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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특정 웹사이트에 청소년의 접근을 금하도록 한 차별적인 행정처분에 법원도 손을 들어줬다.

14일 서울행정법원 제11부(재판장 한기택)는 게이 웹커뮤니티 '엑스존(http://exzone.com)' 운영자가 엑스존을 청소년유해매체로 결정하고 고시한 행정처분이 무효임을 확인해달라는 청구를 기각했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2000년 8월 엑스존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청소년보호법 제10조, 같은 법 시행령 제7조에 따라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심의·결정했고 청소년보호위원회는 같은 해 9월 엑스존을 이를 고시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엑스존 운영자는 지난 1월 10일 서울행정법원에 정보통신윤리위원회와 청소년보호위원회를 상대로 행정처분 무효확인소송을 제기했다.

엑스존 운영자는 이번 소송에서 "'동성애 조장'을 청소년유해매체를 심의하는 기준 중 하나로 삼고 있는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제7조 관련 규정은 성적자기결정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것이고 평등권과 동성애에 대한 표현의 자유, 알 권리를 침해하므로 헌법에 위배되고 모법이 정한 심의기준의 한계도 벗어난 것"이라며 "이 시행령에 따라 엑스존을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결정·고시한 처분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재판부는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의 위법성 여부는 명확히 판단하지 않은 채 "(시행령의 관련 규정이) 무효라 하더라도, 행정처분 당시에 그 무효를 선언한바가 없었으므로 이 처분은 당연무효라고 볼 수 없다"라고 밝혔다.

또한 엑스존은 "우리 사회에서 소외받는 동성애자들이 삶을 공유하는 공간 역할을 하는 엑스존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소수가 아무 생각없이 올린 게시물 몇 개로서 음란성 여부를 평가해 유해매체물로 결정·고시한 것은 과잉금지 원칙에 위반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엑스존의 게시물이 음란한지 여부에 관해 "보는 사람에 따라 의견이 구구할 소지가 있다"라며 이 경우 음란성을 이유로 엑스존을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결정·고시한 것이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된다는 원고의 주장사유가 인정되더라도 그러한 하자는 행정처분을 취소할 사유에는 해당하지만 당연무효할 정도로 객관적으로 명백하지는 않다"라고 기각 이유를 밝혔다.

취소 청구소송은 처분의 효력을 취소해달라는 것으로 처분이 고시된 지 1년 내에 제기해야 한다. 그러나 엑스존은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고시된 지 1년이 지나도록 정보통신윤리위원회나 청소년보호위원회로부터 이에 관한 통보를 직접 받지 못해 '청소년유해매체물 결정 및 고시처분' 취소확인을 청구할 수 없었다.

한편, 이번 판결에 대해 엑스존 측 소송대리인인 이상희 변호사는 "재판부가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의 위헌성 여부에 대한 적극적인 판단을 회피했다"라며 항소의 뜻을 밝혔다.

진보네트워크센터의 장여경 정책실장은 "최근 전기통신사업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서 보듯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땐 명확성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라며 "그런데 재판부는 엑스존 게시물의 음란성 여부가 모호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엑스존에 대한 유해매체 결정 처분을 무효할 수는 없다는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한채윤 씨는 "이번 결정이 다른 동성애 관련 사이트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라며 "청소년보호법과 시행령 내의 동성애자 차별 조항의 폐지 운동을 벌여나가겠다"라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인권하루소식 2002년 8월 15일자(제21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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