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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에는 부쩍 여러 제자에게 전화, 메일, 문자를 받았다. 한 제자 부부는 내가 사는 원주까지 일부러 찾아왔고, 또 한 제자는 여러 차례 끈질기게 서울로 초대하여 맛있는 저녁밥을 대접하기도 했다. 아마도 5월은 '감사의 달'로 스승의 날이 있었기 때문인가 보다. 아무튼 늙은 훈장은 그들이 그저 반갑고 고마울 따름이다.

그 가운데 가장 먼 곳에서 가장 수고를 많이 한 애국자 동포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그는 미국 시키고 일리노이 대학에서 어카운팅 디렉터(Director of Accounting and Administration)로 봉직하고 있는 이영(Young Lee, MBA)씨로 그는 여섯 자녀의 아버지다. - 기자 말

어느 날 산책 길에서 이영 부부
 어느 날 산책 길에서 이영 부부
ⓒ 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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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애국자 동포 이야기

요즘 젊은 세대들은 '3포'니, '5포'니, 심지어는 '7포'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가고 있다. 3포는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내 언저리에도 독신 남녀들이 부지기수다.

이런 세태에 그것도 미국에서 여섯 자녀를 낳아 기른 그의 얘기는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2004년 2월 7일 미국 워싱턴 근교 애난데일 카운티의 한 한식집에서 오찬을 곁들인 백범암살진상규명단 환영회가 있었다. 그날 권중희 선생과 나는 주빈으로 초대돼 미주 동포들과 이런저런 환담을 나누는 가운데, 이민 1세대들은 초창기 소수민족의 설움을 토로했다. 그러자 권중희 선생은 답사 겸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재미동포들이 각 가정마다 자녀를 10명 이상 낳아 기르면 100년 후에는 미주에서 한국계 인구가 가장 많아 대통령까지도 배출할 수 있을 겁니다."

이 말에 폭소와 박수가 터졌다. 하지만 그날 참석한 동포들은 요즘 그렇게 자녀를 낳는 젊은이가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구미 선진국을 비롯한 이른바 국민 소득이 높은 나라일수록 출산율은 낮아지고 있는 반면, 저소득 국가는 출산율이 여전히 높은 모양이다. 그래서 이즈음 우리나라는 자녀를 많이 둔 이가 새로운 애국자로 존경과 각광을 받고 있는 세태다.

시카고에서 온 메일

이영씨는 고교시절부터 매우 어렵게 공부했고, 한국에서 대학 및 미국 이민 생활도 엄청 힘들었지만, 독실한 신앙심으로 자신의 운명을 잘 극복하며 화목한 가정을 이뤘다. 5년 전 그가 나에게 보낸 편지에는 딸 다섯, 아내, 그리고 장모님 등 일곱 여자와 한 아들을 둔 분대장이라는 얘기와 네 명의 대학생 학부모라는 얘기를 듣고, 그 수고로움에 감탄과 존경심을 보낸 바가 있었다(관련 기사 : 재미동포가 보낸 두 통의 편지).
   
"선생님, 이틀 전 아내와 산책 길에 이양하의 <신록예찬>을 떠올리며, 선생님 이야기를 했습니다. 고1때 <신록예찬>을 배우면서 그 배경인 연대 뒷동산에 가서 야외수업을 했던 기억을 하며, 4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그 시절을 아름답게 추억하고 있습니다. … 멀리서나마 건강하시길 기도드립니다. 2016. 5. 14. 시카고에서 이영 올림."

"안부 인사 고맙네. 시간 나는 대로 자네 가족 소개(근황) 좀 자세히 들려주시게. 특히 여섯 왕자와 공주 이야기…. 2016. 5. 16. 고국 원주에서 박도 올림."

"선생님, 애들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사연을 말씀 드리기가 힘들 것 같네요. 첫째 딸은 노스웨스튼 대학 졸업하고 독일(한국인 이세)에서 자란 심장내과의사와 결혼해서 쾰른에 살고 있고, 9개월 된 아들이 있습니다. 딸애는 독일 쾰른대학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습니다. 둘째딸은 노스웨스튼 대학 졸업해서 샌프란시스코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습니다. 셋째 딸은 일리노이 어바나 샴페인대학 졸업하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습니다. 넷째 딸은 노스웨스튼 대학 3학년입니다. 다섯째 아들은 올해 노스웨스튼 대학에 들어갑니다. 여섯째 딸은 현재 고등학교 3학년(한국으론 고등학교 2학년)입니다.

아내는 박사과정을 끝내고 제가 일하는 일리노이 주립대학에서 간호학 교수입니다. 아내는 특히 선생님 팬입니다. 몇 년 전에 <시카고 중앙일보>에 2년 정도 기고했던 글 가운데 몇 개 첨부파일로 보냅니다. 하나님께서 선생님의 건강과 영감(Inspiration)을 넘치게 주시옵기를 기도합니다. 2016. 5. 시카고에서 Young Lee, MBA."

첨부파일에는 12편의 자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 가운데 먼저 '아내와 막내'라는 그의 글을 소개한다.

