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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지인이 한국에서 날아왔다. 예년과 다름없이 건기 중간쯤인 8월 중순에 큼직한 배낭 하나 짊어지고 인도네시아를 찾아왔다. 자카르타에서 하룻밤을 머문 그는 늘 그렇듯 이튿날 날이 밝자 자생 커피나무가 군집한 약 1천m 전후의 고지 마을로 향했다.

그의 목적은 늘 하나다. 고양이과 동물 루왁(Luwuk)의 똥을 모으기 위해서다. 그는 대략 1주일 정도 고지의 산마을에 머문다. 동네 사람들과 함께 야생 커피나무 군락지를 돌며 루왁의 배설물을 모은다. 어려운 의사 소통과 익숙치 않은 잠자리, 입에 맞지 않은 음식 등 갖은 불편을 감내해야 가능한 일이다.

간밤에 내린 비로 인해 씻기고 일부분 떠내려 가기도 한 것을 한 컷에 담았습니다
▲ 등산길에서 만난 사향 고양이의 배설물 즉 커피 루왁의 생두 간밤에 내린 비로 인해 씻기고 일부분 떠내려 가기도 한 것을 한 컷에 담았습니다
ⓒ 손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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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설한지 오래되지 않은 듯 모양이 선명한 루왁의 배설물. 길 가운데 놓인 것을 보면 배설 장소를 가리지 않는 듯합니다.
▲ 루왁의 배설물 배설한지 오래되지 않은 듯 모양이 선명한 루왁의 배설물. 길 가운데 놓인 것을 보면 배설 장소를 가리지 않는 듯합니다.
ⓒ 손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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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왁(Luwuk)이란 인니어로 '사향 고양이'라는 뜻이다. 커피 루왁이 사향 고양이의 배설물로 만든 커피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커피 루왁은 쥐나 개구리 등 작은 동물 사냥에 능숙한 잡식성 사향 고양이가 소화를 위해 커피 체리를 즐겨 먹은 결과물이다. 이 사향 고양이가 당도가 높고 잘 익은 커피 열매만 주로 골라 먹는다는 일설도 커피 루왁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킨다.

 말리고 있는 루왁의 배설물
ⓒ 손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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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체리의 과육엔 소화 성분이 많지만 그 알맹이, 즉 커피나무의 씨는 소화가 잘 되지 않나 보다. 씨는 사향 고양이 뱃속에서 약간 숙성만 된 채 고스란히 배설된다. 그것을 모아서 일련의 과정을 거쳐 음미하는 것이 호사가들의 기호를 자극하는 커피 루왁이다.

사향 고양이는 야행성으로 활동력도 왕성하고 호기심도 많은가 보다. 어느 야심한 밤에는 우리 집의 높은 담을 넘어왔다가 안타깝게도 집에서 기르는 진돗개 두 마리의 협공에 잡히고 말았다. 또 한 번은 담 위에서 오락가락하다가 개들의 위세에 눌려 줄행랑을 친 적도 있다. 닭고기를 좋아하는 사향 고양이는 산골 농가에 피해를 주기도 하지만 도움을 주기도 한다. 배설물을 모아 팔아 일정액의 수입을 올리도록 해주니 말이다.

우리 집 정자 옆에 심은 커피 나무에 꽃이 필 때면 그 향이 2층 방안까지 스멀스멀 파고듭니다.
▲ 정원에 심은 커피나무 우리 집 정자 옆에 심은 커피 나무에 꽃이 필 때면 그 향이 2층 방안까지 스멀스멀 파고듭니다.
ⓒ 손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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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길 옆 커피나무 군락지에 꽃이 필 때면 가던 길을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 열매가 익어가는 커피나무 군락지 등산길 옆 커피나무 군락지에 꽃이 필 때면 가던 길을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 손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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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차를 더 즐기던 나는 자카르타에 인접한 보고르의 산마을에 살게 되면서 커피 루왁을 만났다. 해발 2958m의 구능 그대(Gunung Gede)와 해발 2211m의 구능 살락(Gunung Salak), 거대한 두 산의 영향권에 있는 이 지역은 천혜의 자연 조건을 보유한 곳이다. 자생 커피나무 또한 아주 많은 곳이다. 마을 곳곳에도 야생 커피나무가 많거니와 산행을 하다 보면 야생 커피 군락지를 흔히 만난다.

