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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숙 전 총신대 강사는 학교측의 부당한 조치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제소해 부당해고 판정을 받아냈다.
 강호숙 전 총신대 강사는 학교측의 부당한 조치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제소해 부당해고 판정을 받아냈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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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신교 교회는 말 그대로 '남성 일색'이다. 보수 성향이 강한 장로교단일수록 남성의 교권주의는 맹위를 떨친다. 이 같은 경향은 예비 목회자 양성소인 신학교라고 예외가 아니다. 신학 강단 역시 남성의 전유물로 인식됐다.

강호숙 박사는 남성 일색의 신학계에서 군계일학과도 같은 존재다. 보수 성향이 강한 장로교단인 예장합동 교단 산하 총신대학교(아래 총신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 학교에서 여성학을 강의했다. 또 기독교계 각종 현안에 대해 여성의 시선으로 활발히 목소리를 냈다. 

강 박사는 올해 2월 황망한 일을 당했다. 같은 학교 박아무개 교수와 함께 석연찮은 이유로 강의에서 배제된 것. 2015년 12월 박아무개 교수는 이 학교 여성총동문회 송년회 대표기도에서 여성안수를 언급했다. 박아무개 교수의 기도는 이랬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목사 안수를 받지 못하여 여러 가지 사역에 제한을 받는 현실을 주님께서는 잘 아십니다. 이 시간 간절히 바라오니 속히 이 교단에서도 여성들에게 안수가 이루어지게 하여주옵소서."

마침 이 자리엔 김영우 총장이 있었다. 김 총장은 "준비해온 설교를 대체하겠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진 설교에서 '여성안수는 안 될 말'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이후 박아무개 교수는 강의에서 배제됐다. 강 박사도 마찬가지였다.

강 박사는 학부에서 '칼빈주의와 신앙' '현대사회와 여성', 대학원에서 '한국사회와 여성문제'를 강의했다. 그런데 학교 측은 개강이 목전인 시점에서 돌연 개설 유보 및 폐지 조처를 했다. 여성학 관련 두 과목은 학교 측이 구두로 폐지를 알려왔다. '칼빈주의와 신앙'은 강의계획서까지 입력했지만 개강을 불과 나흘 앞둔 시점에서 폐지했음을 구두로 통보했다. 강 박사는 이 일이 여성안수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학교 측의 입장과 맞닿아 있다고 봤다.

학교 측에 해명을 요구했다. 그 과정에서 교직원을 통해 '김 총장이 강의 배제에 관여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김 총장은 거듭 "관계자들과 이야기하라"면서 해명을 회피했고, 학교 측은 규정상 하자가 없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총신대는 지난 5월 교무지원처장 명의로 답변서를 내놓았다. 학교 측은 이같이 주장했다.

"대학 시간강사에 관한 규정 제3조(해촉)에 따르면, 시간강사가 연속하여 3년, 통산 5년 이상 계속하면 해촉할 수 있게 되어 있는 바 강호숙 강사는 2009년부터 시간강사를 하였으므로 이미 동 기간을 초월(통산 7년)했다."

학교 측은 노동위에서도 "대학 시간강사에 관한 규정에는 위촉기간이 명시돼 있지는 않지만 4대 보험을 학기별로 가입하고 있는 사실과 대학의 관행을 고려할 때 위촉 기간을 한 학기로 봄이 타당하며, 이에 따라 강 박사에 대한 위촉기간은 2015년 2학기에 종료됐다"는 논리를 폈다.

강 박사는 학교 측의 해명을 수긍할 수 없었다. 일단 자신은 2009년부터 2015년까지 1학기 강의만 맡아왔고 그래서 실제 강의한 기간은 3년 6개월에 불과하다고 봤다. 또 학교 측이 성차별을 이유로 여성주의 관점에서 강의하는 자신을 배제했다고 판단했다.

결국 강 박사는 언론 및 국가인권위 등 관련 기관에 자신이 당한 일을 알리고 시정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노력은 작은 결실을 맺었다. 지난 5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아래 노동위)가 부당해고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노동위 판결이 난 다음 날인 지난 6일, 강 박사와 수원 모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노동위, '부당해고 인정'... 학교 측 "재심 신청할 것"

강 박사는 여성의 미덕이 침체된 한국교회에 활력소가 되리라고 내다봤다.
 강 박사는 여성의 미덕이 침체된 한국교회에 활력소가 되리라고 내다봤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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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 배제 이후 6개월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매우 분주했습니다. 학내에서 '여성 시간강사를 불법해고하는 건 아무 일도 아니다'라는 사고가 팽배하다 보니 학교가 여성 후학들에게도 함부로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용기를 내어 언론에 알렸습니다.

