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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긴장과 남북 적대관계가 끝을 모르고 치닫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북한 핵무기 능력 고도화에 대응하기 위해 개성공단 기업의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대북압박에 나섰고 최고 수준의 유엔안보리 대북제재도 시행되고 있습니다. 최근 사드 배치 결정에 따른 대내외 반발과 갈등으로 다소 스텝이 꼬이긴 했지만 우리 정부의 대북 압박 결의는 확고해 보입니다. 당분간 남북대화는 물론이고 민간의 모든 남북 왕래와 접촉과 교류는 불가능할 전망입니다.

그런데 대북압박이 강화될수록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 속도도 빨라지고 있습니다. 북한은 우리 국방부의 예상을 앞질러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 시험에 성공했습니다. 세계에서 7번째로 SLBM 능력을 갖춘 것입니다. 이에 따라 우리의 군사 대응전략도 대폭 수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얼마나 많은 비용과 노력이 추가로 들어가야 하는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평화통일에 들여야 했을 노력과 비용이 남북한 군비경쟁으로 탕진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2016년 내내 고조되고 있는 한반도의 불안한 정세는 100년 만에 찾아온 무더위와 더불어 우리를 지치게 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가고 계절은 돌아오기 마련인가요? 끝 모르던 무더위가 처서를 기점으로 언제 그랬냐 싶게 수그러들더니 추석이 성큼 코앞에 와 있습니다. 올해 추석은 주말이 이어져 고향에 다녀와도 며칠 더 넉넉하게 보낼 수 있는 황금연휴가 됩니다. 한반도 정세에도 언제 그랬냐 싶게 다시 안정이 찾아 왔으면 좋겠습니다.

눈 감는 이산가족 1세대... 통일이 구호로 그치면 안 됩니다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첫날인 지난 2015년 10월 24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납북 어부 정건목(64)씨가 남측에서 온 어머니 이복순(88)할머니의 눈물을 닦아 주고 있다. 쌍끌이 어선 오대양 61호, 62호의 선원 25명은 1972년 12월 28일 서해 상에서 홍어잡이를 하던 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됐다. 정 씨는 이때 62호 어선에 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첫날인 지난 2015년 10월 24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납북 어부 정건목(64)씨가 남측에서 온 어머니 이복순(88)할머니의 눈물을 닦아 주고 있다. 쌍끌이 어선 오대양 61호, 62호의 선원 25명은 1972년 12월 28일 서해 상에서 홍어잡이를 하던 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됐다. 정 씨는 이때 62호 어선에 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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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정세가 아무리 엄중해도 대부분 사람은 황금연휴에 고향을 찾을 겁니다. 매년 추석 명절이면 고향을 찾지 못하는 실향민에게도 사회적 관심이 돌아옵니다. 북녘이 바라보이는 임진각에서는 1970년부터 연례적으로 재이북부조합동경모대회(在以北父祖合同敬慕大會)가 통일부 후원아래 열립니다.

2000년부터는 거의 매년 추석명절을 즈음해서 통일부 지원 아래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도 열렸습니다. 지금까지 20차례 행사를 통해 약 2만 명의 남북이산가족이 상봉했습니다. 작년 추석 명절에도 금강산에서 남측 644명과 북측 329명 모두 973명의 이산가족이 서로 만났습니다.

올해도 임진각 행사야 열리겠지만 금강산 행사에 대해서는 아직 남이고 북이고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한반도 정세가 엄중한 탓이려니 생각합니다만 혹시나 하는 기대를 저버릴 수는 없습니다. 이산가족 문제는 인도주의 차원에서 남북관계의 다른 현안과 연계하지 않고 최우선적으로 풀겠다는 것이 역대 정부의 입장이었으며, 아무리 대북제재를 빈틈없이 유지해야 하겠다고 하더라도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포기할 명분도 실익도 없기 때문입니다.

