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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14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열린 '5.14 예비군 및 병사 처우개선을 위한 대규모 집회' 참가자들이 든 피켓.
 2016년 5월 14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열린 '5.14 예비군 및 병사 처우개선을 위한 대규모 집회' 참가자들이 든 피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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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저녁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사 앞에서 전투복과 사복을 갖춰 입은 젊은 남성 무리가 피켓을 들었다. 집회의 공식 명칭은 '5.14 예비군 및 병사 처우개선을 위한 대규모 집회'. 방산 비리를 규탄하고 예비역 및 현역병의 처우를 개선하라는 목소리였다. 외견상 시민들이 어렵지 않게 동의할 만한 주장들이었다. 일부 시민들은 잠시 걸음을 멈취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환호와 박수로 화답하기도 했다.

오후 8~9시경 후반부 집회에 접어들고 날이 어두워지자 집회의 규모는 진행요원 20여 명, 참관자 30여 명 정도가 됐다. 젊은 남성들이 주를 이루었고, 자유발언도 이어졌다. 그런데 사실 이들의 상당수는 '일게이(일베 게시판 이용자)'들이었다.

자신을 수원에서 온 예비역이라 밝힌 한 30대 남성은 "일베라고 매도만 하는 현실이 답답하다. 정치적 견해를 떠나 방산비리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국가 존립의 최우선은 국방이다. '민주' '복지' 등이 식탁 위 반찬이라면 국방은 식탁의 존립 자체의 문제"라며 "남성들은 여자친구를 사귈 때 안보관을 보자"고 주장했다.

집회 진행자가 낭독한 연설문 역시 집회 전날 '손꾸락하나짜르라'라는 닉네임의 일게이가 일베 게시판에 올린 내용과 같았음에도 이들은 집회 내내 '일베'라는 말을 거의 거론하지 않았다. 일베라는 단어가 등장한 건 자유 발언이 거의 유일했다. 진행자는 수시로 집회 참가자들의 자유 발언이 집회 전체를 대변하지는 않는다며 선을 그었다.

[STEP 1] 사건의 발단은 두 갈래의 '분노'의 결집

지난 5월 11일 닉네임 '사랑의시'가 시위를 건의하며 올린 게시물은 일게이들 사이에서 '성지'로 불리고 있다.
 지난 5월 11일 닉네임 '사랑의시'가 시위를 건의하며 올린 게시물은 일게이들 사이에서 '성지'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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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국방부 고위 장교들이 군수물자를 빼돌려 10만 명의 국군이 굶어 죽은 '국민방위군 사건'이 있었다. 방산 비리는 그 이후에도 꾸준히 이어져 온 고질적 병폐다. 그런데 정부는 여전히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6월,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방위사업청) 개청 이후에는 생계형 비리가 많다"고 평해 논란이 일었다.

일베에 방산 비리 고발 게시물이 부쩍 올라온 것은 지난 4월 말 전후. 방산 비리는 그 액수가 수천억에서 조 단위를 오르내리는 민감한 문제이기에 일게이들의 분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분노가 행동으로' 이어지기 위한 명분이 차츰 쌓여갔다. 군 고위급 인사들의 방산 비리와 비교해 부실한 예비군 식단, 불합리한 예비군 훈련 강화, 현역 시절 겪은 열악한 처우에 관한 성토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지난 11일, '사랑의시'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일베 유저가 "진짜 시위 한번 하면 안 되냐?"는 글을 올렸다. 게시판에 두 갈래의 감정 흐름이 생겼다. 첫 번째는 무임승차자에 대한 분노다.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바른 마음>에서 '인간은 공동체의 존속을 위협하는 무임승차를 감지했을 때 분노를 느끼도록 진화했다'고 설명한다.

두 번째는 무시를 당했을 때 느끼는 분노다. 사회정치철학자 악셀 호네트는 <인정투쟁>에서 인간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으며 사회적으로 무시당했을 때 느끼는 분노는 종종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인정투쟁'의 원동력이 된다고 설명한다. '방산 비리+처우 개선' 조합은 일베조차 거리에 나오게 할 정도로 분노를 극대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일베가 '무임승차자'로 보는 대상은 방산 비리자들만은 아니다. '일베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없다'라는 말이 있듯 다양한 영역과 이슈에 관여한다. 일베가 그 최전선에서 수시로 마주하는 건 다름 아닌 '여성'이다. 일베의 여성 혐오는 일베가 자주 쓰는 '통수(뒤통수 친다)' '선동' 같은 말이 시사하듯, 인간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관련이 깊다.