어느 날 6자녀와 함께(이즈음에는 뿔뿔이 흩어져 6자녀가 함께 모이는 날이 드물다고 10여 년 전 사진을 보내왔다).
 어느 날 6자녀와 함께(이즈음에는 뿔뿔이 흩어져 6자녀가 함께 모이는 날이 드물다고 10여 년 전 사진을 보내왔다).
ⓒ 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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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막내

나는 목사님의 소개로 아름다운 아내를 만났다. 내가 아내를 통해 알게 된 것 가운데 하나는 당신 인생에 아버지가 큰 문제라는 점이었다. 외도가 잦으셨던 장인어른 때문에 차마 말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집안에서 끊이질 않았고, 아내 마음에는 '남자는 믿기 어려운 존재'라는 생각이 깊이 자리 잡혀 있었다. 나는 결혼을 하면서 아내의 좋은 아버지가 되어 그 상처들을 치료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에 있는 오랜 상처는 쉽게 치료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나름대로 괜찮은 남편이라고 생각했지만, 결혼 생활 10년이 지나도 아내 내면의 상처는 그저 그대로인 것 같아서, 그때마다 나는 머리만 긁적거렸다. 

딸 넷을 얻은 다음에 다섯째로 아들을 낳고, 일단 애 낳는 것에 대해선 나나 아내나 일단락 짓기로 했다. 그런데 생각치도 않게 아내는 여섯째를 갖게 되었다. 아내는 더 낳을 자신도, 기를 자신도 없다고 했다. 그새 나이가 40이 되었고, 게다가 새로운 직장을 시작하게 되면서 엑스레이를 찍고, 풍진예방 주사를 맞는 통에, 뱃속에 있는 아이가 잘못될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어느 날 저녁을 먹은 뒤 아내는 "이 아이를 낳을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이런 일이 내 집에서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상상치 못했다. 그래서 나는 "그것에 찬성할 수 없소. 낙태는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지 않소?" 엉겁결에 튀어나온 나의 대답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아주 강경했다. 아내는 나에게 "아이와 아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여섯째를 가지면 아마도 자기는 죽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아내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며칠을 고민하며 이 문제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간음하다 현장에 잡힌 여자를 살려주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나는 무슨 일이 있든지, 아내를 사랑하고 보호하겠다고 결심했다. 책임은 내가 지리라. 그러나 마음이 너무 혼란스러워, 며칠 동안 사는 것이 사는 것 같지 않았다.

아내는 같은 교회에 다니는 가정의에게 부탁을 해서 산부인과 의사를 만날 수 있도록 스케줄을 잡았다. 공교롭게도 의사와 약속날짜가 교회에서 창세기 성경학교가 있는 날과 겹쳤고, 아내가 강사로 뽑히는 통에, 의사와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말았다.

며칠 후 찾아 갔더니, 예약 진료(referral)날짜가 지나서 더 이상 효력이 없으니 새것을 다시 가져 오라고 했다. 아내가 이 사실을 알려왔을 때, 나는 더 이상 이 일에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알아서 하라고 아내를 그저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나는 아내를 위해 어디까지든지 따라 가야할 것이었다. 

다른 산부인과 선생님을 만나 상의를 드렸다. 이분은 "엑스레이는 괜찮은데, 풍진 예방접종을 했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고 말씀했다. 그러나 본인은 낙태시술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두 번째 시도에 실패하고, 다시 소개를 받아 세 번째 장소를 가게 되었다.

그곳 병원에 도착하니, 마침 건물 밖에서, 사람들이 팻말을 들고 낙태반대 시위를 하는 중이었다. 내가 그 건물 앞에 차를 세우자, 한 자매가 우리에게 와서 믿음으로 애를 낳아야 한다고 설득을 했다. 아내의 표정을 보니, 그 설득이 효과가 없어보였다. 병원에 들어가니 의외로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고 놀랐다. "내가 어떻게 해서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가?" 나 자신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는 "나를 도와 달라"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울트라사운드(초음파검사)를 찍으러 들어갔는데, 아내가 곧 나오더니 집으로 가자고 했다. 뱃속의 아이가 벌써 13주가 지나서 하루에 끝내지를 못하고, 이틀이 걸리니 다시 약속을 해서 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는 분명히 12주째였다. 이때 집사람은 "하나님이 이 일을 원치 않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내는 내게 물었다.

"이 애가 장애가 있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기르시겠습니까?"
나는 아내에게 진지하게 대답했다.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려운 애를 기를 만한 자격이 있다고 여기셔서 이 일을 맡기시면, 나는 이 일을 하나님으로부터 감사히 받을 것이오."
그러면서 나는 그때 아이의 이름을 "Joanne(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라고 지을 것을 약속했고, 하나님을 예배했다. 

그날 이후 긴장된 몇 달이 지났다. 아내는 마침내 건강하고 예쁜 딸을 출산했다. 기적이었다. 나는 약속대로 이 아이 이름을, "Joanne" 이라고 지었다. 그러나 참 기적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이 사건들을 거치면서 아내의 오랜 마음속 상처들이 치료를 받은 것이었다. 아내는 자신을 끝까지 사랑하고 보호하는 남자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남자들이 다 똑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손으로 잡힐 것 같은 그런 행복을 찾게 되었다.

죠앤, 이 아이가 벌써 8살이 되었다.


태그:#자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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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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