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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건물, 환경, 선생님이 있고 마을이 있는 공간이며, 단순한 시설이 아닌 문화다. (대단지 아파트 신설초로) 교명을 승계하니 학교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유가초등학교가 없어지는 것에 초점을 맞춰 달라."

정부의 무분별한 소규모학교 통폐합 정책에 제동을 걸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대구 유가초 통폐합 조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됐다.

대구지방법원 제 2행정부는 지난 19일 '이 조례는 유가초 폐교가 아닌 이전을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이 조례가 유가초 통폐합이고 절차 규정을 일부 준수하지 않았더라도 통폐합 관련 광범위한 재량권이 인정되는 점 등에 비추어 당연 무효에 해당하는 위법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말로 유가초 학생과 학부모가 제기한 '대구광역시립학교 설치 조례 일부 개정조례(통폐합 조례)' 효력정지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행복학교 홍보할 땐 언제고"... 통폐합 날벼락

유가초는 2012년 대구시교육청이 지정한 행복학교이다. 대구시교육청은 통폐합 위기의 소규모 학교 등을 행복학교로 지정해 지역과 학교 특성을 고려한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예체능 중심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유가초의 사례가 알려지면서 2012년 44명이었던 학생 수는 올해 114명으로 늘어났다.

대구시교육청의 통폐합 정책으로 폐교될 위기에 처한 유가초등학교
 대구시교육청의 통폐합 정책으로 폐교될 위기에 처한 유가초등학교
ⓒ 강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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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옥 유가초통폐합반대 학부모 대표는 지난해 12월 이곳에서 아이들을 교육시키겠다며 유가초 인근으로 이주했다. 하지만 대구시교육청은 유가초를 오는 9월 1일 대구 테크노폴리스 내에 개교하는 신설초등학교(가칭 테크노 4초)의 개교시기에 맞춰 이전 통합하기로 결정한 뒤 통폐합을 4개월 남짓 앞둔 4월 25일에서야 학교 통폐합 관련 학부모 설명회를 열었다. 김수옥 대표 등 학부모와 학생 7명은 법원에 통폐합 조례 취소 소송 및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법원이 시교육청의 졸속 통폐합 정책에 제동을 걸어줄 것을 촉구했다.

교육부의 적정규모 학교 육성 권고 기준에 따르면 면·도서·벽지 지역의 경우 60명 이하 학교가 통폐합 대상이다. 대구시교육청 역시 이 기준을 차용하고 있어 재학생 114명의 유가초는 통폐합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학부모들의 주장이다.

유가초 통폐합 추진 내용이 포함된 대구시교육청의 '2016년 소규모학교 통폐합을 통한 교육력 제고 프로젝트' 업무 매뉴얼에는 '전체 학부모(학생) 2/3 이상 동의를 얻어 추진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시교육청은 2011년 '소규모학교 통폐합의 타당성 및 추진력 확보'를 위해 통폐합 대상학교에 3년 전 사전예고제를 실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학부모 반발에 '통폐합' 아닌 '학교 이전' 말 바꾸기

하지만 대구시교육청은 3년 전 사전 예고는 물론 학부모 2/3 이상의 동의도 얻지 않고 유가초 통폐합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 학부모들의 주장이다.

지난 5월 시교육청은 '유가초 이전 통합에 따른 현 유가초 재학생 지원 사항 및 설문 조사 안내'라는 명칭으로 사실상 통폐합 찬반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하면서 설문지에 학부모와 학생의 이름을 기재하게 했다. 설문 이틀 뒤에는 학교장이 통폐합 반대 학부모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었고 그 후 찬성 의견이 80%(다수의견에 따르겠다 20% 포함)가 되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유가초 통폐합에 반대하는 학부모들이 학교 앞에 내건 현수막
 유가초 통폐합에 반대하는 학부모들이 학교 앞에 내건 현수막
ⓒ 강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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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반발과 절차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대구시교육청은 지난 7월 '유가초 통폐합' 대신 '유가초 이전통합'으로 용어를 바꿔 통폐합 조례를 제출했고 대구시의회가 의결했다.

