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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깜짝 놀랄 만한 정치적 사건이 터진다. 대다수 언론이 이를 집중 조명하는 기사를 경쟁하듯 내보낸다. 이에 따라 여론도 덩달아 뜨거워진다. 소셜네크워크를 중심으로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일벌백계하라는 요구가 빗발친다. 검찰이 전담팀을 꾸리고 성역없는 수사를 하겠다고 기자회견을 한다.

그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 그리고 또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세상이 경악할 만한 또 다른 사건이 터진다. 언론은 이번에도 해당 사건을 연일 대서특필한다. 여론이 다시 크게 요동친다. 검찰은 이번에도 특별조사팀을 구성하겠다고 발표한다. 그러는 사이 이전 사건은 세간의 관심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간다.

너무나 비슷한 '패턴'

지난해 8월 25일 열린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 당시 박근혜 대통령
 지난해 8월 25일 열린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 당시 박근혜 대통령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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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0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원 국정감사에 앞서 국정원 관계자들이 정보위 소속 의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2015년 10월 20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원 국정감사에 앞서 국정원 관계자들이 정보위 소속 의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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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발생하는 정치적 사건이나 이슈들은 하나같이 이와 같은 '패턴'대로 흘러간다. 우리가 기억하는 사건의 대부분이 이같은 흐름으로 진행되어 왔다. 국정원 사건, 세월호 참사, 성완종 게이트 등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청와대 비선실세 논란, 국정원 민간인 해킹 논란, 국정교과서를 위한 교육부의 비밀 태스크포스(TF) 팀 논란 등 갖가지 의혹들도 마찬가지였다.

소문은 무성하고 의혹은 넘쳐나는데 실제로 진상이 규명된 사건은 찾으려야 찾아볼 수가 없다. 세상이 떠나갈 듯 시끌벅적했던 사건들조차 언제 그랬느나는 듯 사람들의 뇌리에서 쉽게 잊혀 버리고 만다. 사건이 해결되지 않고 단지 소비되어 버리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아찔한 블랙코미디다.

불과 2주일 전만 해도 정국을 집어삼킬 듯 시끄러웠던 '어버이연합 게이트'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이 사건도 그 실체가 오리무중이라는 점에서 앞선 사건들의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번 사건을 규명하기 위한 핵심 인물인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이 잠적한 이후 사건수사가 완전히 답보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추선희 사무총장은 지난달 22일 '어버이연합 게이트' 해명 기자회견 이후 돌연 종적을 감추었다. 그가 자취를 감춘 이유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아직 밝혀진 바가 전혀 없다. 갖가지 '설'들이 무수히 저잣거리를 오가고 있을 뿐이다.

지난 4월 22일 오전 종로구 인의동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사무실에서 추선희 사무총장이 '전경련과 재향경우회 등에서 뒷돈을 받았다' '청와대 행정관 지시로 친정부 시위를 벌였다' 등 각종 의혹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4월 22일 오전 종로구 인의동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사무실에서 추선희 사무총장이 '전경련과 재향경우회 등에서 뒷돈을 받았다' '청와대 행정관 지시로 친정부 시위를 벌였다' 등 각종 의혹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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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검찰의 태도다. 추선희 사무총장의 잠적은 이번 사건의 핵심 피의자가 '행방불명'되었다는 의미다. 따라서 원활한 사건 수사를 위해 피의자의 신병 확보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러나 지난달 26일 형사1부에 이 사건을 배당한 이후 검찰의 움직임은 현재 감감무소식이다.

일각에서는 지난달 26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간담회에서 "(청와대 집회 지시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보고를 받았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 때문에 검찰이 적극적인 수사를 벌이기는 힘들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이 검찰 수사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언론과 야당 역시 서두에 언급한 '패턴'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집요하게 이 사건을 파헤쳤던 언론은 예의 날카로움이 사라져 버렸고, 어버이연합 불법 자금 지원 의혹 규명 진상조사 TF를 꾸렸다는 야당의 움직임 역시 처음에 비할 바가 못된다.

검찰의 석연찮은 행태와 언론과 야당이 주춤하는 사이, 대중의 관심도 점점 이 사건으로부터 멀어져만 가고 있다. 처음 이 사건이 불거졌던 당시와 비교하면 지금은 고즈넉한 느낌마저 들 정도다. '어버이연합 게이트' 역시 이 나라 정치가 양산하는 블랙코미디의 전형적인 '패턴'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위기에 빠트리는 공범들

따라서 '어버이연합 게이트'가 어떻게 귀결될지 예측해 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청와대와 국정원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이상 이번 사건 역시 앞서 거론했던 사건들과 비슷한 흐름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아주 농후해졌다.

흔히들 대한민국을 가리켜 '사건 공화국', '게이트 공화국'이라 부른다. 치욕스럽기 그지없는 이 별칭은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검찰은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했고, 주류 언론은 진실 앞에 더없이 비겁하다. 야당은 끈기가 없고 무기력하며, 대중은 표피적이고 즉물적이다. 이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정치권력과 맞닿아 있는 사건들이 하나같이 미궁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의와 진실을 향한 뜨거움과는 별개로 현실은 이처럼 지독하게 서늘하고 한없이 비릿하다. 이제 이 나라에서 '정의'와 '상식' 같은 인류 보편적인 가치들은 교과서에나 볼 수 있는 생경한 것이 되어 버린 듯한 느낌이다.

대한민국이 직면한 위기의 본질이 바로 여기에 있다. 보편적 가치를 이해하고 구현하는 일은 사회공동체의 건강한 미래와 직결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검찰, 정치권, 주류언론 등 수많은 '공범'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미궁에 빠트리고 있다.


태그:#어버이연합 게이트, #추선희 사무총장 잠적, #어버이연합 게이트 몸통, #청와대 국정원 어버이연합, #어버이연합 알바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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