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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역 1번 출구에서 1분 거리에 있는 마을카페 '봄봄'은 이제 3년 차에 접어든 마을카페다. 카페 '봄봄'의 회원인 기자가 3년 동안 망하지 않고 꿋꿋이 버텨 마을에 뿌리내린 카페 봄봄의 마을살이 과정을 소개하려고 한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 기자 말

영등포역 1분 거리에 있는 마을카페 봄봄은 3년 전,  노동교육단체 서울노동광장의 사무실을 개조해 만들었다.
 영등포역 1분 거리에 있는 마을카페 봄봄은 3년 전, 노동교육단체 서울노동광장의 사무실을 개조해 만들었다.
ⓒ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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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카페 '봄봄'의 매니저, 규카소는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집을 나섰다. 까치집인 머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어스름이 깔린 새벽 골목을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가는 길에 하나 있는 횡단보도도 마침 초록불로 바뀌었다. 그 덕에 오늘은 5분 만에 돌파. 그가 발걸음을 멈춘 곳은 봄봄의 문 앞, '띠리릭' 번호키(도어락)가 풀리는 소리가 경쾌하다.

2014년 9월에 영등포로 이사 온 후 바뀐 그의 아침 풍경이다. 서울 화곡동에 살던 그는 이전 집의 전세기간 만료를 앞두고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일터와 삶터가 일치되는 게 좋을까, 나쁠까?'

출퇴근 시간이 줄어드는 건 좋지만 집이 직장과 너무 가까우면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을까봐 걱정했다. 갈팡질팡하는 그를 잡아준 건 함께 사는 매니저, 최대지원이다.

"날마다 영등포에서 밤늦게까지 있는데 우리 택시비라도 아끼자." 

그렇게 결정하고 집을 옮기고 보니 뭘 그리 겁을 냈는지 우습기만 하다. 이렇게 출근 전에 봄봄에 와서 차 한 잔 마시면서 신문을 보고, 카페가 문을 열지 않는 일요일이면 빔을 쏴서 커다란 스크린을 독차지한 채 나홀로 영화감상도 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으니 말이다. 삶의 질이 한 뼘은 올라간 듯한 풍요로움을 만끽하고 있는 그는 바란다.

'마을주민들도 카페 봄봄을 이렇게 '내 공간이다' 생각하고 편하게 오면 좋겠다.'

삶의 질이 한 뼘 올라간 이사

카페 봄봄 매니저들은 다른 카페들을 탐방하면서 '노동자마을복합문화갤러리북카페'로 콘셉트를 정한 후 카페에 전시공간을 마련했다.
 카페 봄봄 매니저들은 다른 카페들을 탐방하면서 '노동자마을복합문화갤러리북카페'로 콘셉트를 정한 후 카페에 전시공간을 마련했다.
ⓒ 규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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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예술작품을 접하기 힘든 주민들이 카페 봄봄에 전시된 작품들을 관람하고 있다.
 평소에 예술작품을 접하기 힘든 주민들이 카페 봄봄에 전시된 작품들을 관람하고 있다.
ⓒ 규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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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규카소의 바람처럼 봄봄을 내 집 드나들 듯 하는 주민은 그리 많지 않지만 매니저들과 서로 가족의 안부를 물을 정도로 친해진 주민들이 꽤 있다. 이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이다. 3년 전, 봄봄이 문을 열기 전까지 매니저들은 같은 건물에 사는 건물주의 얼굴도 잘 몰랐으니까.

봄봄의 공간은 본디 노동교육단체인 서울노동광장의 사무실이었다. 단체 회원들과 상근자들만 이용하던 폐쇄적인 공간이 지금처럼 누구나 쉽게 오가는 곳으로 바뀐 데는 사연이 있다.

2011년 겨울, 이춘자 전 서울노동광장 대표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진 뒤 다시 눈을 뜨지 못했다. 광장의 구심점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그와 함께 늘 회원들로 북적이던 사무실에 사람들 발길이 뚝 끊겼다. 사무실 분위기는 계속 무겁게 가라앉아만 갔다. 그렇게 1년 여를 흘려보낸 후, 서울노동광장의 부대표였던 매니저 용용은 상근자들한테 말한다.

"사무실에 그냥 앉아있는 게 너무 괴로워요. 이 공간이 변하지 않고 계속 이 상태라면 에너지가 고갈돼 더 이상 이곳에 못 있을 것 같아요."

말은 못 했지만 다른 상근자들도 같은 마음이었다. 회원들 역시 변화를 갈구했다. 회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광장의 공간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해 토론했다. 여러 달이 지났지만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한 회원이 지나가듯 말했다.

"공간을 활짝 열어보는 건 어때요? 그 형식이 협동조합일지, 마을기업일지, 민중의 집 같은 노동자 살롱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모두의 공유공간으로 만들어 봐요."

그건 집회에서 구호로만 외치던 '비정규직 철폐!' 속 비정규직이 있는 곳으로 가자는 뜻이기도 했다. 그동안 잊고 있던, 마을에서 주민 혹은 시민이란 이름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사실은 노동자이거나 노동자의 가족이라는 진실과 마주치자 광장 회원과 상근자들은 전율했다.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을 뚫고 나와 드디어 한 줄기 빛을 발견한 것.

