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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는 2002년 건강보험 재정위기로 만들어진 사회적합의기구입니다. 이 기구에서 우리 국민들이 한해 내는 보험료, 병의원이 받는 수가, 건강보험에 들어가는 급여내용과 범위가 결정됩니다. 그런데 실제로 국민들이 낸 보험료를 어떻게 쓸지 결정하는 구조에는 국민들의 의견보다는 정부의 정치적 고려, 여러 이익집단의 요구가 더 많이 고려됩니다. 이는 해외의 경우와 비교해도 많이 잘못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국민들에게 건정심과 건강보험정책결정구조의 문제점을 알리고, 대안을 마련하는 기획기사를 준비했습니다. - 기자 말

유독 우리나라만이 정부위원회 한 곳에 모든 권한을 집중해 놓고 있다.
 유독 우리나라만이 정부위원회 한 곳에 모든 권한을 집중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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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의 연간 진료비 지출은 약 58조에 이른다. 사회보험제도 중 재정지출 규모가 가장 크며 전체 국민 중 약 99%가 건강보험 가입자이다. 건강보험은 연령이나 소득규모, 근로유무와 관계없이 전 국민을 아우르는 사회연대성이 강한 제도이다.

건강보험재원은 여타 사회보험과 마찬가지로 국민들이 부담하는 보험료가 주된 재원이고 국가 일반재정도 투입이 된다. 건강보험이 공적자산인 만큼 제도운영의 절차와 방식은 당연히 투명해야 하고 의사결정도 공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입장이 반영되는 가운데 제도운영이 합리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보건의료는 전문성이 강조되는 영역으로 분류되면서 건강보험의 의사결정도 배타적인 전문가주의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건강보험료, 보험수가, 보장성 등 중요한 의사결정을 정부 관료와 전문가집단이 주도하고 있고 대부분 정부가 운영하는 위원회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건정심 통하지 않으면 정책 실행 자체가 불가능

건강보험의 대표적인 의결 기구로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가 있다. 건정심은 공급자대표(의사협회 등 의료인 직능단체), 가입자대표(근로자 및 사용자단체, 시민단체 등), 공익대표(정부기관 공무원, 학계 등)로 구성되는데 공급자와 가입자, 공익 각각 8씩 동수 배정되어 있고 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차관이다.

위원구성의 균형성이 있어 보이고 이해당사자들의 협의체와 같은 모양새나 실제로는 의사결정의 편향성을 배제하지 못하는 구조다. 먼저, 위원구성의 중립성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 공익대표를 정부가 직접 임명하며, 가입자 단체의 대표성을 정부가 임의로 규정하여 시민단체 등 일부를 친정부적 단체로 지정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어 왔다.

즉, 정부 주도의 일방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한 구조인 것이다. 특히, 건정심의 과도한 권한 행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건정심은 건강보험의 모든 사안을 최종 결정하는 단위이다. 건강보험료, 보험급여, 보험수가, 보장성을 결정하며 이외 건강보험과 관련된 정책 일체를 모두 의결한다.

건정심을 통하지 않으면 정책 실행 자체가 불가능 하다. 건정심의 존재 자체가 건강보험에 대한 행정부 독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건정심 의결 과정에 국회나 보험자(건강보험공단)등을 통한 견제장치가 없어 절대적 권한 행사가 가능한 구조이다. 그런데 58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공적자산의 운영권한을 일개 정부 위원회에 귀속시키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지 의문이다. 건강보험을 도입한 어떠한 국가들도 이런 식의 독점적 의사결정 방식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거부권 행사할 수 있는 독일 건강보험

우리나라와 같이 사회보험형 의료보장을 채택한 나라들의 경우 정부 위원회의 기능은 대부분 자문이나 심의 정도의 권한으로 국한된다. 우리나라 건정심과 유사한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는 대만(건강보험감리위원회)이나 일본(사회보장심의회 및 중앙사회보험의료협회)이  대표적이다. 관련 위원회는 의료정책의 기본방향이나 보험급여 및 수가에 대한 심의가 핵심적 역할이지 우리나라 건정심과 같이 심의·의결 권한을 모두 행사하는 경우는 없다. 

