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전교생이 54명밖에 안 되는 경기도 평택의 어느 작은 초등학교 교실, 4~6학년이 함께 모여 있는 교실로 중년 여성이 한 명 들어선다. 그리고는 작은 악기 우크렐레를 꺼내고선 아이들이 처음 들어본 동요를 부른다. 조금씩 듣고 있던 아이들은 이내 따라 부르기 시작하고, 교실 안은 어느새 흥겨운 놀이터로 변한다.

아이들과 한바탕 즐겁게 놀아준 여성은 바로 중견 동시작가 김금래 시인이다. 김금래 시인은 자신의 동시 '고추잠자리'에 곡을 붙여 아이들과 함께 부르고는 5학년 교과서에 수록된 자신의 시 '몽돌'을 들려주었다. "정말 이 시를 쓰신 분이세요?" 아이들은 신기한 눈으로 시인에게 집중하고, 시인은 그런 아이들에게 동시와 관련된 이야기를 맘껏 들려주었다.

같은 시간에 옆 교실에서는 1~3학년들을 대상으로 고영미 시인이 동시 놀이와 낭송 시간을 가졌다. 학교 전체가 두 명의 시인과 함께 초여름 소나기 속에서 신나는 시간을 보낸 것이다. 김금래, 고영미 시인은 왜 자신들의 동시를 들고 작은 시골 초등학교를 찾았을까?

지난 15일 아침, 평택역에는 동시를 쓰는 6명의 시인들이 모였다. 김금래, 고영미 시인과 김마리아, 박소명 등 네 명의 중견 여류 시인들과 함께 이준섭, 전병호 시인이 함께 동참했다. 교과서에 동시가 수록되거나, 인기 동시집을 출간한 유명 시인들이 함께 모인 것은 다름 아닌 "동시를 읽어주기 위해서"이다.

"아이들이 동시를 안 읽는다고 한탄만 하고 있을 수 없잖아요. 아이들이 안 읽으면 시인들이 독자를 찾아서 직접 동시의 재미를 알려줘야죠." 

평택 나들이를 주도한 이준섭 시인의 말이다. 이준섭 시인은 한국동시문학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아이들이 동화는 읽어도 동시를 읽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직접 찾아가서 동시를 읽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뜻을 같이 한 동시인들이 모이기 시작해 동시 지도에 관심이 많은 네 명의 여류 시인을 주요 강사로 하는 첫 번째 프로그램이 기획된 것이다. 행사명은 '동시인과 어린이 독자와의 만남'이다.

평택초 어린이를 만난 김마리아 시인
▲ 동시인과 어린이의 만남 평택초 어린이를 만난 김마리아 시인
ⓒ 강인석

관련사진보기


시인들은 4명의 강사를 두 팀으로 나누어 평택초등학교(평택동)와 평택종덕초등학교(고덕면)를 찾았다. 김마리아, 박소명 시인이 평택초등학교로, 김금래, 고영미 시인이 종덕초등학교로 향했다.

평택초등학교는 6학년 어린이들을 두 개의 반으로 나누어 시인과의 만남을 가졌다. 김마리아 시인은 본인의 동시집 <집을 먹는 배추벌레>를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교과서에 수록된 동시 '늦게 피는 꽃'을 아이들과 함께 읽었다.

엄마,
저 땜에 걱정 많으시죠?
어설프고 철이 없어서요

봄이 왔다고 다 서둘러
꽃이 피나요?
늦게 피는 꽃도 있잖아요

덤벙대고
까불고 철없다고
속상하지 마세요

나도 느림보
늦게 피는 꽃이라면
자라날 시간을 주세요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철들 시간이 필요해요

- '늦게 피는 꽃', 김마리아

아이들은 시인과 함께 시를 읽고, 늘 철들라고 말씀하시는 부모님에게 하고 싶은 말을 시적화자가 되어 써 보는 시간을 가졌다.

