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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가워!"

몇 해 전 선배가 들려줬던 이 명언. 그땐 해석이 필요한 줄도 몰랐습니다. 전혀 무슨 뜻인지 몰랐고, 관심도 없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젠 해석하지 않아도 압니다. 아니 굳이 해석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도 독자들을 위해 자상함을 보여주고 싶군요.

※ "오면 반갑고"는?
손자가 그의 부모와 함께 오면 반갑다는 말입니다. 자식 키우는 맛보다 손자 키우고 보는 맛이 더 맛깔나거든요(이 대목에서 혹자는 과장하는 거 아니냐, 호들갑 떠는 거 아니냐, 말씀들을 하시는데, 아들딸에게는 째꼼 미안하지만, 맹세코 정말<×3> 그랬답니다.) 떨어져 있는 자식들이 손자 안고 오는 날을 학수고대하는 게 할매 할배들의 낙이랍니다. 당연히 너무너무 반갑죠.

※ "가면 더 반갑다"는?
요~기~가, 해석의 묘미가 살아야 하는 대목입니다. 혹 잘못 건드렸다가는 귀여운 손자 못 볼 수도 있으니까요. 이 대목은 순전히 할매나 할배의 육체적 한계 때문입니다. 진짜 맘은 안 그런데 단지 삭은 육체 때문이란 거죠. 묵직하게 자란 손자 녀석이 업어 달라, 안아 달라 할 때 다 들어줬다간 작살 나는 겁니다. 그러니 녀석들 가면 시원하고 반가운 거죠.

그 명언, 우리도 했.답.니.다

오누이가 이리 다정합니다. 25개월 오빠가 100일 된 동생에게 우유를 먹이고 있습니다. 고것들...
▲ 서하 오빠 서준, 서준이 동생 서하 오누이가 이리 다정합니다. 25개월 오빠가 100일 된 동생에게 우유를 먹이고 있습니다. 고것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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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난 소동을 벌이고(참고 기사 : 수상한 전화 통화, 만삭 딸에게 큰일이 났다)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손녀가 이 할배 집을 첫나들이 장소로 택하여 왔답니다. 일주일 전입니다. 그리고 더도 덜도 아닌 일주간을 머물고 갔습니다.

근데요. 그런데 말입니다. 아내와 함께 그 말을 했다는 거 아닙니까. 그 해석이 필요 없던... 관심조차 없었던... 이젠 관심이 무지 많은... 이젠 해석하지 않아도 알(알보다 훨씬 큰),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가워! 그치?"

오, 마이 갓! 오, 이걸 어쩝니까? 우리 내외가 이 말을 할 줄이야.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예전엔 정말 몰랐습니다. 비록 일주간이지만 행복했습니다. 훌쩍 자라 제법 고집이 생긴 25개월짜리 첫째 손자 서준이, 무에 그리 볼 게 많다고 여덟 달 반 만에 엄마 뱃속을 뛰쳐나온 지 100일 된 손녀 서하 그리고 손자 녀석들에게 딸려(?) 그들의 엄마, 제 딸내미가 왔다 갔습니다.

그들이 머문 시간은 고작 일주간, 정확히는 190여 시간, 그들이 머문 자리에는 아직도 체취가 남았건만, 우리 내외는 그리 말하고 말았습니다. 그 엄청난 말,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가워!"

선배님, 선배님이 원망스럽습니다. 왜 이런 명언을 가르쳐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겁니까. 이 말을 하고 난 후 이 할배는 가위 눌리고 있답니다. 꿈 속에서 제 딸내미가 나와 '그래? 엄마아빤 우리가 왔다 가면 그렇게 반갑고 좋다 이거지? 알았어. 이젠 안 올게' 그러는 것 같고, 씩씩하지만 고집도 부릴 줄 아는 서준이 녀석이 '그럼, 이젠 하찌(할아버지 발음이 아직 안 됨) 집에 안 온다' 그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쉬움이 있.답.니.다

할배의 손자 유모차 밀기가 오빠인 서준이 도와 줘 한결 쉽답니다. 하하. 실은 매달려 더 힘들답니다. 하지만 굳이 돕겠다네요.
▲ 오빠의 동생 사랑 할배의 손자 유모차 밀기가 오빠인 서준이 도와 줘 한결 쉽답니다. 하하. 실은 매달려 더 힘들답니다. 하지만 굳이 돕겠다네요.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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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들 못 본다면 우리 내왼 못 산답니다. 그게 몇 년 만이라도 몇 달 만이라도, 그래도 올 거라는 희망, 볼 것이라는 기대, 이런 게 할매 할배가 살아갈 힘인데, 글쎄 그 명언 한 마디로 이런 재미를 박살낼 순 없잖습니까. 선배님, 왜 그러셨어요? 이런 명언은 그냥 선배님만 간직하시지 않고요.

