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철학적으로 혹은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
▲ 별 헤는 밤 <윤동주, 달을 쏘다>의 여러 장면들이 깊이 있는 울림을 주지만, 특히 마지막 '별 헤는 밤'을 울부짖으며 낭독하는 배우 박영수의 모습이 압권이다. 이전까지 속삭이듯, 말하듯, 주저하듯 시를 읊던 동주와는 전혀 다른 동주가 2막 마지막에 등장한다. 그는 망설임없이 시어를 토해내며 다짐한다. 자신의 무덤에 풀이 무성할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그는 그 자신의 부끄러움을 극복했다. ⓒ 서울예술단
"우리 꽃 무궁화. 태어날 때는 이방인이었으나, 주인 되어 만개할 그날은 반드시 오리라. 이 교정의 지성은 아직 눈으로 덮여 있고, 교과서의 지식은 아직 어둠에 묻혀있네. 우리가 가야할 길 비록 어두워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서럽도록 시린 길을 먼저 가야만 하네. 너는 아느냐. 조선에는 언젠가부터 봄이 사라졌다는 것을." - 근대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1막 No.05 '사라진 봄' 중에서봄이 사라진 시대, 윤동주는 부끄러웠다. 연희전문에서 함께 공부한 그의 벗 강처중이 종로경찰서 앞에서 학우들을 모아 집회를 하고, 송몽규가 일제를 비웃으며 전단을 뿌릴 때마다 그는 고민했다. 시를 쓴다는 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세상이 우리에게 건넨 거친 농담을 어떻게든 웃어넘기려 했던 젊은 날들. 한 줄 시로 담고자 했던 나의 꿈이 부끄러운 고백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아랫입술을 질끈 물고 서러운 눈물 삼키고 두 주먹을 불끈 쥐어본다." - 근대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1막 No.05 '사라진 봄' 중에서독립운동 혐의를 추궁 받을 때 그는 부끄러워하며 대답한다. 자기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고. 치열하게 투쟁하며 세상과 부딪혔던 벗들에 비해 그 자신은 얼마나 작고 초라한 사람이었나.
▲ 이선화 역의 하선진 지난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막한 근대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의 커튼콜. 이선화 역의 배우 하선진이 관객 앞에서 인사를 올리고 있다. 시를 쓰는 이유를 찾지 못해 고민하던 윤동주에게 이선화는 동주의 시를 좋아한다며, 계속 시를 쓸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는다. 그리고 그 덕분에, 윤동주는 시를 포기하지 않았고 죽음 앞에서도 시의 유용성을 질문하는 벗들에게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 곽우신
그런 그에게 시를 쓰라고 용기를 준 건 이화여전의 벗 이선화였다. "메마른 이 세상 단비" 같은 그의 시를 좋아한다는 이선화. 그녀는 윤동주의 시를 노래할 내일을 함께 꿈꾸자고 한다.
"나 먼 훗날 자유로운 날이 온다면, 너와 함께 웃으며 숨 쉬며 살아가리. 그렇게 그 세상에 살고 싶다. 너와 시와 함께." - 근대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1막 No.06 '얼마나 좋을까' 중에서이선화에게 돌아가 함께 시를 노래할 날을 꿈꿨지만, 윤동주는 결국 그 내일을 보지 못한 채 옥에서 눈을 감고 말았다.
윤동주에게 시를 쓴다는 것
▲ 송몽규·윤동주·이선화 지난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막한 근대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의 커튼콜. 배우 김도빈·박영수·하선진이 관객 앞에서 노래하고 있다. 영화 <동주>에서만큼 송몽규의 비중이 크지 않지만, 여전히 이 극에서도 윤동주의 부끄러움을 불러일으키는 거울로 역할한다. 쾌활하면서도 혈기 넘치는 송몽규는 또 다른 매력의 캐릭터이다. ⓒ 곽우신
"시를 쓴다는 것. 친구를 보내는 것. 아픔을 느끼는 것. 청춘을 바치는 것. 아픔을 배우고 청춘을 바치고 써내려간 시는 나에게 너에게 무엇인가. 시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 근대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1막 No.11 '시를 쓴다는 것' 중에서시인 윤동주는 끊임없이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왜 시를 써야 하는가?
