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 있소!"

캡콤(주)의 게임 <역전재판>은 아직도 내가 즐겨하는 게임이다. <역전재판>은 직접 변호사가 되어 재판에 참여하면서 증인들을 심문하고 재판을 유리하게 이끌 증거들을 찾아 무죄를 받아내는 것이 목적인 게임이다. 현장을 수색하면서 재판을 뒤집을 만한 증거를 찾는 추리적인 요소도 매력적이지만 가장 큰 매력은 증인들의 말에서 논리적인 허점을 찾아내는 것, 그리고 무죄인 의뢰인을 훌륭히 변호해내는 것이다.

사실, 내가 <역전재판>을 아직까지 즐기는 데에는 완전히 버리지 못한 변호사에 대한 갈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법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죄인에게 처벌을 내리는 법은 만능으로 보였고, 때문에 그 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존재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한때는 '법무부장관', '검사' 등을 꿈꾸며 법조계 꿈나무라 외치며 지냈다.

그러던 중 나는 법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나올만큼 법은 강자에게는 약했고 약자에게는 강할 때가 많았다. 법을 정의롭게 적용한다고 믿었던 검사가 성추행을 했다는 소식을 들리기도 하고 뇌물을 받았다는 뉴스도 나온다. 완벽하리라 믿었던 판사도 인간이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을 볼 때면 법에 대해 많은 의문이 들곤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변호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법이 완벽하지 않음을 깨닫게 될수록 억울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곁에서 힘든 싸움을 이어오는 변호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변호사들도 완벽한 존재는 아니었다. 열심히 검색하고 정보를 찾으며 마주한 변호사들 중에는 돈만 준다면 무죄로 만들어 준다는 악명 높은 변호사들도 있었다. 또한, 파렴치한 살인자들까지도 변호를 해야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래도 막연히 변호사라는 존재에 대해서 갈망을 품고 지내게 되었다.

하지만, 입시의 장벽은 쉽지 않았고 영어와 사회를 유난히 못했던 나는 이과를 진학하게 되었다. 그렇게 변호사라는 직업은 나와는 점점 멀어졌고 잊히는 듯했다.

군대에서 만난 '변호사'

 그런 의미에서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나온 이 대사는 전율이 돋게 만들었다. 죽은 코끼리는 다시 살릴 수 없다는 한마디는 극 중의 배심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도,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도 충분했다. 그렇다 법은 완벽함을 추구해야 한다. 법이 대충할 마음을 먹을수록 그물은 커지고 잘못된 사람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나온 이 대사는 전율이 돋게 만들었다. 죽은 코끼리는 다시 살릴 수 없다는 한마디는 극 중의 배심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도,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도 충분했다. 그렇다 법은 완벽함을 추구해야 한다. 법이 대충할 마음을 먹을수록 그물은 커지고 잘못된 사람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 ⓒ SBS


결국 공대를 진학하고 공부를 열심히 할 의미를 잃은 채 시간을 보내던 나는 군대에 갔다. 군대는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별로인 공간이었고 그 안에서 보내는 시간은 느리고 무의미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보게 된 드라마가 있었다. 바로 SBS에서 방영된 <너의 목소리가 들려>였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국선변호사인 장혜성(이보영 분)과 타인의 마음을 들을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박수하(이종석 분)가 만나면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풀어나가는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이다. 힘들게 변호사가 되고도 88만 원의 작은 돈을 받으면서 형식적으로만 변호를 맡는 혜성이 수하를 만나 진정한 변호사가 되어가는 과정은 정말 흥미로웠다.

특히, 국선변호사라는 직종이 신선했다. 이전에 변호사를 구하기 어려운 경우에 국선변호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국선변호만을 주업으로 삼는 국선변호사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게다가, 내가 관심있는 분야는 주로 돈 많은 사람들의 변호가 많은 경제나 노무 등이 아니라 형법 분야였고 국선변호사의 경우에 형법에 관련된 변호가 많다는 것이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또한, 국선변호를 맡겨야 하는 경우는 변호사를 선임할 돈이 없는 어려운 상황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억울하거나 어려운 사람을 변호하고 싶었던 내 목적과도 일치했다.

