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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이루마 ;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일정의 마지막 공연이 성황리에 열렸다
▲ 이루마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공연 피아니스트 이루마 ;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일정의 마지막 공연이 성황리에 열렸다
ⓒ 마인드테일러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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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가수 못지 않은 환영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바람도 불었다. 멜번의 겨울다운, 그래서 전혀 놀랍지 않은 날씨였다. 이런 날은, 멜번 시내 상인들 얼굴이 어두워진다. '불금'에도 시내가 한산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7월 29일 금요일 밤, 멜번 시내에 위치한 MCEC (MelbourneConvention and Exhibition Centre) 근처는 교통체증이 생길 정도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리고 오후 7시 반, 플레나리 홀(Plenary Hall)의 3500개 객석은 빈자리 하나 없이 꽉 메워졌다. 객석의 불이 서서히 어두워지고, 무대에 파란 빛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며 셔츠에 편안한 스웨터를 덧입은 남자가 등장해 꾸벅 인사를 하고 바로 피아노 앞에 앉았다. 'Maybe'와 'Love'로 3500 관객을 한번에 매료시킨 그가 첫 연주곡이 끝나자 마이크를 잡았다.

"흠… 비가 오네요. 네, 비가 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작곡가이며 피아노를 치는 이루마 입니다."

따뜻함이 이미 가득 묻어 배어 나오는 목소리에 정확한 발음의 영어로 그가 첫 인사를 건넸다. 관객들은 이미 감동에 물들기 시작한 그 기분을 실어 뜨거운 박수로 그를 환영했다. 객석 여기 저기서 약간은 서툰 발음으로 "이루마 오빠~ 싸랑해요"라고 환호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K POP 가수 못지 않은 환영을 받고 있는… 그렇다. 피아니스트 이루마의 호주 투어 공연, 아델레이드 페스티벌 시에터에서 7월 26일에 가진 첫 콘서트에 이은 두번째 도시 멜번의 공연이었다.

'2016 Kiss the Rain Live in Australia'라는 타이틀로 열린 이번 호주 투어는 이미 3 개월 전부터 음악을 사랑하는 호주인들은 물론,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그의 곡들에 친숙해 온 동양권 팬들의 기대 속에 화제가 되고 있었다.

다섯 살에 피아노를 시작해 영국에서 클래식과 모던 음악, 그리고 작곡을 공부한 이루마는 한국 국내보다도 오히려 외국에 더 많은 팬들을 갖고 있다. 지난 2014 년 새 앨범 홍보를 위해 호주를 찾았을 때도 TV에 출연하는 등 강한 인상을 남긴 바 있었던 이루마의 콘서트이니, 전석이 매진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생각날 때 치고, 곡이 떠올라도 치고... 음악은 삶 그 자체

멜번 공연 하루 전날 현지 언론 50 여 명이 모인 가운데 기자 회견이 열렸다.
▲ 피아니스트 이루마 기자 회견 멜번 공연 하루 전날 현지 언론 50 여 명이 모인 가운데 기자 회견이 열렸다.
ⓒ 스텔라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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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를 하루 앞두고 미리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루마씨는 "호주를 처음 방문한 것은 아니지만, 앨범 홍보를 위해 짧은 방문을 했었던 것과는 물론 느낌이 아주 다르다"며 기대를 나타내기도 했다. 

자신의 음악 세계와 평소 생활에 대한 각국 매체의 기자들에게 일일이 정성스럽게 답변을 했는데 평소에는 어떤 음악을 듣느냐는 질문에 "락 음악을 들어요. 제 속에 라커 이루마가 살고 있어요"라고 답했다.

타고난 재능이 물론 중요하겠지만 연습도 무시할 수 없을텐데 연습에 얼마만큼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물어 봤다.

"저는 연습 안 해요."

그가 의외의 답을 내 놓았다.

"따로 연습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인데요. 하루 종일 피아노를 칠 때도 있어요. 그냥 생각날 때 치고, 곡이 떠올라도 치고 습관처럼 피아노 앞에 앉고…"

설명을 덧붙인다. 그저 음악은 삶 그 자체…라고 이해하면 되겠냐고 다시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기자회견장을 찾은 말레이시아 신문의 한 젊은 여성은 모두 영어로 대화를 하는 가운데 "안녕하세요 이루마 오빠…"라며 한국어로 질문을 시작했다. 특이하게도 이루마씨가 다른 기자들을 위해 그녀의 말을 영어로 동시 통역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여성은 "아… 제가 여기서 영어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건 아는데요. 저는 이루마 오빠에게 말하고 싶은 이 내용을 한국어로 적어서 지난 2주 동안 열심히 연습했으니 이해 해 주세요"라고 영어로 설명한 후, 다시 한국어로 이어나갔다.

오직 이루마의 곡을 피아노로 연주하고 싶어 뒤늦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1 년 여 만에 드디어 자신이 좋아하는 이루마의 음악들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해 모두의 박수를 받았다. 곳곳에 숨어 있는(?) 이루마씨의 열렬한 팬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예였다.