임성무 작은학교살리기대구공대위 공동대표는 "시교육청이 조례안에 유가초의 테크노4초 이전과 함께 별 문제없이 9월 개교가 예정된 용천초 설립 계획을 함께 넣었다"라며 "시의회 교육위원회가 유가초 통폐합 문제를 지적하며 용천초 개교 계획만 분리 심의할 수 있는지를 행자부 등에 질의했지만 교육감 권한 침해라는 유권해석이 나왔다, 시의회는 '용천초 개교를 막을 수 없다'며 안건을 통과시켰다, 시교육청의 행정 독재가 아닐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초등 돌봄교실 더부살이 해야 하는 유치원생

설문이 있은 뒤, 소송을 주도한 학부모들은 집집마다 다니며 학부모들의 '유가초 이전 통폐합 의견'을 다시 물었고, 아이를 보내는 83가구 가운데 52가구가 서명한 '유가초 이전 통폐합 반대 의견'을 법정에 제출했다. 이들은 졸속 추진은 물론 절차상 하자가 분명한 시교육청의 유가초 통폐합에 법원이 제동을 걸어줄 것을 요구했다.

대구시교육청은 학부모들의 주장과 달리 유가초 폐교는 통폐합이 아닌 테크노4초로의 이전이기 때문에 통폐합 대상 학교에서 실시하는 사전예고제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학부모 2/3 동의 역시 강행 규정이 아닌 시교육청 내부 기준일 뿐이며 학교장이 일부 학부모에게 연락을 한 것은 이전 통합 계획에 대해 추가 설명을 한 것으로 찬성을 강요하지 않았다고 반박하는 등 조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폈다.

9월 1일부터 유가초 학생들이 등교할 테크노4초는 42학급, 학생수 105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학교로 여전히 학교 신축 공사가 진행 중이다. 게다가 유치원의 경우 내년 3월 개교가 예정되어 있어 병설유치원 학생들은 2학기 내내 유가초 돌봄 교실 중 한 칸에서 더부살이를 해야 한다.

유가초가 이전통폐합할 예정인 테크노4초의 모습. 내년 3월 개교하는 유가중학교와 유가유치원 공사현장에 둘러싸여 있다
 유가초가 이전통폐합할 예정인 테크노4초의 모습. 내년 3월 개교하는 유가중학교와 유가유치원 공사현장에 둘러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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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유가초 인근으로 이주해 7살 아이를 병설유치원에 보내고 있는 이경희 학부모는 "아이들을 자연 환경이 좋은 유가초에서 뛰어놀게 하려고 아파트 단지에서 이곳으로 이사 왔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입학 상담을 할 때에도 아무 말 없다가 이제야 학교를 옮긴다고 하니 이런 사기극이 어디 있느냐"며 분노했다.

새학기 증후군에 새학교 증후군까지 '이중고'

대구지방법원의 가처분 기각 결정 하루 전인 지난 18일 대구시 달성군 유가면에 위치한 유가초등학교를 찾았다. 테크노4초로 이전 작업이 한창인 학교 중앙 현관에는 행복학교인 유가초의 상징 윈드오케스트라의 교육부 장관상 수상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중앙현관 한쪽 벽에는 학교 담장 공사, 보건실 현대화 사업, 프리 테니스장 및 조류생태 학습장 조성 시기 등이 적혀있어 최근까지 학교를 쓸고 닦은 흔적이 묻어났다.

아이들이 고사리 손으로 키웠을 조류 생태 학습장의 금계, 오골계, 은계, 황계는 테크노4초에서는 키울 수 없어 주변 식당에 넘긴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곳에서 차량으로 3.5㎞를 달리면 공장지대를 지나 아파트 단지 안 테크노4초가 나온다. 운동장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내년 3월 개교를 목표로 공사가 한창인 유가중과 유가유치원에 둘러싸여 있는 테크노4초 교문으로 벽돌을 실어 나르는 지게차와 굴삭기의 모습이 보였다.

도서실에서는 마스크를 낀 교사들이 서가에 책을 꽂고 있었다. 두 개의 돌봄 교실 중 한 칸에선 병설유치원 아이들이 사용할 짐을 정리하는 손길이 분주했다. 교실 창문 밖으로 유가중 공사 현장과 타워크레인이 보였다. 계단에서는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유가초 운동장에 있던 농구대, 축구 골대, 놀이터가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학부모 이경희씨는 "멀쩡한 학교를 두고 이곳에 온 아이들이 소음과 공사 분진에 노출되고 새집증후군에 새학기 증후군까지 겪어야 한다"라며 "교육청에 당신들 자녀는 보낼 수 있겠느냐고 묻고 싶다"고 했다.