 SBS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지난 2013년에 방영된 18부작이다. 웰메이드 법정 드라마로 손꼽히는 작품, 이미지는 당시 출연했던 이보영의 모습.

SBS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지난 2013년에 방영된 18부작이다. 웰메이드 법정 드라마로 손꼽히는 작품으로 지금 봐도 충분히 재미있다. ⓒ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정말 인생 드라마라고 부르고 싶은 드라마였다. 제대로 챙겨보기 어려웠지만 틈틈히 시간이 날 때마다 나는 드라마를 보고 또 봤다. 특히 작가의 손에서 탄생한 명대사들은 배우들을 만나 환상적으로 다가왔다.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

"물론 스무개가 모자르다고 코끼리 퍼즐이 사자퍼즐이 되지는 않죠. 그러나, 그 스무개의 퍼즐이 없기 때문에 코끼리가 앞발로 사람을 밟아죽였는지 아니면 공을 차는 건지 알 수 없을수도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스무개의 퍼즐 없이 앞발이 채 맞춰지지 않은 퍼즐을 보며 이 코끼리는 앞발로 사람을 밟아 죽였으니 죽이는 게 마땅하다는 판결을 내리면 어떻게 할까요? 그리고 그 코끼리를 죽이고 난 후 나머지 스무개가 맞춰졌을 때 그 코끼리의 앞발 아래에 사람이 아닌 공이 있었다면요? 죽은 코끼리는 절대 다시 살릴 수가 없습니다."

용의자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다 보면 확정적인 증거가 부족한 경우가 있다. 그 경우에 경찰과 검찰은 약간의 조작만 있다면 용의자를 확실히 잡아 넣을 수 있다는 매혹적인 유혹에 빠지게 된다. 고작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범인을 놓치는 것보다는 약간의 편법을 사용하더라도 확실히 잡는 것이 좋아보일 수 있다. 하지만, 9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단 한명의 억울한 사람을 잡아 넣지 않아야하는 것이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증거는 적법한 절차에 의해서 수집되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과도한 금액이 오가거나 했을 때 제대로 된 증거로 인정받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기 위해 끝까지 완벽한 진실을 추구해야하는 것이 법을 다루는 사람들의 당연한 도리이다.

그런 의미에서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나온 이 대사는 전율이 돋게 만들었다. 죽은 코끼리는 다시 살릴 수 없다는 한마디는 극 중의 배심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도,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도 충분했다. 그렇다. 법이 대충할 마음을 먹을수록 그물은 커지고 잘못된 사람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

또 다른 장면을 꼽아보자면 파지를 줍다가 절도죄로 기소 당한 할머니의 사연이 인상 깊었다. 비록 파지일지라도 훔친 것은 훔친 것이었고 절도죄를 피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변론은 정말 아름다웠다. 단지 서류만으로 할머니의 행동을 평가하지 않았다. 그는 직접 파지를 모았고 끌고다녔다. 그리고 그것을 가격으로 매기며 할머니가 파지를 모으는 행위가 얼마나 삶에 직결되어 있음을 보여냈다. 변호는 죄 없는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변호 받을 권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의뢰인의 죄가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진솔히 보여주는 것. 그것도 나름의 아름다운 변호였다. 할머니는 분명 파지를 훔치긴 했지만 어째서 훔쳐야만 했는지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변호를 보면서.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누군가를 변호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드라마였다. 혜성과 수하의 사랑이야기도 달콤했지만 사랑보다 혜성과 관우(윤상현 분)가 누군가를 변호할 때, 절박한 최후의 변론이 울려퍼질 때 몸에 전율이 흘렀다. 정말 미치도록 변호사가 되고 싶다 외치고 싶어지는 그런 전율이었다.

내 삶의 좌표가 되다

 어떤 방식이든 평범한 약자들의 곁에서 함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힘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그것이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드라마가 주었던 내 삶의 좌표다.