박소명 시인은 세계일주를 하면서 겪었던 특별한 경험담을 아이들에게 나누고, 자신의 책 <시계를 바꾸는 착한 식탁 이야기> 등 시리즈 속에 담은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특히 남미에서 지진을 만나 죽음 직전까지 갔던 이야기, 감자 하나로 행복해 하는 아일랜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 아이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시인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박소명 작가가 평택초 어린이들과의 만남을 갖고 있다.
▲ 동시인과 어린이의 만남-박소명 작가 박소명 작가가 평택초 어린이들과의 만남을 갖고 있다.
ⓒ 강인석

관련사진보기


김금래, 고영미 시인이 찾은 종덕초등학교는 전교생이 54명밖에 안 되는 작은 학교여서, 1~3학년과 4~6학년으로 나누어 시인과의 만남을 가졌다. 김금래 시인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크렐레로 동요를 부르고, 교과서 수록 동시, 시인의 대표 동시를 읽고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고영미 시인은 저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아주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나 안아주기'라는 주제로 동시 낭송은 물론, 시를 쓰고, 시화도 만들었다. 시인은 직접 노래도 부르고, 율동도 하는 등 아이들 앞에서 아이들을 닮은 모습으로 섰다.

엄마 등에 업혀
응급실에 다녀오는 밤

달도
아픈지
핼쑥한 얼굴로

나를
집까지 바래다준다.

- '달' 일부 

"그럼, 달은 누가 집에 데려다 줄까요?"

시인의 질문에 아이들은 교실 바닥에 엎드려 자신의 생각을 도화지에 옮겨 낸다. 황당한 생각, 엉뚱한 그림들도 많지만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은 행복해 한다.

평택종덕초등학교 어린이들과 함께한 김금래, 고영미 시인
▲ 동시인과 어린이의 만남-종덕초등학교 평택종덕초등학교 어린이들과 함께한 김금래, 고영미 시인
ⓒ 강인석

관련사진보기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교과서에 실린 시의 작가를 교실에서 직접 만난 아이들은 매우 특별한 시간으로 기억한다. 학교 선생님들의 반응도 뜨겁다.

"시골 학교 아이들에게 작가와의 만남은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가슴 뛰는 일입니다."

평택초등학교 채창기 교장의 말이다.

"작가들을 직접 뵙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보니, 우리 아이들이 더 큰 꿈을 갖게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종덕초등학교 박현주 교장도 이날 프로그램에 매우 만족해했다.

고영미 시인과 함께 그린 평택 종덕초 저학년 어린이들의 시화
▲ 종덕초 아이들의 시화 고영미 시인과 함께 그린 평택 종덕초 저학년 어린이들의 시화
ⓒ 강인석

관련사진보기


아이들과 학교의 반응 뿐 아니라,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한 시인들의 만족도도 매우 높았다.

김금래 시인은 "수업 전에 물어봤을 때 작가가 꿈인 아이가 세 명이었는데, 수업이 끝나고 나니 일곱 명으로 늘었다"면서 "아이들에게 좋은 시간을 만들어 준 것 같아 만족해 한다"고 말했다.

고영미 시인은 "선생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어서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받았다면서 감격해 했다.

김마리아 시인도 "시를 통해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으며, 박소명 시인은 "반짝이는 아이들의 눈에서 내일의 희망을 보았다"면서 "앞으로도 어린이들을 만나는 뜻 깊은 나눔에 함께 하고 싶다"고 말했다.

동시가 독자를 직접 찾아서 만나는 뜻깊은 프로그램, 시골 작은 학교를 찾아서 유쾌한 시간을 만들어 주는 나눔 프로그램인 '동시인과 어린이 독자와의 만남' 첫 번째 날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고영미 시인과 함께 시화를 그리는 종덕초등학교 어린이.
▲ 시화 그리기-종덕초등학교 고영미 시인과 함께 시화를 그리는 종덕초등학교 어린이.
ⓒ 강인석

관련사진보기


이 프로그램은 우리나라 대표 동시인들의 모임인 한국동시문학회 소속 시인들이 시골의 작은 학교를 직접 찾아가서 맛있게 동시를 먹는 법을 가르쳐 주자는 의도로 기획되었다. 이러한 취지가 알려졌을 때 의외로 많은 시인들이 참여 의사를 밝혔고, 평택에서 처음으로 프로그램을 실시하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푸른 꿈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일"이라는 이준섭 시인은 "한국동시문학회 차원에서 여름방학 때에도 초등학교 독서교실에 시인들을 보내는 활동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소나기 내리는 6월, 느티나무 푸른 평택의 어느 교정에서 네 명의 시인들이 왁자지껄 아이들과 떠들썩한 놀이판을 벌인 사연, 그 사연의 속사정이 따뜻하고 깊다.


태그:#평택초, #종덕초, #박소명, #김금래, #김마리아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 아동문학가, 시인, 출판기획자 * 아동문학, 어린이 출판 전문 기자 * 영화 칼럼 / 여행 칼럼 / 마을 소식 * 르포 작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