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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보고 95세 어머님이 말씀하신다. "사람도 5월이 되면 꽃피고 그러면 좋을텐데... ”
 꽃을 보고 95세 어머님이 말씀하신다. "사람도 5월이 되면 꽃피고 그러면 좋을텐데... ”
ⓒ 황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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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꽃이 주렁주렁 열린 가족의 달 5월, 오늘(8일)은 어버이날. 면회 온 아들을 따라 점심 식사하러 요양원 밖으로 외출하시면서, 차 안의 어머님께서 향기 가득품은 꽃을 보고 한마디 하신다. 

"꽃이 만발했구나. 사람도 봄이 되면 싹 돋고, 5월이 되면 꽃 피고 그러면 좋을 텐데... "

이제는 요양시설 종사자들의 도움을 받고 살아가시는 어머님께 아름다운 꽃은 구순을 넘긴 나이 한탄의 소재에 불과한가 보다.

"뭐 드실래요? 맛있는 것 드시게요."

어버이날이어서 어머님께서 원하시는 음식으로 점심을 대접해드리고 싶었다.

"별로 뭐 먹고 싶은 것은 없다만. 조구(조기)에 밥 말아서 한 술 먹어보끄나." 

식당에 도착한 어머님은 드실 약부터 미리 꺼내시더니, 다시 호주머니를 뒤진다. 멀미약병과 함께 식탁에 한 줌 꺼내 과자를 아들에게 준다. 젤리 두 개, 사탕 두 개.

95세 엄마가 59세 아들에게 준 간식

아흔다섯 ‘엄마’가 흰 머리 쉰 아홉 아들에게 선물로 준 과자가 멀미약과 함께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아흔다섯 ‘엄마’가 흰 머리 쉰 아홉 아들에게 선물로 준 과자가 멀미약과 함께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 오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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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다섯 '엄마'가 흰 머리카락 같이 머리에 이고 있는 쉰아홉 아들에게 과자를 먹으라고 준 것이다. 봉사자들이 찾아와서 주고 갔거나, 요양원에서 가끔 드리는 간식거리 사탕일 게다. 당신이 아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기에 일부러 가지고 나오셨나 보다.

"어머님 잘 먹을게요. 근데 멋있네요. 전 카네이션을 달아드리지도 못했는데, 누가 보냈던가요?"

조화로 만든 카네이션이 어머님 가슴에 달려 있다.

"아니, 어제(7일) 원장님이 달아줬어. 모두 다 달아주고 사진도 찍고 그랬지. 선물도 받고."

이제는 자식들이 아닌 요양시설에 종사하신 분들이 어머님께 먼저 카네이션을 달아드린다.
▲ 어머님의 카네이션 이제는 자식들이 아닌 요양시설에 종사하신 분들이 어머님께 먼저 카네이션을 달아드린다.
ⓒ 오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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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께서 70명가량 있는 요양시설에 입소한 지는 8개월째. 95세 어머님은 요양등급 3급을 받아 지난해 9월에 입소하셨으니 오늘은 요양원에서의 첫 어버이날이다. 어버이날 하루 전인 7일 요양시설 원장님이 자식 역할을 한 셈이다.

친자식은 휠체어 밀고 하루 잠시 식사만 하고 갈 뿐. 식사며, 목욕이며, 잠자리 돌보는 것이며, 다른 자식(?)들이 맡아서 해주신다.

어머님을 위해서 우리 형제 자매들은 전화해 각자 날짜를 잡았다. 어버이날 당일 하루에 자식들이 한꺼번에 면회를 가는 것보다 띄엄띄엄 뵙기로 정했기 때문이다. 지난 주 동생에 이어서 마침 나는 어버이날 당일을 맡았다.

코끝이 찡해지는 사탕

이제는 어머님의 친구가 된 휠체어가 식당 입구를 지킨다.
 이제는 어머님의 친구가 된 휠체어가 식당 입구를 지킨다.
ⓒ 오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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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내내 입구 한쪽은 어머님의 친구가 된 휠체어가 지키고 있었다. 어렵게 택한 곳이었지만 적응을 잘하시는지, 자식들은 걱정이지만 어머님은 늘 자식들을 안심시킨다.

"걱정마라. 나한테는 여기가 맞다. 누가 이렇게까지 해준다냐? 자식도 못한 일들을 다 해주고 그런다. 매 끼니에, 옷 빨래에, 간식에, 자원봉사자들이 늘 찾아와서 즐겁게 공연해주고... 나이도 꽉 찼고, 이제 이렇게 살다가 좋은 날 잡아서 조용히 갈란다. 니 아버지가 좋게 잘 데려갈 것이다."

어머님의 마무리는 늘 이렇게  먼저 가신 아버님 곁으로 '잘 가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나는 침묵으로 피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만다. 아들은 귀가하면서 고속도로에서 사탕을 까먹었다. 어린 시절 어머님이 주신 그 사탕 맛이지만, 코끝이 그만 찡해지고 만다.

"어머니!"


태그:#어버이날, #카네이션, #요양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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