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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두려운 가족들, '혐오'는 시민권을 요구했다
②-1 동성애는 '정교 분리' 사회의 좋은 리트머스지다

한국 사회의 반 동성애 여론은 어떤 사회적 맥락 속에 있을까. 반 동성애의 원인과 대안을 추적하고자 연재를 마련했다. 1편은 동성애 혐오 담론 지형, 2편은 동성애 혐오 논리와 그 확산을 부추기는 뉴라이트, 3편은 혐오를 넘어서기 위한 대안을 살펴본다.-기자 말.

동성애는 '당연히' 나쁘다? 왜죠?

메신저 대화처럼 패러디했지만 모두 실제로 했던 말이나 포털 뉴스 댓글 창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댓글 등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메신저 대화처럼 패러디했지만 모두 실제로 했던 말이나 포털 뉴스 댓글 창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댓글 등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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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②-1'편에서 살펴봤듯, 보수 개신교는 해방 이후부터 끈질기게 정치권과 유착하며 자신들의 가치관을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 관철하려고 개입해왔다. 또한 '하나님'이 한국인을 기독교 국가를 만들도록 선택했고, 결국 지구 전체는 기독교인이 '지배'해야 하며, 기독교 가치에서 벗어나면 정상 시민의 자격을 줘서는 안 된다는 선민/주권 의식을 공유한다.

'동성애'는 이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슈이므로 정치와 종교의 분리 원칙이 잘 지켜지는지 판별해낼 리트머스지와 같다. 사람들이 보수 개신교처럼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 하나가 자신을 더 완벽하게 만들어준다는 생각을 '잠정적 진리'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확정적 진리'를 실천한다고 여기고, 보기 싫고 잣대에 맞지 않다고 상대를 2등 시민 취급하고 존재 자체를 공론장(광장)에서 배제시키려 하고 차별과 혐오를 일삼는다면 어떻게 될까.

'사회'라는 전제부터가 흔들린다. 따라서 누구든 존중받고 싶다면 타인을 존중해야 하고, '당연하단 듯' 혐오를 부추기는 사람들을 향해 "왜죠?"라고 단호히 되물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혼란을 견뎌낼 수 있는 이성적 힘을 갖고, 공포를 조장하고 억지와 궤변을 그럴싸한 논리로 포장하는 세력의 주장을 냉정히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발휘해야 한다.

물론 이런 주장들 역시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조차 '틀릴 수도 있다'고 겸허히 인정하는 순간 '틀릴 수도 있다'라는 관용의 힘은 더욱 도드라진다.

[오류1] 동성애는 에이즈의 주 원인이다, 따라서 옳지 않다 (X)

동성애를 에이즈와 엮어 공격하는 선전선동은 고전적이면서도 군중을 공포로 몰아넣는데 효과적인 전략이다. '바른성문화를위한국민연합(바성연)' 같은 보수 개신교 행동그룹들, 성서 논리를 거의 드러내지 않은 채 세속 논리를 앞세우는 '건강한 사회를 위한 국민연대(건사연)' 'Kh TV' 등이 이런 인식을 확산시켜왔다. 꼭 이들 단체가 아니더라도 동성애를 공격하는 보수 개신교 인사, 단체 중 이 전략을 앞세우는 건 흔한 일이다.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AIDS) 병원체 HIV-1 바이러스.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AIDS) 병원체 HIV-1 바이러스.
ⓒ J Roberto Truji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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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의외로 가장 쉽게 논파할 수 있는 주장이기도 하다. 우선 '동성애=항문 성교'가 아니다. 동성애는 육체적 성관계가 아닌 성적 지향 내지 정체성을 뜻한다. 따라서 에이즈의 원인을 항문 성교가 아닌 동성애라 하는 건 성을 성기 중심적으로만 생각하는 편협함이자 접근부터 어긋난 '논점일탈의 오류'다. 에이즈 관련 통계에 종종 등장하는 '남성과 성교한 남성Men who have Sex with Men'은 동성애자와 곧바로 동일시 할 수 없다.

물론 항문 성교는 게이gay들이 사랑을 나누는 과정의 일부가 될 수 있고 이때 게이들은 MSM(Male who have sex with male)이다. 전염률도 질 성교(0.04~0.38% 내외)보다 항문 성교(1.4~1.7% 내외)가 더 높으며 에이즈 환자 '중' MSM의 비율이 절반 이상인 건 사실이다. 에이즈 주 감염경로가 보균자의 혈액, 정액, 질액 등이 상대의 상처나 점막 속으로 들어갈 경우이기 때문이다. 항문 성교는 항문 주위 혈관이 파열될 경우를 주의해야 한다(CDC, 질병관리본부 참조).

