택배 정보를 받았다. 마침내 내가 그때의 부모님 입장이 된 현실에 온갖 생각들이 만화경처럼 머리를 스치더구나.

입대한 아들로부터 온 '장정 소포'
 입대한 아들로부터 온 '장정 소포'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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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한 엄마가 급하게 몇 장의 사진을 찍어 내게 보냈다. 네가 떠나는 날 내 눈에 박혔던 그 점퍼가 그 속에 있었다. 네 편지도 함께 들어 있더구나. 편지 속 네 상황이 몹시 궁금했지만 엄마가 파주로 올 수 있는 비번날까지 참기로 했다. 그리고 마침내 편지를 내 손에 넣었다. 네 편지를 느리고 느리게 아껴가며 꼭꼭 씹어 읽었다.

박스 속에는 아들이 입고 들어간 옷가지와 편지가 담겼다.
 박스 속에는 아들이 입고 들어간 옷가지와 편지가 담겼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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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를 달리해 적은 두 통의 네 편지 속에는 35년 전의 내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구나.
 
"마치 고등학교에서 체육시간만 6~7시간 하고 있는 기분이라 전혀 부담감이 없어서 군대가 체질인 것 같다"라는 네 말에 안도하다가 "다들 보고 싶어서 잠이 안 오는 취침 전이 제일 두렵고 힘들다"라는 말에 다시 신산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구나.
 
바쁜 엄마가 오늘 아침 처음으로 네게 인터넷 편지를 쓰고 출근하셨다.
 
"영대, 그동안 잘 지냈나? 아빠가 다른 엄마들은 매일같이 교육대편지함에 편지 올리는데 엄마는 한 통도 안 쓴다고 야단이시다. 108배 하는 것보다 한 통의 편지가 훨씬 낫다고 매일 성화시란다. 군대를 다녀온 아빠라서인지, 아니면 영대를 넘 사랑하기에 그런지... 영대 군대 가고 아빠가 좀 심하시단다.

부대에서 걸려온 너의 첫 효도 전화를 녹음해 놓고 시간 날 때마다 들으시고 엄마한테 들려주신단다. 네 편지 잘 받았고 4월 14일, 수료식 때 누나랑 아빠랑 다 같이 면회 갈 거다. 식사는 잘 나오나? 양껏 먹을 수는 있는가? 밥을 잘 먹어야 될 텐데... 집 떠나면 몸을 젤로 챙겨야 된단다. 잘 지내 거라. 사랑한다. 2016. 03. 22. 파주에서의 아침에. 엄마가."    

입대 날의 아들과 아내. 장정소포 속에는 아들의 이 옷이 담겨있었다.
 입대 날의 아들과 아내. 장정소포 속에는 아들의 이 옷이 담겨있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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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편지를 보니 내 모습이 가족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되는구나. 이제 갓 훈련을 시작한 네게 수료식 참석 여부까지 말한 것으로 보아 훈련 기간 동안 엄마가 다시 네게 편지를 쓸 기회가 있을 지는 의문이구나.
 
중대장 훈련병의 의무를 맡았다고 했지. 한 집단을 대표한다는 것은 책임을 진다는 것이고, 그것은 명령하는 입장이 아니라 오히려 순종하는 자리라는 것을 명심하거라.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이 포함된 일을 결정해야 할 일이 있다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구성원의 의견을 물어 소속인 모두의 형편과 입장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현명하고 객관적인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소속원이 아닌 가상의 질문자를 네 앞에 세워라.

그는 네 그룹의 반대 입장에 있는 사람이거나 상황을 더 객관화해서 볼 수 있는 학자이거나 좀 더 분석해서 볼 수 있는 애널리스트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이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말할지에 대한 답변에 귀를 기울이거라. 그 모든 것을 고려한 결정이라면 설혹 소속원 일부의 뜻과 다른 결론이라도 공감하고 따르게 될 것이다. 이것이 공감의 리더십니다.
 
"군 생활 1년 9개월이란 시간이 정말 의미 있을 수 있겠다"라는 네 편지 속 구절에 또한 안도하게 된다.
 
진실로 너의 그 생각이 옳다. 군 복무는 대부분의 남자들에게 돈으로 보상받는 일이 아닌 의무와 보람을 검험하는 첫 사건일 게다. 만약 군에서의 시간이 자신의 앞날에 정체이거나 후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군에서의 피와 땀을 나누는 그 시간들이 정말로 그렇다면 그 정체와 후퇴조차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의 증거다.
 
나는 요즘 정원에 가만히 서서 바람을 맞곤 한단다. 네가 있는 남쪽에서 오는 바람 속에서 네 구령 소리를 느끼기 위해...
 
