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금 한국 기독교,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보수 개신교계의 경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혐오'입니다. 지난 11일 서울 덕수궁 앞 대한문 광장에선 보수 개신교계 주최로 '2016 서울광장 동성애 퀴어 축제 반대 국민 대회'(아래 퀴어축제 반대집회)가 열렸는데, 이 집회에서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집회 참가자들이 든 손팻말엔 이런 글귀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동성애 지구 종말"
"흡연은 폐암을, 음주는 간암을, 동성애는 에이즈를"
"동성애 조장, 에이즈 확산, 세금 폭탄"

보기만 해도 어처구니없고, 낯뜨거운 글귀였습니다. 그러나 집회 참가자들은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혐오를 당연시 여겼습니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여성분은 알아듣기 힘든 말로 주문을 외듯 성소수자를 향해 '저들이 천국을 알게 하소서'라고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전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났습니다. 그런 제게도 이런 광경은 낯설고, 무엇보다 성소수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섭니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려 합니다. 보수 개신교계가 성소수자를 향해 혐오를 쏟아내는 행위는 기독교 정신을 거스르는 것임을 말입니다.

유다교와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는 십계명 율법을 중요시 여기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느님과 사람에게 지켜야 할 규범을 규정한 문서여서입니다. 십계명 가운데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는 계명이 있습니다. 즉, 이웃이나 불특정 다수를 향해 중상모략이나 비방을 일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계명에 비추어 본다면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 문구는 명백한 계명 위반입니다.

성소수자 반대에 '올인'하는 보수 개신교 

1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2016퀴어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다.
 1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2016퀴어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보수 개신교계는 오랫동안 성소수자를 불경시해 왔습니다. 그래서 이 같은 혐오 경향은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문제는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배제가 최근 들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6월 퀴어축제 당시 보수 개신교계는 총동원령을 내리다시피 했습니다. 특히 퀴어 축제 마지막날 있을 행진을 저지하기 위해 보수 기독교계 연합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과 한국교회연합(한교연), 그리고 국내 최대 교세를 지닌 보수 장로교단인 예장합동과 예장통합 등이 연합전선을 구축했습니다.

올해 퀴어축제반대집회에서도 여의도순복음교회, 새에덴교회, 연세중앙교회 등 내로라하는 대형교회들이 앞장서 나섰습니다. 이에 앞서 채영남 예장통합 총회장은 5월 목회서신을 통해 "동성애는 신앙의 관점에서 양심적으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이켜야만 하는 하나의 죄악"이라고 규정하고 나섰습니다.

보수 개신교가 성소수자 혐오를 조장하는 이유에 대해 <오마이뉴스>는 12일 자 기사에서 "이들(보수 개신교) 눈에 도통 퀴어(성소수자)라는 존재들은 정상 가족을 이룰 구석이 없어 보인다"고 진단했습니다. 이 같은 진단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전 여기에 한 가지 현실적인 요인을 더 추가하고자 합니다. 바로 개신교의 교세 위축입니다.

지금 각 교회를 막론하고 개신교계엔 위기감이 팽배합니다. 이대로 가다간 소수 종교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통계만 보아도 교세 위축은 뚜렷이 드러납니다.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은 "2002년부터 2008년 사이 폐업한 교회의 수는 매년 1300개 이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가장 최근의 통계를 살펴보겠습니다. 2014년을 기준으로 예장통합은 전년대비 1619명, 고신이 8315명, 기장 7898명, 합신 2347명의 신도가 교회를 떠났습니다. 무엇보다 국내 최대 장로교파인 예장합동의 감소세가 두드러집니다. 이 교단 교인수는 2014년 기준 전년 대비 13만여 명이 감소했습니다. 1년 만에 신도수 10만 명 이상인 대형교회 하나가 사라졌다고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교세 위축에 혐오로 맞서다 

