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청소년은 학업으로 인해 학교와 학원에서 자신들의 자유를 내려놓고 하염없이 공부만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푸를 청'이라는 한자의 의미와 맞는 것일까? 이번 인터뷰 기사를 통해 특정분야에서 활동하며 자신의 재능과 끼를 알림으로써 참된 청소년으로써의 삶을 살아가는 청소년을 소개 할 예정이다. 많은 청소년들이 이 글을 보고 잊어버렸던 자신의 꿈들을 다시 떠올리기를 바란다. [편집자말]
국악은 우리 조상들의 소리를 담은 예술이지만 우리에겐 생소하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국악은 음악시간에 수행평가로 자신들을 괴롭히던 존재일 뿐이다. 이런 국악을 우리에게 보다 쉽고 친근하게 들려주려는 한 소녀가 있다. 묵묵히 홀로 우리의 소리를 지키고 전하는 그는 바로 국악소녀 '송소희(20)'다.

 어느덧 성숙해져 20살이 된 국악소녀 ‘송소희’

어느덧 성숙해져 20살이 된 국악소녀 '송소희' ⓒ SH파운데이션


국악신동,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까닭

고등학교 시절 송씨는 인문학과 국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싶어, 국악전문학교가 아닌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공부와 국악활동을 병행하는 게 힘들었지만 덕분에 고등학교의 3년이 그 자신에게 큰 발전을 가져왔다고 한다.

"활동으로 인해 하루만 학교를 빠져도 진도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친구들의 필기를 빌려가거나 자주 물어봐야 했는데 눈치가 많이 보였어요. 하지만 두 가지 일을 병행하려면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서 포기하지 않고 공부와 국악 모두 열심히 했어요.

3학년 때는 성인으로 넘어가는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해, '여기서 내 분야를 좀 더 확실히  닦아 놓아야 꿈을 향한 길이 흔들리지 않겠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때는 다른 친구들이 수능을 위해 매일 공부를 하듯 저도 국악에 대한 공부와 연습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었어요."

국악뿐 아니라 고등학생으로서의 공부도 충실히 해와서 그런지 송씨의 생각이 다른 청소년들보다 훨씬 더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악경력 15년차,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국악과 함께 해온 그는 과연 자신의 10대를 어떻게 생각할까?

"지금처럼 심도 있고 질적인 활동보다는 양적으로 더 열심히 했어요. 그때는 무식하게 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뭔가에 무식하게 몰두했던 시기들이 분명히 나에게 필요하긴 했구나'란 생각이 들어요. 다수의 아티스트들과 오케스트라, 국악관현악단 등 여러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무대에 많이 올라가면서 이론적인 것 외에 현장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을 많이 배웠어요."

실제 송씨는 대학 동기들에게 부족한 이론을 배우는 대신 그들에게 자신의 무대경험에서 얻은 것을 알려준다고 한다. 대학교에서의 한 학기를 보낸 지금 그는 삶이 너무 재미있다고 했다.

15년 현장 경험 + 대학 이론의 접목

"인문계 중고등학교를 다녀서 국악을 하는 친구들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공허하고 외로웠어요. 대학교에 와서는 저와 같은 국악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공감대도 잘 형성되고, 국악 하는 사람들끼리 이렇게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저도 더 열심히 하게 돼요. 제가 진짜로 국악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신과 함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동료는 힘들 때 도와주는 조력자이자,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선생님이자, 자만에 빠지지 않게 해주는 경쟁자이다. 이때까지 그런 존재가 없던 그에게 대학교 생활은 매우 새로울 것 같았다.

대학에서 수업도 듣고 과제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동시에 본인의 활동을 하려면 벅차지 않을까? 물론 어릴 때부터 이런 삶을 살아온 그이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다른 한 가지가 있다고 했다.

"반년 정도 생활하니까 대학교는 자유롭지만 그 속에서 요구하는 것들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대학생활과 활동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힘들지만, 사실 친구들도 똑같이 힘들 거라고 생각해요. 육체적으로는 많이 피곤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너무 행복하게 일하고 있어요."

갓 20살이 되었지만 송소희는 훨씬 더 성숙해 보였다. 대학에 와서 정신적으로 많이 좋아졌다는 그에게 10대일 때와 지금 노래를 할 때 감성의 차이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아직 20살 8개월차라서 19살 때와는 다른 점은 잘 모르겠지만 전체적인 10대 시절과는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일단은 제가 국악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졌어요. 노래를 부를 때 가사 하나하나의 의미를 알고 부르게 되어 더 진심으로 전달되는 것 같고, 대학에서 전문적인 것을 깊게 배우니까 노래에 대한 만족감과 행복감이 정말 높아진 것 같아요."

