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문화

강원제주

포토뉴스

사진이 보여주는 모양새를 서로 나눠 보고, 그 안에 담긴 뜻을 서로 헤아려 보고, 그 안에서 내 세계를 그려보고, 그로부터 지적 유희를 즐기고, 그것으로 소통하고 나누고 그런 평가가 있었으면 한다. 그 안에는 주류도 없고, 패거리도 없는 그런 평가가 있었으면 한다. 재미있게 말하자면, 이 땅에 숨겨진 고수를 찾아서 놀이를 하자는 것이다. 장르도 초월하고, 경계도 허물고, 패거리도 없고 갑과 을의 관계도 없는 대동의 사진 세계에서 한 세상 멋지게 놀 수 있는 이 땅의 고수를 찾는 놀이다. 2016 갤러리 브레송 기획전 사진인을 찾아서⑩ '강정효론'은 10월 21일부터 10월 30일까지 전시된다. - 기자 말.

많은 사진가들 가운데 다큐멘트로서의 사진 작업을 가장 활발하게 하는 사진가라면 제주 사진가 강정효를 들 수 있다. 강정효는 많은 사진가들이 그러하였듯 기자 출신 사진가다. 그래서 보이는 대상을 그대로 담아 기록하는 포토저널리즘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

요즘 다큐멘터리 사진의 작품성을 평가하는 주요 요소로 자리 잡은 내러티브 혹은 스토리텔링보다는 한 장의 사진으로 실체적 진실을 담는 재현의 방식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예술성과 거리가 멀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고, 다큐멘터리 사진으로서도 그렇게 썩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사진가로서도 1987년 돌하르방에 대한 사진전을 연 이후 열네 번의 개인전을 열었지만, 사진전보다는 자신의 사진을 자료로 쓰는 책에 더 가치를 두는 사진가다. 책은 1991년 <이 땅의 젊은이가 본, 제주는 지금>을 시작으로 <섬땅의 연가>, <화산섬 돌이야기>, <한라산 이야기> 등 십여 권의 책이 있고, 많은 조사 보고서에 자신의 사진을 자료로 실었다. 심한 경우지만, 강정효가 '엄밀하게 볼 때 사진가는 아니잖은가?'라는 평가까지 들은 이유가 바로 이런 그의 이력 때문이다. 그 무지와 편협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제주의 모든 것, 다큐멘트로서의 가치

세계가 예술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예술이 세계를 이루는 주요 요소인 것은 맞지만, 세계는 예술이 포괄하지 못하는 법이나 역사 혹은 과학으로 구성되는 것이 사실이다. 창의성이 항상 선(善)인 것은 아니다. 변화가 항상 선인 것도 아니다.

진보한다고 생각되는 어떤 변화가 결국에 퇴보였고, 그 길이 향하는 것은 파국이었던 일은 인류 역사에서 숱하게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세계 자체가 무변광대(無邊廣大) 하니 그 안에서 변화시키지 않고 끝까지 지켜야 할 가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가치를 사진에서 찾으면 그것은 자료 즉 다큐멘트로서의 존재 가치다.

특히 연이은 개발로 끝없이 망가져 가는 제주의 현주소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의 다큐멘트 사진이 원형 보전의 차원에서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는지는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다. 그의 다큐멘터리 사진들이 제주가 고향인 사람들에게는 마음의 고향, 어머니의 품 그런 심성 차원에서 좋은 추억 되새기기 용도로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비단 그런 용도로만 그의 사진이 소중한 것은 아니다. 그의 사진들은 실질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요긴하다. 이미 망가질 대로 다 망가져버린 한라산이나 해안선 혹은 제주 초가집이나 여러 하천들, 주변의 언덕, 숲, 포구 등을 복구해야 할 때, 잃어버린 문화재를 보존하거나 회복시켜야 할 때, 그의 사진이 얼마나 요긴하게 사용될지는 새삼스럽게 생각해 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사진가 강정효가 제주의 자연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신경을 쓰는 건 돌 문화다. 그는 제주 전역에 있는 돌담을 찍었다. 돌담에 관한 아카이브다. 그 사진들은 제주의 돌 문화가 어떻게 보존, 변형되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원형과 변형을 보여줄 뿐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는 여러 민속학적 자료도 많이 보여준다.

