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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역 1번 출구에서 1분 거리에 있는 마을카페 '봄봄'은 이제 3년 차에 접어든 마을카페다. 카페 '봄봄'의 회원인 기자가 3년 동안 망하지 않고 꿋꿋이 버텨 마을에 뿌리내린 카페 봄봄의 마을살이 과정을 소개하려고 한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 기자 말

카페 봄봄 매니저들은 카페 공사에 앞서 방치돼 있던 건물 앞 화단을 골목텃밭으로 만드는 일을 했다. 텃밭을 만들고부터 마을 주민들과 말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카페 봄봄 매니저들은 카페 공사에 앞서 방치돼 있던 건물 앞 화단을 골목텃밭으로 만드는 일을 했다. 텃밭을 만들고부터 마을 주민들과 말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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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카페 봄봄은 인테리어 공사보다 앞서 한 일이 있다. 바로 텃밭을 꾸미는 일이었다. 봄봄이 있는 건물 입구에는 사철나무로 둘러싸인 한 평 남짓한 작은 화단이 있었다. 말이 화단이지 꽃은 하나도 없이 흙으로만 덮인 공간이었다.

봄봄의 독수리 5인방 매니저들은 화단이 골목에서 어떤 역할을 해내리라 생각했다. 순전히 '감'이었다. 용한 점쟁이의 '촉'처럼 그 직감은 맞아떨어졌다.

텃밭으로 골목과 통하다

먼저 같은 건물에 살면서도 전화로만 통화하던 건물주를 직접 만났다. 매니저 용용이 화단을 텃밭으로 만들고 싶다고 연락하자 건물주는 단번에 쫓아내려왔다.

"그나마 키 큰 나무들로 막아놔서 그 땅이 살아있는 건데 텃밭 한다고 울타리를 걷어냈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이 쓰레기라도 버리면 어떻게요? 안 됩니다."
"걱정 마세요. 관리는 저희가 책임지겠습니다. 정말 예쁘고 풍성한 텃밭으로 꾸며볼게요."

매니저들이 워낙 강하게 나오자 건물주도 반신반의하면서 승낙을 하고야 말았다. 곧이어 화단을 텃밭으로 변신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나무를 옮기고 흙을 뒤집었다. 이랑을 만들고 거름도 뿌렸다. 근처 길거리 상인에게서 상추와 깻잎, 방울토마토, 가지 모종도 사와서 심었다.

봄봄 텃밭은 매니저들과 마을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를 연결하는 효자노릇을 했다.
 봄봄 텃밭은 매니저들과 마을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를 연결하는 효자노릇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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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봄 매니저들은 버려진 변기, 기타 케이스 등 다양한 용기에 농사를 시도했다. 그로써 모든 것이 텃밭이 될 수 있다는 걸, 쓸모없다고 여기는 것에서도 생명이 움틀 수 있다는 걸, 무엇보다도 이 골목에서 카페 봄봄이 새롭게 태어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사진은 디자인 텃밭 아이디어를 얻었던 2013년 도시농업박람회 때 영등포 자활센터에서 전시한 다양.
 봄봄 매니저들은 버려진 변기, 기타 케이스 등 다양한 용기에 농사를 시도했다. 그로써 모든 것이 텃밭이 될 수 있다는 걸, 쓸모없다고 여기는 것에서도 생명이 움틀 수 있다는 걸, 무엇보다도 이 골목에서 카페 봄봄이 새롭게 태어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사진은 디자인 텃밭 아이디어를 얻었던 2013년 도시농업박람회 때 영등포 자활센터에서 전시한 다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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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을 만드니 자꾸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영등포역 뒷골목에 자리 잡은 지 3년이 지나도록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누구와 쉽게 말을 나눠본 적 없는 매니저들이었다. 그런데 화단에 이랑을 만들고부터는 골목사람들, 특히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늘이 많아서 텃밭이 잘 되겠나?"
"모종이 시들시들한데 물 좀 많이 줘야겠다."
"방울토마토는 그렇게 촘촘하게 심으면 안 돼. 가지치기도 잘해야 하고…."
"텃밭이 생겨서 골목이 밝아지는 것 같네. 수고들혀."
"우리집에 깻잎모종 많으니께 가져다가 심어."

