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김창완의 '청춘'이다. 노래라기보다는 잔잔한 어조로, 단조로운 리듬으로 달래주는 느낌이 들어 들을 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지곤 한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면 이 노래를 듣곤 한다. 수십, 수백 번을.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는 이십대의 청춘이었다. 젊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아무 부러울 것이 없던 그 때 산울림의 등장은 특별함으로 다가왔다. 노래의 제목은 물론 가사도 보통의 노래와는 사뭇 다른, 그 속에 담고 있는 것들이 젊음과 공감대를 형성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다.

'청춘'은 젊음의 도전이나 열정과는 반대되는 시각으로 바라보는 느낌을 주어 고개를 끄덕이지는 않았지만 '그냥' 좋았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청춘이, 내 청춘이 나이와는 상관없이 영원하리라 믿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청춘이 흘러가는 것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청춘, 그 자체를 즐기고 있었는지도.

그때 그 '청춘'을 다시 만났다

이 시대의 평범한 청년들,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오이지팀과 우석훈 교수의 대화는 <응답하라 1988>를 주제로 가볍게 시작됐습니다. 자연스레 '현재의 덕선이, 즉 이 시대의 평범한 청년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더군요.

<응답하라 1988>에서 나는 '청춘'을 다시 들었다. ⓒ tvN


한 해, 두 해.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내가 다시 '청춘'을 마주한 건 작년 텔레비전의 드라마를 통해서였다. 온 국민의 사랑을 받던 <응답하라 1988>. 나도 그 중 한사람으로 텔레비전을 보던 중 느닷없이 흘러나오는 낯익은 리듬과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코끝이 '싸아'하고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엄마, 울어?"
 "…."
 "왜? 오늘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야, 그냥…."

당황한 아이의 동그래진 눈길에 민망스러워 자리를 뜨고 말았지만 나는 한동안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물론 그 드라마가 나의 젊은 시절을 보여주고 있어 특별한 즐거움을 주고 있었지만 그보다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흘러가버린 30년이라는 세월을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청춘의 푸르름으로 싱그럽던 그 때, 남편을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낳아 키우며 만만치 않은 세상살이를 하다보니 힘들고 어려운 시간도 많았다. 잘 산다는 것과 열심히 산다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절감하며. 툭하면 어슴푸레 밝아오는 새벽을 맞이하면서 나는 세상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었다. 누가 건드리기라도 하면 덤벼들 기세로 마음에 날을 세우고, 먹고 살기 위해 일을 시작해야 했으며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하루하루를 버티어내야 했다.

그 후 잠깐 숨고르기를 하고 나니 느닷없이 찾아온 오십 대의 갱년기는 나를 삶의 바깥으로 내몰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를 제외하고는 어지간한 일이면 눈물을 보이지 않았었는데. 그래서 나 자신이 강인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갱년기는 여지없이 나를 바꿔 버렸다. 만만치 않은 현실을 버티어내느라 마음 속 여린 부분을 힘껏 잠가 놓은 밸브가 스르르 풀려버리는 것처럼 온 몸이 물먹은 솜이 되어버렸다.

세월은 간다, 하지만

쉰다섯 번째 가을을 나는 유난히 시린 가슴으로 맞이하고 있었다. 그동안 남편과 두 아이를 뒷바라지 하느라 나 자신을 돌아볼 여유조차 갖지 못한 채 살아왔었는데 어느 날 문득 서성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바탕에는 26년 동안 함께 살아온 남편과의 무덤덤한 사랑, 이제는 다 자라 더 이상 내 손을 필요로 하지 않는 아이들로부터의 자유로움이 있었다. 이것들이 모두 한꺼번에 다가와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물론 평소에는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막상 준비되지 않은 상태이다 보니 반갑기보다는 서운하고 헛헛함이 더 컸다. 거기에 갱년기까지 겹쳐 자신을 주체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가끔씩 멍하니 밖을 바라보기도 하고, 늦은 밤 느닷없이 산책을 나가기도 한다. 다른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시도 때도 없이 괜히 왈칵 눈물을 쏟아내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덧없이 느껴지고 지금 내 모습이 한없이 작고 초라해지고 앞으로의 삶도 막막해 삶의 의미마저 잃게 되었으니.

그런 내 모습에 당황한 아이들이 콧소리를 섞어가며 달라붙기도 하고 남편 또한 예전과는 달리 어린아이 달래듯 어르고 달래주어도 그 때뿐,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그 때 나는 하루에도 수십, 수 백 번씩 청춘을 들으며 나 자신을 토닥일 수 있었다. 그런 나를 남편은 못마땅하게 여겨 가끔은 눈치를 보기도 했지만.

집 식구들이 모두 나간 후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CD를 틀어놓는 것이었다. 청소를 하고, 다림질을 하고, 걸레질을 할 때도 노래가 끝나는 몇 분 후에는 오며 가며 되돌려 다시 들었다. 가끔은 청소를 하다가 어린아이처럼 훌쩍거리기도고 하고, 때로는 다림질을 하며 얼굴 위로 흐르는 눈물로 하염없이 다림질을 하고, 한 번쯤은 걸레질을 하다가 펑펑 울며 걸레 눈물을 닦기도 하고….

처음에는 내 젊음이, 내 청춘이 그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그 속에서 함께한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제는 곁에 없다는 사실이 쓸쓸했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다고 자부해왔지만 여전히 빈손인 내 모습이 한없이 초라해서 눈물을 흘리다가 언젠가부터는 눈물 대신 덤덤함이 자리 잡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부족한 나지만 그래도 든든한 곁이 되어주는 남편과 아이들이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푸르른 내 청춘은 흘러가버렸지만 그 때의 푸름은 아직도 가슴 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흐르는 시간을 붙잡을 수도, 흘러간 세월을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지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세월은 '그렇게' 가는 것이라는 사실도.

지금도 나는 '청춘'을 듣고 있다 이제는 제법 마음의 여유가 생겨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흥얼거린다.

"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 손짓에 슬퍼지면.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야…."

타이틀곡 '중2' 열창하는 김창완 밴드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KT&G 상상마당 홍대 라이브홀에서 열린 김창완 밴드(김창완·강윤기·최원식·이상훈)의 3번째 정규앨범 <용서> 발매기념 쇼케이스에서 김창완이 타이틀곡 '중2'를 열창하고 있다.
이날 김창완은 타이틀곡 '중2'에 대해 "어떻게 보면 중2의 태도를 힐난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중2에게 어른들이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것으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나는 완경기를 지나고도 김창완의 '청춘'을 다시 듣는다. ⓒ 유성호



덧붙이는 글 내가 사랑한 OOO
내가사랑한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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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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