제주참여환경연대 2016년 3·4월 소식지 표지 사진으로 쓴 사진이 가장 좋은 예다. 그 사진은 지금은 해군 기지 건설 때문에 다 파괴되어 버린 강정 포구를 찍은 사진인데, 해녀들이 함께 어울려 물질을 나가는 모습니다. 지금은 사라져버려 다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자연과 따뜻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그리는 한 장으로 말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수작이다.
섭지코지 ⓒ 강정효
우도 ⓒ 강정효
강정해녀 ⓒ 강정효
한동돌담 ⓒ 강정효
다큐멘트로서의 사진은 해석의 여지를 넓히지 않는 점에서 기록의 일을 글과 함께 나눈다. 그래서 다큐멘트 사진은 항상 몸 글과 함께 사용되어 몸 글을 구체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 사진은 몸 글이 말하려하는 바를 그대로 보여주거나 동일한 뜻을 감성적으로 울림이 일어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그 사진이 몸 글과 전혀 다른 새로운 해석을 내포하면 곤란하다. 제목과 짧은 캡션만 있어도 누구든지 동일하게 의미를 전달받는 사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강정효는 제주의 풍광을 주로 한라산과 돌을 중심으로 그렸는데, 대부분 그가 쓰거나 남이 연구해 놓은 글과 함께 쓰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사진계가 하도 작품성과 그에 기반한 사진의 평가에 함몰되어 있어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강정효 또한 예의 사진집을 내기도 했다. 다큐멘트 사진들을 모아 낸 사진집이 아닌 처음부터 사진의 작품성을 염두에 두고 찍은 사진집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2015년에 나온 <할로영산 바람웃도>다.

한라산의 기암괴석을 주로 찍은 이 사진집은 기존의 다큐멘트와는 전혀 다르다. 희한하게 생긴 돌의 외형을 빛과 초점을 달리 하면서 입체감을 드러낸 이 사진들은 특별한 메시지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냥 한라산 일대와 여러 하천, 해안, 섬 구석구석에서 그가 본 이 기암괴석들은 제주를 지키는 1만8000신들의 형상이다.

그런데 그냥 형상일 뿐이다. 그 안에 사회적이거나 역사적인 의미는 없다. 대상의 특이한 형상을 이미지로 만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특이한 소재를 찾아 찍은 그저 그런 사진들이 그의 글과 함께 자리를 하니, 가치가 빛이 난다. 자료로서와 예술적 이미지로서의 두 가지 측면이 복합 생성한 가치다.

신들의 고향이자 신화의 땅 제주에서 왜 돌이 일만팔천의 신이 되었고, 거기에서 우리는 어떻게 신명 나는 세상을 꿈 꿀 것인가, 라는 글을 읽으면 그의 돌 사진들이 혼자 있을 때와 달라진다. 사진은 이런 것이다. 홀로 있을 때와 여럿이 같이 있을 때, 그리고 글과 함께 있을 때 그 사진의 가치는 달라진다. 강정효의 사진은 세 번째, 글과 함께 있을 때 가치가 산다.
중문천 ⓒ 강정효
임금내 ⓒ 강정효
무수천 ⓒ 강정효
굿과 민속 사진이 갖는 사회사적 의미

강정효의 자료 사진이 그 어떤 작품성 있는 사진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그의 사진이 제주의 민속과 역사에 대한 중요한 시각 기록 자료로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강정효 사진의 기록적 가치는 크게 굿과 민속에 있다. 그런데 제주의 굿과 민속은 억울하게 학살당한 한(恨)을 위무하고 구천에 떠돌 영혼을 위로하는 일과 연결되어 있다.