하지만 1.4~1.7%의 전염률조차 에이즈 보균자와 성관계를 맺을 경우에 그친다. 에이즈 보균자와 성관계를 맺지 않는 이상 전염은 불가능에 수렴할 뿐더러, 심지어 에이즈 보균자와 성관계를 맺더라도 콘돔을 사용하면 100%에 가깝게 막을 수 있다. 또한 세계보건기구(WHO)는 미리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하는 방법도 제시하고 있다. 그래도 100%는 아니지 않느냐고 되묻는다면 바보같은 질문이다. 남녀 간의 성관계도 100%가 아니다.

결국 에이즈 문제는 '안전한 섹스'를 어떻게 도모할 것이냐가 논점이지 동성애라는 성적 지향, 정체성이 문제가 아니다. 통계적 사실을 근거로 게이gay들이 비윤리적이며 탈 동성애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 동성애론자들의 논리대로라면, 이성애자들인 그들은 레즈비언lesbian들보다 비윤리적이므로 스스로 동성애자가 되어야 한다는 자기 모순에 빠진다. 레즈비언들은 삽입 섹스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귀류법 논증).

[오류2] 동성애는 정신 장애다, 따라서 옳지 않다 (X)

'오류1'이 시사하듯 통계적 사실 판단은 윤리적 가치 판단과 동일시할 수 없다. 그렇지만 여전히 통계적 사실을 근거로 동성애가 비윤리적이라고 비약을 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연세대 민성길 명예교수(정신건강의학과)가 그런 경우다. 그는 '바른사회시민회의(뉴라이트 계열)' 'Kh TV' 등 다양한 채널을 거쳐 꾸준하게 동성애는 정신 장애이며 "윤리도덕적으로 책임있는 행동은 아니"라고 주장해왔다(관련 기사: 동성애... 과연 선천적인가?).

연세대 민성길 명예교수(정신의학과).
 연세대 민성길 명예교수(정신의학과).
ⓒ 건사연 유투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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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령 동성애자는 이성애자보다 신체적·정신적으로 장애가 많고 자살률이 높고 수명이 짧다든지, 동성 간 결혼률이 낮고 정절이 지켜지는 경우도 드물며 관계 지속 기간도 짧다든지, 동성 커플은 파트너에 대한 학대 빈도가 더 높다든지, 동성 부모를 둔 양자의 정신성 발달 등이 긍정적이라는 연구 결과는 한계가 있으며 다른 연구 결과는 정반대라든지, 동성애가 유전이라는 연구 결과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다든지 등의 예를 든다.

그리고 이로부터 동성애가 비윤리적 선택(의지)의 결과라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그는 '어떤 성이 바람직한가'라는 기준을 놓고 정신과의사 에릭슨의 '자식생산과 정절'을 강조하는 관점을 택하는데, 에릭슨은 개신교의 영향에 맥락이 닿아 있는 학자다(에릭슨 <청년 루터> 참조). 또한 민 교수 자신은 정신장애는 인류의 '죄' 때문이다, 정신질환자에 교회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정신 문제는 영적 접근을 해야 한다 등의 주장을 한 맥라렌 교수의 '영성 정신의학'에 영향을 받았다(맥라렌 <말씀이 육신이 되어> 민성길 번역).

따라서 민 교수의 관점은 '바람직한 성'을 정의할 때 에릭슨, 맥라렌, 개신교식 가치 판단을 채택하지 않는 학자들에게 설득력이 없다. 그는 '가정 망각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가장 망각의 오류란 논리학의 '비형식적 오류informal fallacy' 중 하나로 '사용하고 있는 가정을 정당화하지 않은 채, 그 가정에 따르는 결론만을 옳다고 주장하는 오류'다. 민 교수는 '왜' 그런 가치 판단이 바람직한 성의 기준인지 입증할 책임이 있다.

심지어 위와 같이 특정한 가치 판단을 무기로 앞세운 그가 정작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APA의 결정은 '정치적'이었다는 이유로 공격하는 모순에 빠진다. APA는 당시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SM'에서 동성애를 정신장애 분류에서 삭제하기로 결정했는데, 이 결정이 동성애자들의 사회운동의 압력에 굴복한 결과였다는 주장이다. 또한 1973~1978년, 1990년에 전문가들이 동성애에 불리한 응답 결과를 내놓았다고 지적한다.