시행 중인 유엔의 대북제재도 북한 주민의 생계를 위한 것과 인도주의 목적의 대북사업은 금지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물며 가족상봉을 막을 명분도 없고 가족상봉을 포기할 근거도 없습니다. 오히려 강력한 대북제재를 시행하면서 이것이 북한주민이 아니라 대량살상무기를 추구하는 정권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을 명백히 부각하기 위해서도 오히려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추진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자칫 국제사회의 대북압박 노력의 긴장감을 느슨하게 할 것을 우려하여 정부가 이에 대해 소극적일 이유가 없다는 말입니다. 거꾸로 북한이 먼저 상봉행사를 제안하여 오고 우리가 이에 대해 머뭇거린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한반도 상황 주도권을 뺏길 우려마저 있습니다.

2014년 2월 이후 1년8개월만에 열린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마지막날인 2015년 10월 22일 오전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작별상봉을 마친 북쪽가족과 남쪽 가족이 북쪽 가족이 먼저 차량에 탑승해 떠나면서 이별을 하고 있다.
 2014년 2월 이후 1년8개월만에 열린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마지막날인 2015년 10월 22일 오전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작별상봉을 마친 북쪽가족과 남쪽 가족이 북쪽 가족이 먼저 차량에 탑승해 떠나면서 이별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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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산가족 1세대 생존자는 우리 곁에서 점차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인구의 대부분은 분단 이후에 태어났습니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분단을 현실의 일부로 받아들여 이것에 너무나 익숙해져 분단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터무니없이 왜곡하고 고통과 불편을 주는지 잊거나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오히려 통일과정에 수반될지 모를 혼란과 부담이 우리의 삶에 불편을 주지 않을까 걱정하거나, 지금처럼 한반도 긴장이 참기 힘들 정도로 지속되면 평화통일에의 기대를 포기할 우려도 있습니다.

이산가족 문제는 분단이 얼마나 우리 삶을 왜곡하고 고통과 불편을 주는 것인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계기입니다. 자신의 귀책사유가 없이 초래된 가정 해체와 가족 이산을 겪고 있는 남북이산가족에게 분단 현실이란 시간이 지나도 결코 당연하거나 익숙한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는 괴물입니다.

분단 현실에 큰 불편함 없이 안주하면 평화통일의 주장은 구호로 끝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불편하지도 않은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노력은 실천하려는 힘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현재 시국처럼 남북 간 갈등과 적대감이 끝 모르게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발전의 바람직한 경로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고민하기보다 단념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비록 현재 한반도 상황이 어려워서 분단해소 노력도 복잡해지고 힘들어진다 해도 평화통일은 미루거나 포기할 수 없으며, 통일은 왜곡되었던 우리 삶의 조건을 바로잡고 정상화하는 일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한반도 통일은 대한민국이 더욱 부강해지기 위해서라든가 북한의 동포에게 보다 나은 삶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는 것보다 훨씬 절실한 기반에서 요구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산가족 문제를 그들의 문제가 아닌 우리 문제로 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고령자의 사망으로 이산가족 문제 해결에 주어진 시간은 자꾸만 줄고 있습니다. 이산가족상봉 신청자 절반이 이미 사망했습니다. 생존자 절반도 80대 이상의 고령입니다. 이산가족 상봉은 남북관계가 아무리 어려워도 다른 문제와 분리해서 중단 없이 지속해야 합니다. 절실하고 시급한 과제라는 국민적 인식이 유지되어야 정부 정책 우선순위도 유지됩니다.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은 인도적 차원에서도 최우선 과제이지만 남북분단의 근본문제 해결의 본질적이고 기본적인 과제입니다.

더구나 지금처럼 한반도 긴장과 남북 상호 적대감이 무작정 고조되면서 통제가 어려울 정도로 치닫는 흐름에 제동을 가하기 위해서도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남북 서로에게 유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고경빈은 통일부의 주요 직책을 두루 거친 '통일맨'이다. 인도지원국장, 교류협력국장, 개성공단사업지원단장, 정책홍보본부장 등을 역임하며 남북관계 현장애서 실질적 업무를 총괄했다. 2009년 퇴임 이후 잠시 남북교류협력협회 회장으로도 일했으며, 지금은 평화재단 이사로 활약하고 있다.



태그:#이산가족, #남북대화, #분단 현실, #분단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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