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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술의 제주를 좋아하는 만큼, 제주의 술을 안타까워한다. 제주에는 술의 자산이 많지만, 그 자산을 자원으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 국립박물관의 초청으로 제주 술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제주에 사는 토박이들로부터 제주 술에 대한 몇 가지 새로운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대표적인 제주 술로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이 있다. 오메기술은 오메기떡으로 빚는다. 오메기떡은 요사이 제주를 대표하는 군것질거리가 됐지만, 예전에는 술떡이라 불렀다. 관광상품이 되면서 오메기떡 속에 팥소가 들어가고 겉에 팥고물이 묻어있는데, 본디 오메기떡은 그런 형태가 아니다. 오메기떡은 좁쌀을 맷돌에 갈아서 반죽해서 익힌 인절미 같은 떡이다. 이 오메기떡으로 오메기술을 만들었기에 술떡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제주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오메기술 제조장.
 제주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오메기술 제조장.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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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깅이술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참석한 70여 명 중에서 서너 명이 깅이술을 안다고 했다. 깅이는 게를 말하는 제주 방언이다. 예전에 바닷가의 게를 잡아 술 속에 넣어뒀다가 마셨다고 한다. 내가 듣기로는, 증류주에 깅이술을 넣어 깅이의 좋은 성분을 추출해 마셨다는 것이다.

게는 발이 많고 관절이 발달되어 있어서, 깅이술을 마시면 관절에 좋다는 속설이 전해온다. 그런데 한 중년여성은 새로운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가 바닷가에서 깅이를 잡아다가 절구에 빻아서 술덧에 직접 넣었다고 한다. 게즙을 적극적으로 술 빚는 원료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키토산이 풍부한 영덕대게를 가지고 술을 빚으려던 양조장도 있었으니, 깅이를 원료로 사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제주에는 마테우리들이 양하 잎에 싸서 보관해두고 마셨던 강술이 있고, 건강보조식품처럼 여겼던 오합주라는 술이 있다. 요사이는 올레길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쉰다리도 있다. 쉰다리는 지금은 쉰밥으로 빚지 않지만, 예전에는 쉰밥으로 빚어 하루이틀 발효시키고 끓여 소독한 뒤에 걸러 마셨다. 제주의 소박한 음식 문화의 연장선 위에 제주 술이 놓여 있다.

'술'이라는 단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서귀포시 남원읍에 있는 혼디주 제조장.
 서귀포시 남원읍에 있는 혼디주 제조장.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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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국립박물관에서 양조업을 하는 사람도 만날 수 있다. 그는 제주도 남원읍에서 출시되는 혼디주 제조장의 주주라고 했다. 그를 통해서 혼디주 대표와 연락할 수 있었고, 지난 5월 21일 혼디주 제조장까지 찾아가게 됐다.

혼디주란 무엇일까? 술 박람회장에서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 정체가 궁금했었다. 오디처럼 혼디라는 특별한 과일로 빚는 술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혼디주는 서귀포 감귤주명품화사업단과 연계된 농업회사법인 시트러스에서 만들고 있었다. 당연히 감귤로 만든 술이었다.

혼디주를 숙성시키는 지하 저장실.
 혼디주를 숙성시키는 지하 저장실.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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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디주의 뜻이 무엇입니까?" 시트러스 김공률 대표에게 물으니, 혼디는 제주 방언으로 '함께'라는 뜻이라고 했다. 즉 혼디주는 함께 마시는 술이라는 뜻이었다. 나는 혼디주 속에서 다시 한 번 제주술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문헌에 전해오는 전통술을 둘러보면 한자로 된 술 이름 투성이다. 조선 선비들이 부여했던 이름이니 그럴 터이다. 예컨대 석탄주는 애석할 석, 삼킨 탄을 써서 삼키기도 아까운 술이라는 뜻이다.

한자어로 돼 있다 보니 현대에 와서는 그 뜻이 온전히 전달되기 어렵다. 둘러보면 막걸리·동동주 말고는 우리말로 된 술 이름은 찾기 쉽지 않다. 그런데 제주도에 오면 우리말 술 이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오메기떡으로 빚는 오메기술, 소주고리로 내리는 고소리술, 쉰밥으로 빚는 쉰다리, 게를 짓이겨 빚는 깅이술, 이 모두 우리말로 돼 있다. 사실 '술'이라는 단어가 와인(wine)이나 비어(beer)나 사케(さけ), 지우(酒)와 나란히 놓아둘 만한 가치와 무게를 지닌 멋진 말이다.

혼디주 성공의 길... '함께'에 있다

감귤즙으로 빚은 혼디주의 색깔.
 감귤즙으로 빚은 혼디주의 색깔.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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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감귤 농부들이 빚은 술 이름이 혼디주라니…. 그것만으로도 술 이야기를 풀어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트러스 김 대표의 안내로 양조장을 둘러봤다. 제조장은 농림축산식품부의 향토산업육성사업으로 2013년부터 3년간 총사업비 30억 원이 투자돼 건립됐다. 1차 산업인 감귤을 6차 융복합산업(1차 농업, 2차 제조업, 3차 서비스업을 합한 것)으로 확장해 감귤을 이용한 술 개발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는 사업이라고 한다.

첫 번째 제조 공정은 감귤의 껍질을 벗기고 착즙하는 원료 처리장에서 이뤄진다. 이때 쓰이는 감귤은 남원읍 신례리의 130여 농가에서 공급한다. 그 다음은 착즙한 감귤즙에 효모를 넣어 발효시키고, 지하 저장고에서 부드럽게 숙성시킨 뒤에 알코올 도수 12도에 맞춰 제품화한다. 증류기 시설도 갖추고 있어서 조만간 감귤증류주도 출시할 계획이다. 술병도 직접 디자인했는데, 병의 몸통에 새겨진 곡선은 한라산 백록담의 능선이라고 한다.

상품화된 혼디주.
 상품화된 혼디주.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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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장은 개인 사업체로 창업되고 유지되는 게 일반적인 경향인데, 혼디주 제조장은 드물게 공동체가 만든 공간이다. 모두 함께 가자는 뜻으로 혼디주라는 이름을 붙였을 텐데, 참여한 농부들이 함께 홍보하고 제주 안에서 함께 소비할 때 성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술에서 신맛, 시트러스한 맛은 오래도록 금기였지만, 현대의 술에서는 신맛이 개성있고 특별한 영역으로 분류된다. 신 감귤로 무슨 술을 만드냐는 사람도 있지만, 지역 특산물로 술을 빚는 건 이제 세계적인 경향이 됐다. 정감있는 제주 사투리를 끌어들인 혼디주가 제주 감귤의 위상을 높일 수 있기를 바란다.


태그:#제주도, #술, #혼디주, #감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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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평론가, 여행작가. 술을 통해서 문화와 역사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술문화연구소 소장이며 막걸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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