물론 커피나무를 반 야생 상태로 재배하는 농부들도 더러 있는데, 커피 꽃의 아름다움과 그 향에 반한 나는 커피나무 몇 그루를 얻어다 집 정원에 심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환경 덕분에 마치 예정된 것처럼 커피 루왁과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지금 귀하고 비싸다는 루왁 커피를 부담 없이 음미하고 있다.

커피 중 가장 독특한 것이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되는 커피 루왁임을 많은 문헌이 증명한다. 서울 시내에서 루왁 커피 전문점이라고 간판을 내건 곳에서는 대략 3~​5만 원을 받는다고 하니 그 선호도에 짐작이 간다. 

부드러우면서 깊은 루왁 커피, 맛보다 중요한 것은

잘 말린 다음 껍질을 깝니다. 한 잔의 커피 루왁을 맛 보기 위한 과정 과정이 참 손길이 많이 가고 복잡합니다. 그러나 그 한 잔을 위한 수고가 즐겁기도 합니다.
▲ 껍질을 까고 있는 커피 생두 잘 말린 다음 껍질을 깝니다. 한 잔의 커피 루왁을 맛 보기 위한 과정 과정이 참 손길이 많이 가고 복잡합니다. 그러나 그 한 잔을 위한 수고가 즐겁기도 합니다.
ⓒ 손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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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느낀 커피 루왁의 대체적인 맛과 향의 느낌은 이렇다. 우선 혀에 닫는 감촉이 부드럽다. 순수하고 담백하다. 향과 맛을 위해 배합을 한 갖가지 이름의 커피에서 느낄 수 없는 맛과 향을 감지할 수 있다.

마신 다음 독특한 단맛과 향이 입안에 오래 남는 것도 커피 루왁의 큰 특징이다. 평소 커피를 가까이 않던 아내는 일반 커피와 달리 호흡이 가빠지거나 손이 떨리는 증상이 없어 좋다고 했다. 물론 잠이 오지 않는 부작용도 없다고 했다. 일반 커피에 비해 커피 루왁에는 카페인 성분이 현저히 낮다는 사실을 나름 확인한 셈이다

물론 이것은 단지 애호가로서 나의 실험일 뿐이다. 원래 커피 생두는 향이 없으나 배전(焙轉, Roasting)하는 과정에서 특유의 향이 생긴다고 하니, 방법에 따라 맛과 향의 그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껍질을 깐 다음 다시 잘 말려 물에 담가 부벼 씻으며 불순물을 제거합니다. 
손으로 부비니 속 껍질을 포함해 불순물이 많이 나오더군요. 여러차레 헹궈야 했습니다.
 껍질을 깐 다음 다시 잘 말려 물에 담가 부벼 씻으며 불순물을 제거합니다. 손으로 부비니 속 껍질을 포함해 불순물이 많이 나오더군요. 여러차레 헹궈야 했습니다.
ⓒ 손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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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연산 커피 루왁과 일반 커피를 나름대로 비교 분석해본 이유는 특별한 데 있지 않다. 유명한 특산물이 너무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비호감이었기에 더욱 호기심이 작동했을 뿐이다.

커피 루왁, 과연 특별했다. 호사가들을 자극할 만한 조건을 갖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결론은 스치듯 한 잔 마신 다음 쉽게 내린 결론이 아니다. 일반 아라비카나 로부스타 커피와 한 자리에서 같은 조건으로 배전(Roasting)하고, 가정용 글라운딩 밀로 분쇄하고 종이필터를 통해 추출(drip)한 다음 나름 커피 마니아를 자칭하는 사람들과 둘러앉아 그 느낌을 비교해본 다음에 내린 결론이다.

채 마르지도 않은 루왁의 똥을 내 손으로 주물럭거리며 말리고, 껍질을 깐 다음 씻기를 반복한 것이 여러 차례, 이를 다시 뒤적거리며 햇빛에 말리기까지 많은 수고를 겪고 얻어낸 결론이다.

