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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빈스키 커피는 괜찮았다. 그런데 마음이 불편한 걸 알아버렸다.
 바빈스키 커피는 괜찮았다. 그런데 마음이 불편한 걸 알아버렸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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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4일 오후 3시 10분]

한국야쿠르트에서 새로 나온 커피인 '콜드브루 바이 바빈스키'(아래 바빈스키 커피)가 인터넷상에서 출시 며칠 만에 '핫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직접 판다는 것, 커피를 모사해서 만든 '커피음료'가 아닌 진짜 커피라는 사실(더치커피)이 주목받으면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유행하는 '음료' 종류라면 꼭 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나도 회사 앞 '야쿠르트 아줌마'를 통해 맛봤다.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앰플'로  세 가지 종류가 있었고, 전부 사서 먹어봤다.

'아메리카노'는 두 번 정도 먹어봤는데 적당히 산미가 있고 커피 고유의 향도 남아 있었다. 스타벅스류의 '진한 커피'에 익숙한 사람은 밍밍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2000원이라는 가격을 생각하면 괜찮은 맛이었다. 다만 차갑지 않은 상태에선 맛이 급격히 떨어졌다.

'카페라떼'는 우유 비율을 낮춰야 할 것 같다. 너무 싱거웠다. 반면 우유나 물에 타먹을 수 있도록 작은 용기에 원액이 담긴 '앰플'은, 뜨거운 물에 타 먹었는데 꽤 만족스러웠다. 지금까지 시중에 나온 가장 고급의 '타 먹는 커피'는 스타벅스 '비아'(VIA)였는데, 이젠 그 자리를 바빈스키 커피 앰플에 넘겨줘야 할 듯하다.

그런데 말입니다... 한국야쿠르트의 숨겨진 행보

5.16민족상 재단 홈페이지
 5.16민족상 재단 홈페이지
ⓒ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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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출근 시간, 커피 전문점에 들릴 시간이 없을 때 바빈스키 커피를 종종 사 먹어 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바빈스키 커피를 판매하는 '한국야쿠르트'에 대한 숨겨진 사실을 알게됐다. 한국야쿠르트 윤덕병 회장이 5.16 쿠데타를 미화하는 '5.16 민족상 재단'의 '기부왕'이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2013년 5월 '14하12'라는 블로그를 통해 세간에 알려졌다(해당 글 보러가기 클릭).

이후 다수의 매체가 한국아쿠르트와 '5.16 민족상 재단'과의 연관 관계를 조명했다. 다수의 보도에 의하면, 한국야쿠르트 윤덕병 회장은 1998년부터 2012년까지 열일곱 차례에 걸쳐 7억6500만 원을 기부했다. 이는 2012년까지 재단에 들어온 기부금 약 22억 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라고 한다. 참고로 윤 회장은 5.16쿠데타 직후인 1961년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경호실장으로 알려져 있다.  

매년 부문별로 '5.16 민족상' 수상자를 선정하고 있는 5.16 민족상 재단은, 쿠데타를 미화한다는 점에서 논란의 대상이다.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설립취지문만 보더라도 정체성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5.16은 조국의 근대화라는 뚜렷한 목표를 제시했고, 민족의 왕성한 의욕과 자각을 불러일으키는 동기를 부여했습니다. 5.16을 기점으로 우리는 전진하고 반성하고 또 전진해왔습니다 ...(중략)... 민족의 예지와 역량을 다시 가다듬어야 할 이 시점에서 우리의 앞날을 밝힐 수 있는 횃불을 점화코자 여기 5.16민족상을 제정하렵니다."

2013년 보도 이후 발생한 논란으로 인해, 5.16민족상 재단은 홈페이지에 올린 기부자 명단을 삭제했다. 또한 당시 보도에 따르면 야쿠르트 측은 "1988년부터 지난 2012년까지 기부한 것은 맞지만 현재 기부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뉴시스> 보도)라고 말했다.

한국야쿠르트 측은 오마이뉴스와 만나 "해당 보도가 나간 2013년 5월 이후에는 일체 기부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반복되어 일어나는 일이 아닌만큼, 앞으로 한국야쿠르트의 미래를 지켜봐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불매해야 할까? 여전히 '고민 중'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이러한 사실이 언급되며 "실망스럽다" "안 사 먹어야겠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나 역시 앞으로 바빈스키 커피를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야쿠르트에선 앞으로 기부 안 한다고 했고, 어떻게 보면 '야쿠르트 아줌마'들 수입도 올려주는 건데…. 괜찮지 않을까?"

결정이 힘들었다. 무엇보다 그저 '야쿠르트'와 바빈스키 커피만 사먹지 않는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국야쿠르트의 대주주(40.83% 지분 보유)는 '팔도'다. '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비비고'로 유명한 '팔도 비빔면'을 만드는 그 회사 말이다. 그리고 윤덕병 회장의 아들인 윤호준 전무가 팔도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팔도는 한국야쿠르트가 라면 음료 사업을 별도 법인으로 분리하면서 만들어진 회사다(2012년 이전까지는 라면 브랜드명이었다).

만약 바빈스키 커피를 사먹지 않을 경우,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이는 '팔도 비빔면'이나 좋아하는 컵라면 중 하나인 '왕뚜껑'까지 먹지 않아야 한다. 어떤 제품은 먹고, 어떤 제품을 안 먹을 경우 '불매'의 의미가 없지 않은가.

나는 과거에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불매운동들을 '슬랙티비즘'(실제적인 효과는 없고 자기 만족적인, 소심하고 게으른 저항)으로 폄하한 적도 있다. 루머에 의해 사람들이 움직이는 경우가 꽤 있기도 했고, 불매운동을 주장하는 이들이 '네가 이걸 사 먹으면 세상이 잘못 된다'는 식으로 정의감을 표출하는 게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다. 속으로 '안 사먹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뭐 대단하다고 난리일까'라는 반발심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하고, 자주 사던 뭔가를 사지 않겠다는 결정을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에게 '불편함'을 끊임없이 느끼게 하는 일도 '신념의 실천'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나는 정치적인 이유로 한국야쿠르트와 팔도의 제품을 안 사는 '불편함'을 감내할 수 있을까? 이 글을 마무리 짓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결정하지 못했다.

다 먹은 바빈스키 커피 용기를 골똘히 보고 있으니, 박정희 전 대통령의 얼굴과 친절하게 커피를 건네주시던 야쿠르트 아줌마의 얼굴이 동시에 뇌리를 스친다.

이렇듯 현대사회에선 '돈 쓰는 일'도 너무 어렵다.


태그:#바빈스키, #바빈스키커피, #한국야구르트, #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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