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9시 30분, 15년 째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SBS <TV동물농장>이다. 그간 편성 전쟁에 휩쓸려 사라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대단하지만 <동물농장>의 의미는 단순히 '장수'에만 있지 않다. 꾸준히 10% 시청률을 기록하고 화제성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압도한다. <동물농장>은 '동물'을 소재로 사회적 어젠다를 제시하고, 트렌드에 맞춰 끊임없이 진화했다.

 SBS < TV동물농장 > 캡쳐 화면

5월 15일 '강아지 공장의 불편한 진실'을 다룬 <동물농장>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이 달의 좋은 프로그램상'을 받았다. ⓒ SBS


특히 지난 5월 15일 '강아지 공장의 불편한 진실' 편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더러운 환경에서 새끼를 낳고 방치되는 강아지들의 모습이 공분을 샀다. 강아지 공장의 주인들은 억지로 강아지에게 수정을 시켜 기계적으로 새끼를 낳게 만들었다. 제왕절개 또한 검증되지 않은 약품과 도구를 사용해 이뤄졌다. 하지만 강아지들의 소유권이 주인에게 있었기 때문에 주인들이 강아지를 어떻게 하든 불법이 아니었고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도 없었다.

국회에서는 관련 법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국민의당 황주홍 의원은 지난달 25일 '동물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황 의원이 발의한 법이 국회서 통과된다면 강아지나 고양이 공장에서 유통되는 생후 60일이 되지 않은 동물, 생물학적 또는 수의학적 방법이 아닌 방법으로 태어난 동물의 판매가 금지된다. 즉 강제 임신이나 불법 제왕절개를 통해 태어난 동물은 합법적으로 팔 수 없다.

또 농림축산식품부는 방송 한달 후인 지난 6월 15일부터 강아지 공장의 사육 실태를 조사중이다. 이덕건 <동물농장> 메인 피디는 "이 방송을 하기로 1년 전부터 마음을 먹고 그때부터 실상을 취재했다"고 말했다.

 SBS < TV동물농장 > 캡쳐 화면

지난 5월 15일 가수 현아는 <동물농장>에 출연해 '강아지 공장'의 실태를 알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 SBS


끊임없이 변주 중인 <동물농장>

<동물농장>은 동물이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를 이용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때로는 <그것이 알고 싶다>처럼 동물을 다룬 탐사보도 프로그램이 되거나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다룬 동물 구조 프로그램이 되기도 한다. '사라진 동물의 행방을 찾는' 미스터리 포맷으로 전개될 때도 있고 동물들의 신기한 행동을 카메라가 뒤쫓기도 한다.

이는 굉장히 전략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2001년 처음 SBS가 <동물농장>을 시작했을 때 동물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은 거의 없었다. <동물농장>에 이어 KBS 2TV <주주클럽>과 MBC <와우! 동물천하>가 각각 2002년 4월 신설됐다. 당시에는 "동물의 귀여운 모습을 위주로 한 시트콤 형식이나 의인화를 한 동물 아이템을 주로 다루었고 반응도 나름대로 있었다"(이덕건 피디)고 한다. 초반에는 단순히 동물이 주는 신선함이 컸던 탓에 잘 됐지만 이후 <동물농장>은 트렌드에 맞춰 변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2008년 합류한 이덕건 피디는 당시를 "아예 아이템이 고갈된 상황이었다, 다른 채널에서도 동물 프로그램을 하니 좀 더 특별하고 나아간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런 이야기 없이 식상해지는 상황이었다"고 진단했다. 그가 택한 건 동물을 다루되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조금 더 비중을 두는 서사 구조였다.

 SBS < TV동물농장 > 캡쳐 화면

아프리카에서 데려온 넓적부리황새 슈빌. <동물농장>은 한국에 온 슈빌이 먹이를 먹지 않자 그의 한국 적응을 돕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을 감행한다. ⓒ SBS


<동물농장>은 여전히 '아프리카에서 최초로 한국에 온 슈빌'과 같은 흥미로운 동물들도 보여주지만 카메라가 취하는 콘셉트는 이전과 조금 다르다. 바로 동물들에 서사를 부여하는 것. 아프리카에서 온 고고한 동물 '슈빌'은 아무 먹이나 먹지 않는다. 며칠씩 밥을 굶는 일이 있어도 아프리카에서 직접 공수해 온 마리 당 20만 원짜리 물고기만 먹어 사육사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동물농장>은 동물원 사육사들과 함께 실험을 거듭한 끝에 슈빌이 한국에서 나는 물고기를 먹도록 만들었다. 마침내 먹이를 먹은 슈빌. 그리고 기뻐하는 사육사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한편, 이덕건 피디에 따르면 동물과 사람이 함께 살면서 정을 쌓는 이야기가 시청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이템이라고 한다.