통폐합에 인센티브... 교육 없고 경제 논리만

교육부는 적정규모 학교 육성 강화 및 폐교 활용 활성화 방안을 내고 통폐합을 위해 본교폐지, 분교장 개편 및 폐지, 학교 신설대체 이전, 학교 통합 운영 등을 하는 학교에 최소 30억 원부터 많게는 110억 원까지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밝혔다.

교육부 기준대로 라면 정원 60~120명인 초등학교의 학교신설 대체이전에 해당되는 유가초 통폐합은 40억 원의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는 사안이다. 대구시교육청이 지난 4월 낸 소규모학교 통폐합을 위한 교육력 제고 프로젝트에 따르면 내년까지 6개의 학교(초등 2, 중등 4)를 신설학교 이전이나 인근학교를 묶는 방식으로 통폐합을 추진할 예정이다.

9월 1일 개교를 보름도 채남기지 않았지만 여전히 공사가 진행중인 학교의 모습
 9월 1일 개교를 보름도 채남기지 않았지만 여전히 공사가 진행중인 학교의 모습
ⓒ 강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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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신문인 <매일신문>의 7월 3일자 인터뷰 기사에서 오석환 대구시교육청 부교육감은 "현재 정부가 소규모 학교 통폐합에 인센티브를 주고 있지만 이러한 재정 지원이 계속되리라는 보장이 없다"면서 "결국은 나중에 인센티브 지원도 없이 학교 규모를 조정하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오석환 부교육감은 국정교과서 비밀 태스크포스 단장을 맡는 등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을 진두지휘한 인물로 국정화 확정 고시 하루 뒤인 지난 해 11월 4일 대구시부교육감으로 발령을 받아 논란이 됐다.

대구시교육청은 올해 초 폐교를 매각한 금액 100억 원을 누리과정 예산으로 편성해 교육적으로 타당하느냐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임성무 공동대표는 "유가초 통폐합 과정에서 교육적이지 않은 대구시교육청의 실상이 드러났고 지역에서 학교 통폐합 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계기가 됐다"면서 "시교육청의 졸속 통폐합 정책은 중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대구시교육청은 "교육부의 적정규모 학교 육성 권고 기준 중 면, 도서벽지 지역의 통폐합 기준은 학생 수 60명 이하이나 대구시교육청에서는 교육부 권고 기준을 참고해 현재 학생 수가 농촌 지역 60명 이하의 기준을 초과하더라도 향후 학생 수 급감이 예상되어 적정규모로 육성이 필요한 학교로 판단 될 경우 통폐합 추진 대상에 포함할 수 있도록 자체 기준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면서 "유가초는 통학구역 내 취학예정 아동 수가 지속적으로 줄고 있고 인근 테크노폴리스 내 아파트 입주 시기에 맞춰 신설학교가 개교하면 이후 학생 수 감소가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말로 유가초 이전 이유를 밝혔다.

통폐합 인센티브와 관련해서는 유가초는 해당사항이 없다는 것이 대구시교육청의 주장이다. 정희준 대구시교육청 행정국장은 지난달 21일 통폐합 조례를 심의하는 대구시의회 교육위원회의 '통폐합으로 교육부의 지원을 받는다는 루머에 대해 해명하라'는 요구에 "유가초의 경우 별도의 인센티브를 주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통폐합 관련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지자 "통폐합은 학생들의 교육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편, 노태우 전 대통령이 나온 대구 공산초는 학생수가 82명, 이명박 전 대통령 부인 김윤옥씨가 나온 대구 수창초는 학생수가 87명인데, 통폐합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될 예정으로 논란이 된 바 있다(관련기사 : 이상한 대구교육청의 통폐합, 전두환 부부 졸업 학교 왜 뺐나).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교육희망(http://news.eduhope.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통폐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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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에서 발행하는 주간지 <교육희망>의 강성란 기자입니다.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은 교육 소식을 기사화 해서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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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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