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기 잡은 KIA  지난 9월 19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와 KIA의 경기. 6회 초 공격에서 2득점하며 역전에 성공한 KIA 김기태 감독이 두손을 불끈 쥐고 있다.

▲ 승기 잡은 KIA 지난 9월 19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와 KIA의 경기. 6회 초 공격에서 2득점하며 역전에 성공한 KIA 김기태 감독이 두손을 불끈 쥐고 있다. ⓒ 연합뉴스


프로야구 기아 타이거즈가 5년 만에 가을야구에 진출했다. 기아는 5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린 삼성과의 시즌 16차전에서 접전 끝에 4-2로 승리했다.

이날 승리로 기아는 시즌 70승 1무 71패를 기록, 남은 2경기에 상관없이 5강 와일드카드 결정전 진출을 확정 지었다. 또한 4위 LG에 반 게임 차로 추격해 남은 2경기 결과에 따라 4위 자리와 5할 승률까지 넘볼 수 있게 됐다. 한편 마지막까지 기아와 치열한 5강 경쟁을 펼치던 SK는 이날 기아가 승리함에 따라 자동으로 탈락이 확정됐다.

몰락했던 왕조, 암흑기에 종지부 찍나

승리의 기쁨 2일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벌어진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와 kt 위즈의 경기에서 KIA 선수들이 kt를 3-1로 이긴 뒤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쁨을 나누고 있다.

▲ 승리의 기쁨 2일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벌어진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와 kt 위즈의 경기에서 KIA 선수들이 kt를 3-1로 이긴 뒤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쁨을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기아가 가을야구에 복귀한 것은 지난 2011년 준플레이오프 진출 이후 무려 5년 만이다. 기아는 전신인 해태 시절 1980~1990년대 프로야구 최강팀으로 불리며 '해태 왕조'를 구축했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과거의 영광을 잃고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통산 V10으로 한국프로야구 최다우승팀이지만 해태에서 기아로 모기업이 바뀐 2000년대 이후, 프로야구 정상에 오른 것은 2009년 한 차례뿐이다.

2011년 마지막 4강 진출 이후 기아는 한동안 암흑기를 보냈다. 해태 왕조의 최고 레전드였던 선동열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지난 3년간(2012-2014) 기아는 각각 5위-8위-8위에 그쳤다. 성적도 성적이었지만 팀 운영에서도 많은 구설에 휘말리며 시급한 과제였던 체질개선과 세대교체에 실패했다는 비판이 많았다.

선 감독은 애초 구단으로부터 재신임을 받았으나 여론의 반발로 결국 일주일 만에 다시 자진 사임해야 했다. 김기태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첫해였던 2015년에도 역시 치열한 5강 싸움 끝에 7위에 그치며 구단 역사상 최초로 4년 연속 PS 진출 실패라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공 뿌리는 양현종 지난 9월 27일 오후 광주-KIA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 LG 트윈스의 경기 1회 초 KIA 선발투수 양현종이 역투하고 있다.

▲ 공 뿌리는 양현종 지난 9월 27일 오후 광주-KIA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 LG 트윈스의 경기 1회 초 KIA 선발투수 양현종이 역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암흑기를 보내는 동안 기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안정감'이었다. 윤석민, 양현종, 김주찬, 이범호 등 사실 주전들 개개인의 기량이나 이름값은 크게 뒤지지 않았지만 저마다 잦은 부상이나 불운, 슬럼프에 발목이 잡히며 3~4년 이상 꾸준한 성적을 올리는 선수가 매우 드물었다. 주전과 비주전의 격차가 커서 주축 선수들 몇몇만 부상을 당하면 팀전력이 갑자기 크게 하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구조적으로는 강력한 선발진에 비하여 불펜 필승 조가 부실했고, 타선은 잦은 기복과 세밀함 부족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기아는 2015년 김기태 감독이 부임하면서 리빌딩을 선언했다. 젊은 선수들을 꾸준히 중용하면서 장기적인 변화를 모색했다. 하지만 베테랑들에 대한 대우와 존중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지난해 볼티모어에서 윤석민이 다시 복귀하고, 올해는 삼성에서 방출된 임창용이 후반기 가세하는 의외의 호재도 있었다.

자연스러운 신구 조화와 끈끈해진 팀 분위기를 바탕으로, 기아는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 리빌딩을 추진하면서도 끝까지 가을야구 진출을 놓고 경합할 수 있었다. 성적에서 가능성을 보여주는 데 성공한 셈이다. 비록 2015년은 막판 뒷심 부족으로 SK에게 5강 막차 티켓을 내줘야 했지만 올 시즌은 기어코 가을야구로 복귀하며 작년의 아쉬움을 털어냈다.

