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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는 5.9건. 1970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결혼은 더 이상 '의무'가 아닙니다. 비혼을 택하는 사회·개인적 이유는 무엇일까요. '결혼 없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요. 오마이뉴스는 '결혼 없이도 괜찮아' 기획을 통해 삶의 다양한 가능성을 엿보려합니다. [편집자말]
대학 가고, 취직하고, 결혼해서 아파트를 산 뒤 자식을 두어 명쯤 낳고, 장성한 자식에게 노후를 보장받은 것이 '정상적인' 삶이라 여겨지는 시대가 있었다.
 대학 가고, 취직하고, 결혼해서 아파트를 산 뒤 자식을 두어 명쯤 낳고, 장성한 자식에게 노후를 보장받은 것이 '정상적인' 삶이라 여겨지는 시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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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가고, 취직하고, 결혼해서 아파트를 산 뒤 자식을 두어 명쯤 낳고, 장성한 자식에게 노후를 보장받은 것이 '정상적인' 삶이라 여겨지는 시대정신이 있었다. 실제로 '노력'하면 그런 삶으로의 편입이 지금보다는 수월한 호시절도 존재했다. 허나 그 시절 '정상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은, 어쩌면 스스로를 공장 컨베이어 벨트 위 존재처럼 느꼈을지도 모른다. 정해진 대로 착착 앞으로 나아가는 삶의 감각 때문이다.

지금은 노력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시대고, 대입, 취업, 주택 마련 등 어느 하나 수월한 것 없이 덜컹댄다. 덕분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같은 자리에 머무르는 청춘이 늘어났고, '머물러 있음'은 다른 방식의 성장을 촉진하기 시작했다. 삶의 의미나 개인의 행복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게 된 것이다.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공교육에서, 미디어에서, 어른들로부터 주입받아온 것을 쉬이 움켜쥐지 못하자, 나는 그것이 정말 스스로도 원했던 것인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나의 욕망'을 찾기 위한 데이터를 축적하기 위해 온라인 게시판이나 소셜 미디어를 매개로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사는지 좀 더 내밀한 이야기를 보고 들었고, 시간과 자금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감각을 열고 다양한 경험에 뛰어들고자 했다. 그 결과 공교육이나 매스 미디어에서 그었던 테두리 바깥의 무수한 경험과 폭넓은 감정을 알게 됐다. 괴로움을 참으며 사회가 강요하는 기준에 스스로를 맞출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기반으로 행복의 필수 조건을 추려봤다. 맛있는 것을 먹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향긋함에 노출되는 등의 감각적인 만족들. 불필요하게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 배려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기반에 둔 토론들.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는 기쁨과, 배려심 있고 유머코드 통하는 사람들과, 그들과 가까운 물리적 장소에 위치한 내 몸 누일 5평 정도에 독점적 공간만 있으면 퍽 행복하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유머 코드와 문화적 취향, 삶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는 5명이 모여 협동조합 창설 뒤 공동주택을 세우는 상상을 하게 됐다.

1층은 공동 작업실 겸 문화 행사장을 마련하고, 2층부터는 각자의 방과 화장실을 두는 구조다. 1층을 거점으로 함께 문화 콘텐츠를 만들고, 집 앞 작은 텃밭에는 토마토, 감자, 허브를 심고 재배하는 삶. 이를 통해 평생 주거 불안을 느끼지 않게 된다면 더욱 좋을 테다. 토지를 매입하여 건축하거나 이미 지어진 곳을 리모델링하면 좋을 텐데, 1인당 1억 원을 마련하면 가능할까? 근데 어느 세월에 모으지. 설령 1억원을 모은다 해도, 그 때쯤이면 부동산 가격은 그동안 더 미친 듯이 오르는 것은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세상, 결혼 아닌 주거공동체를 꿈꾼다

결혼 대신 유머 코드와 문화적 취향, 삶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는 5명이 모여 협동조합 창설 뒤 공동주택을 세우는 상상을 하게 됐다.
 결혼 대신 유머 코드와 문화적 취향, 삶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는 5명이 모여 협동조합 창설 뒤 공동주택을 세우는 상상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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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뒷전이다. 결혼하지 않아도 앞선 조건만 충족된다면 즐겁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오히려 결혼 때문에 삶의 질이 저하되는 경우도 많이 봤다. 맞벌이를 요구하지만 육아와 가사는 부인에게 떠넘기는 남편, '며느리'로서 해야 하는 일상적 감정노동과 명절의 육체노동들. 나는 웬만하면 결혼하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어서, 비혼을 생각하는 사람의 수는 해마다 늘어난다. 결혼이 어른의 조건이고, 출산을 사회적 의무라고 생각하는 일부 기성세대는 비혼이 못마땅한가 보다. 자식들에게 은근히 압박하고 오지랖을 늘어놓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개인에게 그와 같은 '의무'를 요구할 자격이 있는지 돌이켜 보자.

