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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71주년을 맞아 한미 당국은 북한이 핵이나 장거리 미사일(ICBM)을 발사할 것이라 추정하고, 그 대비책으로 한국의 전 해역에서 한미 해군 역사상 최대 규모의 대북 무력 압박을 단행했다. 그러나 12일 현재 북한은 그 어떤 실험도 실시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기자는 최근 한두 달 사이에 북미 간에 북핵 해결을 위한 '물밑 접촉'이 시작됐다고 분석한다.

[정황①] 빌 리처드슨 전 유엔대사의 북한 방문

빌 리처드슨 전 미국 뉴멕시코 주지사가 지난해 11월 10일(현지시각) 워싱턴D.C.의 우드로윌슨센터에서 열린 '코리아 글로벌 포럼'의 기조연설자로 나서 연설하고 있다.
 빌 리처드슨 전 미국 뉴멕시코 주지사가 지난해 11월 10일(현지시각) 워싱턴D.C.의 우드로윌슨센터에서 열린 '코리아 글로벌 포럼'의 기조연설자로 나서 연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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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리처드슨(Bill Richardson) 전 미국 뉴멕시코 주 주지사는 하원의원, 유엔 주재 미국대사를 역임한 바 있는 '지북(知北)파'라고 할 수 있는 저명인사이다. 그가 북한의 5차 핵실험(9월 9일)이 있은 지 2주도 안 된 시기에 2016년 9월 24일부터 27일까지 '리처드슨 센터 포 인게이지먼트'( Richardson Center for Global Engagement) 간부들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했다.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그는 북한 외무성 한성렬 미국 국장과 스웨덴 북한 대사인 토르켈 스티에른뢰프(Torkel Stiernlof) 등을 만났다고 한다(스웨덴은 평양에 대사관이 없는 미국 일을 대신 해 주고 있다).

북한 외무성 한성렬 미국 국장은 북한 내 미국통이다. 이들은 무엇을 논의했을까. 백악관 국가안보위원회의 네드 프라이스(Ned Price) 대변인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방문은) 백악관과 협의 하에 이뤄진 것이며, 백악관은 이런 인도주의적인 방문을 지원한다"라고 밝혔다.

유엔 주재 미국 대사를 역임한 바 있는 리처드슨의 북한 방문의 표면적 목적은 다음과 같이 알려져 있다.

(1) 한국전쟁 때 사망한 미국인 전사자의 유해를 찾는 일을 재개하는 문제
(2) 북한 홍수 피해 지원 방안
(3) 1월 이후 북한에 억류된 버지니아 대학생 오토 웜비어(Otto Warmbier)의 석방 문제

그러나 과연 이것만이 방문 목적의 전부일까. 기자는 북한을 여러 번 방문한 적이 있는 노련한 외교관인 리처드슨 전 미국 유엔대사가 이 시점, 즉 북한의 5차 핵실험 약 2주일 뒤에 평양을 방문한 것의 또 다른 임무는 '북한 6차 핵실험 방지', 나아가 계속되는 '북미 협상의 전령(메신저)'이라고 본다.

[정황②] 서맨사 파워 현 유엔대사의 한국 방문

서맨사 파워 유엔주재 미국 대사가 지난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남영동 주한 미국대사관 공보원에서 북한과 관련해 브리핑 중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서맨사 파워 유엔주재 미국 대사가 지난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남영동 주한 미국대사관 공보원에서 북한과 관련해 브리핑 중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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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4일부터 8일까지 도태용 청와대 국가안보실1차장 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이 미국을 방문했다. 그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부장관과 회동하고 돌아왔다. 리처드슨 전 유엔 대사가 평양을 방문하고, 조태용 처장은 미국을 방문했다.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사건은 2016년 10월 8일부터 11일까지 서맨사 파워(Samantha Power) 현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서울을 방문하고 다음날인 10월 9일 판문점을 방문했다는 사실이다. 미국 인사들의 교차 방문 등에 따른 협의 차원에서 조태용 처장이 미국에 방문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리처드슨 전 미국 유엔 대사가 북한 측에 모종의 메시지 전달이나 미국 측의 제안을 전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는 가운데, 파워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이례적으로 서울을 방문한 것이다. 이는 리처드슨 대사의 메시지가 백악관에 전달됐고, 백악관의 지시에 따라 파워 대사가 서울을 방문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북한은 로켓 발사도, 핵실험도 단행하지 않았다.

[종합①] 개별 제재는 가능하지 않은 상황...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런 정황은 리처드슨 전 유엔대사가 평양을 방문한 직후부터 북한과 미국 사이에 핵문제에 관한 접촉이 심도 깊게 진행됐다는 분석을 가능케 한다. 전·현직 유엔 주재 미국대사들이 평양과 서울을 번갈아 방문하는 가운데 북핵 실험 중단과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이라는 빅딜이 진행되지 않았을까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이런 가운데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2015년 신년사를 통해 "만약에 미국이 한미 군사합동훈련을 중지한다면 북한도 핵실험을 중단할 수도 있다"는 발언을 했다는 걸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편, 황교안 국무총리와 '개별적인 추가 대북 제재' 방안 등을 논의한 파워 대사는 기자회견을 통해 '엄중한 대북 조치를 예고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국제 정세를 보면 이는 강공 드라이브 혹은 허세로 읽힌다. 왜냐하면 일각에서는 한국과 미국이 북한을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소진됐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고, 미국의 전면적인 포위에 직면한 중국과 시리아에서 미국과 대치 중인 러시아가 '미국이나 한국의 뜻대로' 북한에 대한 유엔 안보리 제재 이외의 '개별국가 차원'의 대북 제재를 가만히 보고만 있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아침 연합뉴스TV에 따르면 미국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에 대해 "강력한 제재와 선제 공격을 주장했다"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은 이미 지난 9월 26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대북 선제타격은 현 상황에서 실질적인 전략이 될 수 없다"라고 못 박았다. 즉 '엄중한 대북 조치'라는 것은 그다지 효과가 없는 수식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종합②] 미국의 다음 행보는?