 송소희의 2번째 앨범인 <사랑, 계절>. 7월 25일 두 번째 앨범이 나왔다.

송소희의 2번째 앨범인 <사랑, 계절>. 7월 25일 두 번째 앨범이 나왔다. ⓒ SH파운데이션


신곡, 사랑과 사람을 위로하다

송소희는 작년에 첫 앨범 <NEW SONG>을 발표한 후 지난 7월 25일 약 1년 만에 2번째 앨범인 <사랑, 계절>을 발표했다. 이번 앨범에서는 이때까지 보여주던 노래와는 조금은 달라진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국악을 다른 음악장르보다 멀리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고자 많은 신경과 노력을 쏟아부었다고. 송소희는 대중들에게 어떤 내용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일까?

"첫 번째로 수록된 <사랑, 계절>이란 곡은 사랑을 위로하고 싶었어요. 이별한 사람들에게 슬프고 힘들겠지만 주저앉지 말고 일어나 새로운 봄을 기다리자는 메시지로, 슬프지만 아름답게 표현해 보았어요.

두 번째 곡인 <비밀이야기>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다들 바빠 보이잖아요? 하지만 자세히 그 모습을 들여다보니 너무 공허해 보였어요. 저 역시도 스케줄과 레슨과 공부할 것들이 꽉 차 있지만 하루를 정리해보면 정말 공허한 기분만 남더라고요. 다들  바쁜 일정 속에 살고 있지만 사실 마음 속은 텅 비어있는 그 아이러니한 현대인들의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제가 직접 작사한 곡이에요."

국악은 왜 찬밥인가? '퓨전국악'에 도전

송소희는 우리나라가 급격하게 발전할 때, 외국의 도움을 받으며 들어온 서양음악들이 깊게 박히면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귀와 감성도 그런 쪽으로 익숙해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국악을 안 듣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송씨가 인문학을 함께 배운 이유는 바로 음악의 전반적인 흐름을 알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국악을 할 때, 속상한 적이 많았을 것 같다.

"예전엔 어디를 가든 환대를 못 받았죠. 말 그대로 찬밥 신세였어요. 관객들도 제 차례가 오면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지인들과 떠드는 경우가 되게 많았어요. 근데 이제는 정말 감사하게도 제 이름 석자에 많은 호기심을 가져주시고, 더 큰 환호와 박수를 보내주셔서 감사해요.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책임감도 많이 느끼고 있어요."

송소희는 친근하지 않은 국악을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가게 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꺼낸 해결책이 '퓨전국악'이다. 평소에 국악 말고도 여러 장르의 음악들을 좋아했기에 서로 다른 두 분야를 새롭게 접목시켜보고 싶다고 했다.

"국악인으로서 국악이 너무 좋은 음악인데 사람들이 모르니까 나의 방식대로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국악과 다른 장르음악을 조금씩 접목시키면서 전통국악과 함께 퓨전국악도 많이 들려드리게 된 것 같아요."

무대에서의 송소희 앞으로도 그는 계속해서 우리의 소리인 국악을 알리기 위해 무대에 오를 것이다.

▲ 무대에서의 송소희 앞으로도 그는 계속해서 우리의 소리인 국악을 알리기 위해 무대에 오를 것이다. ⓒ SH파운데이션


대표적으로 KBS <불후의 명곡>에서 국악의 신선한 변신을 보여줬다. 관객과 평론가들은 그녀의 시도에 박수를 보냈고 국악의 감성에 젖어 들었다. 그렇다면 이런 퓨전 무대의 아이디어는 누구에게서 나오는 것일까?

"대부분 제가 기획하죠. 다른 기획사에 안 들어가는 이유도 제가 국악을 하는 흔치 않은 가수이기 때문에 저의 음악을 완전히 이해해줄 수 있는 회사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오로지 제가 생각하는 음악을 100% 표현하고 싶거든요. 지금처럼 개인 소속사에서 제가 하고 싶은 음악들을 하고 싶어요."

송소희는 지금도 친근한 국악을 들려주기 위해 새로운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대학 국악과에서 국악과 서양음악을 공부하던 중 MIDI(컴퓨터를 활용한 음악 작업)를 알게 돼 배우고 있다고 한다.

"요즘은 가수가 노래만 해서는 부족하고 작곡과 작사 등 음악의 전체적인 부분들을 모두 깨우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MIDI를 배우다 보니 국악을 하시는 분 중에서는 MIDI를 하시는 분이 거의 없더라고요. 그래서 '국악인들이 이렇게 넓은 분야를 공부하면서 다가가려고 하고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국악만 한다는 편견을 깨고 싶었어요."