평소 깐깐한 줄로만 알았던 앞 건물 주인도 우리가 텃밭을 만들자 수고한다면서 음료수를 사왔다. 텃밭은 골목사람들과 말을 섞는 기쁨을 선사했다. 마치 텃밭이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좀 더 눈에 띄라고 텃밭에 디자인도 입혔다. 전봇대에 3단 생수통 텃밭을 만들어서 걸었다. 버려진 변기와 여행용 가방도 텃밭으로 만들었다. 사람들이 지나가다가도 멈춰 섰다. 요상한 텃밭을 보면서 웃기도 하고 말도 건넸다.

봄봄 매니저들은 모든 것이 텃밭이 될 수 있다는 걸, 쓸모없다고 여기는 것에서도 생명이 움틀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이 골목에서 카페 봄봄이 새롭게 태어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가끔 전봇대에 걸어둔 생수통 텃밭이 사라지기도 했다. 텃밭에 심은 모종이 파헤쳐진 일도 있다. 그렇다고 '텃밭에 손대지 마시오'라는 팻말은 절대로 쓰고 싶지 않았다. 서로 마음으로 나눈 약속을 매니저들은 끝까지 지켜냈다. 사라진 것보다 더 많은 걸 텃밭이 주었기 때문이다. 바로 인연이란 소중한 선물이다.

텃밭을 만들고 나서 매니저들은 마을교사가 됐다. 동네 청소년들과 함께 모종을 심었다. 천연비료, 천연농약도 만들었다. 아이들과 같이 생수통 텃밭에 그림을 그리면서 아이들의 고민과 꿈도 알아갔다. 그렇게 텃밭은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골목사람들을 이어줬다. 봄봄텃밭은 골목사람들에게 작은 고향이 되어갔다.

사무실 벽을 허물자 카페가 되다

골목텃밭에서 익어가는 농삿물들. 이 친환경 야채들은 카페 봄봄 백반 음식과 술 안주의 재료로 쓰였다.
 골목텃밭에서 익어가는 농삿물들. 이 친환경 야채들은 카페 봄봄 백반 음식과 술 안주의 재료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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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텃밭을 꾸미는 동안 카페 안은 전쟁 중이었다. 처음은 쓰레기와의 전쟁이었다. 사무실이었던 공간을 카페로 바꾸려고 하니 버려야할 것투성이였다. 부셔야할 것도 많았다. 60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오래된 집기들과 벽을 부순 폐기물들을 다 끄집어내니 2.5톤 트럭 하나를 채우고도 넘쳤다.  

인테리어 전쟁도 매니저들을 괴롭혔다. 설계도만 서너 번 갈아엎었다. '세상을 바꾸는 노동과 마을의 합체, 노동자마을복합문화공간갤러리북카페 봄봄'이라는 긴 콘셉트에 맞게 카페에서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다.

그런데 공간은 한정돼 있었다. 특히 이미 있던 서울노동광장 사무실 구조를 그대로 쓰려고 하니 부딪치는 부분이 많았다. 어떻게 해야 카페 같은 분위기를 낼 수 있을까를 궁리하느라 매니저들은 머리털이 빠질 지경이었다.

어느 날 한 광장 회원이 지나가다가 들렸다. 매니저들이 설계도를 붙들고 끙끙거리고 있자 그가 한 마디 했다.

"벽을 부수면 되잖아."

기존 사무실은 강의실과 사무공간, 세미나실, 부엌으로 나뉘어 있었다. 모두 가벽으로 막혀 있어서 어느 한 곳도 카페 공간으로 넓게 빼기 힘들었다. 구조 한계 앞에 좌절하고 있던 매니저들에게 그 회원은 발상의 전환을 일깨워준 게다. 사무공간과 부엌을 가로막고 있던 가벽을 깨버리라는…. 용용은 그 말 한 마디가 어떤 깨우침을 줬는지를 강조했다.