그리고 답을 찾았다. '사람'이 되기 위해서이다.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라는 질문에 '사람'이라는 답이 돌아왔을 때(아우의 인상화)부터, 그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래서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몰아내고 시대처럼 올 아침'(육첩방은 남의 나라)을 기다렸다. 창씨개명을 하고 일본에 가서도 재일조선청년들과 함께 한 것도 그 때문이었으리라. 그에게는 시가 저항이었다. 시가 투쟁이었다. 부끄러움을 잊지 않기 위한 수단이자 부끄러움을 사람됨으로 승화시키는 수단이었다.
▲ 무대 인사하는 조풍래 지난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막한 근대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의 커튼콜. 배우 조풍래가 이어서 나올 배우 박영수를 위해 관객 앞에서 제스쳐를 하고 있다. 뒤는 생각하지 않고 들불처럼 질주하던 강처중의 캐릭터는, 극 중 윤동주에게 많은 고민거리를 던진다. 윤동주에게 부끄러움을 불러일으키는 처중이지만, 마지막 순간 그의 시를 듣고 싶다고 부탁하는 것 역시 강처중이다. ⓒ 곽우신
▲ 연희전문의 학우들 지난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막하여 오는 27일 막을 내리는 서울예술단의 근대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의 한 장면. '사라진 봄'부터 '총 대신 주어진 연필로'까지 이어지는 연희전문학교 학생들의 혈기는, 당시 시대상에 맞서던 청년의 여러 삶의 모습 중 하나였다. 상당히 감동적이었던 그들의 역사를 앙상블들이 훌륭하게 소화한다. ⓒ 서울예술단
"이 땅에서 자유롭게 지저귀는 건 손에 잡히지 않는 새들뿐. 어린 학생의 서글픈 교가일지라도, 서툰 문인의 어설픈 사상일지라도, 우리 모두가 써내려간 글자. 우리 모두 외쳐보는 구호.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에 새겨지는 뜨거운 열정의 문장이 되어 처참한 현실에 목소리를, 암울한 세상에 용기를 내자. 군복 대신 주어진 교복을 입고 총 대신 주어진 연필로." - 근대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1막 No.08 '총 대신 주어진 연필로'고뇌하면서도 윤동주는 연필을 놓지 않았다. 그 스스로가 신새벽을 여는 영웅은 될 수 없을지라도, 끊임없이 자신을 반추하고 돌아봤다. 옥중에서 사경을 헤맬 때, 현실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는 공간에서 그의 벗들은 죄수복을 입고, 일본 군복을 입고 등장한다. 시는 필요 없다고, 시가 무슨 소용이냐고, 서글프게 읊조린다.
그런데 그 와중에 처중은 말한다. 동주의 멋진 시를 듣고 싶다고. 윤동주는 돌에 글자를 새기듯 시 '별 헤는 밤'을 한 자 한 자 피를 토하듯 쏟아낸다. 그가 말하는 단어들이 육성을 통해 튀어나와 허공에 박힌다.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하고, 자신을 반성하고, 시대의 고뇌를 나누었던 시.
죽음을 마주한 순간, 윤동주는 자신의 이름이 부끄러워 우는 풀벌레 소리를 기억하며, 자신의 무덤에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것이라고 울부짖는다.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
▲ 마지막 순간 옥중에서 정체불명의 주사를 맞으며 점차 죽어가는 윤동주. 그에게 강제로 차출되어 일본 군복을 입은 벗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의 환영은 윤동주의 시를 부정한다. 윤동주 마음 속에서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던 부끄러움. 하지만 시는 유용성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었다. 시는 유용하지 않다. 다만 나를 사람이도록 유지하는 한 줌의 인간성이었다. ⓒ 서울예술단
그가 그토록 바라마지 않았던 내일을 살고 있는 우리. 그러나 시대는 퇴보하고, 정치는 혼란스럽다. 교과서의 지식은 다시 어둠에 묻히려 하고, 교정의 지성 위에 다시 눈이 내리려 한다. 간신히 찾은 봄이 차가운 바람의 날숨에 사라지려 한다.
