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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김수자 작가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김수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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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시리즈'는 2014년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중진작가의 개인전을 현대자동차가 10년간 후원하는 프로젝트이다. 국내외적으로 독자적 세계를 구축해온 작가에게 최대 9억까지 지원하고 창작욕을 높여 한국미술에 새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다.

현대차시리즈 프로젝트 팀은 이불 작가와 안규철 작가에 이어 이번에 3번째 작가로 김수자(Kimsooja, 1957~)를 선정했다. 이번 전시는 서울관 제5전시실(전시마당)에서 내년 2월 5일까지 열린다. 최종심사위원에는 서울과학기술대 '김성원' 교수 등이 참여했다. '마음의 기하학' 등 사운드, 영상, 퍼포먼스, 조각 등 9작품을 선보인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김수자는 전통과 현대, 로컬과 글로벌의 경계를 넘나들며 보따리 같은 흔적과 체취가 남아 있는 오브제(used object) 등을 통해 30년간 파리와 뉴욕에서 꾸준히 활동해왔다. 그녀는 한국적 정체성을 드러내며 동시대를 포괄하는 지역과 문화의 관계와 치유와 재생은 물론 이민, 난민, 망명 같은 사회적 쟁점도 주제로 삼는다.

이번 전시기획을 총괄적으로 맡고 있는 박영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은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김수자 전시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기존의 형상으로서의 보따리가 아니라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보따리를 보여준다. 그리고 신작으로만 9점을 앞으로 6개월간 전시한다. 과거 전시가 바느질로 꿰매는 작가의 행위로 뭔가를 채워가는 것이었다면 이번 전시는 텅 비어 있는 가운데 관객이 참여해 전시공간을 빛과 소리 등으로 채워가는 형식이 될 것이다."

80년대 시작한 김수자의 '보따리' 개념미술

김수자 I '보따리 트럭(Bottari Truck_Migrateurs)' 1997. 김수자 작가가 1997년 이민자들에게 수집한 헌 옷과 천으로 만든 보따리를 트럭에 설치한 후 파리의 센 강, 바스티유 광장, 성 베르나르 성당에 이르는 여정 동안 퍼포먼스를 진행하면서 '티에리 드파뉴(Thierry Depagne)' 사진가가 찍은 사진 ⓒ Thierry Depagne
 김수자 I '보따리 트럭(Bottari Truck_Migrateurs)' 1997. 김수자 작가가 1997년 이민자들에게 수집한 헌 옷과 천으로 만든 보따리를 트럭에 설치한 후 파리의 센 강, 바스티유 광장, 성 베르나르 성당에 이르는 여정 동안 퍼포먼스를 진행하면서 '티에리 드파뉴(Thierry Depagne)' 사진가가 찍은 사진 ⓒ Thierry Depagne
ⓒ Thierry Depagne 김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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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김수자 작가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그가 80년대 만들어낸 '보따리' 개념이다. 우리시대의 '유연성·이동성·가변성'을 대변하는 이 오브제는 서양미술을 향해 반란을 일으킨 혁명이었다. 서양의 큰 가방은 물건을 잔뜩 담았을 때는 편리하나 짐이 없을 땐 그렇게 불편할 수 없음을 꼬집은 것으로 서구적 합리성의 허점을 찌른 놀라운 혜안이다.

21세기 유목시대(Nomad)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다는 이 보따리개념은 탄복할 만한 발상이다. 티끌부터 우주까지 다 담을 수 있다는 그런 기발한 상상력과 참신한 발상과 유연한 사고에서 우리는 통쾌함마저 느낀다. 김수자 작가는 한국적 상상력을 이렇게 시각예술로 세계화시킴으로써 그녀의 위상을 크게 높였다.

김수자 작가는 1983년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이불잇을 꿰매다 바늘 끝을 천에 대는 순간에 충격적인 교류와 신기한 에너지를 느꼈단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는 이 개념을 '기하학'이라는 용어로 대체한다. 음과 양, 수직과 수평, 씨실과 날실, 수축과 확장이라는 이중성 미학이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발생하는 높은 수준의 통합적 미를 뜻한다.

