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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홈페이지가 해킹당한 사실에 분노한 훈센총리는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이 저지른 범죄라며 야당을 간접적으로 겨냥했다. 아래 사진은 지난 1997년 3월 야당집회 폭탄테러 사건 당시 모습.
▲ 국제해커그룹 어나니머스(Anonymous)에 의해 해킹된 훈센 총리의 페이스북 계정. 자신의 홈페이지가 해킹당한 사실에 분노한 훈센총리는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이 저지른 범죄라며 야당을 간접적으로 겨냥했다. 아래 사진은 지난 1997년 3월 야당집회 폭탄테러 사건 당시 모습.
ⓒ 국제해커그룹 어나니머스(Anonym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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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새벽(현지시각) 캄보디아 최장기 권력자 훈센 총리의 페이스북 계정이 해킹당했다. 범인은 세계적인 해커그룹 '어나니머스(Anonymous)'로 밝혀졌다.

현재 훈센 총리의 페이스북 계정은 정상복구된 상태다. 훈센 총리는 이날 오후 복구된 자신의 페이스북에 해킹 당한 사실을 알리는 글을 남겼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체면을 완전히 구기고 말았다.

독재자 페이스북 '비방 게시물'로 도배

다음날 영자 일간지 <캄보디아 데일리> 등 현지 언론들은 총리의 페이스북이 해킹 당한 소식을 일제히 전했다. 그의 계정은 자신의 치적을 실은 글과 사진 대신 총리를 비방하거나 비웃는 게시물로 도배됐다.

보도에 따르면 해킹된 총리의 페이스북에는 왕관을 쓴 훈센 총리 사진과 함께 '페이스북의 왕'(King of facebook)이라는 조롱섞인 표현이 들어갔다. 과거 제1 야당총재(CNRP) 삼 랭시와 페이스북 '좋아요' 경쟁을 벌인 것을 조롱하는 의미로 해석된다. (관련기사: "군인 동원해 '좋아요' 조작" 총리의 수상한 페이스북)

참고로 훈센 총리의 페이스북은 조작 논란에도 캄보디아 전체 가입수를 뛰어 넘는 410만 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캄보디아에서 '좋아요' 수로는 부동의 1위다.

그리고 해커들이 올린 사진을 클릭하면 또 다른 사진들이 슬라이드 방식으로 펼쳐진다. 그 안에는 훈센 총리 집권 하에 벌어진 주요 정치적 사건들이 총망라됐다.

지난 1997년 2월 폭탄 테러로 16명이 사망하는 등 난장판이 된 야당 집회 현장 사진과 2012년 환경운동가 춧 우띠 피살 당시 사진, 2013년 총선 부정선거 시비 관련 시위에서 노동자 4명이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 지난해 11월 국회의사당 앞에서 백색테러 당한 야당 국회의언 2명의 모습 등이 적나라하게 담겼다.

해킹된 자신의 페이스북을 보고 발끈한 훈센 총리는 계정이 복구되자마자 곧바로 반박글을 남겼다. 이번 해킹 사건은 단순 범죄가 아닌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들이 고의적으로 저지른 명백한 범죄 행위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하지만 그 반대세력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캄보디아에서는 지난해에도 공공기관 여러 곳이 해킹돼 경찰이 해커 5명을 체포했다. 이 중 2명은 정부 보안관리국에서 일한다는 조건으로 풀어줬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해커 용의자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현지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전문가의 인터뷰를 실은 현지 언론에 따르면 현재 훈센 총리 웹사이트 프로그램은 '줌리마'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 12월 이후 해킹을 막거나 추적하는 등 보안을 담당하는 소프트웨어 버전을 업그레이드하지 않았다.

견제 세력 없는 권력자는 폭주 중

지난 4월 30일 시하누크빌행 열차에 탄 채 손을 흔들어보이고 있는 캄보디아 최고권력자 훈센 총리. 그는 자신의 이름앞에 '섬다잇'이란 존칭을 반드시 사용하라고 현지 모든 언론사에 지시했다.
 지난 4월 30일 시하누크빌행 열차에 탄 채 손을 흔들어보이고 있는 캄보디아 최고권력자 훈센 총리. 그는 자신의 이름앞에 '섬다잇'이란 존칭을 반드시 사용하라고 현지 모든 언론사에 지시했다.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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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85년 집권한 이후 현재까지 독재 정권을 이어가고 있는 훈센 총리는 "75세까지 장기집권하겠다"고 호언장담한 바 있다. 최근에는 장기집권전략을 공고히 하려는 듯 야당에 대한 탄압 수위를 높여 '정도를 넘어섰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올해 일어난 사건들만 해도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이달 2일에는 불륜 스캔들에 연루된 야당 부총재 켐 소카(관련기사: 야당 부총재 불륜 스캔들, 가장 신난 사람은 독재자)를 옹호하기 위해 나선 저명한 현지 인권단체(ADHOC) 소속 전현직 인권운동가 5명이 이 사건에 연루된 여성을 회유하기 위해 금품을 건넸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현지에서는 총리 측이 이들에게 거짓 혐의를 덧씌워 탄압한다고 보고 있다. 이에 지난 13일 유엔 산하 인권관련 전문가들이 집단 성명을 내고, 여러 국제인권단체까지 나서 강력 반발하는 등 집단 항의에 나섰다. 하지만 훈센 총리의 행보는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거침이 없다.