술잔을 기울이며 한탄하고는 했다. 연예 기사를 편집하고, 공연 기사를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좋은 글을 쓴다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성과도 별로 없어 보인다. 세상이 좋아지는 건 더더욱 아니다. 다른 선배·후배·동기처럼 의사당에서 혹은 아스팔트 위에서 땀 흘리며 글을 써야 하는 것이 아닐까.
▲ 달을 쏘다 달에 돌을 던지던 윤동주는, 최후의 순간 달을 향해 화살을 쏜다. 죽음을 마주하기 직전, 그의 눈에 비친 건 그의 갈대 화살에 맞아 부서지던 달빛이었을까. 근대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의 조명은 대체로 아쉽지만, 극의 하이라이트 장면은 눈여겨볼 만하다. ⓒ 서울예술단
"날 바라보는 저 달이 미워져 내 부끄러움을 비추는 달이 미워. 저 달을 원망하며 돌을 찾아 저 달을 향해 던진다. 던져도 던져도 죽어라 던져도 내 머리 위에서 빈정댈 달이지만, 뜨는 해는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오. 동무여 우리에게 내일은 없으니." - 근대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2막 No.21 '달을 쏘다' 중에서아무리 발버둥치며 돌을 던져도 돌이 달에 닿을리 없다. 달은 여전히 저 위에서 나를 바라보며 비웃고 있는 것 같다. 윤동주가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윤동주는 죽는 순간 동무들의 '내일은 없다'는 노래에 흔들리지 않았다. 다만 달을 향해 던지던 돌을 내려놓고, 시위에 화살을 건다.
"좀 더 탄탄한 갈대로 화살을 삼아서, 무사의 마음으로 달을 쏜다. 통쾌하다, 부서지는 저 달빛이. 우습구나, 쪼개지는 저 그림자. 오늘도 내일도 나는 무사의 마음으로 너를 쏜다. 시를 쓴다. 삶이 쓰다. 달을 쏘다." - 근대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2막 No.21 '달을 쏘다' 중에서돌을 던지는 건 그저 자신의 부끄러움을 비추는 달이 싫어 몸부림치는 것이었을테다. 하지만 화살을 쏘는 건 다르다.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해 이를 부정하려는 발버둥이 아니라, 그 부끄러움을 똑바로 마주하고 맞서는 행위다.
그의 화살에 달이 산산조각 부서진다. 달빛이 온 무대를 휩쓸고 비산된다. 스물아홉의 윤동주는 그렇게 부끄러움을 쏜 뒤 달빛 아래에서 옥사했다. 그 죽음 앞에, 그는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극복했다.
스스로 물었던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져본다. 스물아홉의 나는 무엇을 쓸 것인가. 삶은 쓰고, 봄은 희미하고, 내일은 올지 안 올지 불확실하다. 나 역시 달을 향해 돌만 던지며 투정을 부렸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연필을 놓을 수는 없다. 윤동주는 문예지를 만들어 사람의 마음을 모으려 했다. 다른 사람과 고민을 나누어 먹으며, 상처를 어루만지고 문제의식을 공유하려 했다. 몽규나 처중과는 다른, 동주만의 싸움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공감들이 모였을 때, 세계는 조금 바뀔 것이다. 그의 시가 남아 노래가 되어 극장을 채우듯이.
그러니 나도 돌 대신, 펜촉을 화살 삼으려 한다. 비록 서툴고 어설픈 사상일지라도, 어쭙잖지만 무사의 마음을 가져 본다. 나를 부끄럽게 하는 저 달을 겨눠본다.
달을 쏜다, 나도. 동주처럼.
▲ <윤동주, 달을 쏘다>의 포스터 서울예술단의 근대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가 지난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그 막을 올렸다. 지난 2012년 초연 이후 세 번째 관객맞이에 나서는 <윤동주, 달을 쏘다>는 시인 윤동주의 삶을 절절하게 각색하는 데 성공했다. 서예단의 여러 작품 중에서도 손에 꼽는 수작이다. 27일에 폐막할 예정, 이번 기회를 놓치면 또 언제 '별 헤는 밤'을 목놓아 읊던 윤동주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 서울예술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