극한 직업, 동물농장 제작진

 SBS < TV동물농장 > 캡쳐 화면

<동물농장> 제작진이 가장 촬영이 어렵다는 고양이를 촬영하기 위해 쏟는 정성이란... 그들은 고양이에게 말을 걸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동물농장> 페이스북 페이지 '애니멀봐'에서 볼 수 있다. ⓒ SBS


 SBS < TV동물농장 > 캡쳐 화면

<동물농장> 제작진의 카메라를 빼앗아 높은 곳으로 올라가 버린 원숭이. 정말 그는 저 물체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걸까? ⓒ SBS


<동물농장>은 촬영만 두 달 정도 걸릴 때도 있다. 동물이 카메라에 영 적응하지 못하면 촬영을 하다가 잠시 멈추고 적응시간을 주기도 한다. 동물들의 행동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경우 카메라만 두고 동물들을 관찰하기도 하지만 아예 촬영을 접기도 하니 쉬운 일이 아니다. 동물들이 언제 본래의 모습을 보여줄지 모르니 그 자리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도 다반사다.

기본적인 촬영 기간은 1~2주 정도다. 하지만 관찰이나 분석이 필요하거나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일이 필요하면 3~4주도 걸린다고 한다. <동물농장>을 만드는 제작진은 현재 30명(작가 12명에 PD와 AD 18명). 이 중 8년 넘게 <동물농장>을 제작하는 피디도 있다. "동물 프로그램만 전문적으로 오래 한 친구들이기 때문에 동물을 마주하면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지를 판단한다." 이 피디의 말이다. 동물에 관한 한 누구 못지 않은 전문가다.

정선희는 "우리는 거저 먹는 거다"라며 "스태프들이 너무 고생을 많이 한다"고 걱정했다. 그는 "작가들이 잠을 못자 여자인데도 수염이 난다"고 말해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작가들을 웃게 했다. 이어 "학대 받는 동물들을 취재할 때에는 마음을 다친다, 끔찍한 장면들을 직접 보니 더 힘들어 한다"며 헌신적인 PD와 작가들에게 고마워했다.

3개월만에 페이스북 팔로우 10만 명, 그 비결은?

 SBS < TV동물농장 > 캡쳐 화면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지만 <동물농장>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동물농장>은 다시보기로도 페이스북으로도 볼 수 있다. ⓒ SBS


3개월 전 개설한 <동물농장> 페이스북 페이지는 현재 10만 명의 팔로우를 확보하고 있다. 많은 언론사들이 페이스북 팔로우 수를 늘리지 못해 안타까워 하는 지금, <동물농장>은 어떤 비결로 압도적인 팔로우 수를 자랑하게 된 걸까? 발 빠르게 TV로부터 멀어지는 새로운 시청층을 공략한 덕이다.

<동물농장> 페이스북 페이지의 게시글은 <TV동물농장> 방송분과 여러 면에서 차별화된다. <동물농장>팀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기 위해 SNS팀을 만들었다고 한다. <동물농장>으로 '동물'을 다룬 것만 15년. 그간 쌓았던 데이터베이스는 장수 프로그램이 가진 힘이다. 여기에는 "망라되지 않은 동물이 없고, 없는 스토리가 없다."(이덕건 피디) 그러니 자연스럽게 풍부한 동물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 출산과 탄생의 순간, 혹은 기막힌 만남 등 '동물'에 대한 자료 15년치가 쌓여있다. 방송됐던 자료도 있고 이를 촬영한 원본, 제보로 받은 자료들도 있다.

SNS팀은 이 동영상DB에 있는 영상들을 짧게 쪼개 클립으로 만들고 페이스북 문법에 맞는 짧은 영상으로 새롭게 구성해 제작한다. 비유하자면 재료는 같지만 아예 다른 음식이 나오는 식이다. 앞으로 페이스북만이 아니라 다양한 SNS 채널로 확대를 할 생각이라고 하니 브라운관에서 만나는 <TV동물농장>이 아닌 더 많은 SNS로 유통되는 <동물농장>도 볼 수 있겠다.

동물을 사랑하는 이들이 던지는 긍정의 메시지

'동물'이 주인공인 <동물농장>의 숨은 공신들도 빼놓을 수 없다. 수의사나 동물원 직원, 동물보호단체 관계자 등 동물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 프로그램의 중요한 축이다. 이들이 동물에 보이는 헌신은 <동물농장>을 보다 특별하게 만든다.

먹이를 먹지 않던 동물들이 이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먹이를 먹고, 이 사실에 뿌듯해 하는 사육사나 수의사의 얼굴이 TV에 등장한다. 동물을 사랑하는 이들이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동물에 애정을 쏟는 모습은 사회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어린이들이 <동물농장>을 많이 보지 않나. 수의사나 사육사를 장래 희망이라 말하는 어린이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동물에 특별하게 애정을 갖는 분들이 계신다. 촬영을 하면서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그 분들과 자주 촬영을 하게 된다. 함께 촬영을 하게 되면 좀 더 전문적이고 특별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그분들과 동물들 사이에서 특별한 관계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방송이 잘 된다." (이덕건 피디)

15년 된 <동물농장>의 '장수 비결'에는 어쩌면 이런 것들이 있지 않을까. 앞으로도 오랫동안 사랑받을 <동물농장>의 20년, 30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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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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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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