사회를 진보시켜 더 나은 삶을 이룰 수 있다는 신뢰 자체가 부족한 일베의 꿈은 '신변의 안전보장'과 '평범하고 안정적인 가정' 수준으로 축소된다. 이때 국가와 여성만큼은 자신들을 '배반'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고(김학준, 2014), 방산 비리자들로 인해 국가 안보가 흔들리고 자신들이 받아야 할 '처우 개선(인정)'이 배반 당할 때 일베는 분노한다.

일베에게 '여성(→단체, 가족부)'은 '2년 동안 희생으로 지켜줬는데 보상에 반대만 하는 '이미지다. 일베가 여성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안보만 누리는(의무는 다하지 않고 권리만 누리는) 시장교란자'처럼 여길 때, 보상심리는 여성에 대한 분노로 변했다.

"여성은 국방에 관심도 없는데 군가산점제를 폐지한다"(아르**** 추천 277 반대 34)
"여성부 쳐들어가면 안 되나? 예비군복 입고 오른손에 빠따들고 여성부 앞에서 단체 시위 벌이면 XX들 XX떨릴텐데 왜 맨날 당하고만 사느냐"(무와****** 추천 242 반대 92)

[STEP 2] 일베의 응어리진 보상심리의 파편은 '45도'로 튀었다

대표 진행자가 낭독한 연설문을 워드클라우드 기법으로 핵심 키워드를 분석한 결과. '군가산점제'는 핵심이 아니었으며 통계적 기준을 넘지 못했다. 일게이들이 요구하는 핵심은 '인정'이었다.
 대표 진행자가 낭독한 연설문을 워드클라우드 기법으로 핵심 키워드를 분석한 결과. '군가산점제'는 핵심이 아니었으며 통계적 기준을 넘지 못했다. 일게이들이 요구하는 핵심은 '인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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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비해 의식적으로 선정적인 내용을 정제한 티가 났지만, 14일 집회에서도 일베의 여론이 그대로 드러났다. 워드클라우드 분석은 비슷한 의미의 키워드들을 카테고리별로 뭉쳐 빈도수를 바탕으로 글자의 크기를 상대화한다. 이를 통해 글의 주제와 구조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14일 집회 진행자의 연설문을 구해 분석을 시도했다. 이 연설문의 작성자 '손꾸락하나짜르라'가 올린 게시물에 따르면, 연설문은 "최대한 일게이들이 말하는(주장하는) 것을 다 간추려서 집어 넣었"다고 한다.

우선 클라우드의 블루 그룹(국가, 의례)은 일베가 수호하는 것들을 의미한다. 흥미롭게도 14일 집회에서 일게이들은 국민의례,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들에 대한 묵념, 애국가 제창 등 '국가' 혹은 국가를 위해 희생한 영혼들에게 바치는 '의례'부터 거행하며 시작했다.

각종 식전에 이런 의례를 하는 건 한국 시민으로서 낯선 풍경은 아니다. 하지만 국가에 항의하기 위해 모인 집회에서까지 절차 갖춘 애국심을 드러내는 건 얼핏 어색해 보이기도 한다. 사회심리학자 그린버그의 공포관리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심리는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이를 못 견뎌 하며 벗어나고자 자신을 집단(국가)의 문화 일부로 귀속시키려는 심리가 있다고 한다.

생존 불안을 느끼는 경쟁이 심한 사회일수록 더 만연한 심리 중 하나다. 의례와 같이 습관적으로 자신을 집단 문화에 귀속시키는 과정은 공포를 완화한다. '개인은 죽어도 개인이 헌신한 문화는 영원하리라'는 일종의 상징성을 획득하거나, 문화가 요구하는 기준과 자신의 삶을 일치시켜 자존감을 채우는 방식을 통해서다.

물론 이렇게 의존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일수록 기존 문화에 대단히 순응적이라, 한 국가가 다른 문화로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일베의 국가에 대한 분노 역시 결국 '애국심이 전제된 분노'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일베가 꿈꾸고 수호하려는 국가의 이상적인 문화는 어떤 모습일까.

이 모습은 그린 그룹(군인, 희생, 인정)을 통해 일종의 군사 문화로 구체화된다. 우선 일베에게 한국의 문화 시장에서 바람직한 화폐는 '희생'이어야 한다. '국가'를 수호하는 '군인'이라는 정체성을 지닌 자신들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 화폐를 꼬박꼬박 지불한 1등 시민들이다.