그는 열심히 공부해서 자신이 직접 작곡과 작사를 한 곡을 내는 게 목표라며 팬들에게 기대해 달라고 했다.

'국악소녀'라는 타이틀, 부담스럽진 않다

오랫동안 국악을 해온 송씨지만 아직도 매 무대마다 후회가 많단다. 무대에서만큼은 항상 부족함을 느낀다고. 그가 생각하는 자신의 단점은 무엇일까.

"지속적인 안정감이 부족한 것 같아요. 매번 좋은 무대로 관객 분들과 소통해야 하는데, 컨디션에 따라 좌지우지 될 때 '아직 내가 아마추어구나'라는 것을 느껴요."

지금까지 수많은 무대와 방송에 출현한 송소희. 그가 생각하는 가장 행복할 때와 힘들었을 때는 언제일까?

"가장 행복한 건 지금이 아닐까 싶어요.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육체적으로 좀 지치더라도 심리적으로 매우 행복한 상태라서 음악을 하든 공부를 하든 늘 기분 좋게 하거든요. 제가 국악을 하면서 지금만큼 행복했던 적은 없었던 듯해요.

어릴 때, 무대에 올라가서 관객들을 보면 '국악을 싫어하는구나'라는 것이 딱 느껴질 정도의 시선이나 동작들이 보였거든요. 무대에 서는 사람으로서 자존심도 상하고 슬픈 일이었죠."

힘든 시기가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걸었고, 결국 송소희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었다. 이제는 '송소희 하면 국악, 국악하면 송소희'라고 연상될 정도로 송씨는 국악의 대표 아이콘이 되었다. 국악을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이 그녀에게 부담이 되지는 않았을까.

"국악에 대한 의무감과 책임감은 많죠. 국악에 대해서 저에게 기대가 많으신데 그 기대에 대한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부담감은 없어요. 부담감을 가지면서까지 음악을 하고 싶지도 않고 제 일이 즐거워서 하는 거라 그런 부담감을 못 느끼는 것 같아요."

매번 인터뷰를 하면서 느끼는 공통점이라면 모두 생각이 깊고 강한 멘탈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찍부터 각자의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쌓은 단단한 멘탈, 그것이 그들이 성공의 길에서 흔들리지 않게 잡아준 것 같다.

 항상 좋은 무대로 우리들의 가슴을 울리는 송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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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소희의 바람, 저를 국악 전파자로 기억해 주세요

마지막 질문으로 송소희에게 어떤 사람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은지 물어봤다.

"국악을 우리에게 친숙하게 들려주고 노력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그리고 저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국악이 결코 어렵고 재미없는 노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우리나라의 국악을 다시 사랑해주고 많이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송소희는 청소년들에게도 조언을 남겼다.

"요즘 청소년들이 학업에 집중하느라 자신의 꿈을 찾지 못하는 것 같아요. '나는 뭐가 하고 싶은 걸까?'란 생각에 답답하겠지만 조급해하지 말고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 각자 자기에게 주어진 것들을 해나가다 보면 분명히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게 되는 순간이 올 거예요. 절망하지 말고 그 순간에 신중하게 행동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국악을 이끄는 선두주자로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그이지만 결코 15년이란 길이 지금 같지는 않았다. 모든 친구들이 아이돌의 노래를 부르고, 힙합을 부르며, 감성적인 발라드를 들을 때 송씨는 국악이란 외로운 길을 걸었다.

사람들의 무관심에 포기할 수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그는 국악을 널리 알리기 위해 민요 하나를 더 불렀다. 국악의 대중화라는 꿈이 있었기에, 모두가 국악을 편히 듣는 순간을 꿈꿨기에 귀엽기만 했던 국악신동은 어느새 모두가 인정하는 어엿한 '국악인' 송소희가 되어있었다.

꿈을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지만 과정과 결과가 스스로를 지치게 할 때가 있다.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것은 아닌지, 옳은 길을 가고 있는지 고민하다 꿈을 바꾸는 경험을 해본 적도 있을 수 있다. 본인이 정말 그 꿈을 이루고 싶다면 현재의 자신을 흔들리게 하는 바람을 이겨내고 비와 눈과 같은 시련들을 견뎌야 한다. 거센 폭풍이 지나간 뒤에는 화창한 햇살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기억할 때다.

가슴을 후벼파는 송소희만의 감성은 어디에서 나오나요?
송소희는 이미 국악인을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롤모델이다. 또 송소희는 뛰어난 실력과 무대 매너, 인성으로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많은 국악 꿈나무들과 팬들이 궁금해 했던 질문 중 몇 개를 송소희에게 들어보았다. 송소희는 꿈나무들에겐 선배로서 진지한 답변을, 팬들에겐 궁금증을 시원하게 해결해준 답변을 해주었다.

