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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덴마크에서 태어났으니 올해 나이가 47살이다. 현직 교사 2명과 심리학자가 함께 썼다. 학생들을 로봇처럼 훈육시키는 당대의 권위주의적인 교육 시스템에 저항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책 표지에 '유럽 학생들이 어른 몰래 돌려 읽던 책'이라는 선전 문구가 달린 이유일 게다.

책은 기구한 운명을 헤쳐 왔다. 출간 이후 유럽 전역으로 퍼졌으나 박해가 이어졌다. 1970년 영국에서는 출간되자마자 당국이 판매 금지 조치를 취했다. 영국 검찰은 출판사를 기소했다. 프랑스에서도 출간 즉시 판매 금지가 이어졌다. 그리스에서는 이 책을 번역 출간했다는 이유로 출판사 대표가 감옥에 갔다.

<10대를 위한 빨간책>
 <10대를 위한 빨간책>
ⓒ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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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를 위한 빨간책>. 그 '불온한' 책이 최근 한국에서 출간되었다. 책을 기구한 운명으로 내몬 유럽 국가들의 사례를 읽다 보니 살짝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어떤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이 웨이'를 외치는 우리 정부와 교육 당국이 콧방귀를 뀌며 무시하기 쉽겠지만 말이다.

'모든 어른은 종이호랑이다.'

깊이 공감 가는 구절을 책머리에 있는 원저자 서문에서 만났다. 올해 46살이니 우리 사회의 관습적(?)인 나이로 보아 '어른'으로 볼 수 있는 나로선, 옮긴이(목수정 소설가)가 날카롭게 지적한 바 그대로 "무력하게 노예가 되어 버린 어른은 너희(기자 주-학생들)를 노예로 만들려고 하"(10쪽)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글쓴이들이 전달하려고 하는 핵심 메시지는 "모든 것이 꼭 지금처럼 돌아가야 할 필요는 없다"(15쪽)는 것. 이를 위해 교사, 학생, 가르침과 배움, 학교 시스템 들에 얽힌 '숨겨진 진실'을 차례로 밝힌다. 가령 대다수가 종이호랑이에 불과한 교사들을 글쓴이들이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보자.

'교사는 너희가 앞으로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들을 가르쳐 주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사람들이지. 그러나 많은 교사가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는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야. 그들이 아는 모든 것은 책에서 배운 것들이며, 그러한 교과서적 지식들을 우리에게 전달하려고 하는 거지. 많은 교사가 일생 동안 한 일이라곤, 학교에 들락거린 것뿐이니까. 처음에는 너희처럼 학생으로, 그다음엔 대학생으로 학교를 드나들었을 테고, 그러고 나선 교사가 되어 학교를 드나들었겠지. 교사 대부분은 바로 이러한 한정된 삶의 반경 안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학교를 둘러싼 학교 바깥세상의 구체적 실체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20쪽)

"성적은 사기다"(137쪽)라는 제목의 장에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속일 수 있는 성적 시스템의 민낯을 다음과 같이 드러냈다.

'공부의 결과는 그 공부를 통해서 우리가 깨우친 것, 알게 된 것이야. 그것을 통해 우리가 얻어 낸 성적이 아니란 말이지. 성적을 알게 되는 것이 그 사람에 대하여 뭔가를 알게 된다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게 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속이는 것이 돼. 학교에서 공부한 결과가 점수로 평가될 수 있다고 상상한다면, 우리는 또한 자기 자신도 속이게 되는 거지.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들을 이해하려 하는 대신, 그들의 성적을 가지고 그들을 판단하려 든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게 되는 거야.' (138쪽)

책이 10대 학생과 학교, 교사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다고 오해할 수 있겠다. 그런데 글쓴이들이 궁극적으로 비판하는 대상은 불의한 세상을 만들어 놓고도 질서와 도덕을 들먹이며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위선적인 어른들과 그들이 이끌어가는 사회 시스템이다. 글쓴이들은 세상에 진정한 변화가 필요할 때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라고 말하는 어른들이 반드시 아이들의 뒤통수를 크게 때릴 것이라고 말한다.

'별다른 힘도 없고, 시간이 흐르면서 생겨나게 마련인 그 어떤 종류의 변화에도 두려움을 가지며, 그 어떤 새로운 시작도 거부하는 사람들을 향해 싸워야 할 때가 있는 법야. 이 한 가지를 잘 이해하기 바라. '교사들과 학생들은 결국 같은 편'이란다. 교사들은 그들에게 권력을 행사하고, 그들의 존재를 결정하는 이들에 대항하는 끝없는 투쟁의 바리케이드에서 학생들과 본질적으로 같은 편에 서 있단다.'(156쪽)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세상을 배우고 알라고 자주 이야기하는 편이다. 불의한 사회 구조에 맞서고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찬 어른들에게 기죽지 말고 당당히 따지라고 말한다. 나는 세상을 얼마나 알(려 하)고 있는가. 불의에 맞서는 행동을 실천한 적이 얼마나 있나. 내내 부끄러이 낯을 붉혀가며 책장을 넘겼다.

학생이라는 '슬픈' 이름을 달고 살아가는 이 땅의 10대, 그들을 매일 만나는 교사와 학부모 모두가 서로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변화와 진보를 위한 실천과 행동은 그때부터 나온다.

덧붙이는 글 | - <10대를 위한 빨간책>(보 단 안데르센‧소렌 한센‧제스퍼 젠센 지음 / 레디앙 / 2016.4.25. / 159쪽 / 1,1000원)

- 이와 비슷한 글이 정은균 시민기자의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렸습니다.



10대를 위한 빨간책

소렌 한센 외 지음, 목수정 옮김, 공현 해설, 레디앙(2016)


태그:#<10대를 위한 빨간책>, #레디앙, #목수정, #보 단 안데르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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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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