왼쪽이 커피 루왁 생두고 오른쪽 일반 로부스타 커피 생두입니다.
 왼쪽이 커피 루왁 생두고 오른쪽 일반 로부스타 커피 생두입니다.
ⓒ 손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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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것은 무엇이나 또 어디서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 세상 이치,​ 커피 루왁 또한 높아진 가치로 인해 부작용이 생기는 것 같다. 사향 고양이를 생포해 가둬 놓고 커피 루왁을 생산하는 도구로 활용하기에 이르렀다. 세계의 동물 보호 단체들에서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생산되는 커피"로 명명하며 루왁을 자연으로 돌려보낼 것을 호소한다.

커피 체리를 자루에 넣은 다음 두엄 속에 묻어 발효시켜 사향 고양이의 배설물로 둔갑시키는 일도 있다. 내가 확인하기로는 그렇게 발효시킨 커피생두는 자연에서 채취한 커피 루왁의 생두와 비교해볼 때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유사했다. 그것을 로스팅하고 분쇄한 다음에는 어느 전문가인들 진짜와 가짜를 쉽게 구분할 수 있을까 싶었다. 루왁 커피의 문제점을 고발하고 있는 웹 문서가 인터넷에 수두룩 한데도 루왁 커피의 인기가 여전하다는 것은 참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왼쪽 사진이 일반 로부스타 원두를 로스팅 기에 넣고 12분 로스팅 한 것입니다. 오른쪽은 커피 루왁 원두를 같은 조건으로 로스팅 한 것입니다
 왼쪽 사진이 일반 로부스타 원두를 로스팅 기에 넣고 12분 로스팅 한 것입니다. 오른쪽은 커피 루왁 원두를 같은 조건으로 로스팅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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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 그 의미와 가치를 ​짚어보자면 참 많다. 누가 언제 어떻게, 어디에서 누구와 한 잔의 커피를 마시는가에 따라 천차만별의 의미와 가치가 생긴다. ​커피는 깊은 향기와 쓴맛, 거기에 분위기가 더해져 대중화의 길을 걸었지만 지금의 커피는 일상이요 문화가 되었다. 사유를 위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아름다운 만남을 위해 필요한 것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해본다. 일반 커피와 루왁 커피의 가치와 의미는 어떻게 다를까? 루왁 커피지만 그냥 일반 커피처럼 내놓으면 사람들 대부분이 특별함을 감지하지 못하지 않는가? 물론 나 또한 처음엔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커피 루왁에서 얻은 몇 가지 좋은 느낌은 내 집중과 노동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의미다.

나는 커피 루왁으로 인해 부작용이 생긴 것은 상술과 이에 조응한 호사가들의 얇은 귀 때문이라고 하고 싶다. 갈수록 교묘해지는 것이 상술이다. 알면서도 이끌려가는 것이 사람의 심리다. 이럴 때일수록 갖춰야 할 것이 쉽게 흔들리지 않을 자기확신인 것 같다. 커피 한 잔에도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자기확신을 하는 것이 자기 삶을 행복하게 하는 요인이겠다는 것을, 한 잔의 커피를 놓고 되새겨 보는 것이다.
커피 한 잔을 대하는 태도
만개한 커피 꽃입니다. 꽃도 아름답지만 멀리까지 풍기는 꽃향은 꽃의 아름다움을 이기고도 남습니다.
 만개한 커피 꽃입니다. 꽃도 아름답지만 멀리까지 풍기는 꽃향은 꽃의 아름다움을 이기고도 남습니다.
ⓒ 손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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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글의 서두에서 참다운 커피 루왁 마니아를 소개했다. 그는 내가 아는 최고의 커피 마니아다. 그는 정년 퇴직자로서 현재 특별히 하는 일이 없다. 그렇다고 그가 커피 루왁을 모은 다음 한국으로 가져가 장사를 하는 것도 아니다. 오직 커피 루왁을 참답게 즐기는 방법으로서 그는 일년에 한 번 인도네시아에 온다.

그의 자기 확신과 실천력이 참 놀랍고 아름답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한 잔의 커피 루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꼭 물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다만 그가 커피 루왁을 찾는 방법을 통해서 풍기는 그의 삶의 향을 진하게 느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도네시아 한인 커뮤니티 인도웹에 실은 커피 루왁에 대한 내용을 보완한 것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커피, #루왁 커피, #사향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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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2015년 5월 인사동에서 산을 주재로 개인전을 열고 17번째 책 <山情無限> 발간. 2016, 대한민국서예대전 심사위원장 역임. 현재 자카르타 남쪽 보고르 산마을에 작은 서원을 일구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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