의료보험의 효시라고 일컫는 독일의 건강보험도 마찬가지다. 연방공동위원회가 대표적인 의사결정기구이나 결정 사항에 대해서는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정부의 결정권한도 제한적이다. 보험료의 경우 인상안을 마련하면 국회가 의결을 한다. 정부 위원회나 행정부의 독단적 의사결정이 가능하지 않은 구조다.

프랑스의 운영방식도 이와 유사하다. 보험료와 사회보장세 등 재원조달의 최종 결정은 의회에서 한다. 우리나라 건강보험공단과 같은 보험자조직(건강보험기금연합)이 보험료 등 재정규모의 초안을 정부에 제안하고 정부가 의회에 보고하여 결정되는 구조이다.

국가주도형 공보험 모델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네덜란드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가 보험자 역할을 수행하는 대신에 민간보험사가 보험자 역할을 담당하나, 보험료 결정에 있어서는 의회 결정사항이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위원 구성의 중립성엔 중대한 하자가 있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위원 구성의 중립성엔 중대한 하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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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의료보장을 공보험 방식으로 운영하는 국가들의 경우 보험자(건강보험공단)가 보험급여 및 가격 결정을 주관한다. 이 또한 우리나라와는 대비 되는 경우로 우리나라 보험자인 건강보험공단은 급여가격 결정권한이 없다. 건정심에서 심의·의결 되면 그만이다.

이외에도, 정부 위원회 운영에 있어 공익대표 선정은 국회승인 절차를 거치며, 위원장은 정부 관료가 아닌 공익대표에서 선출되며(일본), 공익위원 후보자에 대한 의회청문회와 거부권 행사도 가능하다(독일). 우리나라와 같이 정부의 일방적인 위원 임명이 불가능하다. 의사결정의 행정부 독점을 제한하면서 위원회 운영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강화하는 추세인 것이다.        

또한, 의사결정과정에서 이익집단의 배제 여부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 건정심은 급여수가 및 급여범위 결정에 있어 제약사, 의료공급자 등 이해당사자가 직접 의결권을 행사한다. 반면, 네덜란드는 특정 이익단체의 이해관계가 개입되지 않도록 별도의 독립된 기관(건강보험감독기구)을 운영한다. 의사결정의 왜곡과 이익단체의 로비를 배제하기 위한 장치이다.  

건강보험의 거버넌스를 새롭게 짜야

건강보험 의사결정은 국가마다 운영 구조가 상이하여 일반화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의사결정의 독점과 편향성을 배제한다는 운영원칙은 동일하다. 보험재정, 보험수가, 급여결정 등 정책 전반에 있어 보험자, 행정부, 입법기관간의 상호견제와 균등한 권한 배분이 특징이다.

유독 우리나라만이 정부위원회 한 곳에 모든 권한을 집중해 놓고 있다. 건정심은 건강보험의 권력집단처럼 군림하면서 독점적 정책집행의 온상이 되어 왔으며, 최근에는 자본의 요구를 반영한 건강보험 규제완화 조치(의약품·의료기기 건강보험 진입 완화, 신의료기술평가 유예 등)를 서슴없이 자행하였다.

행정부가 임의로 규정한 대표성을 부여 받고 의결권을 행사하는 모습이 꼴사납다. 정부편향적인 위원구성이나 정부 정책의지를 관철시키는 의사결정 방식. 이것이 건강보험이라는 공적자산의 운영원칙은 아닐 것이다. 건정심은 해체가 수순이다. 국민들은 이 같은 무소불위의 권한과 대표성을 인정한 바 없다. 공공의 가치가 민주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건강보험의 거버넌스를 새롭게 짜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김준현 기자는 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대표입니다.



태그:#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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