힘든 훈련을 견뎌냈고 부상 혹은 전사를 당하는 경우도 있으며, 심지어 전역 후에도 예비군 훈련에 꼬박꼬박 나가야 한다. 또한 '희생'을 지불했다면 그것이 처우 개선, 위로, 보상, 권리 보장, 인식 개선 등 무엇이라 불리던 마땅히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일베에게 돌아오는 건 방산 비리 등으로 추락한 국방력과 신뢰도를 예비군 훈련 강화로 메꾸려는 괘씸한 정책, 기본적 수준에도 못 미치는 '식사'와 교통비라는 게 일베의 현실 인식이다. 흥미롭게도 '군가산점제' 등의 요구는 14일 집회에서 일베가 제시한 첫 번째 요구 사항이기는 했지만 통계적 기준을 넘지 못해 단독 키워드를 구성하지 못했다. 따라서 '인정' 카테고리로 재분류됐다.

'식사' 역시 부당한 처우의 사례로 수차례 언급돼 통계적 기준은 넘었지만 '인정'에 비해 부차적이었다. 결국 일베가 내는 목소리의 본질은 어떤 식이든 자신들의 '희생'을 '인정'하라는 강력한 보상심리에 훨씬 가깝다. 하지만 일베의 꿈은 곧 시장교란자들의 습격을 받는다. 이들이 꿈꾸고 수호하려는 '국가'는 '군인'으로서 '희생'한 자신들이 마땅한 '인정'을 받고 또 이런 질서가 튼튼하고 안정적인 '안보'를 통해 존속되는 체제다.

하지만 '안보'와 '인정'을 위해 필요한 '돈'이 '비리'의 습격을 받아 온전히 '군대'와 '군인'들에게 흘러들어 가지 못하면서, '군대'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안보'를 위한 국방력이 떨어진다. 일련의 배반들은 일베의 분노가 결집을 이루고 방산 비리자들의 단죄를 요구하는 집회가 등장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다.

이처럼 일베의 분노는 여전히 애국심과 군사 문화에 의존하지 않고는 표출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다만 도덕적 가치를 회복하고자 수직으로(국가 권력을 향하여) 분출됐다는 건 일베에게 그동안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모습이기에 일부 의의가 있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초점이 흐려지는 누출 현상이 생긴다는 점. 보상심리 에너지 일부는 수직으로 똑바로 분출되지 못하고 '여성'에게 우회하며 45도로 기운다. 몇몇 일게이들의 돌발 발언뿐 아니라 연설문 "남성은 2년이란 시간을 '여성'에 비해 잃었음에도 적절한 보상이 없다"며 '군가산점제'와 '경력 인정'을 요구한다. 또한 임신과 출산으로 군사훈련이 거의 힘들다던 '여성'의 여군장교 배출이 늘어나는 점과 예비군에 가지 않는 점을 지적한다.

이 논리가 성립하려면 '여성'은 '희생'이라는 화폐 지불의 경제 질서를 받아들이지 않는 무임승차자라는 숨은 전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여성은 과연 무임승차자일까.

[STEP 3] 공동체는 '군사 문화' 외에도 다양한 문화로 실현될 수 있다

2016년 5월 14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열린 '5.14 예비군 및 병사 처우개선을 위한 대규모 집회'에 참석한 일게이들.
 2016년 5월 14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열린 '5.14 예비군 및 병사 처우개선을 위한 대규모 집회'에 참석한 일게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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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일베가 '군사 문화'를 마치 자명한 진리처럼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한다. "국가 존립의 최우선은 국방이다. '민주' '복지' 등이 식탁 위 반찬이라면 국방은 식탁의 존립 자체의 문제"라는 발언은 해당 남성 개인만의 주장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일베가 수호하는 희생의 경제 질서를 끝까지 밀어붙인 주장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안보가 사물들이 존립할 수 있도록 떠받드는 식탁'이라는 비유를 받아들인다면, 반대로 '민주' '복지'와 같이 먹을거리가 없는 식탁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공동체는 '군사 문화' 자체의 존립만을 위한 것이 아니며 다양한 문화로 실현된다.

'민주주의' '복지'는 단순히 식탁 위에 올라오는 반찬 몇 개 정도의 문제가 아닌 공동체의 정체성을 이루는 중요한 본령들이다. 민주주의는 '내가 틀릴 수도 있다'라는 전제로부터 출발해 다양한 문화와 개인들을 포용하는 기본적 가치이고, 복지는 시민들의 삶의 대부분을 이루는 평시에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국방과도 상호보완적이다.