어떤 방식이든 평범한 약자들의 곁에서 함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힘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그것이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드라마가 주었던 내 삶의 좌표다. ⓒ SBS


너무 감성적인 이야기만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보는 내내 마음을 울리고 감성적으로 만들어주는 드라마였다. 변호사들이 어떻게 현장에 나가고 증거를 모으는 것보다 의뢰인을 위해 최선을 다해 변호하는 그 모습이 더 좋았던 드라마였다. 만약 변호사가 된다면 어떤 마음으로 의뢰인을 믿고 변호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드라마였다. 그리고 그것은 나름의 내 삶의 좌표가 되었다.

아직도 나는 변호사가 되고자 하는 길을 걷고 있지는 못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변호사가 될 일은 없을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변호사를 꿈꾸면서 생각했던 것들과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보며 가졌던 마음들은 나에게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알려주었다.

직접 말하기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약자를 위해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은 선한 약자는 아니었다. 평범한 약자들을 위해 살고 싶다라는 마음이었다. 변호사를 꿈꾸면서 유죄인 사람도 변호해야 하는가 고민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보면서 확실히 느꼈다. 유죄인지 무죄인지가 전부가 아니다. 의뢰인을 믿어주는 과정, 그들을 변호하면서 그들에게도 도움주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려주는 과정은 비록 그들이 죄가 있다고 하더라도 다음에는 죄를 짓지 않도록 돕는 중요한 것이었다. 그것이 법이 존재하고 변호사가 존재하는 이유였다. 그리고 함께하고 믿어주는 것은 변호사뿐만  아니라 많은 약자들에게 필요한 가치있는 일이었다.

이 땅위에도 정말 많은 민중이라고 불리는 약자들이 있다. 청도에서 만난 할머님들은 자신의 평생을 함께한 땅을 파괴하는 송전탑과 맞서 필사적으로 싸우고 계셨다. 손자 같다며 먹을 것을 챙겨주시는 할머님들을 보면서 힘을 드리러 갔다가 오히려 힘을 받고 와버렸다. 그리고 우리가 떠난 뒤 곧바로 경찰이 들이닥쳐 할머니들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억압했다. 우리는 가던 발걸음을 돌려 할머님들의 곁으로 다시 왔고 경찰들을 막아섰다. 그리고 결국 경찰에게 사과를 받아냈다. 처음으로 받아보는 사과라며 눈물 흘리시던 할머님들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2014년 4월 16일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도 있었다. 우리는 국민이 죽어가는 것을 무력히 지켜보아야 했다. 국민을 보호해야할 국가는 보이지 않았다. 이후, 유가족들은 세월호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수립을 위한 특별법을 시행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고 단식농성을 진행하기도 했다. 우리집에는 아직도 세월호 유가족분이 직접 달아주신 노란리본이 있다. 힘내보자며, 따라오라며 직접 달아주시던 손의 온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이 밖에도 참 많다. 함께 문화제에서 춤을 췄던 밀양의 할머님들, 고공농성 중이라 제대로 얼굴도 뵙지 못했던 스타케미컬 노동자분들, 아슬아슬한 광고판 위에서 농성 중이던 기아자동차 노동자분들, 그리고 이제야 직접 고용된 우리학교의 청소 노동자분들 등 이 땅에는 싸워야만 하는 약자들이 정말 많다. 그동안 많이 만났고 함께 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들의 곁에서 내가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곁에서 이야기를 듣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묵묵히 함께 하는 것 정도였다. 곁에서 들었던 많은 민중들의 외침은 비슷했다. "사람답게살고 싶다"라는 외침이었다. 나는 함께하면서 사람다운 게 무엇인지를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앞으로도 변호사가 되지는 못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방식이든 평범한 약자들의 곁에서 함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힘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그 속에서 따뜻함을 느끼고 사람답게 살고 싶다. 그것이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드라마가 주었던 내 삶의 좌표다.

 SBS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지난 2013년에 방영된 18부작이다. 웰메이드 법정 드라마로 손꼽히는 작품, 이미지는 당시 출연했던 이보영의 모습.

한 편의 드라마가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기도 한다. 나에게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잊을 수 없는 드라마이다. 내가 변호사가 되든, 되지 못하든 말이다. ⓒ SBS



덧붙이는 글 '내가 사랑한 OOO' 공모글입니다.
너목보 이보영 이종석 변호사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