이와 함께 여성학회와 기독교 시민단체인 교회개혁실천연대에서 '보수교단 내 성차별적 설교'와 '남녀파트너십의 필요성'에 대해 발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기독인문학 아카데미에서 '여성의 눈으로 성경 읽기'와 '기독교와 여성리더십' 강의를 했으며 신문고, 국가인권위원회, 노동부를 통해 총신대의 성차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왔었습니다."

- 유사 사례의 경우는 대개 복직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박사님은 복직보다 학교 측의 사과를 요구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부당해고 제소할 땐 '구제신청' 즉, 복직신청으로 했죠. 제 사건의 쟁점은 첫째, 학교가 2016년도 1학기 강의 폐쇄 조치를 한 일이 해고에 해당하는지 여부였고 둘째가 해고에 해당한다면 그것이 정당하냐 여부였습니다.

학교 측은 저를 시간강사로 위촉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당해고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논리를 내세웠습니다. 세 차례 정도 저의 이의 제기와 학교 측의 답변이 오가면서, 학교는 저에게 성차별도 없었고 부당해고도 아니며, 강사의 교체·변경은 학교의 관행이라고 주장했어요.

전 총장에게 부당해고 사유에 대한 답변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냈습니다. 이때 전 '총신에서 강의하지 않아도 좋으니 여성 후학들의 진로와 처우를 개선해주고 성차별 해소에 힘써주시길 바랍니다'고 했어요. 이런 이유로 부당해고 인정을 받아내는 일이 급선무이며, 향후 학교 내 만연한 성차별을 외부적으로 알리려면 복직보다는 금전 보상으로 바꾸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심판위원회는 화해를 권유했어요. 그러나 학교 측은 거절했지요. 이러던 차 서울지방노동위원회(아래 노동위)가 지난 5일 근로관계가 성립한다고 보아 부당해고를 인정'한다는 판결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이 같은 판단은 학내 성차별이 인정된 거나 다름이 없다고 봐요. 또 향후 시간강사, 특히 여성강사 처우에 있어 좋은 선례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앞으로 집필과 발제, 강의 등을 통해 총신대에서 남녀평등이 이뤄지며 여성 후학들이 기독교 여성리더로서 당당하게 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노동위의 판단에 대해 총신대 측은 '재심을 신청하겠다'는 입장이다. 총신대 기획평가팀 박아무개 팀장은 12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이같이 전했다.

"강 박사 개인의 문제가 아닌 시간강사 전반에 관련된 문제다. 강 박사 측은 임용 시점을 강의계획서 입력 시점이라고 보았고, 노동위는 강 박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그런데 3월 셋째 주가 수강신청 정정 기간인데 이때 수강인원 미달로 폐강돼 강의를 못 하는 분들이 나온다. 노동위 판단대로라면 이분들에게도 학교가 급여를 지급해야 한다. 이에 상급기관인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여성 성직자, 개신교 전통에 긍정적 영향"

- 지난 5월 학교 측은 공문을 통해 입장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공문엔 "강호숙씨가 본인의 신학과 신앙의 부모와 같은 우리 대학을 상대로 각종 언론과 정부기관, 노동위원회를 통해 본인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점이 명확하다"고 적었죠.
"총신대 신학생 모임인 '한맘신학과 학생회'에서 여성강사 부당해고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었어요. 그러자 학교 측은 공문으로 여성 탄압 주장은 사실무근이며, 제가 오히려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죠. 교무지원처장 명의의 답변서였는데, 학교 측은 이를 통해 피해자인 저를 오히려 가해자로 몰았습니다.

이걸 보면서 학교가 여성 시간강사를 합법적인 이유 없이 해고한 데 일말의 부끄러움이나 반성은커녕, 오히려 저를 학교 명예를 실추시키는 자로 몰아 순진한 학생들의 의식마저 교란하려 했다고 봐요. 그래서 신문고, 인권위, 노동위원회를 통해 재차 학교의 부당함과 성차별에 대해 알렸어요. 학교는 '우리는 성차별한 적 없다. 여성안수 이뤄지게 해달라고 기도한 박아무개 교수와는 관련이 없다'는 말을 계속 되풀이했어요."

- 그동안 학교나 총장이 '불통'이라는 인상을 받기도 했는데. 신학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게 사실 납득이 가지 않아요. 학내에 문제점이 있다면요?
"여성 교수들은 신학과에 전무합니다. 대부분은 유아교육, 교회음악, 기독교 교육, 산업교육학부, 중독재활상담학과에 재직 중이지요. 그런데 적어도 제가 알기론 이 여성 교수들이 합동교단 목사들의 성폭력이나 학내 성차별, 이따금 불거지는 성희롱 발언 등에 대해 여성의 입장에 서서 공개 문제제기한 경우가 없었어요.