해방 공간에서 일어난 4.3 학살과 관련되어 비극의 현장을 보여주는 것들이 많다. 이런 사진에 굳이 인위적인 예술성을 가미할 이유가 없다. 대상 그 자체가 시각 자료로서 넘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데 인위적으로 뭔가 사진적 행위를 더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사진 그것이 보여주는 그 대상만으로 이미 더 비극이 아닐 수 없는데, 뭘 더 추가해서 말하기의 장치로 삼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집단 학살 매장터 발굴을 찍은 사진에 대해 작품성 운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혼백을 위무하고 한을 푸는 굿판에서 프레임을 깨뜨리고, 사진 문법을 파괴하거나 결정적 순간을 포착해서 아름답게 (혹은 기이하거나 추하게)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예술 작품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메시지가 빠져버린 이미지를 위한 이미지라면 그 가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강정효의 사진은 사진가 김수남의 사진과 닮았다. 그는 지역 공동체 안에서 사는 사진가가 사라져가는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갖는다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굿과 여러 민속들을 소재로 삼아 예술성이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문화의 원형과 변형을 보존하기 위해 기록을 남기는 일이다고 생각한다.
죽성설새밋당 ⓒ 강정효
광령자원당 ⓒ 강정효
그는 기자 출신이라 현장 조사에 매우 강하다. 그는 제주의 여러 문화유산을 찾아다니면서 심도 있는 보고서를 많이 만들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은 방사용 돌탑을 조사한 <제주 거욱대 – 제주 자연마을의 방사용 돌탑 보고서>라는 책이다. 방사(放邪)용 탑이란 마을로 들어오는 액, 질병, 살(煞), 악기(惡氣) 등을 막기 위해 돌로 쌓은 신앙 대상물이다.

강정효는 제주 전역에 퍼져 있는 이 민속 문화를 둘러싼 신화, 의례, 형태, 기능 등을 매우 심도 있게 조사해서 글로 보여주는데, 그 내용들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이 독자들에게 매우 유용하게 쓰인다. 이 사진들은 일반인이 찍은 사진들과 같이 단순한 자료용으로 쓰이는 수준을 넘어 사진 자체가 독자들의 시선을 머무르게 하는 상당한 예술적 힘도 가지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눈에 띄는 사진 한 장이 있다. 이 책의 맨 마지막 페이지인 303쪽에 글 없이 홀로 놓인 사진인데 단순한 자료용 사진이 아니라서 본문에 쓰이지 않았다. 자료용이 아니기 때문에 이 사진에 대해서는 특별한 캡션이 없다. 사진 한가운데 덩그러니 돌탑이 놓여 있는데 그 뒤 너머로 거대한 도시가 들어선 모습이 펼쳐지고 그 너머로 한라산이 보인다.

그리고 돌탑 앞으로는 텅 빈 공간이 열려 있다. 전체적으로 돌탑은 혼자 쓸쓸히 나뒹굴어진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 도시 개발로 잊혀지는, 무시당하는, 외로운 문화유산의 처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훌륭한 민속학 보고서인 책 마무리를 예술적 터치를 한 사진 한 장이 끼어들면서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진의 묘한 힘이다.
이호거욱대 ⓒ 강정효
아름다운 풍경에 배인 슬픈 4·3을 보다

제주시 노형은 4·3 당시 가장 참혹한 집단 학살이 일어난 여러 곳 중의 하나다. 그런데 지금은 그 아픈 역사를 뒤로 한 채 오로지 도시 개발에만 몰두해 있다. 그는 민예총 이사장으로서 그 아픈 장소인 노형에서 4·3 68주년 기념 해원 상생 큰 굿을 치렀다. 그리고 사진가로서 그 굿을 기록하였다.

사진가 강정효는 지금까지 4·3과 관련해 진행된 많은 위령제를 사진으로 기록해 왔다. 때로는 컬러로 때로는 흑백으로, 때로는 무미건조하게 때로는 감성적인 터치로 기록해 왔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하나, 4·3을 말하지 않고 제주를 말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가운데 하나인 정방폭포를 찍은 사진을 통해서도 사진을 보는 독자들이 역사적 목소리를 들어주기를 소망한다.

정방폭포는 제주 4·3 당시 240여 명이 목숨을 잃은 서귀포 지역 최대의 민간인 집단 학살 터다. 한라산 곳곳에 있는 여러 오름도 마찬가지고, 크고 작은 굴도 마찬가지다. 숲도 그렇고 언덕도 그렇다. 제주의 풍경은 어디를 가나 아름답지만, 어디를 가나 모두 4·3의 잔인하고 슬픈 역사를 머금고 있다. 그래서 제주의 아름다움은 잔인한 아름다움이다.

