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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교사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우리나라에서 교사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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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교사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내 초임 시절까지 갈 것도 없이,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이렇게까지 힘들진 않았다. 교원임용시험이 사법고시와 행정고시처럼 '임용고시(이하 임고)'라는 말로 바뀌어 불리게 된 건, 어쩌면 경쟁의 치열함을 방증하는지도 모른다. 듣자니까, 졸업 후에도 대학을 떠나지 못해 도서관을 전전하는 이들 중엔 첫째가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족'이고, 그다음이 '임고족'이란다.

대학 캠퍼스의 곳곳에 '경축'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크기와 모양은 달라도 내용은 크게 둘 중 하나다. 하나는 '취업'이고, 다른 하나는 '고시'에 관련된 것이다. 사실 사법고시나 행정고시, 공인회계사 합격을 경축하는 내용은 꽤 오래된 '전통'이지만, 요즘엔 대기업에 취업한 경우와 임고까지 당당히 현수막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언뜻 사법고시와 행정고시보다 대기업과 임고와 관련된 게 더 많은 것도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현수막엔 당해 몇 명이 합격했는지 학과와 숫자만 적혀 있었는데, 요즘엔 합격자의 이름을 큼지막하게 써서 드러내고 있다. 그만큼 임고 합격자가 드물다는 뜻일 테다. 이는 임고 합격자가 직접 학교에 요청해서 내건 현수막이 아닐진대, 그의 기쁨 못지않게 학교에서도 감격해마지않음을 보여준다. 그는 곧 '학교를 빛낸 인물'의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교직을 폄훼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졸업생 중 기껏 교사 한 명 배출했다고 환호작약하는 대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교사 양성을 목적으로 한 사범대학은 이제 당해 임고에 몇 명이나 합격시켰는지가 절대적인 평가 기준이 된 듯하다. 대학생들 사이에선, 임고가 아니면 사범대학 졸업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휴짓조각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마저 회자된다.

고등학교에 대학을 홍보하는 자료에서도 사범대학의 경우에는 최근의 임고 합격자 현황이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커리큘럼과 장학제도는 잘 갖춰져 있고 교수진 역량은 어떠한지 등 정작 중요한 내용은 언제부턴가 후순위로 밀려났다. 오로지 서울대 등 명문대 진학생 수로 고등학교를 평가하고 홍보하는 방식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20대 청춘 통째로 임고에 바친 이들이 태반

연수생 중에 임용고시 3수는 기본이고, 4수, 5수도 부지기수였다. 옆자리에 있던 한 연수생은 자신은 8수 만에 합격했다고 했다.
 연수생 중에 임용고시 3수는 기본이고, 4수, 5수도 부지기수였다. 옆자리에 있던 한 연수생은 자신은 8수 만에 합격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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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 정교사(1정) 연수 과정 중 자신의 임고 경험을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듣노라니 4년 대학 공부로도 모자라 20대 청춘을 통째로 임고에 바친 이들이 태반이었다. 그런데, 30여 명 연수생 모두 그것을 두고 '미담'으로 여기기는커녕 기억을 떠올리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거듭되는 낙방으로 서른을 넘긴 다 큰 자식이 한 해만 더 뒷바라지해달라고 부모님께 손 내미는 비참한 기분을 토로할 땐, 그 연수생의 눈가에 이슬이 맺히기도 했다.

"세 차례나 연거푸 떨어지고 나서 이 길이 아닌가 싶어 포기할 때가 있었습니다. 시나브로 자존감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러나 끝내 교사가 되어 부모님께 제대로 효도 한번 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으로 다시 도전했고, 결국 이듬해 합격했습니다. 합격 소식을 전해 듣고 어머님과 부둥켜안은 채 한참을 펑펑 울었습니다."

그 말에 순간 울컥했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하나같이 담담한 얼굴이었다. 연수생 중에 3수는 기본이고, 4수, 5수도 부지기수였던 탓이다. 옆자리에 있던 한 연수생은 자신은 8수 만에 합격했다면서, 저 정도의 사연이 없는 사람은 없을 거라면서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오로지 교사를 꿈꾸며 임고에 목매단 '고시 낭인'들이 주변에 적지 않다고 말했다.

