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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하루가 반복된다. 낮밤을 바꾸기 위해 체력 관리에 힘쓰고 있다. 육체노동의 고됨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한다. 노동을 해보지 않으면 느껴보지 못했을 감정이다. 일하는 장소에서 집이 멀다보니 출퇴근에 1시간 이상을 쓰게 된다. 시간이 아깝지만 당장은 어쩔 수 없다. 청소일에 사용할 중고차를 고르는 작업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당장은 돈과 시간이 없다. 확인만 하고 겨우겨우 할 뿐이다.

이런 시간 속에서 보호받음의 중요성을 깨달아간다. 이런 거다. 낮밤을 바꿔 일하는 것의 고됨. 그것이 이뤄질 때 돌아오는 보상. 휴일이 지정돼야 하는 이유. 법의 테두리는 이래서 소중하다. 낮밤을 바꾸면 그만큼 돈을 더 줘야 한다. 휴일 없이 일을 시킬 수 없게 해야 한다. 한국 노동자 상당수는 그나마 이런 법의 테두리에서 살 수 있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알고 시작한 일이다. 단기간의 목표가 없었다면 몇 번이고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난 목표가 있는 사람이 좋아."

사장은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가 나를 뽑은 이유도 목표 때문이라고 했다. 그만큼 이 청소일은 힘들다.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다.

길바닥에서 모욕당하다

나는 인종차별을 당했다. 길거리에서.
 나는 인종차별을 당했다. 길거리에서.
ⓒ 플리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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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눈을 뜬다. 일을 나간다. 막차를 타고 간 윈야드. 그런데 기다려야 할 차가 없다. 전화를 건다.

"미안. 조금만 기다릴래? 일이 안 끝나서."

졸린 눈을 비비고 커피를 마시러 갔다. 그때 후줄근한 옷을 입은 오지인(호주 현지인) 두 명이 다가온다. 그들에게서 악취가 났다. 홈리스인 듯했다.

윈야드역을 비롯해 시티 안에는 홈리스들이 있다. 구걸을 하거나 욕설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피해다닌다. 윈야드역 앞은 그런 홈리스들이 자주 모인다. 버스정류장이 많아 잘만한 벤치가 많다. 그들은 저녁이 되면 그곳에서 잠을 청한다. 여느 때처럼 지나가나 싶었는데 그들의 입에서 욕이 나왔다.

"옐로 몽키."

슬쩍 쳐다본다. 함부로 덤비지 않는다. 그래도 그들의 눈빛에선 경멸이 느껴진다. 재빠르게 자리를 피한다.

노란 원숭이. 동양인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특히 중국인에 대한 그들의 적개심은 대단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들이 홈리스였다는 점. 그들은 함부로 사건을 벌이지는 않는다. 뒤늦게 온 사장에게 말했다.

"그런 애들 있어. 너무 신경쓰지마."

찝찝한 기분이었지만 넘어가기로 한다. 그래도 무섭다. 오지인이 날 해코지를 했다면? 가뜩이나 타국에서 분란은 여러모로 불리하다.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니. 인종차별은 남녀를 구분하지 않는다. 다시 며칠이 지났다. 전화가 온다.

"오늘은 다른 사람이 태우러 갈 거야."

안경 벗기려고 하고 사진 찍고... 자기들끼리 깔깔

나는 호주 시드니의 밤거리가 무서워졌다.
 나는 호주 시드니의 밤거리가 무서워졌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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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전에 받은 전화. 윈야드역에서 다시 기다려야 한다. 문득 불안해졌다. 시티의 밤거리는 동양인에게 그리 친절한 편이 아니다. 가끔 술에 취한 오지인들을 보게 되는데 해코지하지 않을까 무섭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다시 버스를 탄다. 역시. 날 태우러 오기로 한 차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는 5분이면 도착한다고 잠시 기다려 달란다. 윈야드역 앞에는 차이나 은행이 있다. 이곳 앞 도로는 주차가 가능하다. 그곳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한 뒤 무작정 그곳 앞을 배회한다. 그때 누군가가 다가와 안경을 벗기려고 했다. 오지인 여성들이었다.

4~5명이 되는 사람들이 내 안경을 벗기려고 하고 사진을 찍었다. 손목을 잡고 들어올리려 했지만 역부족. 그들은 자기들끼리 웃으며 "차이니즈!"를 외쳤다. 한 여자는 기자와 사진을 찍겠다며 카메라를 들이댄다. 뭐라뭐라 단어를 이야기하면 자기들끼리 깔깔거린다.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를 쳐다보는 느낌이랄까. 재빨리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들은 사라지는 나를 보며 뭔가 크게 소리쳤다.

상황 파악이 잘 되지 않았다. 그때 날 데리러 차가 도착했다. 차에 탑승한 뒤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인종차별한 거야. 중국인인줄 알았나 보네."

시티의 밤거리는 위험하다고 그가 말했다. 그나마 크게 해코지당하지 않는게 다행이라나.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

"호주 사람들 친절해. 다 그런 건 아냐."

인종차별을 겪었다는 얘기를 들은 친구의 반응이다. 그는 모든 호주인들이 그렇게 인종차별을 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다. 하지만 호주인들 성정이 나쁜 건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도 먼저 당한 두 번의 인종차별은 내겐 큰 충격이다. 언제라도 공격당할 수 있다는 점. 그건 지독한 두려움이다.

이날 이후 나는 윈야드역에서 대기하는 일이 가장 무서워졌다. 되도록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피해다닌다. 오지인이 다가오면 되도록 피한다. 언제 또다시 같은 일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일하러 가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 그리 유쾌하지 않다. 중고차를 얼른 구입해야겠다. 시드니의 밤거리는 유쾌하지 않다.

덧붙이는 글 | 스물일곱.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왔습니다. 앞으로 호주에서 지내며 겪는 일들을 연재식으로 풀어내려 합니다. 좀 더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풀어내고 싶습니다.



태그:#호주, #시드니, #라시즘, #두려움, #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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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전역한 따끈따끈한 언론고시생입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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