"우리는 이미 있던 걸 중심으로 조금씩 바꾸려고만 했거든요. 그렇게 했다면 공간을 제한적으로 쓰면서 하고 싶은 것도 제대로 못했을 거예요. '벽을 허물자'는 말은 갖고 있던 걸 움켜쥔 채 조금씩 바꾸려고만 했던 우리들의 소극적인 태도를 바꿔냈죠. 인테리어뿐 아니라 이후에 어떤 사업을 하던지 벽을 허물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회원의 말대로 벽을 허물자 뻥 뚫린 공간이 나타났다. "이렇게 넓은 공간을 우리가 쓰고 있었단 말이야?" 날마다 그곳으로 출근하던 매니저들도 깜짝 놀랐다. 흰 도화지를 앞에 놓고 무엇을 그릴지 고민에 빠진 사람처럼 매니저들은 다시 공간 구상에 빠져들었다.

인테리어 테마는 '쓰는 사람들이 편한 카페'

카페 봄봄은 인테리어 공사비를 최대한 아끼기 위해 매니저와 서울노동광장 회원들이 철거작업부터 페인팅까지 많은 일을 했다.
 카페 봄봄은 인테리어 공사비를 최대한 아끼기 위해 매니저와 서울노동광장 회원들이 철거작업부터 페인팅까지 많은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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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손이 깃들자 칙칙했던 계단에도 꽃이 피었다.
 사람의 손이 깃들자 칙칙했던 계단에도 꽃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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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의 핵심 테마는 '쓰는 사람들이 편한 카페'로 정했다. 매니저들이 계속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카페에서 작은 공연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
"그럼 무대가 필요하겠다. 저 창틀 밑 공간에 무대를 만들자."

나무 패널을 사다가 무대를 만들고 있는데 공연기획을 하는 지인이 공사현장에 응원차 들렸다.

"이 정도 무대에서는 공연하기 힘들어. 더 넓혀야지."

그의 말대로 패널을 더 붙여서 무대를 넓혔다. 그러자 앰프와 악기를 놓을 공간이 충분해졌다.

"사람들이 회의나 모임을 할 수 있는 세미나실도 있어야지."
"혹시 어린 아이를 데리고 오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까 세미나실 바닥에는 열선을 넣어서 따뜻하게 하자."

전기공사를 할 때 세미나실은 특별히 신경을 썼다.

"우리 사진이나 그림 전시도 하기로 했잖아. 전시를 어디에 할까?"
"양쪽 벽에 해야 하니까 벽은 하얗게 칠해야겠다. 전시 작품들이 돋보이도록 핀 조명도 달고…."
"부엌을 오픈형으로 해서 신뢰도도 높이고 매니저 앞 테이블을 바처럼 만드는 건 어때? 손님들하고 편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이렇게 해서 하얀 벽을 중심으로 나무 소재가 많이 들어간 인테리어가 탄생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요즘 '잘 나가는' 북유럽풍 인테리어라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칭찬도 많이 들었다. 이젠 "인테리어가 예쁘다"는 칭찬을 들을 때면 북유럽 인테리어라고 아는 체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노동자들이 몸과 마음, 돈까지 내서 탄생한 카페 봄봄 

카페 봄봄 인테리어 콘셉트는 '이용자들이 편한 카페'. 작은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면서도 공연자의 동선 등을 염두에 뒀다. 사진은 카페 봄봄에서 가수 이수진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카페 봄봄 인테리어 콘셉트는 '이용자들이 편한 카페'. 작은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면서도 공연자의 동선 등을 염두에 뒀다. 사진은 카페 봄봄에서 가수 이수진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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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카페를 만들기 위해 벽은 하얗게 칠하고 핀 조명을 달았다.
 갤러리 카페를 만들기 위해 벽은 하얗게 칠하고 핀 조명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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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정식 오픈 1주일 전의 모습. 카페 봄봄은 많이 빈 모습으로 출발했다. 누군가가 그 빈자리를 채워줄 거라는 강한 믿음을 안고서.
 2013년 7월 정식 오픈 1주일 전의 모습. 카페 봄봄은 많이 빈 모습으로 출발했다. 누군가가 그 빈자리를 채워줄 거라는 강한 믿음을 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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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자체가 도전이기도 했다. 빠듯한 예산에서 공사비용을 줄이는 길은 인건비를 줄이는 수밖에 없었다. 전문가에게 맡기긴 했지만 공사의 꽤 많은 부분을 매니저들과 광장 회원들이 직접 해냈다.