노동교육단체를 주민의 공유공간으로

노동,  진보 운동을 하던 카페 매니저들은 카페 개소를 앞두고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카페의 역사 등을 공부했다.
 노동, 진보 운동을 하던 카페 매니저들은 카페 개소를 앞두고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카페의 역사 등을 공부했다.
ⓒ 규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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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카페 봄봄의 개소 2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인 주민들.
 마을카페 봄봄의 개소 2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인 주민들.
ⓒ 용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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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막막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노동, 진보운동을 하던 이들에게 마을, 공동체는 '낯설다'는 말로는 부족한 전혀 새로운 세계였기 때문이다. 광장 상근자들은 그 알 수 없는 세계에 들어서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협동조합 관련 교육, 마을기업 설립 설명회 등을 찾아다니면서 단체가 아닌, 공유공간으로서 '마을'에 스며들 방법을 고민했다.

쉽게 떠오른 것이 바로 '카페'였다. 커피를 매개로 마을 주민들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이 역시 쉽지는 않았다. 노동법 교육을 하던 사람들이 커피 장사를?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도대체 감이 안 왔다. 모르면 먼저 시작한 이들을 살피는 게 상책. 상근자들은 카페 탐방에 나섰다. 나눔문화가 운영하는 <라 카페 갤러리>를 찾아갔다. 카페 한쪽 공간에서 박노해 시인의 사진을 전시하고 있는 걸 보고 생각했다.

'우리도 주민이나 노동자들이 찍은 사진들을 전시하면 어떨까. 일반인들은 일부러 미술관이나 전시회장에 찾아가지 않으면 예술작품들을 접하기 힘들잖아.'

카페 <콩세알>에도 갔다. 커피 판매뿐 아니라 식사도 할 수 있었다. 공간 대여에 문물장터, 생활물품 판매도 하고 있었다. 전부 따라하고 싶을 만큼 좋은 아이템들이었다. 대학로 방송통신대 본관 1층에 있는 카페 <락앤락>에도 가보니 카페 곳곳에 책들이 놓여 있고, 1인용 테이블도 많았다. 인테리어에 참고할 사항들을 열심히 메모했다. 그 밖에 <사이시옷> 등 이미 자리 잡고 있는 마을카페들도 찾아가서 노하우도 전수받았다.

벤치마킹할 리스트는 꽤 쌓았다. 더 중요한 건 거기에 우리만의 콘셉트를 입히는 일이었다. 그때 사무실 한쪽 벽면을 꽉 채운 2000권이 넘는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책은 '일하는 노동자들의 학습 공동체'를 추구해온 광장의 지향과도 통했다.

카페 탐방을 통해 결정한 긴 이름

그렇게 하고 싶고, 해야 할 일들을 다 엮어놓으니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식의 긴 콘셉트가 탄생했다. '노동자마을복합문화공간갤러리북카페.' 회원 공모를 통해 '봄봄'이라고 이름도 지었다. '마주봄, 바라봄, 함께봄'의 줄인 말이기도 한 '봄봄' 앞에는 '세상을 바꾸는 노동과 마을의 합체'라는 모토를 달았다. 서로 익숙하지 않은 노동과 마을이 만나 평등하게 서로를 인정한 채 마주 보고 함께 보면서 세상을 바꿔 가보자는 마음이 담겼다.

다 연결하면 '김수한무~'는 비교도 안 될 긴 이름이 된다. '세상을 바꾸는 노동과 마을의 합체, 노동자마을복합문화공간갤러리북카페 봄봄'. 한 가지만 잘 해도 살아남기 힘든 자영업 시장에서 이런 짬뽕 콘셉트로 과연 봄봄이 생존할 수 있을까. 앞일은 알 수 없지만 우선 부딪혀보기로 했다. 도전하는 이에게 길은 열리기 마련이니까.

카페를 운영할 5인방을 꾸렸다. 용용, 공자, 쑥쑥, 규카소, 최대지원. 5명이 요일을 담당해 돌아가면서 카페를 맡기로 했다. 요일 담당자를 부를 호칭도 생각했다. 카페지기라고 했다가 매니저로 하기로 했다. 쑥쑥의 아이디어다.

"가수나 배우에겐 매니저가 있잖아. 매니저는 스케줄 관리도 해주고 차도 몰면서 담당 연예인의 성장을 돕잖아. 우리도 주민들의 매니저가 돼서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일을 함께 하면서 서로 커가는 걸 보면 좋겠어."

그렇게 봄봄의 독수리 5인방은 매니저로 불리게 됐고, 이제 카페 문을 열 준비를 해야 했다. 인테리어 구상에 들어가는 한편 바리스타 교육도 시작했다. 커피숍에 가서 아메리카노를 시키기보다는 사무실에 앉아 봉지 커피 마시는 걸 좋아하던 이들이 커피의 역사부터 커피 내리는 법까지 배웠다. <카페의 역사> 책을 읽으며 카페의 새로운 의미도 알았다.

"음료가 카페의 여왕이라면 말(언어)은 카페의 왕이었다. 이 때문에 발자크는 카페를 '민중의 의회'라 칭했다. 여기에는 이중의 의미가 담겨있다. 첫째 카페는 신분을 떠나서 모든 사람에게 개방된 공간이며 누구라도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곳이란 뜻이다. 둘째로 카페가 극단적으로 정치화된 공간이라는 점을 암시하기도 한다."(<카페의 역사>, 효형출판, 236쪽)

세상을 바꾸는 노동과 마을의 합체, 노동자마을복합문화공간갤러리북카페 봄봄에서 하고 싶은 일들이 마구 떠올랐다. 이제 시작이다.


태그:#마을카페 봄봄, #마을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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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기록자. 스키마언어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책을 읽고 글쓰는 법도 찾고 있다. 제21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기록문 부문 수상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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