2016년 새로 등장한 기하학적 보따리

김수자 I '마음의 기하학(Archive of Mind)' 관객 찰흙 만들기로 참여하는 퍼포먼스와 설치(participatory site specific installation consisting of clay spheres) 19m 타원형 테이블
 김수자 I '마음의 기하학(Archive of Mind)' 관객 찰흙 만들기로 참여하는 퍼포먼스와 설치(participatory site specific installation consisting of clay spheres) 19m 타원형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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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지금부터는 이번에 전시된 몇몇 대표작품을 살펴보자. 먼저 이번 전시에서 스케일이 가장 큰 '마음의 기하학'을 소개한다. 여기 전시장을 들어서면 무려 길이가 19미터가 되는 달걀형의 대형테이블이 놓여있다. 관객은 미술관에서 준비한 찰흙을 받은 다음 그걸 손으로 둥글게 빚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면 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런 단순한 작업이 단순하게만 보이지 않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아마 관객들이 광활한 천체의 은하계 같이 보이는 커다란 테이블에 압도당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이번 전시에 직접 참여하게 된 자로서의 뿌듯함과 풍성함을 느끼기 때문이리라.

이렇게 본다면 전시의 시작은 작가가 하나 그 완성은 관객이 한다는 개념도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대형테이블은 김수자가 80년대 보따리를 대형화시킨 새로운 보따리로 또한 평면회화를 넘어서는 큰 캔버스로 보면 작품 감상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 작업에 참여하는 데 남녀노소가 없다. 외국인도 예외가 아니다. 이들은 관객으로서 소외감이 없기 때문인지 보고 있으면 모두 흡족한 표정이다. 관객은 자신도 모르게 이 전시의 주인공이 된다. 누구나 전시를 향유할 수 있는 점에서 문화민주화의 작은 실현이다. 백남준은 이미 1964년 독일 부퍼탈 첫 전시에서 이런 아이디어를 시도한 바 있다.

이 관객참여형 작품에는 외국관객도 기꺼이 참여해 찰흙 빗기를 즐기고 있다 이 거대한 테이블 아래에서는 가글 소리를 확대한 32가지의 사운드가 들린다. 제목은 '구의 궤적(Unfolding Sphere)' 16채널 사운드 퍼포먼스(sound performance) 15분 31초 2016
 이 관객참여형 작품에는 외국관객도 기꺼이 참여해 찰흙 빗기를 즐기고 있다 이 거대한 테이블 아래에서는 가글 소리를 확대한 32가지의 사운드가 들린다. 제목은 '구의 궤적(Unfolding Sphere)' 16채널 사운드 퍼포먼스(sound performance) 15분 31초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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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또한 독창적인 건 소음과 소리를 잘 활용한 점이다. 여길 처음 들어서면  천둥소리 같은 게 들리는데 실은 양치질 후 하는 가글(?)소리다. 작가는 흥미롭게도 일상의 소리를 작품에 도입한다. 게다가 여기에 전시장 소음까지 합쳐지니 이 공간은 그야말로 사운드아트의 생중계장이 된다. 이걸 작가는 '형태나 공간의 사운드화'라고도 한다.

김수자 작가의 말에 따르면 오랜전부터 도자기작업에 관심이 많았고 언젠가 찰흙 작업을 해보고 싶었단다. 그런데 이번 기회에 이걸 실현한 셈이다. 그녀의 의도는 관객이 찰흙을 빗어봄으로써 흙이라는 물질이 비(非)물질화되면서 예술로 바뀌는 경험도 해보고, 관객이 몸을 움직이는 과정에서 마음을 비워내는 체험도 해보라는 뜻이리라.