올 시즌 기아 5강행의 원동력은 선발 야구였다. 윤석민이 어깨부상으로 장기이탈했음에도 양현종과 외국인 듀오 헥터 노에시-지크 스프루일로 이어지는 삼각편대가 나란히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두며 총 35승을 합작했다. 특히 양현종과 헥터는 나란히 동반 200이닝 이상을 돌파하며 리그 최고의 풀타임 이닝이터로 제 몫을 다했다. 불펜은 전반기 최다 블론세이브를 기록하며 고전했지만, 후반기 들어 합류한 임창용이 다소 기복을 보이면서도 팀 내 최다인 15세이브로 노장의 관록을 보여줬다. 여기에 하반기 들어 부상에서 돌아온 윤석민과 김진우가 한승혁, 심동섭 등과 함께 마침내 기아의 숙원이던 '필승조' 구축을 끌어냈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팀

안타치는 김주찬 2일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벌어진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와 kt 위즈의 경기에서 1회 말 1사 2루때 KIA 3번타자 김주찬이 1타점 안타를 치고 외야를 바라보고 있다.

▲ 안타치는 김주찬 2일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벌어진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와 kt 위즈의 경기에서 1회 말 1사 2루때 KIA 3번타자 김주찬이 1타점 안타를 치고 외야를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타선에서는 이범호와 김주찬이 개인 '커리어 하이'의 성적을 기록하며 공격을 이끌었다. 지난해 최악의 슬럼프를 겪었던 나지완이 부활하며 중심타선의 파괴력을 높였다. 외국인 타자 브렛 필은 영양가 논란 속에도 다시 한 번 20홈런과 3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하며 꾸준했고 이적생 서동욱의 맹활약과 만년 유망주 김주형, 신예 김호령-노수광 등의 성장이 더해지며 기아는 지난해까지 리그 하위권에 머물던 장타력과 득점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었다. 후반기 안치홍과 김선빈 등의 가세로 팀 전반적으로 3~4년 전에 비하여 한층 폭넓은 선수층을 확보하게 됐다. 미래에 대한 기대까지 높일 수 있었다.

김기태 감독은 2013년 LG 사령탑 시절에 이어 올해 기아까지 각기 다른 두 팀을 잇달아 포스트시즌에 올려놓으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공교롭게도 LG 역시 김기태 감독 시절 11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의 흑역사를 청산하고 가을야구 시대를 다시 열어젖힌 바 있다. LG와 기아 모두 팀 고유의 문화가 강하고 팬들의 눈높이가 까다로워서 감독들이 장악하기 쉽지 않은 팀으로 꼽힌다. 여기에 김 감독은 특유의 형님 리더십을 바탕으로 팀 체질개선과 리빌딩의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붙여도 손색이 없는 업적을 남겼다.

사실 김기태 감독은 2014년 LG 사령탑에서 물러나는 과정에서 아쉬운 행보로 '런기태' '포기가 빠른 남자'라는 조롱을 받는 등 지도자로서의 이미지에 흠집을 남기기도 했다. 기아 사령탑으로 부임하면서도 많은 의문부호가 붙었다. 형님 리더십 뒤에 가려진 무리한 투수운영이나 작전 구사 능력이 도마 위에 오르며 최근까지도 적지 않은 비판에 시달렸다.

하지만 김 감독은 우여곡절 끝에 올해 5강행을 이끌면서 지난 2년여간 자신의 지도력을 둘러싼 의구심을 '어느 정도' 불식시키는 데 성공했다. 전임 선동열이나 조범현 감독 시절까지만 해도 코치진과 선수단, 팬들 간에 어느 정도 소통의 장벽과 거리감이 있다는 아쉬움도 많았다. 하지만 김기태 감독이 지난해부터 '동행'을 슬로건으로 내걸며 선수들과의 벽을 허물고 팀워크에서 한결 자연스럽고 끈끈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는 점이야말로 올 시즌 5강행 이상의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기아는 아직은 완성된 팀이라기보다는 만들어가고 있는 팀에 더 가깝다. 기복이 심한 경기력, 투타 밸런스의 엇박자 등 강팀이 되기 위해서는 개선해야할 문제점이 더 많다. 하지만 5년 만에 가을야구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면서 그간의 패배주의를 어느 정도 일신하고 앞으로 명가 재건의 실마리를 어느 정도 찾았다는 점은 높이 평가받을만한 가치가 있다. 김기태 감독과 호랑이 군단이 앞으로 써내려갈 새로운 도전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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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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