Q(꿈나무(이하 꿈), 팬): 어릴 때부터 사람들의 가슴을 흔들었던 송소희만의 감성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가요? (삶의 경험이라고 보기엔 너무 어리고…)
A: 직접적으로 경험한 것들은 적지만 책이나 지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완벽하진 않지만 조금이나마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있어요. 노래를 부를 때 최대한 그런 경험들을 끄집어내려고 했지만 사실 옛날 조상님들 때부터 전해오는 국악의 한과 흥을 그대로 표현하기엔 역부족이죠. 그래서 '당시에 그 노래를 불렀던 사람들은 무슨 감정으로 불렀을까?'를 평소에 많이 생각하고 조금이나마 비슷하게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해요. 무대경험을 많이 하다보니 '이 곡에선 이렇게 불러야 되겠구나'란 감각이나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해요. 최대한 그 당시의 분위기와 정서를 표현하려고 해요.

Q(꿈): 혹시 전공하신 경기민요 외에 배워보고 싶은 분야가 있으신가요?
A: 민요가 음악적인 형식이나 지역에 따라 여러 민요로 나뉘어요. 그래서 경기민요를 전공했지만 서도민요나 남도민요도 좀 배워보고 싶어요. 특히 남도민요가 맛있(?)거든요. (웃음) 재미있는 표현들이 많은데 그런 것들을 배워 제 국악에 넣으면 더 다양한 것들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배워보고 싶어요. 사실 그 외의 분야, 예를 들어서 판소리 같은 것들도 배워보고 싶지만 민요와 판소리는 소리를 내는 창법이 너무 달라서 한 번 발을 들이면 다시 돌아오는데 오래 걸려 입문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Q(꿈, 팬): 15년 넘게 국악을 했는데 슬럼프나 힘들 때 자신만의 극복방법이 있으신가요?
A: 저는 크게 슬럼프가 오지 않았어요. 원래 크게 고민을 안 하고 무언가에 대해 인정을 잘하는 편이에요. 하지만 무엇보다 부모님의 교육관이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한 우물만 계속 파면 누가 안 지루하겠어요, 또 압박감이나 부담감이 없겠어요? 저도 그랬는데, 그럴 때 부모님께서 여러 가지 예술을 경험시켜주시면서 환기를 시켜줬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민요만 계속 해왔으니까 제가 지쳐 보일 때, '기타도 한번 배워봐', '미술이나 운동 같은 것도 한번 배워볼래?'처럼 계속 새로운 공기를 넣어주시니까 오랫동안 한 길을 걸었지만 딱히 슬럼프는 없었던 것 같아요.

Q(꿈): 평소에 몸이나 특히 목을 많이 쓰시는데 몸을 관리하는 본인만의 방법이 있나요?
A: 저는 잘 때 항상 스카프나 손수건으로 목을 두르는 것이 습관인데 이게 가장 큰 규칙적인 생활 패턴인 것 같아요. 그리고 목 상태가 좋든 안 좋든 프로폴리스나 죽염을 애용해요. 그리고 정기적으로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요. 언제 한 번 감기에 너무 심하게 걸려 무대를 망친 적이 있었는데 너무 창피하고 속상해서 그때 이후로 컨디션을 관리하는 것도 실력이라는 것을 깨닫고 열심히 관리하고 있어요. 아, 그리고 에어컨이나 히터를 절대 안틀어요. 덕분에 같이 다니는 매니저나 직원 분들이 요즘 같을 때 많이 힘들어하죠. (웃음)

마지막으로 국악을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송소희씨가 조언을 남겼다.

"넓은 시야로 공부를 했으면 좋겠어요. 국악을 공부한다고 해서 그 길 하나만을 바라보며 가는 것은 위험해요. 대학을 나온다고 해도 국악인을 위한 직장이 정말 적은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국악 하나만 보고 살아가기는 힘들어요. 예술을 한다고 생각하고 국악을 해야지, 국악만 해야겠다는 생각은 슬럼프 등이 올 위험이 커요. 그리고 국악을 시작하고 5년 정도 지났을 때 과거를 돌아보며 '정말 내가 국악을 하고 싶은가'라고 고민해봤으면 해요. 정말 국악인이 되고 싶다면 국악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의 전체적인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면서 저와 같이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덧붙이는 글 유종현 시민기자는 청소년으로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보인고등학교 BNS(신문기자부)의 기자입니다.
푸른청소년들 청소년 인터뷰 국악 송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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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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