사진은 스스로 말을 하지 못하는 매체라서 해석의 여지가 매우 넓다. 사진가의 의도대로 해석하고 느끼는 것이 옳다고만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어떤 사진가는 그 해석의 여지가 넓어지는 것을 미리 차단해 버리고자 하는 사진가가 있다. 더불어 사진을 특정 의도대로 읽어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사진가 강정효가 그렇다. 그는 제주의 아름다움 안에 배어 있는 그 잔인한 아름다움을 꼭 함께 보기를 바란다. 4·3이라는 잊을 수 없는 역사를 항상 가슴에 새기고 사는 사진가라서 그렇다. 그는 사진을 통해 역사를 말하고, 사진을 통해 인민이 사는 삶을 말하고자 하는 사진가다. 이러한 사진의 태도가 그를 제주민예총 이사장으로서 예술로 하는 시민운동으로 연계하게 한다.
노형 ⓒ 강정효
정방폭포 ⓒ 강정효
목시물굴 ⓒ 강정효
그가 찍은 4·3 집단 학살 유해 발굴 현장을 찍은 사진을 보면 그의 사진에 대한 태도를 잘 읽을 수 있다. 비행장에서 비행기가 거대한 크기로 정착해 있는 모습 앞에 포클레인이 땅을 파고 있고 그 앞에 여러 명의 여성들이 호미를 들고 땅을 파고 있다. 아무 캡션이 안 달려 있으면 대상의 서로 다른 모습을 하나의 프레임 안에 넣어 비교함으로써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려는 위트나 풍자를 실은 방식의 이야기하기로 보일 것이다.

그런데 이 사진은 유해를 발굴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이다. 그렇게 보면 더할 나위 없는 슬픔이 배어 있는 사진이다. 이런 평지에서까지 학살이 일어났구나, 그 유해 위에 비행장이 서 있구나, 도처에 4·3의 슬픔과 한이 서리지 않는 곳이 없겠구나, 와 같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사진 이미지를 구성하는데 특별한 장치를 가동할 필요 없이 있는 현장 그것만 그대로 보여줘도 어디가나 다 슬픔의 땅이다. 역사 그 자체가 슬픔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유해 여러 구가 뒤엉켜 있는 사진을 보면 또 다른 깊은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다. 뒤엉킨 모습이 마치 무슨 예술적 컴퍼지션이나 문양을 이루는 듯하다. 특별한 사진적 기술이나 장치를 하지 않고 그저 있는 대로 셔터만 누른 사진이다. 여러 사람들이 뒤엉킨 채 집단 학살된 장면을 유해가 스스로 말해주기 때문이다. 어떤 특별한 프레이밍을 할 필요를 못 느끼는 사진이다. 대상 그 자체가 있었던 참혹한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데 무슨 기술을 더 할 것이겠는가?
정드르 ⓒ 강정효
정드르 ⓒ 강정효
정드르 ⓒ 강정효
결국, 사진가 강정효는 역사의 터전 안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기록할 뿐, 이미지를 위한 이미지를 만드는 일에 별로 힘을 쏟지 않는다. 뭔가 사회적이고 역사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일에 사진을 사용할 뿐, 예술을 위한 예술로 사진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러다보니 이미지를 위한 이미지에 함몰될 수 있는 시선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그 좋은 예가 그가 말하는 제주 유채꽃에 대한 사진이다. 누구나 그러겠지만, 언제부터인지 제주의 봄은 유채꽃 사진으로 표준화되어 갔다. 그런데 그 유채 밭이 최근 들어 많이 줄어들고 있는데, 그 이유는 유채 농사를 하는 것이 그다지 채산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다른 농지로 바꾸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관광객 입장에서는 안타깝다고 하는데, 사진가 강정효는 유채꽃 노란 물결에 배어 있는 농민들의 땀을 읽어 주십사 하는 목소리를 낸다. 사회적 의미가 배제되어 버린 사진, 단순한 이미지를 위한 이미지에는 별 의미를 두지 않는 사진가의 입장이다. 그는 제주의 모든 것을 담되, 그 안에 사람이 우선 되는 세상에 대한 염원을 담았다.

덧붙이는 글 | 이광수 (사진비평가. 부산외국어대 교수)

태그:#강정효, #제주, #정드르비행장, #4.3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도사 전공의 역사학자. 역사를 분석하는 역사학자로서의 삶도 중요하지만, 역사에 참여하여 역사를 서술하는 역사가로서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현재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이자 해고자생계비지원을 위한 만원의연대 운영위원장 및 5.18기념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