국가 차원의 보육·교육 복지 미비로 자녀 양육을 위해선 개인의 막대한 시간과 돈이 투여된다. 부부가 모두 직장에서 일하자니 부모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해지고, 둘 중 한 명이 회사를 그만두자니 돈벌이가 시원찮아 진다는 딜레마에 처하곤 한다. 일을 그만둔 사람의 직장 경력 단절도 큰 문제다. 그렇게 수십 년간 어려운 선택지 속에서 차악이나 차선을 골라내 제출한 답지의 채점 결과는 자식의 '원망'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극심한 경쟁, 성긴 사회 안전망, 질 낮은 일자리, 턱없는 최저임금, 말도 안 되는 주거비용 때문이다.

"왜 이런 세상에 나를 태어나게 했어?"라는 자식의 물음을 마주하는 순간을 상상해본다. 이와 같은 맥락을 고려한다면 남의 결혼과 출산에 대해 오지랖 부리기에 앞서 사회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편이 좋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기대할 때에는 그에게 해당 행위를 통해 만족이나 보람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근거로 협상해야지, 무조건 윽박지르고 강요해선 안 될 것이다.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은 없다, 결혼도 그렇다

결혼 때문에 여성에게 억울함을 갖는 일부 남성도 있다. 애먼 오해하지 말고, 좀 더 적극적으로 스스로의 행복을 쟁취하자.
 결혼 때문에 여성에게 억울함을 갖는 일부 남성도 있다. 애먼 오해하지 말고, 좀 더 적극적으로 스스로의 행복을 쟁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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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때문에 여성에게 억울함을 갖는 일부 남성도 있다. 손아람 작가가 JTBC <말하는 대로>에 출연하여 성 평등 관련 스피치를 한 적 있는데, 나는 출연 전 그의 스피치 원고를 감수한 사람 중 하나였다. 손 작가는 본인 페이스북에 관련 내용을 올리며 나를 태그 했다. 그러다 보니 해당 글에 댓글 달릴 때마다 내게도 알림이 떴는데, 그중 나를 뒷목 잡게 한 댓글이 있었다. "실력 있는 여성들이 경제적인 이익을 많이 얻게 하는 것은 찬성하는데, 그렇다면 결혼을 할 때도 남성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전가하는 걸 없애야겠죠? 이익이 있으면, 그에 따른 의무도 있어야죠"라는.

여성이 결혼할 때 남성에게 경제적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 사실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떤 부자 남자는 경제적 자립 능력은 없지만 '어리고 예쁜' 여성과 결혼할 수 있다. 스스로 원했고, 배우자와 합의한 일일 것이다. 남성의 명의로 대출 받은 전세금을 부부가 맞벌이로 동시에 갚거나, 애초부터 반씩 부동산에 투자하여 공동명의를 가질 수도 있다. 여자 부자와 경제력 없지만 '어리고 잘생긴' 남성과의 결합도 가능하다. 두 당사자 간의 합의에 따라 무수히 다른 결혼의 면면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지극히 개인적 문제를 근거로 임금 차별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정당화하는 논리는 기가 차다. 댓글에 뒷목 잡게 됐던 이유다. 사실 손아람씨 스피치를 집중해서 들었다면 애초에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텐데, 억울함이라는 방패가 스피치 내용을 다 튕겨냈나 보다.

뭣이 그렇게 억울한디! 여성이 남성에게 경제적 부담을 지우는 것이 정 걱정되면 결혼을 안 하면 된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남성끼리 주거공동체를 이룩하면 경제적으로 개이득! 주변에서 결혼을 압박하고, '대를 이어야 한다'는 강요를 한다면 설득하거나 싸워서 스스로의 짐을 벗어던질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유전자를 남기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면 정자 기증을 하는 비교적 간단한 방법도 있다. 가정의 경제를 홀로 책임질 만큼의 경제력이 없으면서 부자 남자 심정에 빙의해 피해망상을 갖는 경우도 종종 발견되는데, 애먼 여자 욕하지 말고, 본인의 처지를 객관화하고 욕망을 직시하여 '가능한 행복'을 쟁취하기를 기원한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성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는 것, 그를 통해 행복의 최소 조건을 추리는 것, 타인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역시 성장이라 생각한다. 스스로 불행하다 느끼기에 남을 짓밟고 깎아내리며 우월감과 쾌감을 얻으려는 사람들을 자주 접한다. 본인은 '의무'라고 생각하기에 원치 않아도 꾸역꾸역 버티는 일을, 다른 사람들은 홀가분하게 때려치운 것을 보니 얄미워서 폭언을 퍼붓는 경우도 봤다.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맥락에서 각자가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용인하는 한국 사회가 되길 바란다. 한국 사회에 행복한 사람이 더 많아지는 것은 내 '꿈의 목록' 중 하나다.

['결혼 없이도 괜찮아' 기획 살펴보기]
1편 입만 열면 기승전 '결혼', 거절합니다
2편 다짜고짜 '한 달에 얼마 버냐'... 그냥 혼자 살래요



태그:#비혼, #행복, #남성끼리의주거공동체, #결혼, #셰어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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