정치는 서로 다른 가치관의 스파크다. 정신의학보다 엄격한 통계적 기준을 추구하는 정밀과학조차 완벽한 가치 중립을 달성하기 힘들다는 점을 과학철학자들은 증명해왔다(포퍼, 쿤, 파이어아벤트, 라카토슈, 장하성 등 참조). 학자들이 DSM을 통해 정신 장애를 '명명'하기 시작한 뒤부터 '병자'를 분류할 수 있게 된 의료화medicalization 과정이 시사하듯 '정신병'의 진단 및 분류도 생물학적 차원에 국한되지 않으며 환경, 특히 사회적 맥락을 무시할 수 없다(쇼터 <정신의학의 역사: 광인의 수용소에서 프로작의 시대까지> 참조).

또한 민 교수가 제시한 1973~1978년, 1990년 전문가 견해는 무려 25~37년 뒤떨어졌으며 현재의 국제적 추세와도 맞지 않다. 2016년 3월 세계정신의학회WPA는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자 최신 연구 결과와 학자들의 견해를 바탕으로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것도 정치적 '압력'에 굴복한 결과일까. 그렇지 않다. 동성애를 병으로 봤던 정신의학계의 인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꾸준히 변화해왔다.

세계보건기구WTO 역시 1990년 국제질병분류ICD에서 동성애를 질병에서 제외했다. 또한 APA는 동성애를 제외시킨 대신 '동성애 감정이나 성적 지향을 바꾸고 싶은 욕망과 관련하여 느끼는 우울증 또는 불안증'을 뜻하는 '자아 이질적 성적 지남'이라는 용어를 탄생시켰다가, 이마저도 이 용어를 (민 교수처럼) 지지했던 임상의들이 1987년에 APA에서 은퇴하자 성적 지향과 관련된 모든 질병명을 DSM에서 삭제시키기로 결정했다.

동성애적 성향이 누군가를 고통스럽게 하는 요소(≠원인)일 경우는 우울증이나 적응장애로 진단하고 치료하면 된다는 합리적 추론의 결과다. 예를 들어보자. 필자가 제니퍼 로렌스를 사랑하는 성향이 있는데 이 때문에 고통스럽다고 '제니퍼 로렌스'라는 질병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괴상하지 않는가. 한편 APA의 DSM 뿐 아니라 WTO의 ICD에 남아 있는 '자아 이질적 성적 지남(Egodystonic sexual orientation)' 역시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도 정신의학계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ICD를 번역해 사용하는 한국 정신과 의사가 '동성애'와 '동성애 감정과 성적 지향과 관련된 우울증(불안증)'을 혼동한다면 이 역시도 '강조의 오류'에 해당한다. 강조의 오류란, 문장의 특정 부분을('동성애'를) 강조하여 자의적인 추론을 해 논점을 왜곡하는 오류다. 결국 국제적 추세, 민 교수의 오류와 비일관성 등을 종합해 보건대, 민 교수의 견해가 과연 신뢰성이 있는 의심스럽다.

설사 민 교수가 제시하는 통계적 사실들이 일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근거로 동성애가 비윤리적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없다. 그것은 일제 식민 지배나 군사 독재 당시의 경제 상황과 관련된 통계를 근거로 식민 지배와 군사 독재도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종종 주장하는 뉴라이트 계열 실증주의 역사학자들도 빈번하게 범하는 오류, 즉 '자연주의 오류naturalistic fallacy'를 범하는 것이다.

[오류3] 동성애는 섭리에 어긋난다, 따라서 옳지 않다 (X)

자연주의 오류란 '사실 판단(~이다)'로부터 바로 '가치 판단(~해야 한다/하지 말아야 한다, ~은 좋다 나쁘다/옳다 그르다)'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착각하는 오류다. 우리는 도덕적 판단을 내릴 때 여러 사실들을 고려하지만 각각의 사실들이 중요도에 따라 때때로 판단을 내리기에 '필요한 조건'이 될지 몰라도 늘 '충분한 조건'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민 교수가 지적한 통계들은 차라리 동성애자에게는 다수와 다른 삶의 패턴이 필요하다는 시사점일 수도 있다. 꼭 '자식생산과 정절'만이 바람직한 성일까.