이 관객 참여형 작품은 개념미술이면서 동시에 터치아트(촉각미술)이다. 관객이 찰흙을 빗으면서 느껴지는 촉감은 여자 살결보다 더 따뜻하고 부드럽다. 이런 오붓하고 즐거운 시간을 사람들과 나누다보면 감흥과 축제의식이 절로 일어난다. 이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결국 이 작가의 감칠맛 나는 이불보 꿰매기가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상처를 꿰매고 세상을 살리는 두 손

김수자 I '연역적 오브제(Deductive Object_손과 팔)' 석고로 본뜬 작가의 양 팔과 손, 나무 테이블, 152×74.5×76cm 2016.
 김수자 I '연역적 오브제(Deductive Object_손과 팔)' 석고로 본뜬 작가의 양 팔과 손, 나무 테이블, 152×74.5×76cm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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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연역적 오브제'를 보자. 이 작품은 두 손이 서로 마주하고 있는데 작가의 신체를 직접 캐스팅한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작가가 손과 팔을 가지고 보따리를 싸는 모습이다. 동시에 '마음의 기학학'에서처럼 관객이 찰흙을 빗는 모양이기도 하다.

이렇게 김수자 작품은 너와 나의 관계성을 중시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삼라만상을 통찰하는 관점도 읽을 수 있다. 실과 바늘과 보자기가 바로 그런 역할일 텐데 여기서는 엄지와 검지 두 손으로 보자기 같은 우주를 품어 안고 이 세상의 모든 아픔을 쓰다듬는 손길과 그 상처를 꿰맬 때 나오는 숨소리와 다름 아니다.

우주의 알에서 나온 보따리, 오방색으로 수놓다

김수자 I '연역적 오브제(Deductive Object_야외조각)' 2016, 철, 페인트, 거울, 지름: 1.5m×높이: 2.45m(조각), 100×100cm(거울) 2016, 장소 특정적인 필름 설치작품 2016, site specific installation consisting of diffraction grating film
 김수자 I '연역적 오브제(Deductive Object_야외조각)' 2016, 철, 페인트, 거울, 지름: 1.5m×높이: 2.45m(조각), 100×100cm(거울) 2016, 장소 특정적인 필름 설치작품 2016, site specific installation consisting of diffraction grating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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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기하학'에 이어 이번에 또 하나의 보따리 작품인 신작 '연역적 오브제'를 보자. 이 야외조각은 공간 그 자체가 바로 작품이 되는 점이 특이하다. 또한 이 설치작품은 '우주의 알(cosmic egg)'이라고 불리는 인도 브라만다의 검은 돌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으로, 철판 위에 마치 타원형 오방색 보따리로 이 오브제를 감싸는 기하학적인 모양이다.

장소특정적인 이 작품은 햇빛의 양과 질, 바람과 구름은 물론이고 광선의 방향과 보는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3차원 회화다. 하단의 사각형거울도 날씨에 따라 어떤 모습으로 어떤 상황으로 바뀔지 쉽게 알 수 없다. 그저 상상에 맡길 뿐이다. 여기서 작가가 30년간 연마한 수직과 수평의 구조가 연출하는 조형적인 미를 발견할 수 있다.

특수필름이 연출한 무지갯빛 향연

김수자 I '호흡(To Breathe)' 필름 설치작품(site specific installation consisting of diffraction grating film, dimensions variable) 2016.
 김수자 I '호흡(To Breathe)' 필름 설치작품(site specific installation consisting of diffraction grating film, dimensions variable)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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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연역적 오브제'를 둘러싸고 있는 설치미술 '호흡'을 보자. 특수필름을 이용해 만든 이 작품은 스페인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R. Sofia) 미술관에서 선보인 '거울 여인',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한국관)에서 선보인 '호흡(보따리)', 그리고 작년 프랑스 퐁피두센터(메츠)에서 선보인 '호흡'의 연작으로, 서울관 공간에 맞게 재설치한 것이다.