민주, 인권, 자유, 평등, 복지, 안보 등 공동체를 구성하는 다양한 가치들이 존재하고 시민들이 어떤 것을 향유하고 수호하느냐는 각자가 처한 상황과 선택에 달렸다. 일반적으로 한국 남성들은 선택보다는 안보 상황에 따라 군에 '징집'된다. 일베가 이 상황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2년이라는 시간을 희생했다"고 최고의 의미를 부여하며 전역 후에까지 군사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생존 불안이 팽배한 사회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보상심리 혹은 귀속의식 무엇의 발로든 여성을 비교 대상으로 끌어들여 국방부가 아닌 여성에게 '희생'의 대가를 청구할 정당성은 없다. 일베가 14일 집회에서 요구한 조건은 '예비군·현역 병사 처우 개선' '상해·상이 군경 위로 및 보상 확대' '국방비리 척결' 말고도 '군가산점제 부활과 경력인정'이 섞여 있다. 여성의 사회진출을 제도적으로 '희생'시키라는 요구다. 희생을 희생으로 볼 수 있는 기본적 근거가 '고통'이라면 여성도 나름의 고통이 있다.

단지 그 고통은 일베가 근면성의 지표처럼 생각하는 군사 문화 안에서의 (주로 '삽질'과 같은 신체적 형태로 가시화되는) 고통과는 '다를 뿐'이다. 일베는 측정할 수 없는 것을 측정하고 서열 짓는다. 고통이란 한 개인이 특정한 현상에 반응하는 지극히 주관적인 상태다(오찬호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참조). 고통을 근거로 어떤 제도를 만들자고 주장할 때는 타인의 고통과 사회적 맥락들을 신중하고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일베의 주장이 '노이즈'에 그치는 이유는 그런 맥락들을 경시하고 배제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여성은 '생애 주기 전반에 걸쳐' 할부로 고통받는다. 우선 시민들이 인생 대부분을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경제 영역에서, 여성은 낮은 고용·높은 저임금 노동자 비율·임금 격차·경력단절·유리천장·노인 빈곤(남녀 임금 격차, 가장 큰 이유는 '그냥')을 겪는다.

여기에 임신과 출산, 남성보다 많은 가사노동시간 등이 더해지기도 한다. 호네트는 <인정투쟁>에서 사회적 인정을 동등성 인정, 특수성 인정으로 구분한다. 일베는 자신들의 특수성 인정을 최우선시하며 여성의 특수성을 '무시'한 채, 군가산점제와 경력인정을 요구한다. 심지어 많은 남성이 군사 문화를 공유하는 데 반해, 여성의 문화는 남성보다 훨씬 단일하지 않다. 군사 문화식 '희생'을 화폐로 삼지 않는 문화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미국의 군가산점제와 경력인정처럼 '조직에 부합하는 능력'이 직장에서 우대조건이 되어야 할 이유도 없다. 미국에는 미국에 더 많이 필요한 능력이 있을 수 있고, 한국처럼 다양성이 부족한 경직된 사회에 우선적으로 살려야 할 가치는 (주로 '생수통 갈기'와 같은 신체적 형태로 가시화되는) '희생'이 아닐 수도 있다(에리크 쉬르데주 <한국인은 미쳤다!> 참조).

호네트는 특수성 인정에 우선하는 것은 '동등성 인정'이라고 설명한다. 타인과 내가 동등한 인격을 가진 존재, 즉 인간으로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인정이다. 한국 여성들은 특수성 무시뿐만 아니라 상시적인 동등성 무시에 처해 있다: 강력범죄, 데이트 폭력, 귀갓길 공포, 상시적 성적 대상화, (특히 일베가 가장 적극적인) 인터넷상의 여성혐오에 시달린다.

이런 '원 플러스 원' 차별을 깡그리 무시하고 (그마저 여성혐오의 맥락에서 가공되는) 군대, 더치페이, 꾸준하게 편집·확대 재생산되는 '○○녀' 시리즈 등 몇 가지 이슈를 근거로 여성을 무임승차자로 오인하고 일상적인 혐오부터 주고받는 일베가 인간다운 인정으로 보상받기란 힘들다.

그럼에도 14일 집회에서 기자 역시 예비역으로서 가장 고개를 끄덕일 만한 발언은 "군바리의 '바리'는 벌레라는 뜻이다. 이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해 군인들을 마땅히 사람으로 인정해야 한다" "병사 월급을 최저시급으로 올려라"라는 주장들이었다. 일게이들 역시 이제 그만 '일베충'이라는 허물을 벗고 '인간'으로 부활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 몇 가지 조건만 갖추는 용기를 내보자. 사회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국방부가 부담해야 할 보상을 엉뚱하게 여성에게 청구하고 그걸 안 준다고 무임승차자로 몰고 인격을 무시하지 말자. 여성도 여성 나름의 고통이 있다. 진정한 평등 사회로 나가려면 도덕적 분노는 남녀가 함께 연대하는 가운데 45도가 아닌 90도로 결집해야 한다. 일베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노력(희생)이 아니라 타인의 맥락을 고려하는 '상상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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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일베, #일게이, #예비군, #일베 시위, #일베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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