보수 개신교가 교세 위축 현상에 내놓은 해결방안은 혐오입니다. 즉, 성소수자를 향해 혐오를 확산시켜 세결집을 노린다는 말입니다. 이 같은 성향은 뿌리깊습니다. 독재정권 시절, 보수 개신교는 반공주의의 첨병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이들이 내놓은 반공 구호는 정권에 반대하는 모든 정치, 시민, 사회단체에 대해 적대감과 혐오를 부추기는 내용 일색이었습니다. 그러다 반공주의가 갈수록 힘을 잃어가자 대상을 성소수자, 그리고 이슬람으로 돌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실, 개신교의 교세 위축은 자업자득의 성격이 강합니다. 최근 몇 년 사이 ▲ 변태적인 성추행 행각 ▲ 공금횡령과 논문표절 ▲ 백억 원 대에 이르는 배임 ▲ 변칙적인 교회 세습 ▲ 천억 원 대의 비자금 조성 의혹 등 목회자들의 범죄가 언론을 통해 심심찮게 불거져 나왔습니다.

보수 개신교계가 성소수자 혐오를 정당화하는 명분 중 하나가 올바른 성문화 확립입니다. 만약 이 같은 목적이라면 목회자가 여성도를 대상으로 자행하는 성폭력에 대해 단호한 목소리를 내야 정상입니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교단이 한 통속이 돼 성범죄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준 일이 버젓이 벌어지는 게 지금 한국교회입니다.

1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2016퀴어문화축제가 열린 가운데, 이에 반대하는 이들이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1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2016퀴어문화축제가 열린 가운데, 이에 반대하는 이들이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교회가 부도덕한 권력을 옹호하면서 약자들의 아픔을 외면하는데서 발견됩니다. 지난 3월 국가조찬기도회에 모였던 목회자들은 현 대통령을 칭송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러나 2년째 거리로 내몰린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눈물은 여전히 관심 밖입니다.

이 지점에서 한 번 목회자들이 저질러온 범죄들과 동성애를 비교해보고자 합니다. 어느 쪽이 죄가 더 클까요? 성서의 기록을 살펴보면 성소수자에 대해선 어조가 완곡합니다. 구약성서 레위기서엔 남자와 한 자리에 드는 것이 '망측한 짓'(레위기 18장 22절)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27절에서 "남자와 남자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한다"고만 한 줄 기록했습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의 도덕적 타락에 대해 내려지는 형벌은 그 도가 무시무시합니다. 구약성서 사무엘상 2장에서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은 제물을 사유화하는가 하면 회막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잠자리를 갖는 등 전횡을 일삼았습니다. 이러자 여호와는 이들은 물론 엘리 가문의 씨를 말렸습니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많습니다.

민낯 들켜버린 한국 개신교   

사람들은 교회의 민낯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성도들도 하나 둘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개신교계는 안으로 눈을 돌려 범죄한 목사를 징벌하고 통회자복하기 보다, 엉뚱한 대상을 찾아 분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소수자 혐오의 실체입니다.

개신교와 가톨릭을 아우르는 그리스도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사랑을 실천하시다가 십자가에 달려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사랑의 교의만 설파하지는 않았습니다. 때론 아주 두드러지게 혐오의 감정을 발산하기도 했었습니다. 그 대상은 누구였을까요? 바로 그 당시 종교권력자인 바리사이파와 사두가이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당시 지배세력이던 로마 제국과 결탁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누렸습니다. 로마 제국의 압제에 시달리던 이스라엘 민족의 아픔은 이들에겐 우선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는 이들 종교권력자들을 향해 엄청난 독설을 날렸습니다. "야, 이 독사의 자식들아!"라고요.

1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2016퀴어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이에 반대하는 사람이 손팻말을 들고 이동하고 있다.
 1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2016퀴어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이에 반대하는 사람이 손팻말을 들고 이동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지금 분노가 향해야 할 지점은 사악한 정치와 자본입니다. 정치와 자본의 유착 때문에 눈물 흘리는 약자들이 전국 방방곡곡에 넘쳐 납니다. 그러나 교회가 이들을 보듬고 나섰다는 소식은 별로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늘 함께하는 사람들과 식사를 즐겼습니다. 만약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다면, 누구와 식사하자고 하실까요? 대형교회 목회자들과 근사한 식당에서 최고급 요리를 즐기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회적 편견으로 박해 받는데다, 보수 개신교로부터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 찍힌 성소수자와 어울려 빵과 포도주를 나누며 웃고 떠들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성소수자에게 정말 미안합니다.


태그:#퀴어, #보수 기독교
댓글186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