세상에 참을 수 없는 것은 없구나. 내가 12살 시절, 시골의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멀리 떨어져 대처에서 유학하던 시절, 부모님이 너무 그리워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나도 따라죽겠다는 결심을 한 적이 있었지. 그런데 지난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도 나는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있지 않니.
 
네가 몹시 보고 싶지만 이렇게 바람으로라도 그리움을 달랠 수 있으니 그 또한 견딜 만하구나. 다행히 바람은 어디에나 있고 언제나 있다. 양손으로 총을 든 네 귀에도 바람은 말을 건넬 수 있으니 참으로 다행이구나. 네 귀에 속삭이는 바람의 말은 이곳에 하지 못한 내 말이자 네 엄마의 말이고 네 누나의 말이고 네 친구들의 말이다. 고단하고 고적할 때면 그 말들에 귀 기울여보렴.
 
너도 상황을 극복하는 네 방식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현재'가 낡고 헤진 먼 뒤라도 당당할 수 있는 '오늘'을 살거라.  
 
사랑하는 아버지가.

'부모님께 보내는 장정 소포'에 동봉된 아들의 첫 편지
소포에 동봉하기 위해 쓴 아들의 첫 효도편지
 소포에 동봉하기 위해 쓴 아들의 첫 효도편지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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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03. 10.(목)

부모님께.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영대가 편지 올립니다.

어머니, 아버지. 별일 없이 잘 지내고 계시나요? 자랑스러운 저의 부모님의 아들 저는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훈련소 생활 3일째 만에 부모님께 편지를 쓰게 해주어 지금 이렇게 편지를 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마 다음 주 월요일(3월 14일)부터 정식으로 5주간의 군사훈련을 시작하고 수료식 때 오시면 그때야 부모님을 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중략...

아직 3일밖에 안됐지만 군대 생활은 나름대로 할 만합니다. 생각보다 바쁘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돌아가면서 사람답게 사는 것처럼 느끼게도 해줍니다. 이 시간을 잘만 사용하면 1년 9개월이란 시간이 정말 의미 있게 느껴질 수 있겠단 생각입니다. 제 동기들 중 제가 제일 나이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저희 소대만 봐도 96년생 아이들이 많고 정말 앳되어 보이는 아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아직 정확히 군 생활을 파악한 것은 아니지만 잘 맞는 것 같습니다. 마치 고등학교에서 체육시간만 6~7시간 하고 있는 기분이라 전혀 저에겐 부담감이 없습니다.

사회와 완전히 단절된 느낌이 들어 하루 종일 생각할 겨를이 없다가도 취침 전부터 소등 후까지 보고 싶은 사람들 생각이 많이 납니다. 부모님은 물론 큰누나도, 프랑스에 가 있는 작은 누나도 생각이 많이 나고 제 여자 친구도 많이 보고싶구요. 어머니는 몰라도 어머니를 사회에 두고 군 입대를 하셨던 아버지는 그 보고 싶음의 정도가 얼마나 될지 가늠을 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떨어져 있지만 보고 싶은 사람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저는 정말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 하략...

2016. 03. 12.(토)

부모님께.

부모님, 오늘은 전화드렸던 토요일입니다. 분대장 훈련병으로 연습을 해야 해서 다른 훈련병보다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저는 2중대 1소대 42번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지금은 1소대 2분대장훈련병으로 22명의 훈련병 대표로 있습니다. 오늘 다시 중대장 훈련병으로 지정받았습니다. 오늘 제가 눈에 띄었나 봅니다. 그래서 5주 동안 264명의 16-4기 훈련병 전부를 통솔하는 중대장훈련병이 될 것 같습니다.

...중략...

군 생활 정말 재미있습니다. 전화는 3분만 주어져서 아버지께 전화드렸습니다. 어머니 목소리도 듣고 싶은데 나중에 상점 따서 5분 통화로 전화 걸겠습니다. 최대한 부대 잘 이끌겠습니다. 단 한가지 힘든 점이 있다면 다를 너무 보고 싶어서 저녁에 잠이 안 옵니다. 그래서 취침 전이 제일 두려운 시간이구요. 지금 택배 박스를 보낸다 하여 너무 급히 썼습니다. 더 얘기도 많지만 이게 유일한 사회와의 통로란 점이 너무 아쉽습니다. 아무 문제없이 정말 아부지가 말씀하신 호연지기로 지내고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정말 많이 보고 싶고 사랑합니다. 모두의 생각대로 전 군대체질인가 봅니다. 이제 보낸다고 합니다. 저는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랑합니다. 부모님!!!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장정소포, #훈련병, #훈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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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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