커다란 해머로 벽을 부수는 일부터 장판 깔기, 페인트칠, 전기 공사까지…. 노동부 공무원이다가 해고를 당한 매니저 공자는 "공사를 하면서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큰소리친다.

"전기공사할 때 전선을 까는데 그것도 쉽지가 않더라고요. 칼질을 세게 하면 전선이 갈라지고 그렇다고 약하게 하면 전선이 안 벗겨지고. 천장도 우리가 패널을 다 붙인 다음에 도배를 하고 전등을 단 거예요. 벽 페인트칠도 세 번씩 하고. 장판도 조각 맞추기 형식이어서 칸칸이 맞추면서 깔았죠."

구석에 있는 콘센트부터 화장실 타일벽까지 카페 봄봄은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닿은 끝에 새롭게 태어났다. 지하철과 철도 노동자부터 교사, 공무원, IT노동자까지 광장 회원들이 쉬는 날이면 와서 공사를 도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귀족 노동자'라고 자주 욕을 먹는 이들이 마을과 통하는 공공적인 일에 몸과 마음을 낸 것이다.

그와 함께 돈도 냈다. 광장 회원들은 인테리어 공사비에 형편이 되는 대로 각각 1만원부터 100만원까지를 보탰다. 그렇게 벽돌쌓기로 1800여만 원을 마련한 후 대출받은 1천만 원을 더해 공사는 물론 물품구입까지 해결했다.

보통 돈이 안 들어갔다는 공공카페들의 인테리어 공사비가 5천만 원이고 일반 카페들은 1억 넘게 쓴 곳도 많은 걸 보면 정말 저렴하게 공사를 한 셈이다. 매니저들은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생활용품 도매상가에 가서 직접 주방 식기들을 사면서 최대한 돈을 아끼기 위해 애썼다. 벽돌쌓기에 모인 노동자들의 땀을 허투루 쓸 수는 없었기에.

2013년 5월 중순 공사를 시작해 7월 10일 카페 봄봄이 정식으로 문을 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손을 보태고 또 보탰다. "공유공간을 만들자"고 하니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것들을 이렇게 공유해 왔다. 그러자 불가능해 보이던 것들이 하나씩 이루어졌다.

공사를 하면서 창고문을 페인트로 칠하고 그 위에 '미래로 가는 문'이라고 썼다. 매니저들은 카페 봄봄을 준비하면서 '미래로 가는 문'은 다른 누구도 아닌 마음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 열어낸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그 사람들과 함께할 카페 봄봄의 문도 미래를 향해 활짝 열렸다. 공사는 끝났지만 아직 많은 것이 빈 상태로. 빈 공간을 채워줄 누군가가 반드시 나타날 거라는 믿음과 함께.

[지난 기사]
② 카페 이름이 19글자? 무슨 뜻 담겨 있길래
① 춤, 사진, 영어... 이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영등포 카페

테이블 뒤 창고를 가린 문에 쓰인 '미래로 가는 문'이란 문구가 보인다. 그 말 따라서 카페 봄봄은 많은 '오래된 미래'들과 만나왔다.
 테이블 뒤 창고를 가린 문에 쓰인 '미래로 가는 문'이란 문구가 보인다. 그 말 따라서 카페 봄봄은 많은 '오래된 미래'들과 만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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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마을카페 봄봄, #공유공간,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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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기록자. 스키마언어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책을 읽고 글쓰는 법도 찾고 있다. 제21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기록문 부문 수상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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