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랜도 게이클럽 총기 참사에 애도를 표한다. 이런 혐오들에 맞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한국도 외부적으로는 <캐롤>과 <아가씨> 같은 영화가 흥행하고,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시대지만 우리는 우리가 여전히 직면한 현실이 있다. 이 답을 퀴어영화제에서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16일 열린 제16회 퀴어영화제 개막식은 한채윤 비온뒤무지개재단 상임이사와 책 <이기적 섹스>의 저자 은하선 작가의 사회로 진행됐다. 한채윤 상임이사와 은하선 작가는 개막작을 상영하기 전 올랜도 게이클럽 총기 참사에 애도를 표했다.

'빽 투 더 퀴어'라는 슬로건

 퀴어영화제 현장사진

제16회 퀴어영화제 개막식이 열렸다. 비온뒤무지개재단 상임이사 한채윤씨와 <이기적 섹스>의 저자 은하선씨가 사회자로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 퀴어영화제


퀴어영화제 기획단장 홀릭은 이어 제16회 퀴어영화제의 슬로건을 '빽 투 더 퀴어'로 지은 이유를 설명했다. "오늘날 '퀴어'라는 말은 성소수자들의 정체성으로 쓰이는데 초창기 미국에서 퀴어는 '이상한', '기묘한'이라는 비하하는 의미로 쓰였다, 이를 재해석해 '그래 나 퀴어인데 어쩔래'로 원래 의미를 전복하면서 시작됐다"며 그 전복 정신이 이어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올해 제16회 퀴어영화제의 특징 중 하나는 59편의 출품작 중 개막작과 폐막작을 제외하고는 4일의 영화제 기간에 단 한 번씩만 영화들을 상영한다는 거다. 홀릭은 "좀 무리했다"며, "작년부터 시작한 실험 영화 섹션이 예상 밖에 반응이 좋아 편수를 늘렸다. 버릴 수 없는 작품들이 너무 많더라, 보고 싶은 영화는 바로 예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제16회 퀴어영화제 기획단원들이 선정한 개막작 <당신이 보지 않는 동안>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레즈비언 로맨스를 다룬 영화다. 2015년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을 배경으로 인종과 계급, 젠더 간의 갈등을 다뤘다.

퀴어영화제 프로그래머이자 기획단원인 레아는 이날 무대에서 개막작 <당신이 보지 않는 동안>이 어떤 영화인지 설명했다.

"<당신이 보지 않는 동안>은 남아공 성소수자가 진하게 사랑하는 영화다. 남아공 성소수자들은 기묘한 위치에 있다. 현재는 법제화돼 성소수자들도 결혼할 수 있지만, 한편에서는 교정강간(레즈비언인 여성을 헤테로(이성애자)로 '교정'하겠다는 '명분' 아래 강간하는 일)을 하는 사례도 있다. 이처럼 성폭력과 혐오 폭력이 있는 모순된 상황이다."

그의 말처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동성결혼은 2006년부터 허용됐다. 남아공 헌법재판소는 2005년 '어떤 성적 지향과 관계없이 모든 국민이 같은 권리를 누려야 한다'며 남아공 의회에 법 개정을 요구했다. 남아공의 현실을 담은 영화 속에는 흑인-백인, 중산층, 레즈비언의 정체성을 가진 부부 데즈와 태리가 나온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이 입양한 딸 아산다는 빈민층이 모여 사는 동네에 가게 되면서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들 가족의 모습은 남아공의 성소수자들의 일상을 잘 보여준다.

이어 레아는 "빽 투 더 퀴어란 슬로건에 맞춰 보다 다양한 나라에 존재하는 성소수자들의 상황을 보여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계급과 인종의 경계를 따라 삶의 조건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런 이들이 타인과 관계를 어떻게 맺는지가 영화의 주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라 밝혔다.

그녀가 받은 남색 드레스, 의심이 시작되다

 영화 <당신이 보지 않는 동안> 스틸컷

레즈비언 부부의 딸 아산다가 흑인 빈민가 출신의 톰보이 '샤도'와 사랑에 빠진다. ⓒ 퀴어영화제


레즈비언 부부인 태리는 자신의 결혼기념일 선물로 데즈가 준비한 빨간 드레스를 데즈 몰래 먼저 꺼내 입고는 마음에 들어 한다. 하지만 정작 결혼기념일 날 받은 드레스는 남색 드레스였다. '그럼 그때 내가 본 빨간 드레스는 어디로 간 거지?' 옷가게를 찾아간 태리. 거기서 그는 데즈가 빨간 드레스를 구입했고 환불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 그들의 딸 아산다는 우연히 클럽에서 만난 톰보이(소년의 성 역할을 하는 소녀) '샤도'와 사랑에 빠진다. "너 여자였어?" 샤도에게 묻는 아산다. 샤도는 "아니, 난 톰보이야"라고 답한다. 샤도는 아산다와 사는 곳도 경제 수준도 모두 다르다. 과연 이들은 악조건을 무릅쓰고 관계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까. 이들 가족의 삶을 계속 지켜보면 아직도 혐오 발언이나 혐오범죄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남아공 내의 성소수자들의 일상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신이 보지 않는 동안>은 이들 가족이 그동안 보지 않았던 혹은 보지 못했던 것을 다룬다. 예컨대 빨간 드레스로 비유되는 데즈의 비밀스러운 관계나 샤도로 대표되는 남아공 케이프타운 빈민층의 일상 등이 관계의 변화를 겪으며 조금씩 드러나게 된다.

퀴어영화제 당신이 보지 않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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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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