그렇다면 미국에게 남은 당면 과제는 무엇일까. 우선은 북한 핵이라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것이다. 그것은 임박한 6차 핵실험은 중지시키는 것으로 실현된다. 기자는 이를 미국의 대북 핵 정책 전환과 북핵과 관련한 '빅딜'일 것이라 주장한다.

우선 북한의 핵무장은 사실상 미국 본토를 위협한다. 이 가운데서 미국에겐 뾰족한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북한의 핵 실험과 미사일 시험 발사 중단 그리고 한국의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단을 빅딜할 수 있는 북미간의 협상은 필연적이다. 최근 북미간의 대화 기류 형성은 이런 이유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서 미8군 사령관의 안내로 군사정전위 회담장 등 판문점을 둘러본 파워 대사가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여기서 미국의 대북 제재 실패와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 정책이 사실상 실패했다는 기류를 읽을 수 있다. 동시에 박근혜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 실패의 분위기도 감지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의 다음 행보는 무엇일까.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특사를 파견하는 일이나, 11월 미국 대선이 끝난 후 새로 취임하는 미국 대통령이 평양에 특사를 파견해 핵 담판 시도를 하는 수순일 것이라고 전망된다.

미국에겐 미 본토를 공격하는 핵 운반 수단을 확보했을 수도 있는 북한 김정은 정권을 대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개별 제재나 선제 공격 등은 이 시점에서의 미국의 마지막 정치·군사적 공세다. 이런 분위기를 '해 뜨기 전의 암흑'에 비유할 수 이TDmf까. 미국은 1953년 휴전 협상 중에도 협상이 무르익어갈 때 가장 심한 폭격을 가했다. 이것이 그들의 협상 방법이다.

1994년의 지미 카터... 2016년의 빌 리처드슨

지난 1994년 6월 18일,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3박 4일의 평양 방문을 마친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 내외가 판문점을 통해 입국하고 있는 모습.
 지난 1994년 6월 18일,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3박 4일의 평양 방문을 마친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 내외가 판문점을 통해 입국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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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10월 7일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을 통해 "미국의 다음 대통령은 대북정책을 전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관련 기사 : 북한 향한 미국의 '변심', 한국 준비됐나). 앞서 제시한 최근의 정황들을 살펴보면 오바마 퇴임 전에 대북 정책 전환 시도를 시작한 것으로도 보인다.

북한은 지금까지도 ICBM 실험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만이 한반도 해상 전역에서 대규모 해군 연합훈련을 시작했다. 상황이 이러니 미국 대선 전후에라도 북한 역시 장거리 대륙간 탄도 미사일 실험을 할 수도 있다. 협상의 진전은 북미 간에 달려 있다. 그 사이 한국 정부와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는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1994년 북핵 위기 때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평양을 방문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북 선제공격을 하려는 걸 막았다. 개전 90일 이내에 한국의 인적 손실이 과대할 것이라고 예상됐고, 미군의 피해 역시 감당해내기 어렵다는 예측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20여 년 전 일이다.

이번엔 빌 리처드슨 전 유엔대사가 그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따라서 한반도 문제의 대안은 역시, 대화와 협력 그리고 협상이다. 기자는 대화와 협상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기자의 경험을 전하고자 한다. 1998년 이홍구 박사가 주미대사로 임명돼 가는 길에 하와이에서 한미 유지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엔 하와이 정부, 군부, 정보기구, 한인 유지들이 참석했다. 기자는 미 국방기술연구원 전 국제정치담당 수석고문 및 하와이대학 한국학 연구소 연구교수의 자격으로 이 간담회에 참석했다. 당시 기자는 이 자리에서 "한반도 문제는 군사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Military solution of the Korean peninsula is infeasible)는 견해를 피력했다.

회의를 마친 후, 자신을 전 미8군 참모였다는 한 미국 3성 장군이 기자에게 다가와 내 의견에 동의한다는 뜻을 표했다. 한반도 문제는 맥아더도, 중국도, 군사적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북한은 핵 보유국임을 천명했다는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가.

북미간의 대화가 진전된다면... 한반도에도 서광이

결론적으로 기자의 소견은 다음과 같다.

(1) 리처드슨 전 유엔대사가 이번에 평양을 방문한 목적은 북미간 협상 전령사(Messenger)의 역할일 것이다.
(2) 파워 현 유엔대사의 서울 방문의 목적은 이런 국제 정세를 한국 정부에 알리고 대화에 나서지 않는 박근혜 대통령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라는 예상이다.

흩어 쪼개진 정황의 퍼즐 조각을 맞춰보자. 북미간의 대화가 미국 대선 이후 더욱 활성화되고 어느 정도 진전이 있다면 한반도에도 서광이 비칠 것이라 기대한다.


태그:#북한, #미국, #북핵, #ICBM,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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