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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달의 연인>의 한 장면.
 드라마 <달의 연인>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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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의 초반부는 고려 태조 왕건의 첫째아들 왕무(김산호 분)와 그를 견제하는 세력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인 제4황자 왕소(이준기 분)는 혈통상으론 왕무의 적이면서도 은밀히 왕무를 보호해주는 편에 서 있다.

드라마에서는 왕건의 제3황후인 신명순성황후 유씨(박지영 분)가 자기 친아들을 후계자로 만들 목적으로, 잡귀 쫓는 나례 행사를 틈타 왕무를 암살하려 한 것으로 나온다. 제2황후인 장화황후 오씨로부터 출생한 왕무를 없애야 자기 아들이 보위를 이을 수 있다는 계산에서 그렇게 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드라마 속 이야기다.

참고로, 고려시대 사극에 나오는 황제나 황후 혹은 황자 같은 표현에 거부감을 갖는 이들도 있지만, 몽골의 간섭을 받기 이전의 고려시대에는 그런 용어를 사용한 시기들이 있었다.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그랬던 시기가 짧지 않다.

조선 도읍의 정식 명칭이 한경이 아니라 '한성'인 것과 달리, 고려의 경우에는 황제의 도읍을 지칭할 때 주로 쓰는 경(京)을 붙여 '개경'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도 황제국 고려의 면모를 반영한다. 그렇기 때문에 고려시대 사극에서 황제·황후·황자 같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무방하다. 

'금수저' 출신이 아니었던 왕무

실제의 왕무는 드라마 속 상황에 버금가는 시련을 겪었다. 왕무의 어머니인 오씨는 전라도 나주의 미미한 가문 출신이었다. <고려사>에 실린 오씨의 열전에 따르면, 오씨는 왕건이 궁예의 신하로서 전남 해안을 점령한 뒤 현지에서 만난 여성이다. 요즘 말로 하면 오씨는 금수저 출신이 아니었다. 이로 인해 외가의 지원을 받지 못한 왕무는 신명순성황후 쪽 사람들로부터 설움을 단단히 받았다.

신명순성황후는 충주 유씨 가문 출신이다. 이 집안은 충청·강원권에서 전통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을 뿐만 아니라 왕건이 궁예를 몰아낼 때도 크게 기여했다. 그래서 막강한 가문이었다.

이 가문은 나주 오씨의 소생이자 왕건의 장남인 왕무를 싫어했다. 자기 쪽 피를 물려받은 황자가 후계자가 되는데 그가 걸림돌이 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충주 유씨의 미움을 받았기 때문에 그는 장남이면서도 '정윤', 즉 태자가 되기 힘들었다.

왕건은 대부분의 건국시조가 그랬듯이 장남한테 자리를 물려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충주 유씨를 비롯한 유력 호족들의 눈치를 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의 열전에 따르면 그는 자신이 직접 나서지 못하고 대리인을 내세워 일을 추진했다. 자신의 경호원 출신으로서 군사적 기반을 갖고 있는 박술희를 앞세워 왕무의 정윤 책봉을 추진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은근한 지원과 박술희의 공개적인 노력에 힘입어 왕무는 고려 건국 3년 뒤인 921년 열 살의 나이로 정윤이 되었다. 아버지가 죽기까지 22년간 후계자 생활을 하면서 통일전쟁에 참가하여 공로를 세운 그는 943년 서른두 살 나이로 아버지의 자리를 계승했다. 이 사람이 고려 제2대 주상인 혜종 왕무다.

왕무의 삶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버지를 계승한 뒤에도 충주 유씨의 집요한 압박을 받던 그는 2년 뒤 서른네 살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런 뒤 충주 유씨 출신 이복형제인 정종 왕요한테 지위가 넘어갔다가 광종 왕소한테 다시 넘어갔다. 

혜종 왕무는 어떻게 보면 조선의 이방석보다 낫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아들이자 이방원의 이복형제인 이방석은 세자만 되고 왕은 되지 못했다. 거기에 더해 이방석은 비참한 최후까지 맞이했다. 그에 비해 왕무는 정윤을 거쳐 임금 자리에까지 올랐다. 이런 면에서는 이방석보다 나았다.

그러나 왕무는 임금 재위 시절 말도 못할 치욕을 겪었다. 정윤 시절뿐 아니라 임금 시절에도 혈통 문제로 인한 시련이 계속됐다. 어머니가 힘없는 가문 출신이라는 이유로 그가 받은 대표적 치욕 중 하나가 어머니 오씨의 열전에 기록되어 있다. 