한마디로 외형상으로는 '개혁주의'라고 외쳐대지만, 안에서는 양심과 학문적 사유의 자유를 억압하고 차단하면서 최고 권력자의 말이라면 무조건 복종해야 합니다. 마치 '군대'를 연상하는 조직체 같다고나 할까요? 반면 여성의 소리나 여성의 권리나 입장, 여성의 은사와 능력은 아예 무시합니다. 남성위계로만 움직이는 학교 안에서 여성들은 결국 '남성이 만들어 놓은 신'을 믿어야만 한다는 말이겠지요. 간혹 '여성에게 종교 탄압적인 곳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죠."

- 앞서 언급했듯 그동안 여러 기관에 사태를 알려왔습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여성 목회자 안수인가요? 그리고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여성 성직자가 개신교 전통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는지요?
"여성안수는 궁극적 목표라기보다는 성차별과 남녀 불평등을 해결할 출발점이라 생각해요. 즉, 남녀가 똑같이 신학을 공부했다면 남녀 모두 목사와 교수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저의 모든 행위의 지향점은 그리스도 안에서 남자와 여자 모두 동등한 하나 됨의 실현입니다.

그리고 여성 성직자가 개신교 전통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최근 남성 목회자들의 성범죄가 계속 불거져 나오고 있는데, 교단 안에서 이 같은 범죄가 도무지 처벌되지 않아요. 다 남성이 권력을 쥐고 있어서 그런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 목사나 여성 교수의 등장은 성 윤리와 성 견제, 성 이해와 성 정체성, 성 역할 등에서 균형 있고 바람직한 성 담론과 신학적 정립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아울러 여성이 가진 개방성과 공감 능력, 권력에 연루되지 않은 순결함 등의 장점과 역량이 목회 돌봄과 치유, 영성과 상담을 통해 펼쳐지면 침체되고 경직된 한국 교회가 되살아나리라고 봅니다."

- 최근 여성 혐오가 화두입니다. 교회 안에선 여성을 비하하고 차별하는 문화가 강하다고 봅니다. 여성 혐오에 대해 대안을 제시한다면요?
"여성 혐오는 2000년 기독교 역사에서 남성교부들, 남성 신학자들과 남성 목사들의 가부장적 신학과 성경해석으로 진리와 교리라는 명분 속에 침전돼 있었어요. 남성직제의 과잉 강조가 불러온 '기독교의 악'이라는 의미이죠.

대안이라면 먼저 성정체성, 성역할의 인식전환을 위해 여성과 신학적 논의 및 토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교회론, 목회론, 상담, 교육, 설교, 예배, 행정 및 정치 담론은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신학이었기 때문에 성과 관련한 신학과 신앙, 영성 등에 대해 여성입장의 재정립이 필요해요.

둘째, 여성의 신학적 확신의 초점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성을 초월하시는 인격적이신 분이십니다. 지금까지 남성의 하나님으로만 강조되어 왔다면 이제부터라도 여성의 하나님을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셋째, 교회 안에서 여성의 존재를 제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여성은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존재입니다. 즉 하나님과 직접 교제할 수 있는 인격적인 존재요, 인간 상호 간의 동등한 관계로 살아가는 자유롭고 주체적인 존재요, 피조세계를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고 관리해야 할 책임을 지는 존재란 뜻이죠. 이 같은 뜻을 제대로 가르쳐 교회 안에서 어떠한 강요나 억압, 차별 없는 자유와 상호존중, 조화와 균형을 통해 인간성을 이뤄나가는 교회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넷째, 흔히 '예수는 교회의 머리'라는 '머리론'이 교회에서 유통되는데 이 같은 논리는 기독론적인 관점에서 다시 정의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 되심은 군림하고 다스리는 위계적인 권위로서가 아니라 성육신과 고난의 삶과 인격적인 '책임'과 '섬김'으로써 교회의 머리가 되신 것입니다.

남성 교회는 남성만이 대표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습니다. 만일 '머리론'의 대표개념이 굳이 필요하다면 그때는 권한과 다스림이 아니라 섬김과 보살핌, 그리고 희생과 책임의 의미로서 복음 안에서 여성을 자유롭게 해주는 개념으로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다섯째,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 교육과 예배, 전도, 선교, 봉사, 행정과 정치영역에서 여성리더십을 활성화해야 합니다. 또 신학대학원에서 여교수 채용 및 여성리더십과 관련된 과목들을 개설해 줄 것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인터넷 매체 <뉴스M>에도 동시 송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강호숙 박사, #총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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