'사연'들이 많은 탓인지, 돌아보니 함께한 연수생들의 나이가 들쭉날쭉하다. 졸업과 동시에 임고에 합격한 경우라면, 군대에 다녀온 남교사도 30대 초반에 대개 1정 연수를 받게 되지만, 30여 명 중 그렇게 '앳된' 연수생은 찾아보기 어렵다. 여교사가 대개 30대 초반이고, 남교사는 마흔을 넘긴 경우도 더러 있다. 임고가 '교직의 노령화'을 부추긴다는 우스갯소리마저 흘러나왔다.

이때 한 교직과목 담당 교수는 제자들이 임고를 준비하는 과정을 오랫동안 지켜봤다면서, 합격을 위한 '공식'을 들려주었다. 대학 졸업 후 최소 3년이라는 시간과 그 기간 동안 확실히 뒷바라지해줄 수 있는 부모님의 경제력을 임고 합격의 필요조건이라고 말했다. 학원비와 용돈을 벌어가며 임고를 준비해야 하는 여건이라면, 사실상 합격이 불가능할 거라고 덧붙였다.

그 말에 연수생들은 하나같이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선, 교사 양성을 목표로 하는 사범대학 교수로서 무능하고 무책임한 발언이라는 것이다. "그럼 졸업 후 3년 동안 대학에서는 어떤 도움을 주느냐"에서부터 "사범대학의 교육 연한을 4년에서 7년으로 늘리자는 이야기냐"는 조롱이 넘쳐났다. 졸업장, 곧 2급 정교사 자격증은 발급해주었으니, 대학의 할 일은 끝났다는 걸까.

더욱이 웬만한 집안 형편이라면 4년간의 대학 등록금만으로도 가계가 휘청거릴 지경인데, 최소 3년은 더 학비를 대야 한다니,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뒤틀린 현실을 인정한다고 해도, 대학을 졸업한 장성한 자녀에게 여전히 부모님의 경제력이 필요하다고 대놓고 말하는 상황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것도 최고의 지성으로 대접받는 대학 교수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에 더욱 충격적이다.

무엇보다 사범대학 교수로서 임고에 대한 성찰이 전혀 없는 게 놀랍다. 예컨대, '현대판 음서제'라며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긴 하지만, 로스쿨은 수많은 '고시 낭인'을 배출해온 사법고시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된 사회적 합의라는 데에 의의가 있다. 임고도 사법고시의 폐해와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는데도, 과문한 탓인지 대학에서는 변화의 미풍조차 느낄 수 없다.

그런 현실에도 눈감은 마당에, 그들에게 임고가 인성을 갖춘 실력 있는 교사를 선발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일 수밖에 없다. 교사를 꿈꾸며 우수한 성적으로 사범대학을 졸업하고도 십중팔구 백수가 되는 세상에, 합격 '공식' 운운하는 건 참으로 뻔뻔한 짓이다. 기득권에 안주해 시류에 영합하고 학문적 성찰이 멈춰버린 대학교수는 더 이상 지식인이라 불릴 자격이 없다.

그렇듯 제자들의 임고를 향한 맹목적인 경쟁에는 일말의 책임도 느끼지 못하면서, 대학의 학사 구조를 개편하려는 일방적인 정부의 프라임 사업과 연구 실적에 따른 성과급 연봉제의 폐해는 침 튀겨가며 강조했다. 그 주장엔 백 번 동의하지만, 교육자로서의 진정성은 의심할 수밖에 없다. 과연 그가 제자뻘 젊은이들에게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을 못 참는다'며 손가락질할 자격이 있을까 싶다.

한 연수생은 그토록 바랐던 교단에 섰지만, 학교 내에서 비일비재 벌어지는 폐쇄적이고 비민주적인 일들에 절망했다고 한다. 그러나 학교장 앞에서 감히 문제를 제기할 엄두는 나지 않더라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중견 교사들은 어느덧 그릇된 관행에 찌들어버린 탓이고, 갓 부임한 신규 교사들은 최근 겪은 임고의 고통을 떠올리며 누구든 주저하게 된다는 것이다.

"TV 광고에서야 젊은이들에게 도전과 용기를 지니라고 떠들어대지만, 천신만고 끝에 교사가 된 이들에겐 그건 남 이야기일 수밖에 없어요. 아무리 옳은 일이라 해도, 교사직을 내걸어야 한다면 어느 누가 나서겠어요. 정부든 대학이든 임고가 쏟아내는 '고시 낭인'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건, 어쩌면 그것이 순응하는 인간을 길러내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여기기 때문인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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