실력보다는 혈통이 우선되는 사회, 임금조차도 굴욕당했다

<달의 연인>의 혜종 왕무(김산호 분).
 <달의 연인>의 혜종 왕무(김산호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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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의 신하인 왕건이 서해상의 해로를 통해 후백제의 후방인 전남 지역을 점령했을 때였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이때 왕건은 현지에서 오씨를 만났다. 점령 당시 오씨는 해안가의 빨래터에 있었다. 고려군이 해안가를 점령하는데도 오씨가 근처 빨래터에 있었던 것을 보면, 왕건이 꽤 점잖게 점령 작전을 펼쳤던 모양이다.

왕건은 27세의 청년 장군이었다. 점령 직후라 경황이 없었을 텐데도, 왕건은 처음 본 오씨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그날 밤 오씨를 자기 숙소로 초대했다. 당시 왕건은 이미 결혼한 몸이었다. 아들은 없는 상태였다. 

충주 유씨를 비롯한 혜종의 반대파는 '그날 밤 오씨와 왕건 사이에 있었던 일'을 근거로 혜종 왕무를 공격했다. 반대파가 퍼뜨린 이야기는 물론 허위였다.

허위라고 확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야기가 너무나 황당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더라도 오씨나 왕건 어느 쪽도 그날 밤 일을 제3자에게 발설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왕무한테 망신을 줄 목적으로 지어낸 거짓말이란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왕무의 반대파가 퍼트린 '그날 밤 일'의 내막은 이렇다. 오씨를 초대한 왕건은 오씨의 가문이 미미하다는 사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고 한다. 이런 가문의 여인한테서 첫째아들을 얻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행동을 했다고 한다.

"태조가 그를 불러서 관계를 맺었다. 그런데 그의 가문이 한미한 탓에 임신시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피임 방법을 써서 정액을 자리(돗자리) 위에 배설했다."

왕건이 위와 같은 행동을 하자, 오씨가 당황했다고 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행동을 했다고 한다.

"왕후는 즉시 그것을 흡수했다. 그렇게 해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혜종이다."

왕건은 임신을 원치 않았지만, 오씨는 원해서 그런 일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로 인해 신생아 왕무의 얼굴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한다.

"그의 얼굴에 자리 무늬가 있었다고 하여 세상에서는 그를 주름살 임금이라고 불렀다."

그날 밤 왕건의 행동과 오씨의 대응으로 인해 왕무의 얼굴에 자리 무늬가 생겼다는 것이다. 오씨와 왕건이 이런 이야기를 남한테 퍼트렸을 가능성도 낮지만, 왕건의 피임행위로 인해 왕무의 얼굴에 돗자리 무늬가 새겨졌을 리도 만무하다. 물론 왕무의 얼굴에 실제로 무늬가 있었고, 그것을 근거로 반대파가 왕무를 깎아내리고자 그날 밤 이야기를 지어냈을 것이다.

혜종 왕무는 2년간의 재위기간 동안에 주름살 임금이란 조롱을 들으며 살았다. 신하들 중에는 그의 주름살을 볼 때마다 그날 밤에 관한 소문을 떠올리며 킥킥대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왕무가 왕위를 지키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모욕을 감내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아버지는 태조 왕건이지만 어머니는 한미한 가문 출신이었던 왕무는, 절반은 금이지만 절반은 그렇지 않은 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이 때문에 그는 완전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충주 유씨 쪽 황자들과 비교되는 삶을 살았으며, 약점을 극복하지 못한 채 놀림을 받다가 취임 2년 만에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왕무는 절대 무능하지 않았다. 통일전쟁의 일환으로 936년에 벌어진 후백제와의 전쟁에도 참여해서 공로를 세우고 1등 공신으로 인정됐다. 그렇지만 실력보다는 혈통이 우선시되는 세상이었다. 혈통이 안 되는 사람이 최고 자리에 올랐으니, 수모를 받으며 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조선 이방석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기는 했지만, 왕무가 받은 것만큼의 모욕은 받지 않았다. 그에 비해 왕무는 어머니와 세트가 되어 치욕적인 모욕을 받다가 재위 2년 만에 서른네 살 나이로 갑자기 죽고 말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방석보다 훨씬 안타까운 운명의 소유자였다고 볼 수 있겠다.


태그:#달의 여인, #혜종 왕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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