가장 무서운 건 후유증이죠. 뒷감당 못할 말 해놓고 엄청 후회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서준이와 그의 떨거지들에게 이리 말합니다.

"아직 어리기만 한 딸내미! 듬직한 사위! 귀여운 서준, 서하! 혹 이 글을 읽더라도 절대로 이 할배(아빠) 마음은 그게 아니란 걸 알아주기 바란다. 언제든지, 얼마든지 할배 집에 오거라. 아니, 될 수 있는 대로 자주자주 들러주길 바란다. 그 명언을 하지 말라는 말은 말아다오. 그 말을 수십 번 더할지라도 '너그들' 사랑하는 맘은 변치 않는단다."

음, 이제 됐겠죠? 허허. 그들이 간 후 빈자리만 덩그러니 '훵~' 합니다. 아내와 둘이서 빈 공간만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허허로움'을 즐긴답니다. 우리 집이 이리 큰 공간인지 예전엔 몰랐습니다. 참, 넓군요. 그러다 심심하면 TV 리모컨이나 비틀어 보고요. 그렇게 '난리 브루스'를 추던 녀석들이 가고나니 여기저기 쑤신 몸만 진저리를 치는군요.

혹자는 그 할매 할배만 그렇지 우린 아직 튼튼하다, 할 분들도 계시다는 걸 압니다. 실은 우리도 좀 엄살을 부려서 그렇지 아직은 쓸 만하답니다. 제가 5년여 전 허리가 골절돼 고생했거든요. 이번에도 다른 데는 괜찮았습니다. 다만 허리가 쑤셔 서준일 맘대로 업어주거나 안아주지 못해 아쉬움이 큽니다. 앉아 있기만 해도 등 뒤로 와 업어달라는 녀석을 뿌리치는 건 손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만, 어쩌겠어요. 제가 안 되는데.

'미운 일곱 살'이요? 아.니.랍.니.다

백만 불짜리 미소는 언제나 있는 게 아닙니다. 가까스로 득템한 거랍니다. 대개는 우는 얼굴이죠. 이럴 땐 천사가 따로 없는데...
▲ 손녀 서하의 살인미소 백만 불짜리 미소는 언제나 있는 게 아닙니다. 가까스로 득템한 거랍니다. 대개는 우는 얼굴이죠. 이럴 땐 천사가 따로 없는데...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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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느낀 건데요. 예전엔 왜 '미운 일곱 살'이라고들 말했잖아요. 이젠 수정해야 할 것 같아요. 것도 아주 많이 당겨야 할 것 같아요. '미운 세 살'로, 만 나이 25개월짜리가 고집 부리고 생떼 쓰는 걸 보면 누구나 수정하자, 할 겁니다.

"시어. 아되."

지금도 서준이 녀석의 이 말이 귀에 쟁쟁합니다. TV 앞에 앉아서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프로그램이 방영되면 여지 없이 외칩니다. "시어(싫어)." 모든 어른들은 그의 말에 귀를 쫑긋하고 있다 그가 "시어"라는 말을 그칠 때가지 TV 채널을 돌려야 합니다.

음식 앞에서도, 목욕을 하자고 할 때도, 어디를 갈 때도... 시도 때도 없이 "시어. 아되"를 반복합니다. "그러면 맴매한다" 얼러 보지만 코도 들썩 안 합니다. 허. 결국 지는 건 어른들입니다. 아직은 기고만장입니다. 아직은 콧대 꺾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가르쳐야 할 테지요.

"시어. 아되"와 함께 서하 녀석의 울음소리가 귀에 쟁쟁합니다. 고 작은 체구에서 어찌 그리 쩌렁쩌렁한 울음소리가 나는 건지 신기하기만 하더군요. 인큐베이터 운운하던 때가 엊그젠데 서하의 울음소리를 들으니 이젠 다 큰 느낌입니다.

귀요미들은 가고 덩그러니 빈 넓은 공간에서 녀석들의 거침없는 발언과 울음소리만 살아, 이 할배를 엷은 미소에 젖게 하는군요. 부디 지금처럼만 잘 커다오.

덧붙이는 글 | [손자 바보 꽃할배 일기]는 손자를 보고 느끼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은 할아버지의 글입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관심 많이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태그:#손자 바보 꽃할배 일기, #서준, #서하, #손자와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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