그렇게 콘서트 전 일정을 다 마친 이루마씨가 준비해 내 놓은 이날 콘서트는 엄청난 감동을 수많은 관객들에게 하나하나 선물한 힐링의 시간이었다.

적당한 간격으로 자신이 연주하는 곡에 대한 설명을 곁들이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제주도 여행길에 바람과, 흔들리는 나뭇잎과 햇살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왔다며, 그 영감으로 곡을 썼다는 'Dance'를 듣는 동안 관객들은 똑같이 가벼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나뭇잎 그리고 그 사이로 스며드는 반짝이며 부서질 햇살을 함께 보고 있었다.

이제 겨우 여덟 살 된 딸이 결혼을 하는 날, 연주해 주겠다는 생각으로 썼다는 'Loanna'는 한 가정을 따뜻하게 지키는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며 듣고, 장인이 세상을 떠나셨을 때, 이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는 'Prelude in gminor'는 잔잔한 슬픔을 전해주고 있었다.

TV,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고 그래서 단연코 인기가 많은 'River Flows in You)', 'Kiss the Rain' 그리고 이루마씨가 이번 투어 공연에서 가장 들려 주고 싶어 한 곡 'Reminiscent'는 관객들의 감동을 극으로 몰고 갔다.

"오늘 공연은 콘서트가 아닙니다, 회상 여행입니다"

호주의 3 도시에서 차례로 열린 공연은 모두 성황을 이루었다.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이루마.
▲ 이루마 호주 공연 곳곳에서 성황 호주의 3 도시에서 차례로 열린 공연은 모두 성황을 이루었다.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이루마.
ⓒ 마인드테일러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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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오늘 하는 것은 콘서트가 아닙니다."

공연을 시작하며 이루마씨는 그렇게 말문을 열었었다.

"오늘 여러분은 회상 여행을 떠나시길 바랍니다. 뭐… 사랑, 가족, 친구… 여러가지 다양한 기억들을 갖고 계시죠?  그걸 회상하며 기억 여행을 떠나 주세요. 저는 그 배경 음악을 연주해 드릴 겁니다. 아… 괜찮아요. 제 음악은 늘 그렇게 TV나 영화 또 드라마에서 배경음악으로 쓰이니까요. 자, 그럼 그렇게 같이 여행을 시작할까요?"

그의 그 권유 때문이었을까?

콘서트 내내 아름다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수많은 관객들은, 그 숫자보다 훨씬 더 많은 추억들로 여행을 떠났던 것이 분명했다.

첼리스트 김영민씨와의 협연, 관객 중 한 명을 무대에 올려 즉석에서 연주를 함께  해 보는 깜짝 이벤트… 콘서트 순서가 차례로 지나면서 관객들은 "주무셔도 괜찮다"고 한 이루마씨의 말과는 달리 점점 더 행복해 하며 정신이 맑아지고 있었다.

끝나지 않는 박수에 세 번이나 다시 무대에 나와 앵콜곡을 연주하고 인사를 해야 했던 이루마씨는 7월 31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다시 2700 관객들을 만나 똑같은 감동을 선물하며 호주 투어 공연을 마쳤다.

"내 음악을 듣는 분들이 위로를 받고, 추억을 회상하고, 그래서 또 새로운 힘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큰 몸짓이 아니라 잔잔하게 그렇게 늘 옆에서 함께 해 드리고 싶은 거죠."

호주 공연은 자신에게도 감동을 줘서 정말 오래 또 하나 행복한 추억으로 기억할 것 같다고 그는 온 힘을 다 쏟은 공연을 마친 소감을 전했다.

그의 아름다운 음악들을 배경 삼아 추억 여행을 끝내고 공연장을 나서니 거짓말처럼 비가 그쳐 있었다.

Kiss the Rain.

멜번 공연 - 플레나리 홀
▲ 피아니스트 이루마 멜번 공연 - 플레나리 홀
ⓒ 마인드테일러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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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키스를 받은 빗줄기들마저도 행복하게 자신들의 회상 여행을 떠난 건 아닐까… 잠시, 소녀시절로 돌아간 듯 감상적인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게 다 이루마의 공연 Kiss the Rain 때문이라는 느낌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루마가 피아노를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인데, 어쩌면 피아노가 이루마를 참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갔다. 그의 콘서트가 그것을 보여줬다. 피아노가 사랑하는 피아노 작곡가, 연주가, 그가 바로 이루마일 것이라는.

아름다운 공연, 아름다운 밤이었다.

덧붙이는 글 | 한국인 피아니스트로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이루마 씨의 성공적인 공연은 현지에서 살아가는 한인들에게도 커다란 힘을 주었다. 이 기사는 약간의 수정을 거쳐 '멜번저널'(8월 5일 발행)에 중복게재 됩니다.



태그:#이루마, #KISS THE RAIN, #이루마 호주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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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이민 45 년차. 세상에 대한 희망을 끝까지 놓지 않고 그런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기사를 찾아 쓰고 싶은 사람. 2021 세계 한인의 날 대통령 표창 수상.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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