심지어는 야당 지지자들과 인권운동가들이 구속된 활동가들의 석방을 촉구하기 위해 매주 월요일 항의의 의미로 검은 옷을 입고 거리에 나서겠다고 선언하자 월요일에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은 무조건 체포하겠다고 엄포까지 놓았다.

또한 정부 정책에 이의를 제기한 야당 국회의원들은 국회의원 불체포특권도 박탈당한 채 회기 중에 체포됐다. 이들은 현재 악명 높은 프레아쏘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캄보디아의 저명한 정치평론가이자 미래포럼 싱크탱크 대표인 오우 위락씨 역시도 훈센 총리가 쳐놓은 언론 탄압의 쇠사슬을 피해가지 못했다. 지난달 <라디오자유아시아>(RFA)와 한 인터뷰에서 야당 지도자의 스캔들이 "여당의 계산된 모략에 의한 정치적 도구로 사용됐다"고 주장했다가 결국 모함죄로 여당 측에 고소를 당한 데다 10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요구까지 받았다. 이런 가운데 지난 12일 법정 출두에 출두했다.

급기야 캄보디아 정부는 지난 13일에 앞으로 모든 신문과 TV, 라디오 방송사는 훈센 총리의 이름 앞에 반드시 공식 호칭인 '섬다잇'(Samdech)을 사용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섬다잇'은 캄보디아 국왕이 수여하는 일종의 작위로 '각하', '경'을 뜻한다. 만약 이를 어기면 오는 7월 중에 사업 허가를 취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심지어 한국 신라대학교에서 2010년 교육학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게 학력의 전부인 분라니 영부인에게는 '유명한 선임 학자'(Celebrated Senior Scholar)라는 극존칭을 이름 앞에  쓰라고 명령했다. 나아가 지역 라디오방송국에게는 이 경칭을 쓰지 않는 외국 방송사의 프로그램을 구매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대안 세력' 부재... 피해는 국민에게로

지난해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시위에 참가한 캄보디아 노동자의 모습.
 지난해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시위에 참가한 캄보디아 노동자의 모습.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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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훈센 총리의 장기집권을 위한 다양한 시도는 정도와 상식을 넘어서 국제사회로부터 조롱의 대상이 된 상태다. 이에 따른 국민들의 피로감도 극에 달하기는 마찬가지다. 어찌 보면 야당의 입장에선 이러한 상황이 호기다. 하지만 현지 정치평론가들은 야당이 이런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현지 신문에서는 야당의 소식을 찾아보기 힘들다. 야당의 존재감이 사라진 지 이미 오래이기 때문이다. 차가운 시선으로 야당을 바라보는 국민들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프놈펜왕립대학교 대학생은 "한때 나도 야당을 지지했지만 요즘 야당의 지지나 인기는 예전보다 훨씬 못하다"라며 "야당 총재가 독재정권에 맞서지 못하고 또다시 망명 생활을 하는 모습에 국민들은 또다시 실망했다, 누가 감히 정부 여당을 견제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현재 제1야당 총재 삼 랭시는 훈센 총리의 구속 협박을 못 이기고 프랑스로 망명을 택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상태다. 캄보디아 남아 있던 부총재마저 최근 불륜 스캔들로 완전히 정치적 입지를 잃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당장 야당을 이끌 차세대 지도자도 없는 상태다. 진보 성향의 젊은 지식인들마저 야당을 외면하는 분위기다. 

이렇듯 당장 상황을 반전 시킬 카드도 마땅히 없는 상황에서, 다가올 내년 지방선거는 물론이고 2018년 총선에서도 야당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란 전망이 벌써부터 쏟아져나오고 있다.


태그:#캄보디아, #훈센 총리, #SAMDECH, #삼 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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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캄보디아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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