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에서 일하는 '조선소맨'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그림자들의 섬>(배급 시네마달)이 오는 25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에 시네마달은 ['노동자'라는 이름은 언제부터 불온해졌나]라는 기획 아래 기고문을 받았다. 그 두번째 순서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박점규 집행위원의 기고문을 싣는다.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은 '장그래 살리기 운동본부' 대변인이자 한진중공업,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밀양 ‘희망버스’ 기획단, 전 전국금속노동조합 비정규국장이다. 또 다수의 매체에서 칼럼을 연재했다. [편집자말]
 다큐멘터리 영화 <그림자들의 섬> 스틸컷과 포스터

자본가들에 '하청'과 '자본'은 도깨비방망이이자 요술램프다. 노동자들은 여전히 죽음의 위협과 가난 속에 있다. ⓒ 노순택


6월 23일 에어컨을 고치던 삼성전자서비스 수리기사가 난간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5월 28일 서울지하철 구의역에서 안전문을 고치다 목숨을 잃은 열아홉 하청노동자의 장례를 치른 지 보름도 지나지 않았다. 을지병원으로 달려갔다. 어처구니없는 죽음, 가족과 친지들의 통곡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동료 기사들이 도시락도 먹지 못하고 떠난 고인의 영정에 절을 올렸다. 동료들은 "누가 갔어도 죽었을 것"이라며 울먹였다. 고인이 두 아이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 날, 삼성 수리기사들은 "비 온다고 에어컨 다음날로 넘기지 마세요, 무조건 조치할 수 있으면 조치 당부드립니다"라는 문자를 받았다. 비가 와도 지체 없이 일을 처리하라는 압박이었다.

삼성의 옷을 입고 삼성의 지시에 따라 삼성전자 제품만 고치는 수리기사들은 삼성 소속이 아니다. 전국 187개 서비스센터 중에서 정규직 수리기사가 일하는 직영점은 8개뿐이다. 179개 센터 6000명의 수리기사는 모두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그들의 월급은 155만 원+건당 수수료다. 손기술 좋은 기술자들을 가장 싼 값에 부려먹고, 일하다 죽어도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아도 되는 '하청'은 자본에겐 도깨비방망이다.

지난 1월, 삼성전자 갤럭시 부품을 만드는 부품사에서 젊은이들이 메탄올에 중독돼 잇따라 실명했다. 5명 중 4명이 시력을 잃었고, 한 명은 뇌 손상을 입었다. 모두 파견노동자였다. 삼성의 물량이 많아지면 파견회사에 전화를 걸어 사람을 보내달라고 하고, 물량이 줄어들면 나오지 말라고 하면 된다. 일회용 종이컵보다도 더 쉽게 쓰고 버리는 '파견'도 사장님들에겐 요술램프다.

'하청왕국' 대한민국의 민낯

1997년 전까지만 해도 학교를 졸업하고 일자리를 구하면 대부분 정규직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자본은 정규직이 일하던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20년의 세월이 지나 이제 학교를 졸업하고 노동시장에 나가면 대부분이 비정규직 일자리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소장의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3월 기준 비정규직 노동자는 839만 명으로 임금노동자의 43.6%였다. 그런데 839만 명에는 정규직으로 분류되는 사내하청 노동자와 자영업으로 분류되는 특수고용노동자가 빠져있다. 지난해 300인 이상 대기업의 고용형태공시 결과 간접고용 노동자(소속 외 근로)는 93만 명으로 전체의 20%를 차지했다. 노동계는 300인 이하 사업장을 합하면 150~2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지난해 11월 국가인권위원회의 '민간부문 비정규직 인권상황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특수고용노동자 규모는 229만 6775명이었다. 레미콘 기사 51만 명, 보험설계사와 자동차 판매원 등 영업종사자(47만 9900여 명), 학습지 교사(24만 8700여 명), 퀵서비스·택배기사(12만 6300여 명) 순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사내하청, 특수고용직을 합하면 대한민국 비정규직 노동자는 1200만 명에 달한다는 뜻이다.

조선소는 '대한민국 하청왕국'의 민낯이다. 7월 1일 정부가 발표한 2016 고용형태공시 자료에 따르면 조선소 간접고용 노동자(소속 외 근로)는 현대중공업 4만4652명, 대우조선해양 3만5497명, 삼성중공업 3만428명이었다. 배를 짓거나 해양플랜트를 만드는 조선소 노동자의 70~80%가 하청노동자인 나라. 수주가 줄어들었다는 이유로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3만 명이 넘는 하청노동자가 잘렸고, 앞으로도 5만 명 이상이 해고될 예정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그림자들의 섬> 스틸컷과 포스터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방패막이'가 된다. 결국 노조로 단결하는 1사 1노조 운동은 실패로 돌아갔다. ⓒ 시네마달


2008년이었다. 한진중공업을 방문했다. 당시 한진중공업에는 정규직 1500명, 사내하청 노동자 4000명이 일하고 있었다. 노조는 더는 사내하청 노동자를 방치하지 말자며 정규직 노조에 비정규직을 가입시키는 1사 1노조 운동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자 회사는 "1사 1노조 하면 우리 회사 망한다"며 불안을 조장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 고용의 '방패막이'로 여기던 정규직의 의식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결국,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나의 노조로 단결하는 1사 1노조 운동은 중단됐다. 2년 뒤 회사는 사내하청을 대량 해고하고 이어 정규직 정리해고에 나섰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한진중공업 사내하청 대량해고에 맞서 단식농성을 벌였고, 2011년 1월 85호 크레인에 올라 정리해고를 철회시키고 309일 만에 살아서 땅을 밟았다.

사람의 자리를 이윤과 효율이라는 '돈의 논리'가 잡아먹은 외환위기 20년, 일터의 하청화라는 좀비를 퇴치해 사람을 되살리는 싸움이 절실하다. 하나, 정치를 바꾸는 일이다. 구의역 참사 이후 서울시는 안전업무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방정부에서부터 상시업무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정치를 바꿔 일터의 하청화라는 물길을 터놓은 파견법, 비정규직법을 없애야 한다. 둘, 정규직이 노조 문을 열어 비정규직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과 연대로 비정규직 정규직화 운동에 나서는 것이다. 셋,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해 정규직 전환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모두 쉽지 않은 길,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그림자들의 섬> 스틸컷과 포스터

다큐멘터리 영화 <그림자들의 섬> 포스터. ⓒ 시네마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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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들의 섬 기고 하청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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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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