이 작품은 눈이 부시도록 화려한 색채의 향연을 선물한다. 또한 이 작품은 텅 빈 공간의 보이지 않는 빛과 호흡, 소리와 울림을 건축의 표면으로 형상화하고 울긋불긋한 오방색 보따리로 싼 것으로 이런 오감의 언어를 통해 내부와 외부의 경계는 사라진다.

실 꿰맬 때 나는 파장을 주파수로 변환

김수자 I '숨(One Breath) 2' 새틴 위에 디지털 자수, 작가의 사운드 퍼포먼스 '직조공장' 중 한 숨의 시퀀스(Digital embroidery on satin, abstract from The Weaving Factory sound performance by the artist) 180×61cm 2004-2016.
 김수자 I '숨(One Breath) 2' 새틴 위에 디지털 자수, 작가의 사운드 퍼포먼스 '직조공장' 중 한 숨의 시퀀스(Digital embroidery on satin, abstract from The Weaving Factory sound performance by the artist) 180×61cm 2004-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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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작품 '숨'은 김수자 작가가 바느질 작업을 중단한 1992년 이후 처음으로 2004년 호흡 사운드 퍼포먼스 '직물공장'에서 제작한 음파그래픽을 디지털 자수로 다시 수놓은 것이다. 또 이 작품은 보자기를 만들면서 바느질을 할 때 여자들 몸에서 반복해 일어나는 들숨과 날숨의 파장과 호흡을 주파수로 바꿔서 퍼포먼스형식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세계직조문화, 인류학적 '영상시'에 담다

이제 마지막으로 김수자 작가가 설치와 함께 심혈을 기울인 영상작품을 감상해 보자.

아래 '실의 궤적'은 바로 이 연작으로 이번엔 5부가 소개된다. 이제 마지막 6부(아프리카 편)만 남았다. 여러 지역마다 다른 원주민의 직조문화와 그 장식과 패턴 등을 세심하게 관찰해 찍은 것이다. 2012년 국제갤러리(종로구 삼청로)에서는 1부 페루 마추픽추와 타킬레 섬마을의 직물 짜기와 2부 벨기에와 크로아티아의 직물무늬 등을 선보인 바 있다.

김수자 I '실의 궤적 5부(Thread Routes V)' 스틸이미지, 16미리필름, 사운드, 21분 48초 2016
 김수자 I '실의 궤적 5부(Thread Routes V)' 스틸이미지, 16미리필름, 사운드, 21분 48초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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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5부에서도 김수자 작가는 여전히 다양한 지역의 직조방식에 관심을 두고 있는데 이것 또한 작가의 보따리 미술과 닿아 있다. 또 그녀는 건축과 자연, 조각과 설치 등이 가지고 있는 물적 원류를 찾아가면서 시간과 공간의 관계성과 삶의 순환성도 찾아낸다.

이 작품은 또한 전통직조가 어떻게 옛 관습이나 문화와 연결되고 또 어떻게 지역의 유대감이나 공동체를 유지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지도 살핀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인류학적 보고서라 할 수도 있다. 또한 영상도 매우 시적이라 '비주얼 포엠'이라고 불린다.

끝으로 이 영상은 중남미, 중국, 유럽, 북미 등에서 촬영한 것으로 유럽의 레이스장식은 거의 여러 나라의 꽃 모양에서 왔음도 알려준다. 결국 이 영상에서 김수자 작가가 소개하는 흙의 토속성은 바로 '마음의 기하학'에서 보여준 찰흙작업과도 해후하게 된다.

덧붙이는 글 |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 <현대차 시리즈 2016> 김수자 전시설명회(도슨트) 5전시실 앞에서 오후 1시와 1시 30분 혹은 오후 3시와 3시 30분 [관람시간] 화, 목, 금, 일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 / 수, 토요일: 오전 10시~오후 9시(야간개장 오후 6시~9시 무료관람 전화 (02) 3701-9500 [김수자 홈 페이지] www.kimsooja.com



태그:#김수자, #보따리 , #관객 참여형 작품, #개념미술(기하학), #사운드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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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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