우리는 가부장적인 성 윤리관만이 옳다고 여기는 군중이 '동성애는 섭리에 어긋난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걸 흔하게 볼 수 있다. 여기서 섭리란 자연 또는 신의 섭리를 주로 말한다. 동성애가 "자연법칙을 거스르는 것"이라는 게 무슨 뜻일까. 이것은 '통계적 의미'인가? 그렇다면 왼손잡이도 비윤리적이다. 그게 아니라면 자연에는 어떤 '목적'이 있으며 신체의 일부분으로서 생식기의 목적은 자식생산이라는 뜻인가?

그렇다면 폐경기를 지난 여성의 섹스도 비윤리적이며, 심지어 손가락을 튕기며 리듬을 타는 것도 비윤리적이라 해야 한다. 사람들은 손가락을 주로 무언가를 집거나 찌르는 데 쓴다. 결국 "자연법칙을 거스른다"는 말이 뭔가 군중의 마음을 순간적으로 혹하게 할지는 몰라도 좀 더 나은 설명이 나오지 않는 한 거부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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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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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명하신 질서를 거스른다"는 주장도 문제다. 이는 '하나님'이 창세기의 유명한 아담과 이브를 창조했다는 설,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이것도 잘못된 해석이라는 설명도 있다☞관련 기사), 레위기의 "여자와 자듯 남자와 한 자리에 들어도 안 된다. 그것은 망측한 짓이다"(18:22) 등의 구절에 근거한다. 좋다. 일단 '하나님'이 당시 동성애를 금하셨다고 쳐보자.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보수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처럼 한 가지 생각만을 영원히 고집한다기보다는 맥락을 고려하시는 '하나님'에 가까운 게 아닐까. 구약과 신약 사이 괴리가 대표적이다. 가령 신약 성경은 있는 그대로 읽는다면 부자가 되는 걸 경계하는 전통이 있는데, 구약 성경에서는 야베스가 "제 영토를 넓혀주시고"라고 기원하니(역대기상 4:10) '하나님'이 이루어주셨다고 한다(야베스를 롤모델로 삼은 기독교 베스트셀러도 있다).

한편 구약 성경은 동성애를 금지할 뿐 아니라, 주변국에서 노예를 살 수 있다거나(레위기 25:44) 관자놀이의 머리는 네모나게 깎아야 한다(레위기 19:27)는 등 일관성있고 엄격히 적용한다면 현대인들이 거의 미쳐버릴 만한 잣대도 많다. 나는 이보다 훨씬 충격적인 사례들을 얼마든지 들 수 있지만 이 정도로도 요점 전달이 충분했다고 믿는다. 한편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이 동성애를 금지했다는 구절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자, 곁다리 논쟁은 그만두고 핵심을 찌를 때가 됐다. 종교적 믿음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종교적 믿음을 비종교인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할 때는 최소한 말이 좀 앞뒤가 맞고 통하게끔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어렸을 때 개신교 교회를 잠시 다닌 적이 있는데, 성경의 모호함이 걱정스러워 집사, 권사, 전도사, 목사 등 다양한 분께 도움을 청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늘 한결 같은 패턴이었다. '창조주의 뜻을 어찌 피조물들이 알리오'였다.

좋다. '하나님'의 뜻을 피조물들이 모를 수도 있다고 치자. 그런데 '하나님'의 뜻이 하필 보수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의 성서 논리와 같다고 믿어야할 근거는 무엇일까. '감히 눈으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으며 그렇다고 뜻을 알 수도 없지만 무조건 믿어야 하는 하나님'에 기대어 자신들의 신념을 실현시키려는 논리를 펴는 방식은 논리학에서 지적하는 '애드 혹Ad hoc' 논증과 같다. 쉽게 말해 '정신승리'다.

[오류4] 동성애는 위험한 비탈길이다, 따라서 옳지 않다 (X)

한편 종종 동성애를 인정하면 더 많은 경제적, 사회적 비용을 부담할 것이라 공격하는 이들도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명예회장 이태희 목사도 <세계관 전쟁>에서 에이즈 치료 비용이 세금에서 충당된다며 특권이라 공격한 바 있다. 물론 오류1에서 살펴봤듯 동성애와 에이즈는 직접 연관시킬 수 없다. 또한 의료 복지를 더 많은 사람들이 받는다면 좋은 일이고, 문제는 다른 질병에 '국가가 충분한 의료 복지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지(독일의 의료 복지와 비교해보라) '에이즈 치료 비용에 세금이 쓰인다'는 사실이 아니다.

'건사연'이나 'Kh TV' 등의 단체는 퀴어축제 당시 참가자 중 가장 선정적인 복장, 소품 등의 사진만 골라찍어 모아놓거나, 가출 청소년의 '바텀 알바(항문 성교 아르바이트)' 실태를 집중 조명하는 등의 방식으로 군중의 감정을 자극해 동성애는 '위험한 비탈길the slippery slope'이라는 왜곡된 인식을 부추긴다. 어떤 사안이 던지는 충격을 과장면서 사안을 묵과하면 위험한 비탈길 아래로 타락하듯 파국을 맞으리라는 선동이다.

퀴어축제의 노출도 맥락이 있다. 퀴어queer는 '이상한'을 뜻한다. 전 세계 성소수자들이 다수에 의해 강요받은 질서, 즉 '평범함'을 벗어날 때마다 쏟아진 혐오의 기호를 저항의 기호로 전복시킨 것이다. '불쾌함은 존재에 우선하지 않는다'는 배수의 진을 치고, 365일 중 하루 만큼은 존재를 강하게 드러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물론 퍼포먼스를 다수가 수용 가능한 방식으로 바꾸자는 주장도 있으나 방법론과 외설의 문제이지 성적 지향의 문제로 논점을 일탈할 수는 없다. '바텀 알바' 역시 성매매의 문제이지 성적 지향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논리를 일관성 있게 적용한다면 성매매를 더 많이 저지르는 건 이성애자들이므로 '이성애는 비윤리적'이라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결론이 나온다.

(동성애를 인정하면 수간, 소아성애도 인정하게 된다는 논변도 있는데 이것은 '논점일탈의 오류'다. 동성애는 동성애대로, 수간과 소아성애는 그것대로 각각 윤리적 평가를 내리면 된다. 결정적 유사성이 없는 두 사안을 엮어 '잘못된 유비추론의 오류'를 범해도 안 된다)

[오류5] 동성애는 양심과 종교의 자유와 양립할 수 없다 (X)

"건전한 성 윤리가 무너지고 있으며, 특정 가치의 강요로 인해 양심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 또한 위협받고 있다. (중략) 우리는 이성애만을 인류의 정상적인 사랑이라고 믿으며, 사랑하는 남녀 간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가정만을 정상적인 가정으로 인정한다"(건사연)

위와 같은 주장은 양심 및 종교적 신념(원인)과 혐오 표현, 행동(결과)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본말전도의 오류'다. 본말전도의 오류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오류다. 동성애를 인정하라는 건 동성애가 비윤리적이라 여기는 신념을 갖고 있는 걸 위협하는 게 아니다. 그러한 신념에 입각해 혐오 표현이나 행동부터 하지말라는 것이다. 혐오는 '제대로 된 도덕적인 판단'을 포함하는 감정인 '분노'와는 엄연히 다른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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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철학자 마사 너스바움이 <혐오와 수치심>에서 지적하듯 '혐오'가 공적 지침이 되면 '사회' 성립을 위한 공통의 기반 자체를 잠식한다. 다수라는 이유로 동성애를 쾌/불쾌 문제로 접근한다면, 고대 로마 시대 때 콜로세움에서 '싫어요thumbs down' 제스처로 검투사의 생사를 결정짓게끔 하던 군중과 다를 바 없다.

혐오는 상대를 벌레 여기듯 '생각조차 하기 싫어하며' 존재를 공론장(광장)에서 배제하게끔 부추기는 반사회적 감정이다. 가령 나는 평소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분노한다. 반대로 야권 정치인들에게 분노하는 이들도 있다. 분노는 어쨌든 분노를 드러낼 상대의 존재를 인정한다. 그러나 분노가 아닌 혐오를 이유로 상대의 존재 자체를 묵살하는 행위가 원칙적으로 용인된다면 공론장의 룰은 파기된다.

동성애는 심플한 이슈다. 존중받고 싶다면 상대의 존재도 존중해야 하며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 하나가 자신을 더 완벽하게 해준다는 걸 인정하면 된다. 덧붙여 동성애에 혐오를 느낀다면 그게 어디서 비롯됐는지 차분히 생각해본다면 더 좋다(연재 1편 참조).


태그:#동성애, #동성애 혐오, #뉴라이트, #보수 개신교, #이태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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